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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혼비가 기억하는 한국전쟁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B010202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을경

대한민국에 있는 어느 마을이 그러하지 않았겠냐마는 연산마을에도 한국전쟁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건들이 일어났다. 특히 충남에서 험하기로 이름난 대둔산과 가까이에 위치했던 여건 때문에 대둔산에 숨어있던 무장공비들에 의해 많은 주민들이 희생을 당하는 등 큰 피해를 입기도 했다.

1950년에 한국전쟁이 일어났고, 당시 유엔군과 국군이 인천상륙작전으로 퇴로를 차단하게 되는 과정에서 북한군의 패잔병들이 대둔산으로 들어가 죄 없이 무고한 근처 주민들을 납치하여 학살하고 방화하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당시의 이런 끔찍했던 사건을 기억하는 주민들은 밖에 나가 돌아다니는 것이 무서워 농사도 포기한 채 집안에서만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때에 내 고장은 내가 지키겠다는 생각으로 순수민간단체인 대한청년단이 조직되었다. 당시 대한청년단의 단장이었던 김용언 씨는 연산면에서 같은 뜻을 갖고 있던 청년들을 모아, 13차례에 걸쳐 북한의 무장공비들과 전투를 벌였다. 그러나 수적으로 훨씬 적었던 대한청년단은 여러 차례의 싸움에서 많은 사상자를 냈으며, 결국 단장 김용언 씨를 비롯하여 31명이 전사하였다.

이러한 노력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1955년 1월 2일에는 정부에서 군경과 민경이 합동작전을 펼쳐 결국 대둔산에서 은거하고 있던 무장공비들을 전부 섬멸하게 되었다.

이 합동작전에서 전사한 인원은 군인 23명, 경찰 132명, 민간인 875명 등 전부 1,030명이라고 하니 당시 얼마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는지 짐작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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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지서 터

현재 연산리연산아문 뒤편에 위치한 연산공원에는 충혼비 2개가 건립되어 있는데, 오른쪽에 세워진 순국동지충혼비는 대한청년단 단장 김용언 외 30명의 충혼비로 순국동지회 단장 강인수 외 28명의 주민들의 성금으로 1952년 12월 12일 세워진 것이다.

또한 왼편에 세워진 대둔산 지구충혼비는 대둔산지구충혼비 건립위원회(충청남도지사 이기세)주관으로 1955년 8월 15일에 건립되었으며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친필로 충혼비라 새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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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공원 내 휴식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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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공원 추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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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동지충혼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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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혼비

원래 순국동지충혼비는 현재 연산공원의 계단이 끝나는 곳에 자리하고 있었으나, 1983년 한전리에 거주하는 구회수 씨의 노력으로 당시 군비 오천만원을 투자하여 부지를 정리하고 현 위치에 비를 나란히 세울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연산리에 거주하고 있는 김영제 씨, 이남수 씨 두 사람의 사비로 제수를 마련하여 순국동지충혼비에 오랜 기간동안 제사를 지내왔으나, 후에는 연산리 북촌마을 주최로 제사를 지냈다.

이렇게 지내오던 제사는 연산리에 ‘연송회’라는 자생단체에서 주관하게 되면서 1983년 이후에는 연산면에서 면주관하에 매년 6월 6일 현충일에 제사를 모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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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마을

이 제사에 소요되는 제수비는 연산리 주민의 자발적인 성금과 참여인사의 성금으로 충당하였으며, 제물준비는 대둔산전투에서 구사일생으로 생존한 연산리의 정필관 씨가 독자적으로 28년간 준비했다. 그러나 2001년부터는 김선중 시의회 의원의 노력으로 제수비를 시에서 지원받게 되었고, 현재에도 매년 현충일에는 넉넉한 재정으로 성대하게 연산공원 충혼비에서 선열들에게 제사를 지내고 있다.

이러한 연산리에서 일어난 역사적인 한국전쟁과 관련된 기록은 연산공원의 충혼비 옆에 세워진 충혼비유래비석에도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으며, 당시 청년단체의 일원이었던 애국지사의 자손인 손광열 씨와 곽승빈 씨, 장진남 씨가 연산리에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당시의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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