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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01221
한자 金殷輝
영어음역 Gim Eunhwi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고수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성별
생년 1541년연표보기
몰년 1611년연표보기
본관 광산
대표관직 광주목사

[정의]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광산(光山). 좌의정 김국광(金國光)의 현손(玄孫)이다. 아버지는 김호(金鎬)이고, 어머니는 전의이씨(全義李氏)이며, 형은 김계휘(金繼輝)이다. 큰아버지인 김석(金錫)에게 입양되었다.

[활동사항]

김은휘정지운(鄭之雲)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여러 차례 과거에 실패한 후 음보(蔭補)로 관직에 나가 활인서별제, 사포서별제, 수운판관(水運判官), 통례원인의, 감찰, 종부시주부, 호조좌랑, 공조좌랑, 형조정랑, 호조정랑, 종친부전적, 통례원상례 등을 역임하였다. 외직으로 교하현감, 임피현령, 청도군수, 단양군수, 광주목사를 지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집하였고, 체찰사 정철(鄭澈)의 종사관으로 종군하였다. 북상 도중 임천에서 광해군이 묘주(廟主)를 임시 동헌(東軒)에 봉안케 하고는 백관이 조하하는데 당시 선조의 빈부(嬪父)였던 유자신(柳自新)이 서헌(西軒)에 거처하면서 교만하므로 이를 크게 꾸짖어 궁중의 질서를 바로잡았다. 후에 근왕병이 용인에서 패한 후 전의를 상실함에 탄식하고 홀로 정예병을 뽑아 군기를 정비하여 사병들의 사기가 회복시켜 수원 독성산성(禿城山城)에서 관병과 의병 연합군을 이끌고 지키다가 정철(鄭澈)이 무고를 당하자 낙향하였다. 그 후 조정에서 호패법(號牌法)을 시행하려 하자 문제점을 상소하였으며 정여립(鄭汝立)을 여러 차례 비판하였다. 만년에 수직(壽職)으로 첨지중추부사에 제수되었다.

[묘소]

묘소는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다. 묘 앞에 묘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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