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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01201
한자 金萬基
영어음역 Gim Mangi
이칭/별칭 영숙(永淑),서석(瑞石),정관재(靜觀齋),문충(文忠)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고수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성별
생년 1633년연표보기
몰년 1687년연표보기
본관 광산
대표관직 예조판서

[정의]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영숙(永淑), 호는 서석(瑞石)·정관재(靜觀齋). 김장생(金長生)의 증손이다. 아버지는 김익겸(金益謙)이고, 어머니는 해남부원군(海南府院君) 윤두수(尹斗壽)의 4세손이자 영의정 문익공(文翼公) 윤방(尹昉)의 증손녀이며 예조참판 윤지(尹墀)의 딸로서 해평윤씨(海平尹氏)이다. 숙부는 김익희(金益熙), 동생은 『구운몽(九雲夢)』을 지은 김만중(金萬重)이다.

[활동사항]

김만기송시열(宋時烈)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52년(효종 3) 사마시를 거쳐, 이듬해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수찬 등을 지냈다. 1652년 생진양시에 장원하고 이듬해 별시문과에 을과 3인으로 급제하여 장예원, 승문원주서, 승문원설서를 역임하고 예조좌랑, 병조좌랑, 사헌부지평을 지냈다. 사간원정언, 홍문관부수찬, 부교리에 임명되는 등 많은 요직을 역임하였다. 또한 1660년(현종 2) 교리, 이듬해 병조좌랑이 되었고 곧 병조정랑으로 승진되고 1662년(현종4) 수찬이 되었다.

1671년(현종12) 딸이 세자빈(世子嬪)이 되었고, 이듬해 대사성이 되고 곧 부제학으로 전보되었다가 양관대제학, 지성균관사, 동지경연사에 동지의금부사를 겸임했다. 이듬해 병조판서에 지춘추관사를 겸했고 1674년 예조판서로 옮겨 정헌대부로 승진되는 등 여러 관직을 역임했다. 1680년(숙종 7)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 때 훈련대장으로 공을 세워 분충효의병기협모보사공신(奮忠效義炳幾協謨保社功臣) 1등에 책록되었고 1686년 풍정도감도제조를 지냈다.

[저술 및 작품]

문집으로 『서석집(瑞石集)』18권이 있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군포시 대야미동에 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김만기 묘와 신도비가 경기도 문화재 제13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광산김씨 종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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