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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논산문화대전 > 논산의 마을 이야기 > 강경읍 염천리 > 비단 같은 강물 따라 흐른 세월 > 식민지 경제수탈의 관문

  • 근대 상업도시로의 변화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강경이 평양 및 대구시장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시장으로 손꼽혔던 일제강점기에 최대 인구는 3만 명에 달하였다. 상인 등 유동인구까지 합치면 약 10만 명 정도의 인구가 한꺼번에 모여들었다. 이러한 인구의 집결은 상대적으로 문화시설의 보급도 빨리 오게 하였다. 1920년대 도내에서 처음으로 전기가 들어왔고, 강경만의 전기 공급을 위한 화력발전소가 대흥리에 1백 평 규모로 세워졌다....

  • 수탈의 관문 포구와 갑문시설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일제강점기의 강경포구는 경제수탈의 관문이었다. 1920년대 초 강경은 금강 수운에 의한 내륙으로의 상품이동은 거의 중단된 상태였고, 강경장도 퇴락해갔지만, 포구는 일본의 농수산물 수탈 전진기지로 바뀌어 계속 이용되었다. 충청도와 내륙지방의 쌀과 면화는 뱃길과 철길을 통해서 빠르게 일본으로 실려 나갔다. 일본인들은 강경시내 5곳에 대형 도정공장을 세우고 논산평야·강경평야는 물론 중부...

  • 강경시장의 형성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8세기 강경은 옥녀봉의 동남면에 중심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었고, 시가지 깊숙이 곡류하는 강경천을 이용한 수운교역이 활발하였다. 인구의 증가와 시장의 활성화에 따른 취락의 확장은 옥녀봉 동쪽 습지를 매립하여 이루어졌다. 당시에는 주요 교통, 운송수단이 주로 수운에 의해 이루어졌으므로 도로 개설은 미비하였다. 도로망은 현재의 서창리에서 홍교리 사이에 1간 폭의 도로가 있었다. 시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