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
-
조선 중기 김장생이 충청남도 논산의 연산에 은거할 때 고고한 은자의 삶을 지향하며 지은 평시조. 김장생(金長生, 1548~1631)의 자는 희원(希元), 호는 사계(沙溪)이다.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문신으로, 조선 예학(禮學)의 태두로 일컬어진다. 저서에 『의례문해(疑禮問解)』, 『경서변의(經書辨疑)』 등이 있다. 이이의 제자이자 송시열의 스승으로 만년에 제수 받은 벼슬을 사양하고...
-
조선 중기 장유가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에 있는 돈암서원의 양성당을 소재로 지은 제영. 양성당(養性堂)은 임진왜란 후 김장생(金長生)이 관직을 버리고 연산으로 낙향하였을 때,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힘을 기울이기 위하여 지은 정자이다. 「양성당 십영(養性堂 十詠)」이라는 동명의 시가 여러 수 있으나 여기서는 당대의 명문장가인 장유(張維)가 사계 김장생에게 바친 시를 대상으로...
-
1602년 김장생이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에 건립된 양성당을 기념하여 지은 기문.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에는 김장생(金長生)의 아버지인 김계휘(金繼輝)가 건립한 경회당(慶會堂)이 있어 당시 문풍(文風)이 크게 진작되었다. 김장생은 관직을 버리고 연산으로 낙향한 뒤에, 경회당 인근에 양성당(養性堂)을 세워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이에 1634년(인조 12...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에서 천호산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1년 논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황산(연산)에 이르러 후백제 군사와 전투를 벌였다. 양쪽 군사들은 대낮이면 격전을 벌이고 밤엔 피로에 지쳐 전투를 멈추었다. 그러던 어느 날 왕건이 꿈을 꾸었다. 자신이 큰 밥솥을 머리에 이고 물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다...
-
1983년 간행된 충청남도 논산 출신 김영운과 김정수 부자의 문집. 『서운유고·반곡실기합편(瑞雲遺稿·盤谷實記合編)』은 1983년 대전광역시 동구에 위치한 농경출판사(農經出版社)에서 4×6배판으로 간행되었다. 문집을 보면 김영운(金永運)이 저술한 『서운유고(瑞雲遺稿)』를 먼저 배열하고, 이어 김정수의 『반곡실기(盤谷實記)』를 배열하였다. 뒤에 김용준(金容駿)과 김주현(金珠鉉)의 합고...
-
도토리묵집의 주인장 김성금 씨가 고향인 공주의 경천리를 떠나 처음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것은 195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재래시장이 있는 골목에는 ‘도토리묵 거리’라고 불릴 만큼 묵 집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쯤 가짜 도토리묵이 성행하고 밀가루를 섞거나, 혹은 중국산의 도토리로 묵을 만드는 집이 늘어나면서 가격이 맞지 않아 전통 묵 집들은 하나...
-
6·25전쟁 당시 강경에서도 크고 작은 전투와 국지전이 벌어져 그에 따른 피해를 입기도 하였다. 이러한 전투 중에서 강경경찰서의 백병전은 가장 대표적인 격전이었다. 6·25전쟁 당시인 1950년 7월 17일과 18일 이틀 동안 강경 지역을 사수하기 위해 북한군과 치열하게 전투를 벌인 강경경찰서 백병전으로 당시 경찰서장 정성봉(鄭成鳳) 등 83명의 경찰관이 장렬히 산화하였다. 이에...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에 있는 조선 전기에서 조선 중기까지의 가평이씨 묘역. 가평이씨 집안은 고려시대에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지낸 이춘계(李椿桂)의 손자 이다림(李多林, 1394~1468)이 송리의 딸과 혼인하면서, 연산면 화악리에 세거하던 여산송씨의 사회적·경제적 기반을 바탕으로 화악리와 가까운 청동리에 세거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다림의 아들인 이형손(李亨孫, 1418~...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대흥리에 있는 시외버스 정차 및 승하차 시설. 강경시외버스터미널은 강경읍에서 공주·논산·천안·성남·조치원·청주·서울·대전 등지로 운행하는 시외버스와 논산시의 성동면과 연무읍, 부여군의 석성면 등지로 운행하는 시내버스가 승하차할 수 있는 시설로서 건립되었다. 강경시외버스터미널은 1999년까지는 강경역 부근의 터미널길에 있었다. 2000년에 터미널길에서 1㎞ 정...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대흥리에 있는 호남선 기차역. 강경역이 있는 강경읍은 논산시의 남부에 위치하며, 행정구역상 서부는 금강과 부여군, 남부는 전라북도 익산시 망성면과 접경 지역으로서 호남과 호서의 관문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과 어우러진 강경읍에는 논산팔경 중의 하나인 옥녀봉과 금강이 자리 잡고 있으며, 강경평야가 있어 곡창지대로 손꼽히기도 한다. 강경읍에서는 매년 1...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에 있는 고려 전기 사찰 터. 태조 왕건은 936년(태조 19) 황산군(현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서 후백제 신검으로부터 항복을 받고 후삼국을 통일한 후, 삼국 통일이 부처님의 은혜와 산신령의 도움에 의한 것이었다고 생각하여 연산면 천호리에 개태사를 창건하기로 하였다. 『고려사』 태조세가 19년조에 따르면 “이 해 광흥사, 현성사, 미륵사, 사천왕사...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 개태사에 있는 고려 전기 가마솥. 개태사 철확은 원래 개태사 창건 이후 고려 태조 왕건이 승려 5백여 명이 밥을 지어먹을 솥으로 내려 준 것이라고 전한다. 개태사가 폐허가 된 이후 벌판에 방치되어 있다가 1887년(고종 24)의 정해년 대홍수 때 4㎞ 정도 떠내려가 연산읍 앞 냇가에 방치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35년에 일본 사람들이 일본으로 가져가려...
-
후백제의 초대 왕. 아버지는 농민 출신으로 뒤에 장군이 된 아자개(阿慈介)이며, 어머니는 상원부인(上院夫人)과 남원부인(南院夫人) 중 누구인지, 또 그 성씨가 무엇인지도 알려져 있지 않다. 동생은 능애(能哀), 용개(龍蓋), 보개(寶蓋), 소개(小蓋)이며 누나는 대주도금(大主刀金)이다. 견훤은 892년(진성여왕 6) 신라 왕실에 반기를 들고 일어나 무진주(武珍州, 현 광주광역시)를...
-
고려 건국 이후부터 고려 말까지 충청남도 논산 지역의 역사. 통일신라시대에 웅주와 전주의 관할 구역으로 분리되어 있었던 논산 지역은 고려조에 들어와 웅주가 공주로 개칭되면서 모두 공주의 관할 구역이 되었으며 연산군(連山郡), 덕은군(德恩郡), 니산현(尼山縣), 시진현(市津縣)이 그 구체적인 지역이었다. 연산군은 통일신라시대에 황산군이라 불리었으나 고려 초에 개명되어 현종 9년에 공...
-
이황(李璜)을 시조로 하고 이민(李岷)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고성이씨의 시조는 한문제(漢文帝) 때 사람인 이반(李槃)의 24세손 이황(李璜)으로 알려져 있다. 고성이씨는 고려 말 이후에 성세를 보였으며, 조선에서 문과 급제자 36명, 상신 1명을 배출하였다. 조선시대의 대표적 인물은 이원(李原)이다. 이원의 가계(家系)는 고려의 명문으로 고조부는 충렬왕 때의...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수락리에 있는 조선 중기 절터. 조선 중기 문신 김계휘가 1557년(명종 12) 윤원형 당에 의해 삭탈관작, 문외 출송을 당하자 연산 지역으로 퇴거해 와서 벌곡면 양산리에 있는 고운사 경내를 빌려 서재로 사용하고, 편액을 정회당이라 하였다. 그 후 효종이 고운사를 김집에게 사패지로 하사하자 현재의 자리로 자리를 옮겨 절을 개창하였다. 원래 고운사가 있던 곳은...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만들어진 개화기 이전의 문학. 논산 고전문학의 대상 범위는 논산 지역에서 출생하거나 활동한 인물들의 문학과 타 지역 출신이면서도 논산 지역을 대상으로 묘사한 작가와 문학작품이다. 논산 지역 관련 고전문학에서 한문으로 쓴 것들은 주로 이 지역 인물들의 문집에 수록되어 있다. 문집은 문학, 역사, 철학 등의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대부분 시와 같은 문학작품을...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서 광산김씨가 모여 사는 마을. 고정리는 1400년대 초반 광산김씨 동족촌락으로 형성된 이래 조선시대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광산김씨 문중에서 배타적 공간으로 지켜 온 곳이다. 연산에 거주한 광산김씨의 연원(淵源)은 고려시기 본관지 광산을 이탈하여 중앙 정계에 진출했던 재경(在京) 광산김씨의 일파였다. 김약채(金若采)가 광산김씨로서는 최초로 연산에...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전기 열녀 양천허씨 정려. 양천허씨는 조선 전기 태조 때 대사헌을 지낸 허응(許應)의 딸로 광산김씨 김문(金問)과 결혼하였다. 17세에 남편이 죽자 부모가 다시 출가시키려고 하므로 아이를 데리고 시아버지 집으로 가서 평생을 마쳤다는 기록이 『삼강행실록(三綱行實錄)』에 보인다. 양천허씨는 유복자인 김철산을 정성을 다해 키워 좌의정을 지낸 김...
-
충청남도 논산과 관련한 조선시대 지도. 역사서로서 논산 지역을 언급한 최초의 문헌은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삼국유사(三國遺事)』가 있긴 하나 그 내용은 논산 자취의 편린만을 전하고 있을 뿐이다. 『고려사(高麗史)』조차도 실제 편찬 연대는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보다 늦고 그 내용도 소략하여, 논산 지역 관련 지명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문헌은 『세종실록지리지』부터라...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검천리와 양촌면 산직리 장골 사이 성재산에 있는 백제시대 산성. 논산에서 대전으로 통하는 국도 1호선을 타고 동쪽으로 약 12㎞ 정도 가면 연산면 청동리에 이른다. 여기에서 다시 남쪽으로 난 지방도 697호선을 타고 약 6㎞ 정도 가면 양촌면 신흥리가 나온다. 다시 동북쪽으로 난 지방도 68호선을 따라 4㎞ 정도 가면 산직리 장골에 닿는다. 곰티산성은 산직리...
-
김흥광을 시조로 하고 김약채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광산김씨 시조 김흥광(金興光)은 신라 말기 신무왕의 셋째 왕자로 태어났다. 고려가 삼국을 통일하자 신라의 비운을 예견한 김흥광은 무주(武州, 현 광주광역시 평장동)의 서일동에 피신 은거함으로써 시조가 되었다. 광산김씨 가문은 조선시대에 총 260여 명의 문과 급제자를 배출하였고, 여기에서 정승·대제학·청백리·...
-
충청남도 논산시에서 광물을 채굴·생산하는 일련의 산업 활동. 논산시는 동쪽으로 계룡산과 대둔산이 자리하고 있고 서쪽으로는 넓은 평야가 조성되어 있어 동고서저(東高西低)의 지형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서쪽의 농경지가 대부분을 이루고 있어 현재 다른 시군에 비해 광업은 지역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1932년에는 노성에 사금을 채취하던 광권이 등록되어 있었...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에서 파평윤씨가 모여 사는 마을. 파평윤씨는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명문거족이었으며, 조선시대에도 많은 학자·정치가를 배출하고 왕비를 가장 많이 배출한 명문가이다. 그 가운데 노성 지역의 파평윤씨를 ‘노종 5방파’라고 칭한다. 17세기에 당쟁이 격화되면서 서인이 노·소론으로 나누어질 때 파평윤씨 집안을 중심으로 소론의 중심지가 되었던 지역이 노성현이었다....
-
충청남도 논산시를 연결하는 교통망과 교통 현황. 논산시의 교통은 크게 철도 교통과 도로 교통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철도 교통의 경우 호남선이 논산시 중앙부를 북동 및 남서 방향으로 관통하고 있고, 연무선이 개설되어 있다. 철도에는 논산역·강경역·연무대역·개태사역·연산역·부황역이 개설되어 있으며, 새로 건설될 호남고속철도의 정차 역으로는 논산역이 지정되었다. 도로 교통의 경우 호남고...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양산리에 있는 고려시대에서 조선 중기 사찰 터. 조선 중기 문신 김계휘는 1557년(명종 12) 윤원형 당에 의해 삭탈관직, 문외출송을 당하자 연산 지역으로 퇴거해 와서 고운사 경내를 빌려 서재로 사용하고, 편액을 정회당이라 하였다. 그 후 효종이 고운사 땅을 김집에게 사패지로 하사하자 고운사는 왼쪽 능선 너머에 있는 논산시 벌곡면 수락리로 옮겨 갔다. 원래...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오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파평 윤씨 문중 서원 터. 구산서원은 서인계 성혼의 학맥을 이은 곳으로, 훗날 후손 중에 소론의 거두였던 윤증(尹拯)이 배출되었다. 파평 윤씨는 성혼, 김장생, 김집, 송시열 등 대 유학자들과 관계가 깊은 대표적 호서 명가의 하나이다. 특히 김장생의 광산 김씨와 빈번한 혼인 관계를 맺었는데, 이는 호서 사림 내에서 파평 윤씨 일족의...
-
강경은 금강과 논산천이 합류하는 가항(可航) 포구로서 전라북도 용안면의 평야 지대, 논산평야 등 국내 굴지의 미곡 생산지를 배후에 끼고 있어 조선 후기 이래 전국적인 상업 중심지로 성장하였다. 1876년 개항 이래 충청도 전체의 시장권이 철도와 개항장을 거점으로 제국주의적 상품 유통 시장으로 재편되면서 전통적 시장권의 중심인 강경의 지위는 하락하였다. 그러나 유통시장권에서의 지위...
-
구한말에서 해방 이전까지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이루어진 계몽주의 교육. 근대교육은 근대국가의 성립이나 자본주의 사회의 발생과 더불어 시작된 교육으로 주로 계몽사조를 기초로 나타난 계몽주의 교육을 의미한다. 한국의 경우 근대교육은 한국의 근대를 어떻게 시기 구분하느냐에 따라 다소 견해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대체로 본격적인 개항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1880년대부터 1945년 해방까...
-
충청남도 논산시에 있는 금속이나 돌로 만든 각종 유물에 새겨진 명문(銘文). 금석문(金石文)은 쇠로 만든 종이나 돌로 만든 비석 따위에 새겨진 글자나 도형으로 쉽사리 마모되지 않고 오랜 세월 견뎌내기 때문에 내구성이 높다. 따라서 고대 등 과거의 역사나 문화를 연구·고증하는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가진다. 금석문은 크게 금문(金文)과 석문(石文)으로 구분된다. 금문은 금속제의 용기·...
-
‘충절과 선비의 고장’, ‘양반의 고장’으로 일컬어지고 있는 충청도, 그 이미지는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충청 지역을 대표하고 있으며 강한 상징성을 띠고 있다. 그러한 상징의 연원은 조선시대 가장 오랜 기간 정권을 잡고 있었던 기호학파(畿湖學派)의 존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으며, 그 중심에 논산에서 뿌리내린 호서 사족의 활약을 통해서 찾을 수 있다. 이는 기호 유학을 이야기할 때...
-
충청남도 논산 지역을 중심으로 17세기 이후 발전한 기호 지역의 성리학. 기호유학은 이이(李珥), 성혼(成渾), 조헌(趙憲) 등 경기 지역의 유학자들에 의해 성립되어, 김장생(金長生), 김집(金集), 송시열(宋時烈), 송준길(宋浚吉) 등 충청 지역의 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발전한 유학이다. 오늘날에 이르러 학술적으로는 이이의 학설을 따르는 학파를 주기적 경향의 성리학을 전개했다고 평...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김공휘 묘비. 우계 성혼과 율곡 이이 문하에서 수학하여 경전과 예학을 강구한 김공휘는 여러 요직을 역임하였는데, 어느 요직에서건 치적이 현저하였다. 김공휘는 연산 휴정서원에 배향되었다. 연산역 남쪽에서 국도 1호선을 따라서 서쪽으로 1.5㎞를 가면 남측에 도로가 있다. 여기에서 1.3㎞를 들어가면 광산김씨 유적이 분포하고 있는...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모촌리 원실보마을에 있는 조선 말기 효자 김기서와 김재형 부자의 정려. 김기서는 광산김씨로 아버지는 김재형이다. 김기서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어머니가 병환으로 자리에 눕자 한겨울에 냇가에서 얼음을 깨고 고기를 잡아 봉양하면서 정성으로 병간호를 하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상례(喪禮)를 다하고 3년간 매일 성묘하였는데, 묘소 앞에 김기서가 무릎을...
-
조선 전기 논산 지역의 열녀. 본관은 양천(陽川). 문경공(文敬公) 허공(許珙)의 현손녀이다. 아버지는 허웅이고, 남편은 김문(金問)으로 광산김씨(光山金氏)이다. 김문 처 양천허씨는 17세에 남편 김문과 사별한 후 개가하지 않고 당시 연산 지역에 있던 시집으로 들어와 유복자 김철산(金鐵山)을 낳고 장성시켜 현달하게 하였다. 그의 손자 김국광(金國光), 김겸광(金謙光), 후손 김계휘...
-
조선 중기의 열녀. 본관은 연산(連山). 아버지는 임진왜란 때 군공(軍功)으로 원종공신에 녹권(錄券)되고 인조 때 병조참판에 증직된 서주(徐澍)이고, 어머니는 정부인에 증직된 광주이씨(廣州李氏)이다. 2남 5녀 중 6녀로 태어났다. 오빠는 석성현감으로 승정원좌승지에 증직된 서후적(徐後積)과 원종공신에 녹권되고 호조좌랑과 사복시정에 증직된 서효적(徐效積)이다. 언니는 판관 최정완(崔...
-
고려 후기의 문신이자 광산김씨 논산 입향조. 본관은 광산(光山). 아버지는 광성군(光城君) 김정(金鼎)이고 어머니는 전법판서(典法判書) 이방(李昉)의 딸로서 연안이씨(延安李氏)이다. 광산김씨의 연산 입향사적은 불분명하나 입향조는 김약채라고 전해진다. 그러나 실전된 김약채의 묘가 경기도 양주 풍양에 있었고 아들 김문(金問)의 묘는 장단에 있었던 것으로 보아 관직 생활 때문에 개성 근...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김응근의 불망비. 김응근(金應根, 1793~1863)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계경(溪卿), 호는 의석(宜石)이다. 1816년(순조 16)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고, 1822년 익위사세마가 되었다. 그 뒤 외직으로 여러 고을 수령을 거쳐 1857년 충청도관찰사겸순찰사에 제수되었다가 1860년 공조판서, 이어 형조판서를...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두월리에 있는 조선 후기 김자건의 묘비. 김자건은 사계 김장생의 문인으로 시문에 뛰어났으며 서예가였다. 자는 이계이고, 광산인이다. 좌찬성 김극복의 후손으로 김덕린의 아들이다. 1656년(효종 7)에 재학으로 추천되어 선공감역 빙고별감을 지냈으나 효종이 승하하자 벼슬을 버리고 산수를 벗삼아 초야에 묻혀 살았다. 가야곡면사무소에서 지방도 602호선을 따라 동...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 김장생은 송익필(宋翼弼)로부터 예학을 배웠으며, 이이(李珥)의 문하에 들어가 성리학을 배워 조선 중기 예학과 성리학의 거두가 되었다. 과거를 거치지 않고 관직을 역임하여 요직을 맡지는 않았지만, 인조반정 이후 서인의 영수로 영향력이 매우 커서 인조 초의 정국을 서인 중심으로 이끄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김장생의 예학은 아들 김집에게 계승...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김장생을 제향한 사당. 조선 후기 호서사림을 대표하였던 김장생(金長生, 1548~1631)은 본관이 광산, 호는 사계(沙溪)이며, 대사헌 김계휘의 아들이다. 송익필과 이이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당대를 대표하는 대 유학자로서 예학(禮學)에 조예가 깊어 우리나라 예학의 토대를 확립하였다. 늦은 나이에 과거 시험을 거치지 않고 벼슬길...
-
조선 중기 논산의 문신. 본관은 광산. 자는 사강(士剛), 호는 신독재(愼獨齋). 아버지는 사계 김장생이며, 어머니는 창녕조씨(昌寧曺氏)로 첨지중추부사 조대건(曺大乾)의 딸이다. 김집은 1591년(선조 24) 진사로 합격하였다. 그러나 사장학(詞章學)을 좋아하지 않아 경전연구와 수양에 전심을 다하였으며, 아버지의 학문을 이어받기 위해 노력하였다. 1610년(광해군 2) 헌릉참봉에...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김철산의 묘비. 김철산의 아버지는 증좌찬성(贈左贊成) 김문(金問)이며, 어머니는 증정경부인 양천허씨(陽川許氏)이다. 천품이 순후하고 강직하여 모두가 숨은 덕이 있다고 칭송하였다. 순충적덕병의보조공신에 책봉되었고, 대광보국 숭록대부 영의정부사 광성부원군에 추증되었다. 처음 세워진 묘비는 오랜 세월의 풍우로 인해 마모되었고, 172...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남일우의 거사비. 충청도관찰사겸순찰사 남일우가 연산 지역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푼 것을 기려서 건립되었다. 거사비는 감사(監司)나 수령이 갈린 뒤에 그 선정을 사모하여 고을 주민들이 세운 비석으로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논산시에서 계룡 방향으로 국도 1호선을 타고 약 12.82㎞ 가다 보면 연산사거리가 나온다. 여기에서 상월 방면으...
-
연산면 연산리 시장 구석에 대장간이 자리 잡은 것은 1978년경이다. 대장간의 대장장이 유오랑 할아버지는 아버지로부터 가업을 이어 받아 평생 쇠를 만지는 일을 해왔다. 계룡시 신도안면 남선리(옛 논산군 두마면 남선리)에서 아버지 대부터 대장간을 운영하였으며, 12살이 되던 1950년에 불무지에서 불을 다루는 일부터 시작해, 아버지에게 하나씩 전수 받아 지금까지 58년간...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읍내리에 있는 조선시대 구읍취락. 노성면 읍내리는 조선시대 노성현의 읍취락(邑聚落)이었기 때문에 읍내(邑內)란 명칭이 유래했다. 노성현의 구읍취락은 지역의 행정을 담당하던 예전 기능을 이미 상실하였다. 노성은 본래 백제 때에는 열야산현이었는데, 당나라가 노산주(魯山州)로 고쳤다가,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니산으로 고치고 웅주(현 공주)에 귀속되었다....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에 있는 조선 중기에 건립된 서원. 논산 돈암서원은 김장생의 문인들이 스승을 추모하여 사우를 건립한 뒤 위패를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 오다 사당 앞에 강당을 건립하면서 서원의 단초를 이루었다. 또한 돈암서원은 1659년(효종 10)에 이어 1660년 (현종 1), 두 번 사액을 받은 특이한 사례이다. 돈암서원은 영향력의 범위가 넓어서 호서 지역 전체 뿐만...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후기 김문의 처 양천허씨 재실. 양천허씨는 태조 때 대사헌을 지닌 허응의 딸로 광산김씨 김문(金問)에게 출가하였고, 17세에 홀몸이 되자 친정 부모의 재가 권유를 거부하고, 연산에 내려와 유복자인 김철산을 키우며 일생을 마쳤다. 훗날 자손 중 좌의정을 지낸 김국광을 비롯, 대사헌을 지낸 김계휘, 기호 사림의 거두 김장생과 김집 등 대유학자...
-
백제의 웅진 천도로 논산 지역이 차지하는 사회·문화적 역할이 증대되면서 충청남도 논산시 일원에는 많은 백제시대 고분군과 생활유적이 조성되었다. 특히 고분 문화는 당대의 장송 의례에 따른 문화 성격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기 때문에, 논산 지역 백제 고분군과 출토유물을 검토하면 백제의 중앙과 지방의 관계를 나누어 살필 수 있다. 백제시대 논산 지역은 3개 행정구역으로 나뉘어...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결성된 학생단체. 3·1운동 이후 문화계몽운동이 확산되면서 논산 출신 재경유학생들이 조직하여 1920년대 초반 충청남도 논산지역의 계몽운동을 주도한 단체로 순회강연단의 조직, 축구대회, 정구대회 등을 통하여 상호간의 친목 도모는 물론 논산지역의 신문화운동 확산에 기여하였다. 논산학우구락부는 충청남도 논산 지역 신문화운동 제창과 민지 계발을 위해 설...
-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농민이 그 생활 조건 또는 사회적 환경의 개선을 위해 전개한 사회운동. 일반적으로 농민운동은 노동운동과 같이 계급으로서의 농민이 스스로의 노동 조건과 경영 조건의 유지·개선·확장 또는 사회·정치적 생활 조건의 유지·향상을 위해 단결해서 행동하는 조직적 투쟁을 말한다. 넓은 의미로는 흔히 농민조합운동, 농촌갱생운동, 농촌청년운동 등을 포...
-
흔히 풍수지리에서 배가 뜬 모양이란 행주형(行舟形)은 행운의 터라고 말을 한다. 옛날에는 배가 재물과 사람을 운반했기 때문에 배에는 사람과 재화가 모인다고 하여 배 모양의 땅에 묘를 쓰거나 집을 지으면 동네는 물론 집안이 번창한다고 믿었다. 주형(舟形), 배 모양의 앞에 행(行)자를 붙여서 말 그대로 배가 떠다니는 형상을 말하는 것이다. 즉 행주형이라 하는 것은 떠나갈 듯 하면서도...
-
1950년대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대둔산의 좌익무장유격대에 대해 이루어진 국군과 경찰의 진압 작전. 6·25 전쟁 때 좌익무장유격대가 충청남도 논산의 대둔산을 근거지로 하여 좌익무장유격 활동을 벌이자 후방을 안정시키기 위해 국군과 경찰이 합동으로 전개한 진압작전이다. 1950년 11월부터 시작되었으나 휴전 이후에도 계속되어 1955년 1월까지 이어졌다. 6·25 전쟁 중이었던 1...
-
백제시대 논산 지역에 있었던 군현. 덕근군은 현재 충청남도 논산시 관할 구역의 일부로 편제되어 있는 지역이나 삼국시대 당시에는 백제에 속한 군현의 하나로 완산에 소속되었으며 은진면 일대가 그 중심지였다. 그리고 동방성이 위치했던 곳으로 백제가 신라를 공격하거나 신라의 백제 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군사적 요충지에 해당하는 지역이었다. 백제시대 당시 논산 지역은 3개의 군현으로 나누어져...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 있는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가마터. 요지는 토기·도자기·질그릇·오지그릇·기와 등을 구워내는 시설로서 가마터·가마사지·점터 등으로도 불린다. 옛날에는 토기를 가마 속에 넣지 않고 그대로 맨 땅 위에 쌓은 후, 그 위에 많은 장작이나 섶을 덮고 불을 질러 구워내는 방법도 사용하였다. 우리나라는 중국에 이어 일찍부터 도자기가 발달하였다. 원시적 개방요 대신...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 지역에 있던 동양척식주식회사 지점. 통감부를 설치한 이래 일제는 조선으로 자국인의 이주를 적극적으로 권장하였다. 각 지역에 대한 안내서 발행은 이와 같은 목적을 관철하는 데 있었으며, 농업이민 장려는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설립으로 귀결되었다. 동양척식주식회사는 1908년 「동양척식주식회사법」에 의하여 농사 개량과 농업 기술 향상이라는 표면적인 목적을 내...
-
조선 말기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합세하여 일으킨 농민운동. 동학농민운동은 1894년(고종 31)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합세하여 일으킨 대규모 농민운동으로 갑오농민운동 또는 갑오농민전쟁이라고도 한다. 당시 조선은 대외적으로나 내부적으로 붕괴되어 가고 있었다. 대외적으로는 동아시아의 국제질서를 주도해왔던 청(淸)나라의 몰락과 함께 밀어닥친 제국주의 열강의 강압으로,...
-
충청남도 논산시에서 개인 혹은 여러 사람의 시나 문장을 모아 엮은 책. 문집이라는 말은 중국 양(梁)나라 완효서(阮孝緖)에 의해 『칠록(七錄)』이 만들어질 때 그 분류 항목 중의 하나인 문집록(文集錄)에서 나왔다. 이후 경(經)·사(史)·자(子)·집(集)의 4부분류법(四部分類法)이 일반화되면서 문집은 집부(集部)에 귀속되었다. 문집은 거기에 수록된 저자의 수에 따라 총집(總集)과...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구체적이며 비유적 언어와 문자로 표현한 예술. 논산 문학의 대상 범위는 논산에서 태어나 논산에서 문학 활동을 했던 작가들과 논산에서 출생한 뒤 타지에 가서 활동한 작가, 그리고 논산 지역의 문학 활동에 참여하여 논산 문학 발전에 기여한 작가들과 작품들이다. 조선시대의 논산 문학은 주로 한문학이 주류를 이룬다. 논산 지역 인물들의 문집은...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대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박동민의 신도비. 신도비는 종2품 이상의 벼슬을 지내야 세울 수 있는데, 박동민은 사후에 증직되어 종2품인 참판 벼슬을 받아 신도비를 세우게 되었다. 증조와 조부가 현달하고 형제와 아들이 높은 벼슬을 한 집안이다. 묘를 이곳에 쓰고 자손들이 세거하면서 번성하고 있다. 박동민은 예빈시참봉으로 있으면서 1593년(선조 26)에 죽었으나...
-
고려 후기 논산 지역에서 활동한 무신. 1376년(우왕 2) 가을 왜적이 부여를 거쳐 공주에 이르자, 당시 공주목사였던 김사혁이 정현에서 맞서 싸우다가 패하여 공주가 함락되었다. 당시 토왜군의 원수(元帥)였던 박인계는 속현감무(屬縣監務) 서천부(徐天富)가 이를 구원하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참수하고, 왜적이 석성(石城)을 거쳐 연산(連山, 현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지역) 개태사(開泰...
-
조선 전기 1492년(성종 23) 이산(尼山) 암천(巖川)에 은거한 무안박씨논산 입향조. 본관은 무안(務安). 아버지는 박임경(朴臨卿), 어머니 창녕성씨(昌寧成氏)이다. 어머니 창녕성씨는 사육신 중의 한 분인 성삼문(成三問)의 딸이다. 박증의 아버지 박임경은 1456년 병자사화(丙子士禍)로 장인이 참화를 당하자 그 시신을 김시습(金時習) 등과 수습하여 노량(露梁)에 매장하고 두문불...
-
삼국시대 백제 관할의 논산 지역의 역사. 백제(百濟)는 고구려·신라와 함께 한국 역사에서 삼국시대라는 각축전을 전개한 고대국가의 하나로 부여 계통의 여러 이주민 세력이 한강 유역의 선주민과 결합하고 마한의 여러 소국들을 병합하는 과정에서 온조왕을 시조로 하여 B.C. 18년 현재의 한강 하류인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면서 시작되었다. 475년 고구려의 침략으로 인해 한성(서울)에...
-
현재까지 백중놀이가 열리고 있는 지역은 김해와 서울, 연산 지역이 전부이다. 그 중에서도 연산의 백중놀이는 효자와 효부에게 상을 주고, 불효자를 응징하며 농사짓는 머슴에게 상을 주어 충·효·근면을 장려하는 민속놀이로 527년의 전통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연산의 백중놀이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논산문화원에서 발행한 『논산의 민속』이라는 책과 연산백중...
-
충청남도 논산시에 속하는 법정면. 연산 동쪽에 있어서 동면이라 하다가, 대둔산 줄기가 뻗어내려 큰 골짜기를 이룬다고 하여 벌실·버실·벌곡이라 하였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동면으로, 1895년(고종 32)에 벌실면 또는 벌곡면이라고 하여 검천(檢川)·주티[舟峙]·축동(杻洞)·오작동(五作洞)·도산(道山)·장고티[長古峙]·신촌(新村)·덕곡(德谷)·중벌곡(中伐谷)·상사암(相思岩)·상벌곡...
-
충청남도 논산시에서 석가모니를 교조로 활동하는 종교. 논산 지역은 백제의 옛 수도인 공주, 부여와 인접하고 있어서 삼국시대부터 불교가 널리 신앙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사찰의 건립 기록은 고려시대 때이다. 고려의 태조 왕건은 삼국통일을 완성한 936년(태조 19)에 개태사를 설립하여 호국도량으로 삼았다. 이때부터 논산 지역에 불교가 성행하였으나 조선 중기 이...
-
충청남도 논산시에서 불상을 모셔 놓고 불교 신행을 행하는 장소. 사찰은 본래 불교가 발생한 인도에서 수행자들이 우기를 피해 한 곳에 모여 생활 하는 일조의 공동 주거지였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종교 의례를 행하는 성스러운 장소로 변모하였으며 절, 사원(寺院), 정사(精舍), 가람(伽藍)이라고도 한다. 사찰은 규모에 따라 사(寺)와 암(庵)으로 대별된다. 사(寺)는 여러 대중...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정월 대보름이나 시월 상달에 산신을 모시고 드리는 마을 제사. 산신제는 산악 숭배의 전통을 잇는 대표적인 마을 신앙의 하나이다. 건국신화에 녹아 있는 천신강림(天神降臨)의 우주관이나 고대의 제천의례(祭天儀禮)에서 잘 드러나듯이 산신 신앙은 천신 숭배에 뿌리를 두고 있다. 또한 신라의 삼산오악(三山五嶽)이나 백제의 삼산신앙(三山信仰), 그리고 고구려의 산천제(...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초복·중복·말복의 세 절기에 행하는 세시풍속. 삼복(三伏)은 하지를 기점으로 하여 셋째 경일(庚日)을 초복(初伏), 넷째 경일(庚日)을 중복(中伏), 입추(立秋) 후 첫째 경일(庚日)을 말복(末伏)이라 한다. 삼복은 10일 간격으로 오기 마련이다. 따라서 삼복은 일 년 중 가장 더운 20여 일 사이에 들어 있으며, 그 사이를 복중(伏中)이라 하여 더위를 피하...
-
주곡리는 계룡산 줄기에 기대어 주변의 산이 마치 삼태기 같은 모습으로 마을을 포근히 감싸 안고 있다. 마을 입구 방죽에는 소나무와 느티나무 숲이 살짝 마을 안을 가려주어 안온한 분위기를 더해 준다. 마을 앞으로는 풍요로운 농토가 펼쳐있고, 갑사 계곡에서 흘러나온 노성천이 유유히 흐른다. 오랜 전통을 간직한 주곡리는 그 전통과 역사성 덕분에 논산의 역사마을로 선정되기도 하...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시신을 장지로 운반하기 위해 만든 의례용 도구. 상여는 사람의 시체를 실어서 장지까지 나르는 도구로, 마을마다 마련해 두기도 하고 초상이 나면 개인을 위해 만들기도 한다. 상여를 메는 사람을 상여꾼·상두꾼·영구꾼·영여꾼·운상꾼·이정·향도라 하며, 대개 천민이 메는 것이 보편적이었으나 후에는 동네 청년들이나 망인의 친구들이 메기도 한다. 상여꾼들은 상여를 메고...
-
조선 전기 논산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근보(謹甫), 호는 매죽헌(梅竹軒). 개성유후(開城留侯) 성석용(成石瑢)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판중추부사 성달생(成達生)이고, 아버지는 도총관(都摠管)을 지낸 성승(成勝)이며, 어머니는 현감 박첨(朴襜)의 딸이다. 병자사화(丙子士禍) 때 성삼문의 동생 성삼빙(成三聘), 성삼고(成三顧), 성삼성(成三省)과 아들 성맹...
-
도순을 시조로 하고 도사면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성주도씨의 시조는 도순(都順)으로 고려 원종 때 전리상서를 역임했다. 도순은 정몽주 등과 함께 고려의 신하로 몰려 조선 건국 이후 수난을 당하였다. 도순 이후 성주도씨는 한동안 출사를 꺼렸으나, 조선 중·후기에 이르러 15명의 문·무과 급제자를 배출하였다. 성주도씨 8세손 도사면(都思勉)이 고성이씨 입향조인 이...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세거해 온 성씨. 조선 전기 토착 성씨들의 미미한 활동상에 비해, 연산현 향촌 사회의 주도권을 갖고 있던 세력은 여말선초에 입향한 이거 사족(士族)들이었다. 이거 사족들은 연산천(連山川)의 지류를 따라 농경지 개간이 용이한 산간 계곡에 근거지를 형성하였다. 이들은 여말 정국 변동에 따라 은거지를 정하고 낙향한 경우로, 모두 여산송씨(礪山宋氏)와의 혼맥을 통해...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송문림의 묘표. 여산송씨(礪山宋氏)는 여말선초(麗末鮮初)에 연산 화악리에 세거하기 시작하였다. 송서(宋瑞)의 아들인 송윤번(宋允蕃)이 진잠(鎭岑)에 살다가 그 아들 송전(宋琠)이 화악리로 이거해 살기 시작했다. 이미 송윤번의 셋째 딸이 고성 사람과 결혼하여 고양리에 내려와 세거하게 되었고 송전(宋琠)의 딸은 기계인(杞溪人) 유효...
-
연산 사거리에서 벌곡으로 가는 길 옆인 연산3리에는 노송 한 그루가 우산살처럼 가지를 펼치고 있고 그 아래에 소나무 이름을 딴 ‘송불암’이라는 석불이 세워져 있다. 여기에는 연산리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유명한 송불암 전설이 전해진다. 조선 초에 광산김씨 가문이 연산 땅에 살고 있었다. 그는 글 공부에 매진하여 마침내 과거에 급제하였고, 벼슬길에 오르면서 개경에 있는 좋은...
-
조선 중기 논산 지역에서 활동한 문인이자 학자. 본관은 은진(恩津). 아명은 성뢰(聖賚), 자는 영보(英甫), 호는 우암(尤菴)·우재(尤齋). 봉사(奉事)를 지낸 송구수(宋龜壽)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도사(都事) 송응기(宋應期)이고, 아버지는 사옹원봉사(司饔院奉事) 송갑조(宋甲祚)이다. 어머니는 봉사 곽자방(郭自防)의 딸로서 선산곽씨(善山郭氏)이다. 1625년(인조 3)에 도사...
-
KBS 네트워크(2008년 5월 방영), 대전일보(2003, 2004년, 2005년 보도) 등 정말 여러 차례 맛집으로 소개된 ‘연산순대’집을 찾아갔다. 연산재래시장에서 대추거리로 조성된 길가의 맞은편에 위치한 가게는 대로변이 아니기 때문에 손님들이 일부러 찾아와야 하는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오전부터 손님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연산순대집의...
-
연산재래시장 에서는 많은 볼거리와 먹거리를 만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연산순대야말로 수십 년간 논산 사람들의 입맛을 돋우어 온 효자다. 연산시장에서 일렬로 늘어선 순대집들이 가마솥을 걸어놓고 장사하던 모습은 이제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한때는 순대 골목이라고 불릴 정도로 번화했었던 이곳에서 지금까지 20여년 넘게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곳이 있다. 연산...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행해지는 식품과 음식에 관련된 모든 활동. 논산 지역은 충청남도의 남부 지역으로 서쪽으로는 금강이 북에서 남쪽 방향으로 흐르고, 북동쪽은 계룡산(鷄龍山)·대둔산(大芚山)이 걸쳐 있는 험준한 산악지대이다. 또한 남쪽은 전라북도 완주군과 익산시와 경계를 접하고 있어 식생활에 있어서도 이러한 지형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역사적으로 기호 유교 문화권의 중심이란 지역...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행해지는 식품과 음식에 관련된 모든 활동. 논산 지역은 충청남도의 남부 지역으로 서쪽으로는 금강이 북에서 남쪽 방향으로 흐르고, 북동쪽은 계룡산(鷄龍山)·대둔산(大芚山)이 걸쳐 있는 험준한 산악지대이다. 또한 남쪽은 전라북도 완주군과 익산시와 경계를 접하고 있어 식생활에 있어서도 이러한 지형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역사적으로 기호 유교 문화권의 중심이란 지역...
-
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안명옥은 참판 안사묵(安思黙)의 장손으로 출생하였으며, 1886년에 선공감 감역을 지냈다. 1910년 일제로부터 한일합방에 대한 회유책으로 노인은사금(老人恩賜金)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송병준과 김지수가 각각 영동과 연산에서 이를 거절하고 자결했다는 소식을 듣고 은진향교에서 일본의 악행과 을사오적의 매국행위를 규탄하며 자신도 단식 자결하려고 하였...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에 있는 조선 중기 학자 김장생의 서재.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1548~1631)은 생전에 관직에 나가는 것보다 연산이나 연산과 가까운 곳에 서재(書齋)를 짓고 문인들과 강학하며 지내는 것을 즐겼다. 양성당은 1602년(선조 35)에 정인홍(鄭仁弘)의 용사(用事)를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벼슬을 그만두고 연산에 내려와 아한정(雅閑亭)의 유지(遺址)에...
-
송유익을 시조로 하고 송전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여산은 현 전라북도 익산이다. 여산송씨 시조 송유익(宋惟翊)은 고려 때 진사로 나라에 공훈을 세워 여산군에 봉해졌으며 은청광록대부로 추밀원부사에 추증되었다. 문헌에 의하면 송유익의 선계는 중국의 경조 출신으로 당나라에서 호부상서를 지낸 송주은의 후손 송자영이다. 송자영은 슬하에 아들 3형제를 두었는데, 장남 송...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에 있는 고려 후기부터 조선 전기까지의 여산송씨 묘역. 여산송씨는 고려 후기부터 조선 전기까지 연산면 화악리에 입향하여 연산 지역에서 토착 세력으로서의 세력을 확대해 나갔다. 연산면 면소재지에서 우회전하여 지방도 697호선을 따라 3㎞ 가면 오른쪽으로 국도 1호선과 만난다. 국도 1호선을 따라 3㎞가량 가다가 계백로에서 화악리 방면으로 우회전하여 충청남...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덕암리에 있는 백제시대 고분군. 연산에서 공주 방향 도로를 따라 약 8㎞ 정도 가면 연산면 덕암리에 이른다. 덕암리 고분군은 덕암리 행경마을 뒷산에 위치한다. 고분군은 서쪽 방향으로 흘러내린 구릉 남사면의 비교적 경사가 심하게 이루어진 곳에 입지해 있다. 1992년 10월 28일 논산시 향토유적 제4호로 지정되었다. 고분은 대부분 입구를 남쪽으로 향한 채 이...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양촌면에 결성되어 활동한 항일 비밀 결사 단체. 1941년 태평양전쟁을 시작한 일제는 전시 체제로의 전환과 함께 조선에 대한 인적·물적 수탈을 감행하였다. 인적 수탈로는 이전의 지원병제도를 1943년에는 학도지원병제로, 1944년에는 징병제로 바꾸어 강행하였으며 물적 수탈로 국가총동원법을 시행하여 전시에 필요한 물자를 강제 징발하였다. 연산국수동맹...
-
고려 전기 충청남도 논산 지역 일원에 설치되었던 행정구역. 연산군은 백제가 관할했던 삼국시대에는 황등야산군(黃等也山郡) 또는 황등야군으로 불렸으며, 신라의 삼국 통일 후인 757년(경덕왕 16)에는 황산군으로 개칭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연산군으로 개칭되었으며, 1018년(현종 9) 공주 임내에 병합되기도 했다. 조선 전기인 1413년(태종 13)에는 연산현이 되었으나 1646년(인조...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일대에서 생산되는 특산 대추. 연산대추는 연산면 인근의 벌곡면, 양촌면, 전라북도 운주면 일대에서 많이 생산되는 것을 연산에 사들여와 다른 지방에 팔기 시작하면서부터 생긴 이름이다. 이후 연산면을 중심으로 대추 거래가 활발해져 전국적인 대추 집산지가 되었고, 이로써 대추 구입을 위해 연산을 찾는 소비자가 늘면서 ‘좋은 품질의 대추는 연산대추’라는 이미지를 형...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에서 매년 10월에 열리는 대추 축제. 1965년 전후로 논산 지역의 연산, 벌곡, 양촌에는 아름드리 대추나무가 많이 있어 가을에는 집집마다 대추 따는 소리가 메아리를 울렸고, 또한 그 밑에서 돌을 던져 대추를 따먹고 놀던 아이들도 많이 있었다. 이들 지역에서 수확한 대추는 수레로 운반하여 주로 논산에서 매매가 이루어졌다. 그러다 연산의 상인들은 논산까...
-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70평생 고향을 떠나지 않은 문석진(67) 할아버지는 마을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다. 2006년부터 시장의 자치부위원장, 연산면 번영회 부회장 등의 요직을 맡고 있으며 연산면에서 일어나는 대소사를 함께 해오고 있다. 마을의 사정은 물론 어느 집에 무슨 일이 있어났는지 다 알고 있는 연산리의 살아 있는 역사이다. 연산시...
-
충청남도 논산시에 속하는 면. 삼국시대 황산군 지역으로, 고려시대에 연산군으로 개편된 뒤 연산이란 지명이 나타나게 되었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현내면(縣內面) 지역으로, 황령(黃嶺)·신곡(莘谷)·남촌(南村)·북촌(北村)·신암(莘岩)의 5개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외성면(外城面)의 소계(巢溪)·개정(盖井)·부황(夫皇)·청림(靑林)·중외(中外)·하외(下外)·...
-
조선 후기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과 은진면 일대에서 일어난 농민 폭동 사건. 조선 말기 삼정(三政)의 문란과 지배층의 과중한 착취, 세도정치의 불합리성, 문호개방 이후 급속히 증가한 국가지출 등은 농민에게 2중 3중의 부담을 지웠다. 여기에 더하여 조세의 징수관인 아전(衙前)의 행패 또한 극심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1862년(철종 13) 2월 진주에서 민란이 일어나 삼남 전역으로...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에서 매년 백중에 열리는 두레먹이. 연산 백중놀이는 논산시 두마면 왕대리[지금의 계룡시]를 중심으로 하는 열두 두레의 ‘합두레먹이’로 전승되었던 놀이인데, 1989년 연산면 청동리에서 연산 백중놀이로 새롭게 복원되었다. 이 놀이는 두레먹이[호미씻이]의 특징이 잘 녹아 있는 대동놀이이자 지역 축제의 성격을 띤다. 흔히 두레먹이는 자연 마을 단위로 베푸는...
-
조선 말기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에 설립되었던 사립학교. 1908년 논산 지역에는 사립학교가 다수 설립되었는데,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발맞추어 1908년 6월 연산에서는 민성학교가 처음으로 개교하였다. 뒤이어 동년 7월 18일에는 논산 돈암서원에 연산여명학교가 개교하였다. 이날 입학한 학생은 50여 명이었고, 각종 경비는 광산김씨(光山金氏) 종중에서 전담하였다. 초대 교장에는...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에 있는 호남선 기차역. 1911년 7월 11일 대전·연산 간 호남선이 개통되면서 영업을 개시하였다. 1957년 7월 18일 현재의 역사를 준공하였다. 1977년 11월 1일 특급열차 여객을 취급하였고, 1990년 8월 1일 전산단말기를 설치하였다. 1991년 9월 1일 소화물 취급을 중지하였고, 1999년 11월 26일 역사를 개수하였다. 일제강점기에...
-
연산아문 뒤편으로 돌아 들어가면, 돌계단이 나타난다. 수십 개의 계단을 오르면 눈앞으로 어느 동네에나 있을법한 공원이 펼쳐진다. 그러나 연산리의 연산시민공원은 이곳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공원이다. 연산공원의 계단을 올라가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애국지사 농암(濃巖) 곽성진(郭性鎭) 선생 추모비이다. 곽성진 지사는 논산 강경에서...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에 있는 공립 중학교. 올바른 가치관으로 바르게 행동하는 사람, 합리적 사고로 창의력을 발휘하는 사람, 스스로 미래를 준비하는 능동적인 사람, 성실한 자세로 더불어 살아가려는 사람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자주·진실·노력’이다. 1951년 12월 4일 6학급으로 연산중학교 설립 인가를 받았으며, 1951년 12월 31일 초대 박창서 교장이...
-
조선 전기와 중기 충청남도 논산시 일원에 설치되었던 행정구역.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 『여도비지(輿圖備志)』, 『대동지지(大東地志)』, 『호서읍지(湖西邑誌)』 등의 옛 지리지나 읍지 등에 기록되어 있다. 각 지리지 읍지들은 형식과 방식에 차이를 보이...
-
연산리는 삼국시대에는 황산군에 속하는 지역이었으나, 고려시대에 연산군으로 개편하게 되면서 ‘연산’이라는 지명이 처음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연산을 감싸고 있는 천호산의 산세가 계룡산과 대둔산과 연이어져 있기 때문에, ‘연이은 산이다’라는 뜻에서 연산이라는 지명이 생겼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마을 주민들 중에도 이러한 연유에서 연산리라는 이름으로 붙여졌다고 기억하...
-
조선시대 논산 지역에 연고를 둔 절개 높은 여자를 일컫는 말. 열녀(烈女)는 위난을 당하여 목숨으로 정조(貞操)를 지켰거나, 또는 오랜 세월에 걸쳐 고난과 싸우며 수절(守節)한 부녀자를 일컫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열녀와 열부(烈婦)를 통칭한다. 열녀 중에는 또 ‘마당과부’라는 것도 있는데, 이는 조혼(早婚)이 예사였던 시절에 혼례만 치르고 미처 시가(媤家)로 가기 전에 신랑이 죽는...
-
연산백중놀이의 전수관은 연산 상설시장 옆쪽에 자리해 있다. 백중놀이 전수관은 국비와 도비, 시비의 지원을 받아 2006년 8월 31일에 제17회 연산백중놀이 행사와 함께 문을 열었다. 연산백중놀이 전수관은 440여 평으로 2층 건물로 지어졌다. 전수관은 연산 백중놀이가 1991년에 무형문화재로 지정을 받으면서부터 전수관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그 후로 15년이...
-
연산재래시장에는 16개 점포가 전부이지만, 그 입구에는 옛 시장을 연상시키는 노점상들과 가게들이 연산재래시장의 입구를 지키고 있다. 엄밀하게 말하면 정부가 허가한 16개의 점포만이 연산재래시장의 일원이라고 할 수 있지만, 16개 점포주들을 비롯하여 연산 주민들은 하나같이 모두 입구의 상점들도 연산재래시장이라고 입을 모아 이야기하고 있다. 연산재래시장의 입구의...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 보급된 유학을 종교적 관점에서 이르는 말. 유교는 공자를 시조(始祖)로 하는 중국의 대표적 사상으로 공교(孔敎) 또는 공자교(孔子敎)라고도 한다. 삼강오륜을 덕목으로 하며 사서삼경을 경전으로 한다. 인(仁)을 모든 도덕을 일관하는 최고 이념으로 삼고 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일종의 윤리학이자 정치학이며, 수천...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인. 본관은 문화(文化). 호는 휴계(休溪). 하정공파(夏亭公派)로 아버지는 유신민(柳信民)이다. 유제민(柳濟民)과 유정민(柳定民)이 종백부이며, 유문원(柳文遠)은 종질이다. 유무는 김장생(金長生)과 김집(金集)의 문인으로 병자호란 이후 관직에서 물러나 연산에 칩거하였다. 나라에서 여러 차례 벼슬을 내렸으나 나아가지 않다가 잠시 찰방에 봉직한 후 곧 사직하...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인. 본관은 문화(文化). 하정공파(夏亭公派)로 유제민(柳濟民)과 유정민(柳定民)이 숙부이며, 유무(柳懋)의 종질이다. 유문원은 원래 유무가 배향된 연산의 휴정서원(休亭書院)에 배향되어 있었다. 휴정서원은 처음에 유무만 배향하였으나 뒤이어 유문원을 배향하였고, 1735년에는 이항길(李恒吉)을, 1751년에는 김정망(金廷望)과 권수를 배향하였다. 휴정서원은...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여망(汝望), 호는 석호(石湖). 아버지는 대사간 윤황(尹煌)이며, 어머니는 창녕성씨(昌寧成氏)로 성혼(成渾)의 딸이다. 1630년(인조 8) 생원시에 합격하고, 1633년 식년문과에 급제한 뒤 승정원주서·세자시강원설서·예조좌랑·병조좌랑을 거쳐 제천현감·춘추관수찬관 등을 역임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갈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윤문거의 묘소. 윤문거는 본관이 파평(坡平)이고 자는 여망(汝望)이며 호는 석호(石湖)이다. 아버지는 대사간 윤황(尹煌)이며, 어머니는 창녕성씨(昌寧成氏)로 성혼의 딸이다. 김집(金集)의 문인으로 송시열(宋時烈), 송준길(宋浚吉) 등과 교유하였으며, 조익(趙翼), 김상헌(金尙憲) 등에게도 배웠다. 1630년(인조 8) 생원시에...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노직(魯直), 호는 동토(童土). 아버지는 대사간 윤황(尹煌)이며, 어머니는 창녕성씨로 당대의 명유인 성혼(成渾)의 딸이다. 큰아버지 윤수(尹燧)에게 입양되었다. 1633년(인조 11) 사마시에 합격하여 내시교관(內侍敎官)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1636년 병자호란 때에 아버지 윤황이 척화 죄로 귀양 가고,...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학자.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백분(伯奮), 호는 용서(龍西). 아버지는 시강원필선 윤전(尹烇)이며, 어머니는 해평윤씨(海平尹氏)로 첨지중추부사 윤효지(尹曉之)의 딸이다. 슬하에 3남 4녀를 두었는데, 세 아들 윤주(尹拄)·윤유(尹揄)·윤부(尹拊)와 손자 윤시교(尹時敎)는 학행이 높기로 이름이 났다. 1633년(인조 11) 생원시와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초명은 찬(燦), 자는 정숙, 호는 후촌(後村). 아버지는 윤창세(尹昌世)이고, 형은 윤황(尹煌)이다. 성혼(成渾)의 문인으로 1610년(광해군 2)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들어갔으며, 이후 승문원저작이 되었다. 1613년 유생 이위경(李偉卿)이 이이첨(李爾瞻)의 사주를 받아 폐모소를 올렸을 때 한림 엄성(嚴惺)과 함...
-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연서리에 있는 조선시대 구읍취락. 논산시 은진면에 있는 연정(蓮亭)의 서쪽에 위치하여 연서라 부르게 된 연서리는 은진면의 면소재지로 조선시대에는 현감이 집무하는 동헌이 있었던 구읍취락(舊邑聚落)이다. 지금은 은진면사무소·은진치안센터·은진보건소·농촌지도소·은진농업협동조합·은진초등학교·은진우체국 등 각종 기관이 들어서 있다. 은진면은 조선시대 은진현이었다. 13...
-
남민을 시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의령남씨 시조는 남민(南敏)으로 원래 당나라 봉양부 여남(汝南) 사람이었다. 신라에 귀화하였는데, 신라 왕이 ‘여남에서 왔다’고 하여 ‘남’이라는 성을 하사하였다. 조선 개국에 공을 세워 중앙 정계에 진출하면서 상신(相臣) 6명과 대제학 6명을 배출하는 등 가문의 격을 올렸다. 의령남씨의 대표적 인물로는 조선의 개국공신 남재(南在)·...
-
외침을 물리치기 위해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조직되어 활동했던 민병. 의병은 국가가 외침으로 인해 위태로울 때 정부의 명령이나 징발을 기다리지 않고 자발적으로 일어나 싸웠던 민병을 말한다. 유사 이래 외침을 많이 당했던 우리나라의 경우 의병의 역사도 이미 삼국시대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탁월한 활동을 보여준 의병은 조선시대의 임진왜란·정묘호란·병자호란 및 구한말의...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조령리 백파 이상 영당에서 매년 이상의 절개를 기리기 위해 지내는 제사. 백파(白波) 이상(李常)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3남인 익안대군의 손자이다. 단종을 옹호하던 이상은 세조가 등극하자 초야로 피신을 하여 은둔생활을 하다가 사망했다. 백파도정(白坡都正) 영당은 그의 영정을 모시고 있는 영당이다. 현재 영당에 걸린 영정은 이상의 아들인 옥계 이현동(李賢童)이...
-
일제강점기 논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용규는 1859년 10월 6일 현재의 전라북도 군산시 성산면 도암리에서 출생하였으며, 1906년 홍주(洪州)(현 충청남도 홍성군 지역)의 민종식의진에 참모사로 참가하며 국권 회복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홍주성이 함락되자 탈출하여 변장을 하고 다녔으며, 1906년 7월에 다시 청양 지역 축치(杻峙)에 모여 군사를 수습하였다. 그 후...
-
연산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음식들이 몇 가지 있다. 그 중에서도 연산도토리묵이 최고일 것이다. 현재는 도토리묵 가게가 연산재래시장과 연산 일대를 아무리 눈을 씻고 뒤져도 단 한 곳밖에는 없지만 불과 1980년대만 해도 연산의 도토리묵거리는 꽤나 유명했다고 한다. 연산리에 스무 집 정도에서 도토리묵 장사로 생계를 이어갈 정도였다고 하니, 뒤집어 생각해보면 도토리...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연산현감을 지낸 이초로의 거사비. 이초로는 전라남도 함평 사람으로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1650년(효종 1) 2월 연산현감으로 취임하여 동년 8월에 사직하였다. 이초로가 연산현감을 사직한 뒤 연산 주민들이 그가 재임 당시 행했던 치적을 기리고자 거사비를 세웠다. 논산시에서 계룡 방향으로 국도 1호선을 타고 약 12.82㎞...
-
충청남도 논산시 충곡서원에 제향된 조선 전기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농맹아(聾盲啞). 증조부는 익안대군 이방의(李芳毅)이며, 아버지는 백파도정(白波都正) 이상(李常)이다. 슬하에 4남 3녀를 두었다. 이현동은 천성이 어질고 착하여 왕손의 몸일지라도 부귀에 마음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강호산인(江湖散人) 김숙자(金叔滋)의 문인으로 그의 아들 김종직(金宗直)과 도의(道義)...
-
충청남도 논산시의 지역적 관점에서 지표에서 발생하는 인간 활동의 모든 현상을 연구하는 학문 분야. 논산 지역의 인문지리는 문화지리학·사회지리학·경제지리학·정치지리학·역사지리학 등으로 나누어지며, 인구·민족·취락·도시·농업·공업·상업·교통 등에 관하여 이들의 지리적 분포, 지리적 구조, 환경과의 관계를 연구한다. 논산시는 2개 읍·11개 면·2개 동 등 총 15개 행정구역으로 구성되...
-
전국 대추의 30% 이상이 모이는 집산지인 연산에서는 매년 가을이 되면 ‘황산벌 연산 대추축제’가 열린다. 2008년 10월 31일(금)부터 11월1일(토)까지 연산 체육공원(연산천 둔치)에서 연산대추축제추진위원회의 주관으로 행사가 진행되었다. 축제의 모토는 ‘온누리엔 오곡 풍년!!, 황산벌엔 대추 풍년!!’이다. 축제기간에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최고의 대추를 평소보다 저렴한 가격과...
-
1910년 한일합병으로부터 1945년 8·15 해방에 이르는 기간의 충청남도 논산 지역의 역사. 한일합병은 1910년 8월 29일 우리나라가 일제침략에 의해 국권을 상실하고 일제의 식민지로 강제 편입된 사건으로 경술국치(庚戌國恥) 또는 일제병탄(日帝倂呑)이라고도 한다. 일제는 한국을 강제로 병합한 이후 1945년 8월 15일의 해방에 이르기까지 한민족 말살정책과 식민지 수탈정책을...
-
조선시대 충청남도의 논산 지역에서 정기적으로 개설된 장시망. 조선시대 논산 지역의 장시를 살펴보면, 은진에는 읍내장·저교장(楮橋場), 강경장(상·하장으로 구분), 논산장, 연산에 사교장(沙橋場)·두마장(斗馬場) 등의 장시가 있었지만 노성에는 없었다. 논산이 위치한 금강 유역은 충청도 지역 중에서도 가장 장시밀도가 높은 곳이었다. 조선 후기 충청도 전체의 장시권 평균 면적은 107㎢...
-
강경시장의 역사는 17세기 말경에 열린 하시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는 시장이라기보다 민간 소유답에 휴한기를 이용하여 상품을 진열하는 정도였다. 1808년 저습지를 매립하여 입지를 확보하면서 큰 시장의 규모로 확대되었다. 그 후 인구가 늘어나면서 시가지를 조성하게 되어 상권은 더욱 넓어졌다. 상시장이 생긴 것은 지금의 북옥동 등 옥녀봉 밑의 주민들이 중심이 되어 시장을 증설해...
-
이도를 시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전의(全義)는 충청남도 연기군(燕岐郡) 전의면[현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에 위치하는 지명이다. 시조 이도(李棹)는 고려 통일 때 공을 세워 삼한개국익찬 2등 공신 삼중대광태사에 책록되었고 전산후(全山侯)에 봉해졌다. 공주 출신으로 왕건이 후백제를 정벌하고자 공주에 이르렀을 때 금강이 범람하여 멈추자 도강 방법을 주도한 공으로 도(棹)...
-
논산 연산재래시장이 새롭게 탈바꿈하기 위해서 상가번영회에서는 이것저것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 연산장은 충남에서 손에 꼽혔던 장이었지만 주변에 큰 대형마트가 생겨나면서 재래시장이 쇠퇴해 가고 있어 주민들의 걱정이 늘고 있다. 재래시장의 활성화를 위하여 주민 자치위원회에서는 “정겹고 푸짐하게, 연산 장날 신명 마당”을 한 달에 한 번 마지막 주 연산 장날에 개최하고 있다....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양산리 구고운사 경내에 있던 조선 중기 문신 김계휘의 서재. 황강(黃岡) 김계휘(金繼輝, 1526~1582)는 1557년(명종 12)에 윤원형 당에 의해 삭탈관작, 문외 출송을 당하자 연산 지역으로 퇴거해 와서 구고운사 경내를 빌려 서재로 사용하고, 편액을 정회당이라 하였다. 『당중입의』, 『정회당 유장』에 의하면 정회당은 초입시에 합격하고 문리가 통한 유생...
-
조선 후기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 있던 농업 생산력 증대를 위한 수리 시설. 『고려사(高麗史)』의 명종 18년(1182) 3월조에 기록된, “때에 맞추어 농사를 권장하고 힘써 제언(堤堰)을 수축하여 저수(貯水)하고 물을 대게 하여 황모지(荒耗地)가 없도록 하여 백성들의 먹을거리를 풍족하게 하라.”는 내용을 보면 제언 축조의 중요성을 쉽게 알 수 있다. 조선 후기인 16세기 이후 수리...
-
충청남도 논산 지역의 주요 경물에 이름을 붙여 읊은 시가. 제영은 제목을 붙여 시를 읊거나 또는 그런 시가를 말한다. 논산 지역의 제영은 자연경치나 누정·사찰·객사 등 다양한 소재를 담고 있다. 논산 지역 문인이나 학자들은 누각이나 정자, 혹은 대(臺)·당(堂)에 모여 학문을 강론하기도 하고 주변의 승경을 벗 삼아 멋스러운 운치를 즐기며 시를 지었다. 또 오랜 역사를 지닌 논산 지...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인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조구하(趙龜夏, 1815~1877)의 불망비. 조구하가 연산 지역을 암행하면서 여러 사안에 선처를 베풀어 그가 떠난 후 이를 기념하기 위해 1842년 세운 불망비이다. 양촌면에서 운주로 가는 도로변인 인천리 은정자마을 느티나무 아래에 원래 세워진 상태로 방치되어 있다. 원두갈의 형태로, 비신의 석질은 화강암이다. 비의 크기는 높...
-
조선시대 논산 출신의 문신. 어려서부터 마음씨가 착하여 집안 어른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온순한 성품과 웃어른을 대하는 예의범절이 남달라 주위에서 칭송이 대단하였다. 일찍이 부친을 여의고 숭릉태봉(崇陵泰封) 벼슬에 올랐으나 홀로 계신 모친을 모시기 위해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인 연산으로 내려왔다. 넉넉하지 못한 생활 속에서도 모친을 극진히 봉양하였는데, 모친은 노쇠하여 병석에 눕게 되었...
-
조선시대 논산의 역사. 1. 조선 건국 고려의 멸망 이후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최대 관심사의 하나는 신 도읍을 정하는 것이었고 논산 계룡산 부근의 신도내는 고려시대의 남경이었던 한양과 더불어 그 유력한 후보지의 하나였다. 당시 논산의 계룡산 부근이 강력한 천도 지역으로 떠오른 이유는 권중화(權仲和)의 역할이 컸다. 권중화는 태조의 명으로 태실증고사로 왕실 안태의 장소를 물색...
-
충청남도 논산은 17세기 조선 선비 문화의 중심지이다. 기호학파의 중심지이며, 선비 문화를 집약적이고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유교 문화 자원이 많은 곳이다. 특히 논산은 한국 예학의 중심지로서, 조선조 예학과 산림 인사들의 거점이며 조선의 예학을 주도했던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1548~1631)과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 1574~1656)의 유서와 전통이 깃든 곳이다. 특...
-
여러 대(代)에 걸쳐 분가(分家)를 한 경우에 분가의 본가(本家). 종가는 대종가와 소종가로 구분하며, 두 종가가 각각 종통(宗統)으로 이어지는 체계로서 기능한다. 대종가는 성씨의 시조로부터 장자로만 이어진 가문이며, 소종가는 대종가에서 중시조를 기점으로 파생된 종가로서, 불천위(不遷位) 조상인 중시조를 모시는 가문이다. 임금으로부터 시호를 받거나 문묘에 배향되는 등 중시조의 인물...
-
충청남도 논산시에서 이루어지는 제반 신앙 행위의 총칭. 충청남도 논산 지역은 유교, 불교, 천주교 및 개신교뿐만 아니라 한국의 여러 신흥종교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종교가 다양하게 발달되어 있는 지역이다. 특히 지난 100년은 초반에는 국가와 민족이 존망의 기로에 섰던 시기였으며, 후반에는 근대화를 통하여 눈부신 발전을 이룩한 희망찬 시기였다. 일제강점기 일제는 황도유학, 황도불교...
-
이방헌 씨가 전해주는 주곡리 장승의 유래는 고려 말엽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옛날 마을에 장정승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천하일색으로 널리 소문난 강충신의 부인을 호시탐탐 탐을 내었다. 그러던 중 멀리 중국에 사신으로 가게 된 장정승이 강충신의 부인을 가로채고자 마음먹고 강충신을 자신을 돕는 부사로 함께 가게 하였다. 욕심에 눈이 어두워진 장정승은 결국 강충신의 목숨을 빼앗...
-
연산리를 관통하는 마을 중간의 도로를 걸어 연산리를 돌아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대추거리이다. 연산이 예전에는 대추의 생산지로 유명했고, 지금도 특화구역이라는 사실을 알게 한다. 연산시장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위치한 ‘구사거리’를 중심으로 아직도 자리 잡고 있는 대추거리에는 대구상회를 시작으로 연산시장 쪽으로 들어가면서 충남대추상회, 연산상회, 호남대추상...
-
충청남도 논산 지역의 마을, 골, 산, 내 등의 땅이름. 지명이란 땅에 붙여진 이름이다. 지명은 하나의 지역을 다른 지역과 구별하기 위해 명명한 것으로서 해당 지역의 지형이나 위치, 산과 내[川]의 관계, 지질이나 땅 빛깔, 기후·풍토·산물·교통 관계 등 여러 가지 지역적 상태나 인위적 상황에 따라 붙여진다. 지명에는 우리 선조들의 삶의 모습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으며, 지명을 통...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땅의 생긴 모양이나 형세. 논산시는 전형적인 동고서저의 지형적 특색을 지닌다. 본시의 개략적 지형은 서쪽인 금강 본류 쪽으로 트인 저위평탄면 형태로, 동쪽과 남쪽에 해발고도 200m 이상의 산지가 분포한다. 즉 동북부에서 동남부에 이르는 일대는 계룡산지와 대둔산 줄기가 연결되어 험준한 산악지를 형성하며, 이들 산지에 인접한 지역에는 해발고도 50m 내외의 산...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 송준길 손윗누이의 묘표. 연산면 고정리 광산김씨 선산에 있는 송처자의 묘표는 10세의 나이에 요절한 처녀의 것이기에 주목이 되는데, 묘표는 후에 송준길이 세운 것이다. 이 묘표의 비신은 보존 상태도 양호하며, 팔작지붕 모양의 가첨석과 농대석을 갖춘 중요한 자료이다.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이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누이의 죽...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로마 가톨릭 교회. 천주교는 로마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그리스도교회로서 동방정교회나 프로테스탄트교회와는 구별되는 가톨릭교회를 말한다. 가톨릭이란 ‘보편적·공동적·일반적’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말로서 스스로를 ‘유일하고, 성스럽고, 공변되며, 사도(使徒)로부터 전래된 교회’라고 믿고 있는 그리스도교회가 전 인류를 위한 유일한 구원의 기관이라는 것을...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 청동골에 있는 조선 후기 영상과 귀상의 충노비. 연산현 사람 이민진(李敏進)은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죽기를 각오하고 검은색 버선과 행전을 차고 남한산성으로 의병을 이끌고 갔다. 남한산성 근처 광주 험천에 이르러 왜적의 저지를 받아 치열한 전투 끝에 이민진은 장렬히 전사하였다. 전투가 끝난 후 동행했던 노비 영상(永上)과 귀상(貴上)은 많은 전사자들 중에...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한전리에 있는 공립 고등학교. 책임을 다하는 능동인, 정보화 사회에 부응하는 우수한 산업인, 근검절약하고 합리적으로 생활하는 실천인, 개성과 적성을 중시하는 창의인, 심신이 건전하고 정서가 안정된 건강인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성실, 개척, 봉사’이다. 1977년 12월 30일 12학급의 연산상업고등학교로 설립인가를 받았고, 1978년 3월...
-
충청남도 논산의 노성 지역 파평윤씨 가문은 충청도를 대표하는 양반 가문이다. 노성은 이들 파평윤씨 노종 5방파의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배출된 유서와 전통이 살아 있는 곳으로, 특히 이곳에 집중되어 분포한 종학당과 병사, 선영과 영당, 서원과 정려, 종가 고택 등은 조선시대 호서 지역 양반들의 유교 문화를 빠짐없이 접할 수 있는 문화 자원이다. 특히 후학들이 정신문화와 유교적 사회...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인 충헌공 윤전의 재실. 윤전은 성혼(成渾)의 문인으로 1610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에 들어갔으며, 1613년(광해군 5) 유생 이위경이 폐모소를 올렸을 때, 상소를 저지시키려다 파면되었다. 이후 1615년 호조좌랑에 이르렀으나 사판(仕版)에서 삭제되었고, 1623년(인조 1) 경기도사로 복직되었다. 1624년 이괄의 난이...
-
충청남도 논산시에서 생산되는 특색 있는 산물. 특산물은 좁게는 한 지방의 토산물을 이르지만, 한 나라의 유별난 산물도 이에 포함된다. 토산은 토산물을 뜻하는 말로, 조선시대에는 토산품이 도 단위로 할당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특산물의 종류에는 곡물류·과물류·채소류·화초류·조수류(鳥獸類)·어패류·약재류·광물류·공예품류 등이 있다. 논산 지역의 특산물은 주로 농산물이 많으며, 이들...
-
연산도토리묵이 그토록 유명하지만, 2008년 현재 연산에서 직접 손수 도토리묵을 제조하여 파는 곳은 이제 단 한 곳밖에 남지 않았다. 시장 한편에 김성금 씨의 가게로 2006년에 ‘기능성 도토리묵’을 특허출원을 하여 더욱 눈길을 끌고 있다. 도토리묵을 제조할 때에 한약재 추출물을 사용함으로써 현대인들의 정신적, 육체적 피로를 감소시키기 위하여 특허를 받았다는 기능성 도토리묵은 이미...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 있는 절터. 논산 지역은 백제의 수도였던 공주와 부여에 인접한 지역으로 이때부터 직접·간접으로 불교의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추정되나, 기록상 사찰의 창건이 이루어진 때는 고려 전기이다. 논산 지역에 있는 폐사지로는 문화재로 지정된 개태사지 외에도 논산 송불암 사지, 운제사지, 어린사지, 안터사지, 탑안이사지, 봉선암지, 정토사지를 포함하여 약 30여 개가 곳곳...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표정리 하표정마을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군. 연산에서 상월로 통하는 지방도 697호선을 타고 약 1㎞ 정도 가면 사갑들이라는 들판이 나온다. 사갑들 북단에 표정리 하표정마을이 자리한다. 하표정마을은 계룡산지의 남쪽 끝 서사면에 해당된다. 표정리 고인돌군은 하표정마을에 모두 3기가 위치한다. 1기는 나지막한 구릉의 서쪽 말단부에 있는 민묘 옆에 있으며, 2기는...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신양리에 있었던 4년제 대학 학력 인정교. 참과 거짓을 분별하는 능력을 길러주고, 올바른 가치관과 기독교 세계관에 입각한 철저한 학문 연구와 교육을 통해 창조신앙을 회복하여 창조의 법칙에 철저히 순종하는 학생, 피조 세계에 대한 청지기적 사명의식을 가진 학생을 길러내며, 각 학생의 고유한 소질과 재능을 잘 파악해 그들에게 감추어진 보물들을 찾아내어 갈고 닦아...
-
제주도에서도 순대를 맛보기 위해 들른다는 그 유명한 ‘연산할머니순대’집을 찾았다. 가게 입구에 붙어있던 텔레비전 방영화면사진이 그 명성을 상징하고 가게 안은 신문 기사 사진들이 빼곡하다. 가게의 카운터에 앉아 계신 강윤찬 씨(51)가 이 가게의 사장님이다. 그리고 주방에서 바쁘게 순대를 썰고 계신 손복례 할머니(73)가 강윤찬 씨의 어머니이다. 연산할머니 순대의 창조자는...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덕암리에 있는 산. 함지봉은 백제 황산성이 자리 잡고 있는 산으로 알려져 있다. 황산성은 일명 황성이라고도 불리며, 백제의 웅진시대부터 사비시대에 걸쳐 축조된 성으로 추측되며, 북쪽은 험난한 산세로 되어 있어 적의 침입이 어려운 지세를 이용하여 자연석을 축성하였고 북쪽을 제외하고는 활석을 사용하여 축성하였는데 성 높이는 서부가 2m, 동부가 1.8m이고, 성...
-
충청남도 논산시에서 공공 정책의 합리적인 형성과 집행을 구체화하는 통치작용. 과거와는 달리 현대의 행정은 국민 또는 주민의 일상생활 전반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방향으로 그 역할과 범위가 크게 확대되었다. 예를 들어 기존의 질서 유지 기능 외에도 수도·전기·교통·통신 등 사회 간접 시설의 제공, 학교·도서관·공원 등 문화 시설의 확충, 사회적 약자 보호와 경제 활동의 적극적인 지도...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전통적으로 전해 오는 모든 음식. 논산시는 충청남도 중서부에 있으면서 너른 평야와 산, 강, 하구 등을 끼고 있는 지역이다. 따라서 향토음식도 다른 지역과는 달리 평야, 산, 강, 하구에서 생산되는 각종 산물을 다양한 음식으로 조리하는 방법이 발달하였다. 또한 논산 지역에는 조선 중기 이후 기호 지역을 대표하는 은진송씨, 파평윤씨, 무안박씨 등 반가의 종가가...
-
삼국시대 충청남도 논산시 일원에 설치된 백제의 행정구역. 황등야산군은 백제시대 군명(郡名)으로 ‘누루뫼(連山)’라는 고유의 말을 한자 ‘황등야산(黃等也山)’으로 표기한 것으로 이해된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고려사(高麗史)』,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청도읍지』, 『여도...
-
충청남도 논산시 함박봉에 있는 삼국시대 산성. 황령산성은 정밀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축성 시기나 건립경위를 정확히 알기 어렵다. 다만 현재 산성이 자리한 황령재(누룩이재)가 논산시 연산면과 금산군 진산면을 잇는 주요 교통로이었던 사실을 감안할 때 황령재를 감시할 목적으로 축조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연산사거리에서 벌곡면으로 가기 위해서는 연산면 동북에서 남으로 이어지는 산을 지나...
-
삼국시대 충청남도 논산 일원에 설치된 통일신라의 행정구역. 백제의 행정구역이었던 황등야산군이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 경덕왕에 의해 황산군으로 개칭된 것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고려사(高麗史)』,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청도읍지』, 『여도비지(輿圖備志)』, 『대동지지(...
-
황산벌전투는 백제의 계백 장군이 이끄는 5천 결사대와 신라의 김유신 장군이 이끄는 5만 군이 충청남도 논산의 황산벌에서 660년 7월 9일부터 7월 10까지 2일간에 걸쳐 벌인 전투를 말한다. 황산벌 전투는 비록 패배한 전투였지만, 다른 어떤 전투보다도 한국전쟁 역사상 커다란 의미를 지니며 후세에 귀감이 되고 있다. 백제 말기의 정치 상황은 대부분의 고위 관료들이 자신의 안위와 정...
-
후삼국시대 후백제 관할의 충청남도 논산 지역의 역사. 한국역사에서 후삼국시대(後三國時代)라 함은 892년 견훤이 광주를 점령하고 왕을 칭한 때부터 936년 고려에 의해 한반도가 다시 통일되기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그리고 이때 견훤(甄萱)이 세운 나라가 후백제로 신라·태봉(후고구려)과 함께 후삼국을 이루었다가 936년 고려에 의해서 멸망되었다. 이 시기 논산 지역의 역사를 관할 국가...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에 위치한 개태사는 고려가 후백제를 멸망시킨 직후인 936년에 후백제의 옛 수도 부근이자 바로 후백제를 항복시킨 역사적인 장소에 창건한 후삼국 통일의 기념비적 사찰이다. 고려로서는 일종의 전승 기념 사찰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개태사는 고려의 후삼국 통일 과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는 개태사 창건 배경과 개태사 삼존석불입상의 양식과 특징으로 미루어...
-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신풍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서원. 휴정서원은 기호 사림의 종장인 김장생의 친족과 그의 학통을 받은 문인들만을 제향한 점에서 여타 기호계 서원과는 의미가 다르다. 연산 지역은 호서 지방의 대표적인 서원인 논산 돈암 서원이 있는 곳이다. 기호학파의 거두 김장생을 제향한 논산 돈암 서원이 존재하고 있는데 다시 그의 친족 문인들로 구성된 휴정서원이 세워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