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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00484
한자 論山皇華山城
영어의미역 Whanghwa Sanseong Mountain Fortress
이칭/별칭 봉화산성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등화동 산 2[등화5길 95] 외
시대 고대/삼국 시대/백제
집필자 서정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성곽|산성|토성
건립시기/연도 백제
관련인물 의자왕
높이 5m
길이 840m
둘레 840m
면적 56,702㎡
소재지 주소 충청남도 논산시 등화동 산2[등화5길 95] 외지도보기
소유자 국유
문화재 지정번호 충청남도 기념물 제92호
문화재 지정일 1992년 12월 31일연표보기

[정의]

충청남도 논산시  황화산에 있는 백제시대 산성.

[위치]

논산시내에서 강경으로 통하는 국도 23호선을 타고 약 2㎞ 정도 가면 길 바로 왼쪽으로 해발 80m에 불과한 나지막한 구릉인 봉화산이 나온다. 황화산성은 봉화산의 정상부에 위치한다. 봉화산은 나지막한 구릉이나 주변 지역이 평야로 되어 있어 이곳에서는 주변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다.

[형태]

황화산성은 구릉의 정상부에서 기슭에 이르기까지 삼태기식으로 축조된 산성이다. 동벽·서벽·북벽이 구릉의 정상부를 지나는 반면에 동벽과 남벽의 일부는 기슭을 지난다. 지형상 서북쪽이 높고 동남쪽이 낮은 형태다. 동남쪽이 주통행로로 이용되었을 것으로 보이며, 성 안에서 모든 우수(雨水)도 이곳으로 모이게 되어 있다.

황화산성에 대해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석축이며, 둘레는 1,650척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현재 성벽 주변에서 석성의 흔적은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조선시대까지 석성으로 남아 있었으나 그 후 모두 유실된 것인지, 아니면 기록의 착오인지는 발굴 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사안이다. 그 대신 토루의 흔적이 거의 전 구간에 걸쳐 잘 남아 있다. 다만, 동문지 주변의 동벽은 약 20m 정도가 완전히 유실되어 성벽의 통과선마저 불분명하다. 또한 북벽은 곳곳이 파헤쳐져 있는데, 이곳에서도 성돌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발굴 조사를 통해 확인될 때까지 잠정적으로 석성이 아닌 토성으로 보고자 한다.

성벽은 자연지형을 잘 활용하여 축조되었다. 보존 상태가 양호한 북벽의 경우 외벽의 높이는 5m, 내벽의 높이는 4.5m 정도에 이른다. 성벽 상부의 폭은 1.2m 정도다. 성벽의 둘레는 730m라는 기록도 있고, 840m라는 기록도 있다. 성 안에는 폭이 약 10m 되는 내호(內壕)가 동벽을 제외한 전 구간에 남아 있다. 동북쪽과 서북쪽 귀퉁이는 특히 높게 축조되어 있는데, 이는 주변을 감시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문지의 형태는 동벽·서벽·북벽에서 확인된다. 동문지는 지형상 동벽의 중간쯤이 절단되어 완전히 유실되어 있는 곳에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서문지는 서벽이 7m의 너비로 절단되어 있어 성문으로 추정하는 곳인데, 현재도 이곳을 통해 왕래가 이루어지고 있다. 북문지도 약 5m 정도 폭으로 성벽이 절단되어 있어 문지임을 쉽게 추정할 수 있다.

성 안에는 건물지로 보이는 평탄면도 곳곳에 남아 있다. 특히, 북문지 근처에는 60㎝ 크기의 초석 2매가 남아 있다. 건물지 주변에서는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기와편과 토기편이 남아 있다. 한편, 성의 북쪽에는 조선시대 봉수대가 남아 있다. 이 황화산 봉수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남쪽으로 강경산(江景山) 옥녀봉 봉수와 북쪽으로 니산현 성산(尼山縣城山) 봉수, 즉 노성산성 봉수를 연결하는 봉수였다.

[의의와 평가]

황화산성은 논산 지역의 다른 산성과 달리 나지막한 구릉 위에 위치한 점이 주목된다. 성 안에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백제 의자왕이 놀았다는 전설이 있는 황화대(皇華臺)라는 큰 바위가 있어 더욱 주목된다. 발굴 조사를 통해 성벽의 축성 시기가 밝혀져야만 이러한 전설이 생겨나게 된 배경이나 산성의 성격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황화산성은 나지막한 구릉 위에 자리하고 있고, 주변 지역이 백제 가지내현(加知奈縣)과 통일신라의 시진현(市津縣) 지역이었던 것을 감안해볼 때 군현의 치소(治所)와 관련된 유적으로 보인다. 1992년 12월 31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92호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