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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의자왕의 후손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D020101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육곡리
집필자 안경희

육곡리는 오랜 세월 동안 부여서씨가 터를 잡고 살아온 동족마을이다. 2000년대 들어서도 주민의 약 30%가 부여서씨이며 마을 곳곳에 부여서씨의 흔적이 남아있다. 그들은 가문의 전통이 먼 백제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백제 왕통을 계승하고 있다고 믿는데, 백제 마지막 왕인 의자왕의 셋째 아들 부여융을 시조로 여긴다.

육곡리에서 태어나 자라며 문중의 작은 일까지 도맡아 해온 서승구(81) 씨는 원래 부여서씨는 백제 왕실의 성인 ‘부여씨’였으나 나라가 망한 후 패망한 왕족이 그렇듯 목숨이라도 부지하기 위해 스스로 성까지 바꾸고 은둔하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의 ‘부여 서(徐)’라는 성이 생기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으니, 부여의 부(扶)자에서 손 수(扌)자와 여(餘)자의 나여(余)자를 따 ‘서(扌+余)’라는 성을 만들었으나 이마저도 들킬 위험에 처해 손 수(扌)자를 다시 두인변(彳)으로 바꾸어 지금의 서(徐)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백제의 마지막 수도이자, 원래의 성인 ‘부여’를 잊지 않기 위해 본관만큼은 ‘부여’로 정하고 부여를 떠나지 않은 채 살아왔으며 지금까지 육곡리에 뿌리를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라가 망한 후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성을 바꾸었다는 전설은 후손들에게 강한 믿음이 되어 부여서씨들은 백제 왕족의 후예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매년 10월이면 공주와 부여에서 백제문화제라는 큰 축제가 열리며 “대왕제”라는 행사가 펼쳐지는데 부여서씨들에게도 큰 의미를 갖는 의식이다.

“대왕제”는 백제가 공주인 웅진에서 부여인 사비로 천도한 후 백제를 통치했던 6명의 왕 성왕, 위덕왕, 혜왕, 법왕, 무왕, 의자왕에게 제를 올리는 의식으로 부여서씨가 종헌관의 자리에서 제를 주관한다. 또한 다른 종파의 부여서씨 대표들이 유림의 자격으로 참석하여 그 자리를 지킨다. 다른 이들에게는 일종의 퍼포먼스와 같은 행사일지 몰라도 부여서씨에게는 일 년에 한번 아주 먼 조상에게 올리는 중요한 제례의식이며 그들이 백제인의 후손이라는 자부심을 보여주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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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대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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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대왕제 종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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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을 올리는 종헌관 부여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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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에 참석한 부여서씨

[정보 제공자]

서승구(1928년생, 육곡2구 주민)

서각선(1929년생, 부여서씨 종친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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