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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운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00651
한자 民族運動
영어의미역 Racial Movement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김은지

[정의]

일제강점기 민족의 자주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전개한 논산 지역의 모든 저항운동의 범칭.

[개설]

민족운동은 소수 민족이 다수 민족의 억압에서 벗어나려 하거나 식민지 상태나 종속 상태에서 압박당하는 민족이 지배 민족이나 국가의 압박에서 벗어나 독립하려는 운동을 범칭하는 말로 민족해방운동이라고도 한다. 민족은 그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여야 한다는 민족자결(民族自決)의 이념을 바탕으로 특히 식민지 지배를 받고 있는 지역에서 민족의 자유와 독립을 요구하여 전개되는 운동이다.

그리고 민족의 자유와 독립, 즉 민족의 해방이라는 기치아래 토착대중의 ‘고향의식(故鄕意識)’에 호소하면서 압도적으로 우세한 외국세력이나 군대에 대한 불복종·태업(怠業)·게릴라전 등 여러 가지 형태로 저항하는 운동이다. 또한 민족해방의 문제는 제국주의 지배로부터의 해방뿐만 아니라 봉건적 지배로부터의 해방도 의미한다. 따라서 그 내용은 민족해방운동의 주체에 따라 청년운동, 교육운동, 종교운동, 사상운동, 문화운동 등 다양한 형태의 거의 모든 저항운동을 포함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여기서는 논산 지역의 민족운동을 당시에 활동한 각 관련 사회단체나 주도 인물들의 활동과 연계하여 살펴본다.

[청년운동]

1. 청년운동

3·1운동 이후 일제가 무단통치를 폐기하고 이른바 문화정치를 실시하면서 조선의 각 지방에는 근대식 학교 교육을 통해 신지식을 수용한 지역 청년들에 의해 각종 청년운동단체가 우후죽순처럼 조직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청년들은 군이나 면 혹은 동리 단위로 청년수양단체를 결성한 뒤 야학·생활 개선 등과 같은 민중계몽 활동과 강연회·토론회·연극회·체육회 등과 같은 정치문화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1920년대 전반기에 활성화된 이러한 각종 인격수양운동·품성도야운동·농촌계몽운동 등은 일종의 신문화운동이었다.

그러나 1920년대 중반 이후로 청년운동 내부에 사회주의 사상의 영향력이 확대됨과 더불어 청년운동의 성격도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전국 각지에 조직된 상당수의 청년단체들이 1925년~1926년경부터 혁신총회를 개최함과 동시에 조직의 강령과 규약을 바꾸는 등 사회주의적 경향을 띄어가기 시작했다. 이후 이러한 혁신청년회들은 지역사회 내에서 청년총동맹 산하의 혁신청년회, 조선농민총동맹이나 조선노동총연맹 산하의 농민·노동조합, 신간회, 근우회 등의 결성을 통하여 당시의 관료-유지 지배체제에 대항하는 다양한 형태와 내용의 민족·민중운동을 주도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논산 지역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2. 청년단체 조직혁신 및 연대운동

논산 지역의 청년회들이 정확하게 언제 처음 만들어졌는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1920년 1월의 강경청년회 총회 개최 기사, 1920년 5월의 논산청년구락부의 지역 보통학교 강연회 개최 기사, 1921년 12월의 박영채, 김창규 등의 주도에 의한 양촌면 양촌리 노동수양회 창립 기사 등으로 미루어 논산 지역에서도 3·1운동 전후 시기부터 청년단체의 활동이 활발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면단위로 조직되어 있던 이들 청년회는 주로 1920년대 중반 경부터 타 지역과 마찬가지로 청년회혁신운동을 전개하였다. 양촌면 인천청년회의 경우 1925년 10월 회무의 쇄신과 청년가맹의 건을 결의한 뒤 이른바 청년회혁신운동을 본격화했으며, 강경청년회도 거의 같은 시기에 전임회장 윤길중 등의 전횡을 탄핵함과 동시에 조직내부를 정비하는 혁신총회를 개최하였다. 그러나 논산 지역 전체 청년단체들을 아우르는 군단위의 통일조직 결성에는 실패하였다.

특히 양촌면 인천청년회는 1927년 12월에 이른바 쇄신총회와 함께 전논산청년단 축구대회를 개최하여 각 청년단체의 연대를 강화함은 물론, 군단위의 전체 청년단체들의 통일조직을 건설하고자 했으나 끝내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다. 이 시도의 실패 이후로 논산 지역, 특히 강경읍논산읍의 사회단체들은 어떤 부문의 운동 단체들이든지 간에 연대 기구를 형성하지 못한 채 개별적으로 활동할 수밖에 없었다.

[사회운동]

1. 1920년대

전체 청년단체 통일조직 건설을 위한 노력과 마찬가지로 강경과 논산의 여타 각 분야별 사회단체들의 통일 또는 연대 기구 형성을 위한 활동도 꾸준히 전개되었다. 대표적인 예로는 1925년 10월 강경의 민우회, 선구회, 고용인친목회, 혜성단, 체육회, 형평사 등이 중심이 된 강경각단체연맹의 창립을 들 수 있다. 당시 참가자들은 이 연맹의 조직을 매개로 하여 청년운동, 노동농민운동, 여성운동, 소년운동, 형평운동, 사상운동 등을 활성화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이나 실패하였다. 이후 이들은 통일적인 군 단위 조직은 물론이고 신간회도 창립하지 못할 정도로 활동이 부진하였다.

당시 강경 지역의 대표적인 사상단체인 선구회도 1926년 5월에 열린 집행위원회에서 조선민중운동이 고취의 시기를 지나 조직의 시기에 이르렀다고 주장하면서 사회운동의 적극적인 조직화를 위한 새로운 강령을 채택하였으나 실질적인 활동은 미흡하였다. 당시 선구회의 집행위원은 김종세, 강일병, 박노철, 박수해, 박용국, 임보원 등이었으며 기타 중심인물은 소철영, 임종원, 정인흥, 조병갑, 강상문, 한상옥 등이었다.

1929년 1월 21일자 한 신문의 당시 논산 지역 사회단체 현황 관련 기사에 의하면 논산 지역 청년회들이 주로 1920년대 전반기에 등장하였으며 1927년경을 경계로 면단위 농민조합이 구성되기 시작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군 단위의 전체 청년단체나 농민단체·노동단체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1929년 10월경 박상환, 한우석, 김성원, 편순용 등이 신간회의 강경지회 설립준비위원회를 구성했다는 신문기사만 확인될 뿐 신간회운동 역시 부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2. 1930년대

1920년대에는 그나마 비교적 활발한 활동을 보인 논산 지역의 사회운동단체들은 1930년대에 접어들어 경찰의 탄압이 가속화되면서 대부분 유명무실화되기에 이른다.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건으로는 1930년 5월 신의주 감옥에서 5년 만에 출감한 형평사 지부원을 환영하는 행사에서 경찰이 환영기를 압수함과 동시에 환영회 자체를 금지한 사건, 1930년 8월 강경청년회 회원들의 중견청년 강습회 참여를 방해한 혐의로 이용하와 문운학을 검속한 사건, 1931년 9월 10여 년간 이어온 논산노동야학을 허가받지 않았다고 금지시킨 사건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1931년 10월에 발생한 강경시내에서 발생한 격문사건, 1932년 5월에 발생한 메이데이 격문사건, 5월 25일 양촌에서 발생한 적기시위사건, 1933년 1월 강경 등지의 중등학교 학생을 중심으로 불온삐라를 배부할 계획을 세웠다 발각된 사건 등도 이와 관련된 대표적인 사건들이라고 할 수 있다.

[주요 활동가]

1929년 1월 현재 논산 지역에서 가장 지명도가 높았던 활동가는 인천청년회 회장을 역임했던 장일환이었다. 장일환은 일본 유학시기 북성회에 가입한 뒤 1923년 3월 서울청년회가 전조선청년당대회를 개최했을 때 북성회 대표자로 참여했으며 이후 저명한 공산주의자 이연윤, 박형병 등과 함께 북성회를 탈퇴한 뒤 서울청년회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1923년 12월 군산에 내려가 해당 지역 활동가 조용환, 김영휘 등과 함께 5개 단체를 망라하여 군산노동연맹회를 조직하였으며 이리에서 민중운동자동맹의 기관지인 민중운동을 발간하기도 했다. 그리고 1925년 1월 보안법위반혐의로 경찰에 검거되어, 같은 해 12월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으며, 1926년 12월에는 조선공산당 중앙위원 후보로 선임되었다.

그러나 장일환은 이와 같은 중앙단위의 활동보다는 인천청년회 활동 등과 관련된 논산 지역의 활동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신생각’이라는 서점을 운영하면서 권영민을 비롯한 논산 출신의 활동가들에게 많은 사상적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1932년 1월 출판법 위반혐의로 체포되었다가 8월에 보석으로 출옥하였으나, 1933년 11월에 다시 검거된 후 1934년 12월 공판에 회부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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