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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00337
한자 龜山書院-
영어의미역 Gusan Seowon Site
이칭/별칭 구산서원지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오산리 118[백일헌로338번길 7-6]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전용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서원 터
원건물 건립시기/일시 1700년연표보기
소재지 주소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오산리 118[백일헌로338번길 7-6]지도보기

[정의]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오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파평 윤씨 문중 서원 터.

[개설]

구산서원은 서인계 성혼의 학맥을 이은 곳으로, 훗날 후손 중에 소론의 거두였던 윤증(尹拯)이 배출되었다. 파평 윤씨성혼, 김장생, 김집, 송시열 등 대 유학자들과 관계가 깊은 대표적 호서 명가의 하나이다. 특히 김장생광산 김씨와 빈번한 혼인 관계를 맺었는데, 이는 호서 사림 내에서 파평 윤씨 일족의 위상 강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 같은 학연과 혈연 때문에 뒷날 윤증이 스승인 송시열과 결별하고 소론의 영수가 되었음에도 연산 지역에 구산서원이나 노강 서원이 세워질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발굴조사 경위 및 결과]

구산서원의 건물 구조에 관해서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건물은커녕 위치도 확실치 않다. 다만 『연산현지(連山縣誌)』 기록에 의거할 때 현재의 연산면 오산리 118번지[백일헌로338번길 7-6] 일대의 밭과 대나무숲으로 되어 있는 부근으로 추정되는데, 주춧돌과 계단석이 현존하는 사당터는 대나무숲에 덮혀있는 상태이다. 또 주위의 여러 서원 구조를 미루어 볼 때 구산서원도 서원의 일반 형태인 사우나 강당, 동양재와 서양재, 내삼문과 외삼문 등을 갖추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변천]

구산서원은 1700년(숙종 26) 연산현 서쪽 20리 되는 곳에 창건하였으며, 1702년 윤전(尹烇)을 주향으로 하고, 윤순거·윤원거·윤문거 등 3인을 배향하였다. 처음 창건할 때는 윤원거만을 독향하였으나 1710년(숙종 36)에 이르러 일족을 추향하면서 윤원거의 부친인 윤전을 주향으로 올리고 윤원거를 배향으로 조정하였으며, 동시에 윤순거·윤문거를 추배(追配)하였다.

제향 인물에 대해서는 자료에 따라 약간씩 다르다. 즉 윤전, 윤순거, 윤원거 3인은 모두 수록되어 있으므로 별 문제가 없으나 윤문거의 경우는 자료에 따라 누락된 것이 있다. 여기서는 일단 4인이 함께 제향된 것으로 보았다. 구산 서원은 한때 철폐되었다가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의해 완전 훼철되었다.

[의의와 평가]

구산서원은 비록 터만 남아 있으나 이곳에 제향된 파평 윤씨 일족들이 모두 호서 사림의 대유학자들이란 점에서 유력한 문중 서원이라는 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11.10 내용 수정 현재의 연산면 오산리 118번지 일대의 밭이 아닌가 추정될 뿐이다. ->현재의 연산면 오산리 118번지 일대의 밭과 대나무숲으로 되어 있는 부근으로 추정되는데, 주춧돌과 계단석이 현존하는 사당터는 대나무숲에 덮혀있는 상태이다.
이용자 의견
박** 龜山別廟完議 복사본을 소장하고 있어요. 龜山別廟立議한 일자가 庚午(1690?)2월초1일으로 적혀있네요. 상월 무안인 박상신이 輔仁堂 스승 동토선생의 사우건립을 주장하여 이루어졌다고 행장에 나오네요. 완의문과 박상신행장이 필요하면 방법을 알려주시면 송부해드리지요. 2012.10.04
관** 본 항목의 유형이 '유적/터'이므로 상세한 건립경위는 반영하지 못하였으니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1.11.10
용** 구산서원지는 임수택고택의 좌측으로 약 100여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데, 현재는 밭과 대나무숲으로 되어 있음.
특히 주춧돌과 계단석이 현존하는 사당터는 대나무숲에 덮혀있는 상태임.
서원건립은 윤전의 장자인 윤원거의 탄신 100주년에 맞춰 경진(1700)년에 건립하여 임오(1702)년에 봉안하였고,
건립통문은 약헌 송치은, 상량문은 농은 윤추(윤증의 아우). 축문은 명재 윤증이 각각 지었음,
건립전 노성의 파평윤문과 연산의 광산김문이 원만한 합의하에 건립을 시작했으나, 건립과정에서는 노론계 인사의 반발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문구가 상량문에 보이고 있음.
서원건립에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윤원거의 2자인 윤유는 어머니가 광산김씨 였고, 외조부가 군수를 지낸 김전이며, 거주지도 당시 연산현에 속한 봉황촌(부황리)이었기 때문에 문중간에는 큰 마찰이 없었던 것으로 추측됨. 현존하는 연산현지를 보면 윤원거가 김익희. 유계. 윤문거 등과 계룡산을 유람하며 지은 한시가
2011.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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