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신이라는 이유로 현대인들에게는 잊혀져가는 산신제. 6·25 한국전쟁 이전까지만 해도 전국 곳곳에 산신제, 장승제, 유왕제 등 전통 민간신앙은 살아있었지만, 1970년대에 새마을운동 사업으로 그 맥은 거의 끊기고 말았다. 그러나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산신제를 아직도 지극정성으로 모시고 있는 마을이 연산리이다. 산제당에 걸려있는 현판의 기록에 의하면 수백 년 전부터 산신제...
산신계의 역사는 산신제의 100여년의 역사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정확하게 산신계가 몇 년에 시작되었고, 누가 시작을 했는지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지만, 산제당의 현판에는 1936년 이영호 씨를 비롯하여 열한 명의 산신계원들에 대한 기록이 보인다. 이 계원들을 중심으로 매년 음력 1월 3일 풍장을 치고 마을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쌀을 비롯한 각종 음식을 걷었다. 이렇게 모은 쌀과...
예전에는 산신제가 일 년 중 동네의 가장 큰 행사였기 때문에, 주민 전체가 참여하여 제물을 준비했고, 산신제가 끝나면 준비했던 제물을 다 같이 나누어 먹으며 풍성하고 여유로운 하루를 보냈다. 이렇게 진행되던 마을축제는 점차 산신계원들, 특히나 산신계의 임원들을 중심으로 행사가 진행되게 되었고, 따라서 산신제의 제물준비도 산신계원들의 몫이 되어버렸다. 2000년 이전까지는 산신제의...
산제당은 연산리 4구의 뒤편에서 마을을 감싸고 있는 영천봉(靈天峯), 마을 주민들이 ‘영실봉’이라고 하는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현재는 빨간 벽돌과 파란 기와지붕의 모습을 갖추었으나, 이러한 모습을 갖추는 데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처음 산제당은 영천봉의 동북쪽 끝자락, 마을입구에서 봤을 때 동산의 왼편쪽에 있는 큰 둥구나무 옆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무로 지어놓은 제당은...
이틀간 정성껏 준비한 산신제는 음력 1월 5일 밤 8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산신제를 지낼 산신계 임원 7명이 산제당이 다 같이 모여 옷을 갈아입고, 산신제를 준비하는데 밤 8시에 산제당 앞에서 세 번 울린 징소리에 축관이 산신제의 축문을 비롯한 소지 올릴 명단을 작성한다. 밤 8시에 징 3번, 밤 9시에 징 3번, 밤 10시에 징 3번, 밤 11시에 징 3번을 치고, 밤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