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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삼장군의 후손 함평이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E010203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조민희

❚ 이삼장군이 살았던 아랫뜸

주곡리함평이씨가 처음으로 살기 시작한 것은 함평군 이사길에 의해서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사길이 언제 어떠한 이유로 양주에서 주곡리로 들어와 살게 된 것인지 현재로서는 정확히 알 수가 없으며, 후손들에게도 전해지는 바가 없다. 다만 이사길청주양씨 양여필(楊汝弼, 1616~1677)의 사위라는 점만이 그의 입향을 추측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로 아마도 처향을 따라 주곡리에 들어왔을 것이라고 추정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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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뜸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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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평군 이사길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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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곡리

주곡리 아랫뜸에는 마을 분위기를 압도하는 고풍스런 옛집이 자리하고 있는데, 바로 이삼장군 고택이다. 이삼함평이씨 주곡리 입향조 이사길의 아들로 조선 후기의 무신이다. 이삼이인좌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함은군에 봉해지면서 건립비를 하사받아 고택을 지었다. 세월이 지나며 일부 건물이 퇴락하긴 했지만 안채, 사랑채, 문간채는 280여 년 동안 원위치에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그 가치가 인정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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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평군 이사길의 묘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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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삼장군 고택 전경

이삼장군의 7대손인 이방헌 씨는 고택이 자리한 곳은 풍수지리학적으로 선비가 술에 취해 잠을 자는 형국이라고 한다. 그러한 명당에 위치한 고택 중에서도 장광터가 천하명당이라고 하는데, 집보다 묘를 쓰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고 한다.

1970년대에는 함평이씨가 23가구 정도나 살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많이 줄어 7가구만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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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삼장군 고택의 안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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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삼장군 고택의 사랑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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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삼장군 고택의 사당

❚ 마을에 전해지는 이야기 속 이삼장군 부인

이삼장군은 21세에 진주유씨 유우(柳祐)의 딸과 혼인하였다.

부인 유씨는 현숙한 부덕을 갖추어 내조를 매우 잘 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부인이 세상을 떠난 후 장군이 부인을 회상하던 중 ‘내가 죽은 부인의 내조를 잘 받았기 때문에 나의 기질이 바로 잡을 수 있었다’는 말에서 그러한 일면을 알 수 있다.

그러한 까닭에서인지 주곡리 사람들에게는 이삼장군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부인 유씨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전해진다. 이삼장군과 부인 유씨에 대한 이야기는 돌다리와 씨름판 이야기가 알려져 있다.

주곡리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작은 개울이 있는데, 옛날에는 다리가 없어 마을 사람들이 크게 불편을 겪었다. 그러자 이곳에 시집 온 이삼장군의 부인이 한밤중에 남몰래 널찍한 바위를 손수 치마에 얹어서 날라다가 다리를 놓았다. 또 자주 씨름판에서 힘자랑만 하는 이삼장군의 행동을 말리려고 부인이 남장을 한 채 씨름판에 가서 이삼장군과 싸워 이기고 왔다는 이야기도 흥미롭게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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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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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다리가 있는 개울 전경

이삼장군의 후손 이방헌 씨는 이삼장군의 부인이 사대부가의 아녀자로서 손수 다리를 놓거나 남장을 하고 씨름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만큼 부인의 행적이 특별했기 때문에 전해 내려온 이야기로 여기고 있다고 한다.

현재 전설 속의 돌다리는 허물어져 돌만 남아있고 시멘트로 새 다리를 놓았는데, 마을에서 전설이 있는 다리라고 하여 특별히 곧 복원할 계획이라고 한다.

[정보 제공자]

이방헌(1926년생, 주곡리 주민)

이계천(1962년생, 주곡리 주민, 논산시의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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