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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02408
한자 天主敎
영어의미역 Roman Catholicism
분야 종교/기독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영구

[정의]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로마 가톨릭 교회.

[개설]

천주교는 로마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그리스도교회로서 동방정교회나 프로테스탄트교회와는 구별되는 가톨릭교회를 말한다. 가톨릭이란 ‘보편적·공동적·일반적’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말로서 스스로를 ‘유일하고, 성스럽고, 공변되며, 사도(使徒)로부터 전래된 교회’라고 믿고 있는 그리스도교회가 전 인류를 위한 유일한 구원의 기관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가톨릭교회(ekklesia katholikē)라는 말이 처음으로 사용된 것은 110년경에 순교한 안티오키아의 주교 이그나티오스가 스미르나교회 앞으로 보낸 편지에서였다.

2011년 현재 가톨릭교회는 전 세계에 약 11억 명의 신도를 가진 최대의 공변된 교회이다. 2011년 기준 한국에는 520여 만여 명의 천주교 신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천주교회의 교구 수는 서울·대구·광주의 3개 대교구를 포함하여 모두 16개이다. 본당은 1,609개이며 공소(公所)는 813개이다. 성직자는 추기경 1명과 대주교 5명, 주교 26명, 신부 4,490명이다. 수도자(교황청 설립 수도회 기준)는 수사(修士)가 한국인 960명에 외국인 109명이며, 수녀는 한국인 5,933명에 외국인 192명이다. 전파 초기부터 현재까지의 충청남도 논산 지역의 천주교를 알아본다.

[구한말~해방 이전]

1784년 한국 천주교회의 창설 이후 천주교회가 논산 지역에 전파된 것은 1791년 신해박해를 겪으면서부터이다. 이후 수차례에 걸친 천주교에 대한 정부 박해를 견디면서 공식적으로 이 지역에 천주교회가 설립된 것은 1880년대 초인데, 1883년의 삼산리공소와 1884년의 강경공소가 대표적이다.

또한 논산 지역의 천주교 신자들은 충청도와 경기 지역에서 거주하던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박해가 상대적으로 약했던 전라북도와 충청남도의 경계 지점인 산악 지대에 살았던 자들이며, 1886년의 한불조약체결 이후 천주교에 대한 당국의 박해가 약화되자 생업을 위해 마을로 내려오면서 은진 지역에 여러 공소들을 형성하게 되었다.

1897년 베르모렐 신부가 부임하면서 화산(나바위)본당이 창설되면서 은진 지역의 공소들은 화산본당과 미알롱 신부가 맡고 있던 고산(되재)본당으로 나뉘어 소속되었다. 당시 나바위 소속 공소는 모두 21개(은진 10, 여산 4, 용안 3, 석성 2, 연산 1, 노성 1), 되재 소속 공소는 모두 24개(고산 17, 진산 2, 진잠 2, 은진 2, 연산 1)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그리고 1907년에는 화산본당 관할 지역에 놀뫼공소가 설립되면서 1921년 논산본당 창설의 모체가 되었다.

1911년 한국 천주교회는 교세의 확장에 맞추어 조선 대목구(교회의 관할 지역 단위)를 전라도와 경상도 일대를 관할하는 대구 대목구와 기타 지역을 관할하는 서울 대목구로 분리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은진 지역 공소를 관할하던 화산(나바위) 본당과 고산(되재)본당은 대구 대목구 소속이 되었다. 그러나 이 두 본당에 소속된 공소와 신자들은 행정구역상 서울 대목구 소속이나 해당 지역에 사제를 모신 본당이 없어 교회 내에서는 대구 대목구 소속이 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10년에 걸친 이러한 갈등은 1921년 화산(나바위)본당에서 논산본당(현 논산부창동성당)이 분리됨으로써 해결되어 행정구역과 교회의 관할구역의 일치를 보게 되었다. 이후 강경 지역의 교세가 확장되어 1945년에는 논산본당에서 강경본당이 분리 설정되었다. 일제강점기 말기까지 충남 지역에는 12개의 본당이 있었는데 그 중 2곳이 논산 지역에 있었다.

[1945년 이후]

논산본당의 제6대 주임신부였던 조인원(빈첸시오) 신부는 1945년 10월 지역의 교육 여건에 도움이 되고자 대건중등강습소를 설립한 뒤 1947년 이를 3년제 초급 중학교로의 승격 인가를 받았다. 그리고 1948년에는 논산천주교회 양로원(현 쌘뽈양로원)을 설립하였으며 1951년에는 대건고등학교를 병설 인가 받았다. 1957년 12월에는 논산본당의 평신도들이 성재덕(Singer, 成載德) 신부의 후원을 얻어 음성 나환자들을 위한 양생원(성광원)을 광석면에 설립하였다.

또한 논산본당으로부터 1946년에는 강경본당, 1958년에는 연무본당, 1975년에는 대교동본당, 2004년에는 논산내동성당이 각각 분리됨으로써 해방 이후 논산 지역의 본당은 논산본당을 포함하여 모두 5개로 늘어났으며, 신자 수도 크게 증가하였다.

한편 1926년경 논산본당의 제2대 주임신부인 줄리앙 공베르 신부의 노력으로 아이들에게 유치원과정의 교육을 실시하다가 샬트르 성 바오로 수도회 수녀들을 초청하였고, 이로 인해 1932년 10월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논산분원이 설치된 바 있었다. 1961년 12월 논산본당에서 여학교를 설립하고자 이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의 협조를 얻어 논산 해성여자중학교해성여자고등학교를 인가 받았으며 이듬해에 이를 쌘뽈여자중학교쌘뽈여자고등학교로 개칭하였다. 그리고 대건중학교와 대건고등학교와 함께 1964년 4월 25일 학교법인 천주교 대전교구 대지학원으로 편입하였다.

[주요 성당]

1. 논산부창동성당

충청남도 논산 지역 성당의 모본당으로 강경성당, 연무성당, 논산대교동성당, 논산내동성당이 이 논산부창동성당에서 분리되었다. 논산시 부창동 1번지에 있으며 1921년 6월 전라북도 익산시 망성면 화산리 1158번지에 있는 나바위본당에서 논산본당으로 분리되었다. 1961년 10월 현 성당 건물이 준공되었으며, 1975년 논산부창동본당으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2005년 12월에는 847.54㎡ 규모의 마리아홀과 125.04㎡ 규모의 사무동 및 교우 휴식 공간이 준공되었다. 2008년 1월에는 성체조배실이 완공되었으며 같은 해 11월 논산시의 지원으로 외곽 조경 및 담장 축조 공사와 함께 성당 표지석을 건립하였다. 논산부창동성당의 주보성인은 루르드의 성모이다. 2010년 5월 기준 주임 신부 1명(성병열), 보좌 신부 1명(오창호), 전교 수녀 2명이 있으며, 신자 수는 2,082명이다. 관할 구역은 논산시 부창동·취암동연산면·부적면·은진면·채운면이며 산하에 연산공소·백석공소 등 2개의 공소를 두고 있다.

2. 강경성당

1945년 논산본당으로부터 분리 독립하였다. 1959년 사제관을 건립하였으며 1961년 2월 육세영 신부의 설계 및 감독으로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중앙리 228번지[옥녀봉로27번길 13-3]에 현재의 성당 건물이 완공되었다. 2010년 5월 기준 주임신부는 윤종학이 맡고 있으며, 관할 구역은 강경읍 12개리와 성동면 일부, 부여군 세도면, 석성면, 전라북도 익산시 망성면 일부이다. 미사는 토요일 오후 3시와 7시이고, 일요일에는 오전 10시 30분에 열린다.

3. 연무성당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마산리 527-5번지[연무로 274-7]에 소재하고 있으며, 1958년 8월 논산본당 관할 공소에서 마산리본당으로 승격되었다. 이후 1963년 연무대본당으로, 1973년 연무본당으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연무 지역에는 이미 1898~1900년에 나바위본당 관할의 공소 3개가 있었다. 이중 댓들공소·독각골공소는 논산본당 관할이 되면서 본당 승격을 계획하게 되었으며, 논산본당 주임 생제 신부의 지원으로 성당 부지를 매입한 후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승격 후 부임한 초대 신균식 주임 신부는 사제관을 2층으로 증축하여 임시 성당으로 사용하였으며, 점차 신자가 늘어나자 성당을 신축하여 1960년 5월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현재의 성당 건물은 제4대 변갑철 주임 신부 때에 신축된 것으로 1977년 12월 24일 봉헌식을 가진 것이다. 1987년 2월부터는 까리따스수녀회의 분원이 설치되어 사목을 돕고 있다. 연무성당의 주보성인은 요한보스코이며 관할 구역은 논산시 연무읍 일원과 양촌면, 가야곡면, 채운면 화정리우기리 지역이다. 2010년 5월 현재 주임 신부는 연광흠 신부가 맡고 있다.

4. 논산대교동성당

1975년 8월 27일 논산중앙성당이라는 이름으로 논산부창동성당에서 분리되었다. 충청남도 논산시 대교3동 203-17번지[대화로 24]에 소재하고 있다. 1987년부터 성심유치원을 운영하고 있으며 관할 구역은 대교동, 화지동, 반월동, 덕지동, 부창5동, 광석면, 노성면, 상월면, 성동면 등이다.

5. 논산내동성당

2004년 2월 12일 논산부창동성당으로부터 분리되었으며 충청남도 논산시 내동 433-9번지[시민로 199]에 소재하고 있다. 관할 구역은 논산시 취암동 아파트단지, 내동 전역, 지산동, 은진면, 부적면 일대이다. 2010년 5월 기준 김재철 주임 신부가 맡고 있으며 미사 시간은 토요일 오후 3시와 7시 30분, 일요일 오전 9시, 10시 30분, 오후 7시 30분이다.

[성당 활동]

논산 지역 성당들의 활동은 육영 사업과 사회복지 사업으로 대별할 수 있다. 이중 교육 사업에 대하여 살펴보면, 논산본당(현 논산부창동성당)을 설립한 후 제2대 주임신부였던 줄리앙 공베르 신부가 1926년경 무인가로 학교를 세우고 박마리아 선생이 아이들에게 유치원 과정을 가르쳤다.

1933년 넘쳐나는 학생의 수용을 위해 교실을 증축하여 유치원 수준을 넘어서는 소화학원을 세워 소학교 미취학자 위주의 교육을 실시하였다. 소화학원의 운영은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논산 분원의 수녀가 맡아 하였으며 초등학교 저학년 위주의 교과 과정을 설치하여 졸업 후 이들 중 일부가 논산공립보통학교 2학년이나 3학년에 편입하는 경우도 있었다.

성당에서 이러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자 학생 수가 증가하였다. 이에 줄리앙 공베르 신부는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에 수녀들을 증파해 주기를 요청하였다. 이후 7명의 수녀들이 보통학교와 동일한 교과과정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특히 1930년대 일제의 침략정책으로 공립보통학교에서는 가르치지 않는 한글교습시간도 설정하여 지역민에게 크게 기여했으나 1944년 일제 말기의 극악한 탄압으로 폐교되었다. 그럼에도 그 전통이 살아남아 논산대건중학교논산대건고등학교, 쌘뽈여자중학교쌘뽈여자고등학교로 다시 결실을 맺게 되었다.

한편 한국 천주교회는 초기 박해를 경험하면서 교회의 시선을 사회의 그늘지고 어두운 곳으로 향하였다. 이후로 사회복지 사업에 대한 헌신은 한국 천주교회의 한 특징으로 자리 잡게 되는데 논산 지역에서도 이러한 특징을 잘 볼 수 있다. 대표적인 기관으로 논산시 은진면 교촌리에 있는 쌘뽈요양원논산시 광석면 율리에 있는 성광원, 논산시 상월면 대촌리에 있는 성모의 마을 등이 있다. 이중 쌘뽈요양원은 1952년 논산본당의 문전에 쓰러져 있던 무의탁 노인 한 분을 거두어 임종과 장례를 치른 오채경 수녀의 선행이 지역 사회의 필요에 응답하는 양로원의 설립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당시 논산본당의 제8대 주임신부였던 성재덕 신부가 1953년 현재의 쌘뽈여자중학교쌘뽈여자고등학교 자리에 양로원을 시작하였다. 이후 1965년 천주교 대전교구 천주교회 유지재단으로 인가 받은 후에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 수녀들이 운영을 맡고 있다. 처음 양로원으로 시작한 사업이 입소대상자인 여자 어르신들에게 치료 및 요양과 기타 일상생활의 수준 높은 보살핌을 위하여 2002년 양로원에서 요양원으로 시설변경을 인가 받고 2003년 부창동에서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

성광원은 1956년 논산본당의 성재덕 신부가 당시 정착지를 얻지 못한 채 떠돌고 있던 음성 나환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강경에서 거처를 구하고 날짜를 정해서 나이동진료반이라고 부르면서 치료와 구호를 시작하였다. 1957년 12월 논산본당의 평신도들이 성재덕 신부의 후원을 얻어 전후 논산 지역에 분산되어 있던 음성 나환자들을 모아 광석면에 건물 5채를 지어 정착하도록 하고 양생원이라 불렀다.

성모의 마을은 일본 성모의 기사 성 프란치스코 수녀회가 중증 장애인의 보호와 지적장애인의 재활 시설 설치 사업 등을 목적으로 1992년에 법인 설립을 인가 받고 준비 과정을 거쳐 1995년에 건립하였다. 2011년 7월 기준 원장 1명, 사무국장 1명, 생활재활교사 42명 등 총 53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고, 정원 85명 중 현원 85명이 생활하고 있다.

[역할과 과제]

논산 지역의 천주교회는 교회 자체 내의 신앙적 성숙과 포교사업 및 지역 사회에 대한 기여를 꾸준히 실천해 왔으며, 이는 교세의 확장과 각종의 사회 복지 시설, 다른 지역에 비해 활발히 추진되는 교육사업 등으로 결실을 맺고 있다. 다만 현재는 농촌 지역 교회의 특성상 노인층이 많고 대학 및 직장 등의 이유로 청년층이 많지 않아 활동성은 떨어지는 편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지역의 현안 문제를 거시적으로 보고 해결하려는 새로운 차원의 발전을 모색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농촌 환경문제나 소외된 노인문제, 농촌지역 여성문제, 어린이 보호 문제 등은 교회의 활동을 필요로 하는 과제는 많으나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주 활동층인 청년층의 부재로 의식이나 활동이 미약한 것이 사실이며, 이에 신앙 강화와 더불어 교회가 주도적으로 관여하는 사회운동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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