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만동학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01621
한자 萬東學校
영어의미역 Mandong School
분야 문화·교육/교육
유형 기관 단체/학교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김형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사립학교
설립연도/일시 1909년연표보기
설립자 사애리시(史愛理施, Alice J. Sharp)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지역에 있었던 사립 교육 기관.

[개설]

대한제국 말기 국망(國亡)에 대한 위기의식 고조와 선교사업 일환으로 사립학교에 의한 근대교육이 널리 보급되고 있었다. 특히 기독교에서는 여학교 설립을 통한 여성교육 보급에 박차를 기하였다. 충청남도 지방에서도 공주 영명여학교, 논산 영화여학교, 강경 만동여학교 등 여성교육기관이 설립되었는데, 이들 여학교는 일제강점기 말까지 지역을 대표하는 여성교육기관으로 기능하였다.

[변천]

1909년 사애리시(史愛理施, Alice J. Sharp)가 설립하였다. 설립 당시 교장은 사애리시가 맡아 하다가 1920년 2월 도상규(都相奎)로 바뀌었다. 이듬해에는 홍순호(洪淳浩)가 교장으로 취임했다. 1923년 9월 교사 천규성(千奎星) 등의 후임으로 이순미(李淳美)·김봉순(金鳳順)이 부임하였다. 1925년 말 당시 재학생은 총 201명이었다.

일제가 1936년 2월 경영난과 교육시설 미비 등을 내세워 강제로 폐교 처분을 내리자 학부형회와 학교 당국은 부당한 처사에 항의하는 한편 중장기적인 학교 운영 계획을 세워 전국적인 관심을 집중시키는 가운데 교육 내실화를 다지는 계기가 마련하였다. 하지만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일제의 민족말살 정책에 의하여 폐교되었다.

[활동사항]

봄가을에 정례적으로 열린 운동회와 원족회는 재학생뿐만 아니라 지역적인 축제장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교육열 고조에 따라 학령을 초과하거나 중등교육 기관에 입학하기 어려운 사람을 대상으로 한 강습반은 사회교육 일환으로 운영하여 상당한 호응을 받았다. 학교 운영비 확보와 학생들 정서 함양을 위한 음악회도 정례적으로 개최하였다

.3·1운동 이후 재정난에 직면하자 교장 도상규는 단성사(團成社) 활동사진대를 초빙하여 영사회를 개최하였다. 학교 지원을 위해 모집된 의연금은 800원에 달하는 거금이었다. 그리고 유적지나 명승지 관람을 통하여 학생들로 하여금 향토애를 느끼는 동시에 식민교육의 모순을 부분적이나마 인식하는 활동을 폈다. 유지 송병직(宋秉直)·박교원(朴敎元)·김영창(金永昌) 등은 부형회(父兄會)를 확대한 교육회 발기를 주장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공주 영명학교 교장 우리암(禹利岩)을 초빙한 환등회는 학생들에게 시세 변화를 일깨우는 교육 현장이었다. 1921년 여자 졸업생 4명 전원이 모두 서울로 유학하는 등 대단한 향학열을 보였다. 그리고 1924년 여름방학을 이용한 성경학교는 초등과와 고등과 각각 남자 100명과 여자 50명 등 300명에게 위생·음악·성경·일화·수공·유희·체조·세계위인사 등을 가르쳤다.

[의의와 평가]

만동학교는 교육 내실화는 물론 부녀야학·만동유치원 운영과 음악회·환등회 개최 등을 통하여 학생들과 주민들에게 현실 인식을 심화시켰다. 특히 여성교육은 현지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 여성해방운동을 주도하는 인물을 양성하는 요람지 기능을 하였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