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01321
한자 尹烇
영어음역 Yun Jeon
이칭/별칭 찬(燦),정숙(靜叔),후촌(後村),충헌(忠憲)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오산리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이연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오산리
성별
생년 1575년연표보기
몰년 1636년(인조 14)연표보기
본관 파평
대표관직 예빈시정

[정의]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파평(坡平). 초명은 찬(燦), 자는 정숙, 호는 후촌(後村). 아버지는 윤창세(尹昌世)이고, 형은 윤황(尹煌)이다.

[활동사항]

성혼(成渾)의 문인으로 1610년(광해군 2)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들어갔으며, 이후 승문원저작이 되었다. 1613년 유생 이위경(李偉卿)이이첨(李爾瞻)의 사주를 받아 폐모소를 올렸을 때 한림 엄성(嚴惺)과 함께 이위경의 상소를 저지시키려다가 도리어 파면되었다. 그 뒤 박사로 다시 등용되어 성균관전적·사헌부감찰이 되었고, 1615년 호조좌랑에 이르렀으나 다시 이위경 등에게 몰려 파면되고 사판(仕版)에서 삭제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경기도도사로 복직되었고, 이듬해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인조가 있는 공주로 가서 공조정랑이 되었으며, 1626년(인조 4) 사헌부지평이 되었다. 이때 대사헌 박동선(朴東善)과 함께 관가와 사대부가의 연료 독점에 대한 백성의 원성을 대변하였다. 이듬해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임금을 시종(侍從)하지 못하였다는 사간원의 탄핵을 받기도 하였으나 호소사(號召使) 김장생(金長生)의 종사관으로 활약하였다. 강화로 들어가 분병조정랑·공조정랑·성균관사예·예빈시정을 역임하고 익산군수를 지냈다.

1633년(인조 11) 종묘서령(宗廟署令)·성균관직강·사헌부장령 등을 지내고, 1636년 병자호란 때 세자시강원필선으로서 빈궁(嬪宮)을 배종(陪從)하여 강화에 들어갔다. 그러나 성이 함락되자 식음을 폐하고 송시영(宋時榮)·이시직(李時稷) 등과 함께 자결하기로 결의, 두 번이나 목을 매었으나 구출되자 다시 패도(佩刀)로 자인(自刃)하려다가 미처 절명하기 전에 적병을 크게 꾸짖고 피살되었다. 사람됨이 돈후하고 신중하다는 평을 들었다.

[상훈과 추모]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강화의 충렬사(忠烈祠), 연산의 구산서원(龜山書院)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충헌(忠憲)이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