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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일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02562
한자 張日煥
영어음역 Jang Ilhwan
이칭/별칭 장기석(張玘石),장적파(張赤波),장석파(張石波),장인환(張仁煥),파석(把石)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인천리 219[황산벌로380번길 25-4]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허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사회운동가
출신지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인천리 219[황산벌로380번길 25-4]지도보기
성별
생년 1898년연표보기
대표경력 조선청년총동맹 집행위원|조선공산당 중앙위원 후보

[정의]

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운동가.

[활동사항]

장일환은 1898년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인천리에서 태어났다. 1912년 전주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여 1년간 수학했으며, 일본으로 건너가 1913년 5월 도쿄 세이소쿠영어학교[正則英語學校]에 입학했다가 1915년 4월 중퇴했다. 1922년 3월 일본 니혼대학[日本大學] 전문부 사회과에 입학하였으나 2학년 수료 후 자퇴하였다. 1922년 11월 조선인 사회주의자들이 결성한 사상단체 북성회(北星會)에 참여하여 활동했다. 귀국하여 인천청년회를 비롯한 사회운동단체가 개최한 강연회의 연사로 활동했다.

1923년 4월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활동하다 북성회를 탈퇴하고 서울청년회에 가입했다. 귀국하여 같은 해 8월 조선여자고학생상조회(朝鮮女子苦學生相助會)가 주최한 강연회에서 ‘여자의 모반(謀叛)’이라는 제목으로 강연했으며, 경성노동대회와 소성노동회가 공동 주최한 강연회에서 ‘노동자의 생존권 요구’의 제목으로 강연했다.

같은 해 9월 조선노농대회준비회를 주도했고, 전라도와 충청도의 단체를 준비회에 가입시키기 위해 활동했다. 같은 해 10월 노농대회를 준비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같은 해 12월 전북 이리에서 군산노동연맹회의 결성을 지도하고 민중운동자동맹의 기관지 『민중운동』의 발간을 준비했으며, 「일보선(日普選)과 무산당(無産黨)의 대두」, 「미국공산당으로부터 조선 동지에게」 등의 원고를 작성했다.

1925년 1월 군산청년회·군산노동연맹회·민중운동사가 연합으로 주최한 레닌 추도강연회에서 ‘레닌 전후의 도시노동자’란 제목으로 강연했다. 같은 달 전북민중운동자동맹 사건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2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8월을 선고받았다. 같은 해 조선청년총동맹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1926년 12월 조선공산당 중앙위원후보로 선임되었다. 1927년 논산군 양촌면 인천청년회의 서무부 책임자로 활동했으며, 1930년 9월 일본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1931년 8월 사회주의 서적을 판매하는 서점을 운영했으며, 같은 해 11월 판매 금지된 서적을 판매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34년 7월 금고 4월을 선고받았다. 1934년 12월 ‘전북 조선공산당 재건사건’으로 체포되어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투옥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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