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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01222
한자 金益兼
영어음역 Gim Ikgyeom
이칭/별칭 충정(忠正)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고수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성별
생년 1614년연표보기
몰년 1636년연표보기
본관 광산

[정의]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광산(光山). 할아버지는 김장생(金長生)이고, 아버지는 김반(金槃)이다. 어머니는 연안서씨(延安徐氏)이며, 형은 김익희(金益熙)이다.

[활동사항]

김익겸은 1635년(인조 13) 생원시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1636년 후금(後金)의 황태극(皇太極)이 국호를 청(淸)으로 고친 일을 축하하기 위해 춘신사(春信使)로 파견된 나덕헌(羅德憲), 이확(李廓) 등이 청 사신 용골대(龍骨大)와 함께 귀국하자 성균관 유생들과 함께 청의 경축행사에 참가한 사신과 용골대의 주살을 주장하였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강화로 가서 섬을 사수하며 항전을 계속하였는데 결국 함락의 위기에 닥치자 영의정을 지낸 윤방(尹昉)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강화유도대장(江華留都大將) 김상용(金尙容), 권순장(權順長)과 함께 남성 누문에 화약궤를 가져다 놓고 그 위에 걸터앉아 자분(自焚)하였다.

[묘소]

병자호란이 끝난 후 김반과 나머지 아들들이 강화도에 들어가 연산서씨와 김익겸의 시신을 수습하여 경기도 교하(交河)의 강가에 장지를 마련하고 임시로 장사를 지냈다. 4년 뒤 연안서씨의 사위 완남부원군(完南府院君) 이후원(李厚源)이 충청감사로 있을 때 ‘산소골’이라 불리는 회덕현(懷德縣) 정민리(현 대전광역시 유성구 전민동)로 이장하였다. 본래 이 산소골은 회덕현에 속했던 정민역(貞民驛)이 있던 역촌이었으며 당시 묘의 이장을 위해 정민역은 수백 미터 떨어진 지금의 엑스포아파트 인근 ‘아리고개’ 밑으로 옮겼다고 한다.

광산김씨 묘역에는 김반과 그의 부인의 묘 2기와 장자 김익렬(金益烈), 셋째 아들 김익겸, 손자 김만준(金萬埈)의 등의 묘와 김익겸의 충신정려, 손자 김만중(金萬重)의 효자정려, 연산서씨와 연일정씨(延日鄭氏)의 열녀정려가 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충정(忠正)이며, 강화도 충렬사와 논산시 부적면 충곡리에 있는 충곡사(忠谷祠)에 배향되었으며 부조(不祧)의 은전을 받았다. 사후에 영의정으로 추증되고 광원부원군(光源府院君)에 추봉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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