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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양대학 창업보육시설로 다시 태어난 덕은중학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D010204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육곡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안경희

옛부터 육곡리는 교육열 높다고 소문난 동네였다. 마을 중앙에 자리한 행림서원은 조선시대에 양반 교육이 이루어지던 곳이었고, 한말~일제강점기 초에는 육곡리에 서당이 개설되면 강청리, 평촌, 삼전리 등지의 사람들까지 몰려와 배울 정도였다.

육곡리에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개념의 학교가 생긴 것은 ‘덕은학습소’로 일제강점기 시대인 1920년쯤으로 추정된다. 초기에는 기독교가 육곡리에 전래되면서 신학을 강습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는 국어, 산술 등을 가르쳤으며, 학생들은 한 반에 5~6명으로 작은 규모였다. 장소도 마땅치 않아 판잣집이나 창고 같은 곳으로 옮겨 다니며 수업을 받기도 했다.

육곡리 학교의 역사는 덕은중학교에서 꽃을 피우니 198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해방과 6·25 전쟁 이후로 작은 면단위로는 드물게 가야곡면에는 제법 많은 수의 국민학교가 존재하였는데 그 수가 총 5개나 되었다. 중학교는 육곡리 소재의 덕은중학교 하나뿐이었으므로 초등학교를 졸업한 많은 학생들이 덕은중학교에 다니기 위해 애를 썼고 이때가 덕은중학교 최고의 전성기였다.

덕은중학교 는 부여서씨 문중의 서승목 씨가 기증한 땅에 지어졌다. 1954년 국회의원이었던 장준식 씨는 서승목 씨가 기증한 땅에 육곡리를 위한 시설을 짓기로 결심하였고 덕은중학교의 전신이 되는 ‘덕은고등공민학교’가 세워졌다. 학교가 세워진 후 초대교장으로 취임한 이규범 씨가 학교를 관리하고 꾸려 나가게 되었다.

고 이규범 씨는 덕은고등공민학교의 초대 교장으로 취임한 후 은퇴하기까지 40년간을 덕은중학교와 함께한 인물이다. 그가 덕은고등공민학교에 취임한 이후 많은 변화가 나타나는데 가장 큰 성과가 1968년 3월 덕은중학교를 개교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육곡리에 개교한 덕은중학교는 당시 가야곡면의 최초이자 하나밖에 없는 중학교 시설이었고 많은 학생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주는 시발점이 되었다. 1970년대~80년대에 가야곡에서 중학교를 다닌 사람들은 거의 덕은중학교를 다녔다고 할 정도로 학교는 번창하였다.

그러나 농촌의 학교들이 그렇듯 1990년대를 거쳐 2000년대를 들어서면서 가야곡면의 학생 수도 빠르게 감소하였다. 산업화 도시화에 따른 이농현상 때문이었지만 학생 수는 상상 이상으로 빠르게 줄어들었고, 결국 가야곡에 속해 있던 초등학교를 서로 통합하기에 이르러 2002년 강청리에 있는 가야곡초중학교로 모두 통합되었다.

또한 덕은중학교도 2003년에 가야곡초등학교에 통합되면서 그 이름만을 유지하게 되었다. 덕은중학교의 통합에 의한 폐교는 육곡리 사람들에게는 큰 아쉬움과 서운한 감정을 남겼지만 지금 현실에 학교를 원만하게 운영하기란 불가능하단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후 이 덕은중학교 건물은 건양대학교에서 임대하여 창업보육센터로 조성해 운영중이다. 이곳에 유기농 음식이나 식품개발을 위한 5-6개 사가 들어와 많은 노력과 힘을 들이고 있다. 그러나 덕은중학교 건물은 그대로 남아있어 학교가 그리운 이들은 가끔씩 이곳을 찾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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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곡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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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양대학교 취업보육센터

[정보 제공자]

서승신(1945년생, 육곡1구 주민)

서각선(1929년생, 야촌리 주민)

유향덕(1951년생, 육곡2구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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