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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볼 수 없는 도토리묵 장사들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B020302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을경

연산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음식들이 몇 가지 있다. 그 중에서도 연산도토리묵이 최고일 것이다. 현재는 도토리묵 가게가 연산재래시장과 연산 일대를 아무리 눈을 씻고 뒤져도 단 한 곳밖에는 없지만 불과 1980년대만 해도 연산의 도토리묵거리는 꽤나 유명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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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묵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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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묵거리 쇠퇴

연산리에 스무 집 정도에서 도토리묵 장사로 생계를 이어갈 정도였다고 하니, 뒤집어 생각해보면 도토리묵 장사가 꽤나 성황을 이루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당시를 기억하는 주민들은 처음으로 한 집에서 도토리묵을 쑤어 내다 팔기 시작했는데 그 장사가 꽤나 잘되자 너도 나도 도토리묵을 쑤어 장에 내다팔기 시작하면서 연산리에 유행처럼 도토리묵 장사가 늘어났다고 한다.

당시 도토리묵 장사들은 양촌, 벌곡, 엄사리, 연산 장을 돌아다니면서 도토리묵을 넣은 대야를 머리에 이고 장사를 했다고 한다. 한번 머리에 일 수 있는 대야에는 보통 30묵 정도가 들어갔는데, 1970년대 당시 돈으로 한 묵에 20원 정도의 가격이었다고 한다. 연산에 워낙 도토리나무가 많았고, 현재에도 연산리에 위치한 연산공원에도 도토리나무가 많이 남아있어 도토리를 나무에서 털어내고 직접 손으로 일일이 빻고 묵을 쑤는 것까지도 수작업으로 진행하여 일 년에 가을에만 장사가 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가을 3개월만을 하는 장사였기 때문에 가을에는 워낙 도토리묵으로 유명해 사람들이 직접 도토리묵을 사기 위해 찾아오기도 하고 또 시장으로 팔러 나가기도 해서 당시에는 도토리묵장사를 통해 10남매, 9남매의 학비를 댔던 집도 많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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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공원 내 휴식공간

현재는 도토리묵 장사를 함께 했던 20가구 정도가 전부 마을을 떠나고 단 한 집인 김성금 씨의 집만이 연산리에서 당시의 손수제작 도토리묵 제조방법을 고수하며 아직도 연산리를 지키고 있다. 주변에서는 김성금 씨에게 도토리묵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을 만들자고 제의를 많이 한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의 도토리묵 거리의 명성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아직도 매일 아침 도토리묵을 직접 만드는 김성금 씨에게 가게를 내는 일은 돈을 벌기 위해 본인도 초심을 잃고 기계 묵을 사용하게 될 것 같아 걱정이 돼서 아예 꿈조차 꾸지 않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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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금 씨의 도토리묵가게

비록 지금은 도토리묵 거리의 광경은 찾아볼 수 없어 아쉽지만, 그때의 명성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일념으로 손수 도토리묵을 제조하는 김성금 씨가 연산리를 떠나지 않는 한은 그 명성이 그대로 연산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다.

[정보 제공자]

김성금(남, 1952년생, 연산4리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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