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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대하면 우리 집이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B030203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강경윤

연산재래시장 에서는 많은 볼거리와 먹거리를 만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연산순대야말로 수십 년간 논산 사람들의 입맛을 돋우어 온 효자다. 연산시장에서 일렬로 늘어선 순대집들이 가마솥을 걸어놓고 장사하던 모습은 이제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한때는 순대 골목이라고 불릴 정도로 번화했었던 이곳에서 지금까지 20여년 넘게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곳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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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시장 입구

연산시장 버스정류장 에서 연산공원 쪽으로 조금만 거슬러 올라오면 시장 한 가운데에 ‘연산토종연산순대국밥집’이 보인다. 식당주인 주재순 씨가 40대 초반에 처음 순대 집을 시작해 변함없이 뿌리 깊은 나무처럼 처음 그 자리에서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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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순대국밥집 전경

5남매를 둔 순대 사장님인 주재순(60) 씨는 스무 살에 연산에 살던 한 살 많은 남편과 결혼을 했다.

그때 당시만 해도 중매가 일반적이었지만 아는 사람의 소개로 만나 연애결혼으로 골인했다. 20살이라는 어린나이였지만 남편만 보고 시집을 왔다. 뭐가 그리 좋았는지 군대도 가지 않은 남편과 결혼하였기에 군대를 보내고 혼자 자식들을 키우며 뒷바라지를 해도 행복하기만 한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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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밥집의 주재순 씨

공무원이었던 남편과 함께 농사를 짓고 살던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일이 생겼다. 건강하던 남편이 갑자기 아프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부족하지도 그렇다고 넘치지도 않은 살림으로, 5식구 오순도순 먹고 살 정도의 형편이었으나 남편의 병과 함께 가세가 점점 기울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주재순 씨는 한 가정의 주부가 아닌 가장이되어야 했다. 안 해 본 일이 없었다. 처음에는 우유배달부터 시작했다. 그러나 남편의 병원비와 아이들의 학비를 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다가 식당 주방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이곳저곳 옮겨 다니면서 식당일을 하던 중 순대 집 주방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지금 연산에서 알아주는 순대집인 ‘할머니순대’집 주방에서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주방에서 일을 하면서 순대를 만드는 것을 배우기 시작했다. 돼지의 피나 내장을 만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거부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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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할머니순대 입구

그렇게 주방에서 일을 배우면서 순대 만드는 방법을 익혀갔다. 장사는 매일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점심시간이나 저녁시간에는 밖에서 줄서서 대기하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장날에는 사람들이 많아 눈 코 뜰 새도 없었다. 예전 연산장은 전국에서 알아주는 최고의 장으로, 5일장이서는 날이면 한 발자국 앞으로 걸어 나가기도 힘들 만큼 사람이 많았다. 장사가 잘되니 ‘할머니순대’는 가게를 확장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쓰던 물건을 모두 식당에 놓고 이사를 하겠다며 가게를 맡아서 할 사람을 구했다. 주재순 씨는 그 소식을 듣고 선뜻 자신이 하겠다고 나섰다. 자신의 이름으로 된 가게라도 하나 가지고 있어야만 아이들 교육을 시킬 수 있고, 또한 그동안 식당에서 배운 것들을 가지고 잘 해 볼 수 있겠다는 욕심도 생겼다. 고민 끝에 자신이 해 보겠다고 말을 하자 다들 깜짝 놀랐다. 생각지도 않았던 사람이 그것도 주방에서 일을 했던 사람이 새로 가게를 한다고 하니 말이다. 그 과정에서 오해도 받고 주변 시선의 눈치도 있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주재순 씨는 ‘연산토종연산순대국밥집’의 사장이 되었다.

주재순 씨는 새벽 5시 반에 하루를 시작해 보통 밤 10시까지 일을 한다. 새벽에 일어나서 혼자 가게에 나와 하루 장사 할 준비를 한다. 가게 문을 열고, 무거운 짐도 들고 날라야 하고 큰 그릇들과 많은 재료들은 여자 혼자 하기에는 힘든 일이 많지만, 지금은 몸에 배어서 힘든 것도 별로 없단다.

다른 직원들이 오기 전까지 하루 장사할 모든 것을 만들어 놓아야 하기 때문에 채소를 다듬고 선지를 넣어 순대를 만들고 삶는 등 정신이 없다. 지금이야 맛으로 당당하게 알려져 있기 때문에 단골들도 많이 찾는 유명한 집이지만 처음 가게를 열었을 때 만해도 “주인이 바뀌었네” 라며 그냥 돌아가는 사람도 많이 있었다. 지금도 생각해보면 제일 속상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맛으로 승부하겠다며 이를 꽉 물고 열심히 일했다. 모르는 사람이야 다른 집과 또, 예전에 처음 배웠던 순대집의 맛과 같다고 하겠지만 주재순 씨 나름의 비법으로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비법은 바로 옛날 전통을 유지하는 것과 신선함이다. 아직도 가마솥을 이용해 순대를 삶는데 그래야만 구수한 맛을 낼 수 있다고 한다. 특히 항상 하루 장사할 만큼의 양만 만든다. 그것이 부족하건 많건 무조건 오늘 쓸 만큼의 재료로 만들고, 장사를 하다가 중간에 재료가 떨어지면 그냥 문을 닫는다. 그렇지 않고 장사가 끝날 시간이 다 되었는데 많이 남았으면 가격에 상관없이 손해를 보더라도 마구 퍼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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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밥집의 주재순 씨

“어떤 음식이든 냉장고에 들어갔다 나오면 맛이 떨어지기 때문에 오늘 할 것만 준비해서 판매를 해야 해, 그게 장사 원칙이야.”라고 말한다.

그리고 겨울에는 택배를 통해 연산순대를 전국으로 배달을 한다. 처음에는 멀리서 오기 힘든 사람들의 권유로 시작했다. 특히 여름철이 아닌 겨울에는 음식이 상할 염려가 덜해 지금은 울산, 부산까지도 소문이 퍼져 겨울철 따뜻한 국물이 생각날 때면 눈코 뜰 새 없이 더욱 바쁘다. 택배로 배달을 해도 맛은 변함이 없다. 식당에서 먹는 것과 마찬가지로 집에서 한번만 삶아서 먹을 수 있도록 간편하게 포장을 한다.

손님들의 그릇마다 그릇 위로 올라온 고봉밥에서 주재순 씨의 마음을 느낀다. “식당하는 사람은 손이 커야지. 순대국밥 먹는 사람들 대부분 힘들게 일하는 사람들 일 텐데, 먹고 힘내야 돈 벌지”라며 웃는다.

이웃에서 미용실을 하고 있는 방복순 씨는 “저 양반은 얼마나 마음이 착한지 지나가는 동네 어르신들을 보면 그냥 못 지나쳐서 꼭 밥 먹고 가라고 해. 다른 모르는 사람들은 돈 많이 벌어서 그런가보다 라고 시기 질투하는 사람들도 있어. 그렇지만 아는 사람들은 인심 좋고, 착해서 다 좋다고 해. 다 퍼줘서 뭐 남는 게 있냐고까지 물어 본다니까. 나도 여기 와서 매일 밥 얻어먹어. 그러니까 동네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하고 도와주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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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순대국밥집 앞의 주민들

주말에는 시장 골목으로 고향의 맛을 찾아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요즘 세상에 순대국밥 한 그릇의 가격 4000원으로 물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지만 6년째 변하지 않는 가격이다.

자꾸 오르는 음식 재료값에 가격을 올려 볼 생각도 했지만 대표적인 서민음식인 순대국밥마저 가격을 올려 버린다면 가뜩이나 힘든 사람들, 먹을 것이라도 편하게 먹게 하고 싶다고 한다. 또한 지금 생각으로는 앞으로도 가격을 올릴 생각은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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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순대국밥집 내부

4녀 1남을 둔 주재순 씨는 순대를 만들어 팔며 자식들을 공부시켰다. 아들, 딸 모두 결혼을 하고 분가를 해 가게 앞 주택에서 혼자 지내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막내아들과 함께 순대집을 운영했다. 아들이 군대 제대 후에 3년 정도 매일같이 밤낮으로 함께 일을 하며 어머님의 장사를 잇겠다고 했다. 그러다가 아들이 더 늦기 전에 회사생활을 한번 해 보고 싶다고 말했고, 지금은 서울에서 회사를 다니고 있다. 그러나 아들은 지금 당장이라도 어머니가 부르면 고향으로 내려와 순대집을 운영할 생각이라고 한다.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와 월급 대신 차라리 어머니를 도와 함께 일하고 싶고, 어머니가 하시던 것을 이어 받아 계속 이어나갈 생각이라고 한다. 처음부터 아들이 계속 이어 나간다고 했을 때 힘든 일이라서, 자신이 했던 것을 생각하면 고생길이 훤하지만 아들만큼 이 일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것 같았다. 그간 같이 일한 시간은 얼마 안 되지만 아들과 일을 해본 주재순 씨도 아들이 옆에서 일하고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함이 느껴져 함께 일을 할 때가 좋았다. 힘닿는 데까지 건강이 허락 할 때까지만이라도 지금 그 자리에서 아들과 함께 순대집을 운영했으면 하는 소박한 꿈을 꾼다.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이 일이 천직이라고 생각하고 일하고 있는 주재순 씨는 쉬는 날은 1년이 2일 명절날 설날, 추석 당일 단 2일이라고 한다. 주말에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들이나, 평일에 가까운 곳에서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식당의 문이 닫혀있으면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감사해서라도 쉴 수가 없다고 한다. 지금 생활에 만족하고 더 이상 바라는 것도 없는 주재순 씨는 굳이 많이 가지고 있고 싶은 생각도 없고, 가족들 건강하며, 돈을 조금 더 모은다면 좋은 곳에 좋은 일을 하고 싶다고 한다.

[정보 제공자]

주재순(여, 1949년생, 연산4리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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