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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곡리에 전해지는 장승이야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E020101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조민희

❚ 주곡리 장승의 유래

이방헌 씨가 전해주는 주곡리 장승의 유래는 고려 말엽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옛날 마을에 장정승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천하일색으로 널리 소문난 강충신의 부인을 호시탐탐 탐을 내었다. 그러던 중 멀리 중국에 사신으로 가게 된 장정승이 강충신의 부인을 가로채고자 마음먹고 강충신을 자신을 돕는 부사로 함께 가게 하였다.

욕심에 눈이 어두워진 장정승은 결국 강충신의 목숨을 빼앗고 말았고 본국에는 거짓으로 보고 한 후 태연하게 돌아 왔다. 이후 강충신의 부인은 죽은 남편을 대신해 자신을 돌보아 주는 장정승의 소실로 들어갔고, 아들 3형제를 두었다.

그러던 비가 오는 어느 날이었다. 집안에는 천장을 타고 황토빛 빗물이 떨어졌다. 그것을 본 장정승은 “예전에 강충신이 흘리던 피와 같구나.”하며 빙긋이 웃는 것이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부인은 옛 남편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파헤쳤고 마침내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부인은 한없이 절규하며 남편을 죽인 원수의 자식을 살려둘 수 없다며 아들 셋을 모두 죽이고 관아로 달려가 스스로 이 일을 고했다.

그리하여 나라에서는 사람들을 죽이고 임금을 속인 죄로 장정승을 능지처참하였고, 이후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장정승의 형체를 만들어 거리에 세워놓은 후 행인들에게 침을 뱉고 욕을 하게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전설 속의 장정승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 그의 영혼을 달래고자 병자호란이 지난 이후부터는 마을 동구 밖에 ‘천하대장군 귀수신(天下大將軍 鬼守神)’, ‘지하여장군 귀수신(地下女將軍 鬼守神)’이라고 쓴 장승과 부호군을 세워 마을의 수호신으로 여겼다. 주곡리에서는 천하대장군과 지하대장군, 그리고 이들을 보좌하는 ‘부사장승’ 등 모두 1년에 4기의 장승을 세웠다고 하나, 해방 이후로 세우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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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대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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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대장군

❚ 귀신 쫓는 장승이 이정표 역할까지

마을 입구의 장승은 ‘천하대장군축귀신(天下大將軍逐鬼神)’과 ‘지하대장군축귀신(地下女將軍逐鬼神)’이라는 글씨를 몸에 새기고 있다. 남장승은 천하의 귀신을, 여장승은 지하의 귀신을 쫓는 역할을 각각 맡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주곡리 장승의 역할이 꼭 마을수호만은 아니었고 또 다른 기능은 바로 이정표 역할이 있었다. 일제시기까지 주곡리 장승의 몸에 새겨진 명문 아래에는 ‘동방 신도내 20리, 서방 논산 30리, 북방 공주 40리, 남방 연산 20리’라는 이정을 표시해 두어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도와주었는데, 해방 이후로는 이 또한 사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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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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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곡리 장승

[정보 제공자]

이방헌(1926년생, 주곡리 주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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