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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희망을 배달한 20년, 강은석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D030106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육곡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안경희

❚ 인생의 전환점이 된 우체부 일

가야곡우체국에서 20년을 우체부로 살아온 강은석(53) 씨는 마을토박이다. 젊을 때에는 자리를 잡지 못하고 품팔이를 하거나 아버지의 농사일을 돕고 있었는데, 가야곡우체국이 생긴 후 1986년 우체국장이었던 강평권 씨의 권유로 우체부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고 강평권 씨는 이왕이면 마을 사람 중에 직원을 뽑는 것이 좋겠다며 성실하다고 소문난 강은석 씨를 채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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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석

새롭게 시작한 일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아침 7시까지 출근해 저녁 6시까지 우편물 분류에서부터 배달까지 매일이 고단한 일의 연속이었다. 비록 작은 면단위 우체국이었지만 워낙 많은 우편물들이 들어오다 보니 그것을 분류하고 배달하는 것만으로도 힘든 일이었다. 특히나 1996년까지는 우편물을 실어 나르는 차가 없고 버스에 우편물들을 실려 마을로 들어왔기 때문에 이것을 찾아 분류하는 일 또한 만만치 않았다.

또 새롭게 배운 오토바이와 씨름하는 일은 그의 우체부 인생의 가장 큰 시련이기도 했다. 익숙하지 않은 오토바이를 운전하려니 울퉁불퉁한 시골길에 ‘아차’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위기를 수차례 겪었고, 산골짜기에서 길을 잃어버려 몇 시간을 헤매다가 우편물을 간신히 전해주고 오기도 했다. 초창기에는 소포를 잘못 배달해 잃어버린 적도 있었는데, 서로 이해해주는 사람들 덕분에 큰 탈 없이 넘어갔지만,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실수했던 일이 생각날 만큼 그 자신에게는 부끄러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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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곡우체국 직원

❚ 행복을 배달한 지 20년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은 일에 실수를 하고 당황했지만 점점 이 일에 익숙해지며 보람되고 행복한 일이란 생각을 하고 있다. 편지, 소포 하나에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이 일을 하길 잘했다고 생각하곤 한다. 농번기에는 들판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직접 우편물을 전하는데 번번이 붙잡고 새참을 먹고 가라는 사람들을 거절하다보면 하루가 다 갈 정도이다. 우체부 일에 보람을 가지며 일한 지 2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1999년경 논산시 우체국들이 우편 집중국이 생기면서 연무대에 통합되게 되었다. 이때 강은석 씨를 비롯한 많은 우체부들의 소속이 연무대로 바뀌어 그곳으로 출퇴근을 하게 되었다. 또 강은석 씨가 우편물을 배달하는 지역도 육곡리에서 두월리, 등리탑정저수지 주변 마을들로 바뀌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던가. 강산이 두 번이나 변했을 20년의 세월동안 배달하게 된 우편물들이나 우체국이 하는 역할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예전 우편물들은 그리움을 담은 편지나 소포가 많았다면, 지금은 세금 납입고지서, 홈쇼핑 등의 판촉물이 대부분이며 배달하는 방법도 간단해져 우편함이나 대문 밑에 넣어두면 끝이 난다. 우편물의 양도 예전에 비하면 많이 줄어들어 배달도 어렵지 않게 되었다.

또 가야곡우체국에서 우편물을 배달하는 일보다는 은행과 같은 금융 상품들이 만들어 지면서 금융업에 대한 비중이 높아졌다. 마을 사람들도 편지나 소포를 부치는 일보다는 돈을 관리하는 데 우체국을 많이 이용하게 되었다.

그는 우체부 일을 하며 육곡리를 떠나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다. 가야곡우체국에서 일을 시작하여 지금은 연무대 쪽으로 옮겨갔지만 퇴근하고 돌아오는 길 우체국 앞을 지날 때면 당시의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전화가 없던 시절 우체국에 가야곡 최초로 전신 업무가 개통되면서 직원들은 편지를 배달하는 일 보다 전화 교환해주느라 정신이 없었고 마을 사람들도 전화를 걸기 위해 줄을 서기도 했다. 지금이야 생각할 수도 없는 모습이지만 당시만 해도 그런 일은 비일비재하였다.

우체부 일을 하며 결혼도 할 수 있었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예쁜 네 명의 딸들도 낳았다. 5년 전인 2003년에는 우체부 일과 부인이 맞벌이하며 모은 돈을 털어 버스정류장 가게 옆에 2층집을 지어 내 집 마련의 꿈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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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석의 집

어느새 쉰 살을 넘는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었다. 평생 우체부 일을 하다 보니 이 직업이 내 평생 천직이려니 더 이상의 욕심은 없다. 다만 지금처럼 끝까지 평생을 한 것처럼 건강하게 내 힘이 허락하는 한 우체부 일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뿐이다.

[정보 제공자]

강은석(1956년생, 육곡2구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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