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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02671
한자 李長生墓碣
영어의미역 Grave Monument of Yi Jangsaeng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 청동골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정현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비석
건립시기/일시 1525년연표보기
관련인물 이장생|정사룡
재질 대리석
높이 140㎝
너비 54㎝
소재지 주소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 청동골지도보기
소유자 가평이씨 종중

[정의]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 청동골에 있는 조선 중기 이장생의 비석.

[개설]

이장생(李長生)은 1467년(세조 13) 봉산군수를 지낸 이철근의 아들로 태어났다. 1490년 갑과에 급제하여 용양위후부장에 제수되었다가, 선전관으로 발탁되고 함경도절도사와 충청수군절도사 등을 역임하였다. 형조참판이 되어 사은사로 중국 연경에 다녀오고, 병조판서를 거쳐 평안도절도사를 역임하였다. 동생은 이장경(李長卿)이다.

[건립경위]

이장생이 죽은 후 4년 뒤인 1525년(중종 20) 그의 동생이었던 이장경이 형의 행적을 기록하여 후손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건립하였다.

[위치]

연산면소재지에서 동쪽으로 600m를 가면 연산중학교가 나온다. 연산중학교의 전면에는 국도 1호선이 지나는데 여기에서 동쪽으로 350m 거리에 신도로와 국도 1호선이 만나는 지점이 나온다. 이곳 천호산 기슭의 남에서 북으로 뻗는 능선 북서향의 서측으로 남쪽 골짜기로 들어가는 소로가 나오는데 이 소로를 따라 250m 정도 더 들어가면 구릉의 북서향 면으로 이장생의 묘소가 있다.

[형태]

대리석 비신에 복연엽 비두를 갖추고 있으며 비신의 높이는 140㎝, 폭은 54㎝, 두께는 18㎝이다.

[금석문]

정사룡(鄭士龍)이 찬하였으나 누가 썼는지는 알 수가 없다. 비 전면에는 ‘가선대부병조참판가원군이공지묘정부인전의이씨지묘(嘉善大夫兵曹參判嘉原君李公之墓貞夫人全義李氏之墓)’라고 새겨져 있다. 후면에는 정사룡이 지은 비문이 새겨져 있는데 이 비문을 쓰게 된 경위와 이장생의 가계, 행적, 그가 역임하였던 관직, 그리고 그의 부인이었던 전의이씨의 가계와 묘소 등의 내용이 새겨져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정사룡은 평소 이장생과 친분이 있었으며 그의 동생이었던 이장경의 간곡한 부탁으로 어렵지만 이 글을 쓰게 되었다고 적고 있다. 이장생은 평소 언행이 바르고 점잖았으며 의지가 강하고 씩씩하였다고 하였다. 이장생이 가는 곳마다 명성과 공적이 있었으나 조정에서 이를 가볍게 여겨 크게 쓰이지 못하니 원대한 꿈을 펼치지 못하였다 하며 이를 안타깝게 여기고 있다. 또한 글의 말미에는 이장생의 본관이나 모든 행적 등을 정리한 시가 새겨져 있다.

[현황]

이장생 묘갈은 오랜 세월 비바람에 마모되어 훼손된 상태이나 글씨가 새겨진 부분들은 비교적 잘 남아 있어 문장은 쉽게 판독된다.

[의의와 평가]

이장생 묘갈의 내용을 통해 묘갈을 세우기 위해서도 많은 노력이 필요함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이장생 묘갈에서는 그의 동생 이장경이 당시 예산현감이었음에도 형의 묘갈을 받기 위해 노력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당시 시문과 음률에 뛰어나며 글씨도 잘 썼던 부제학 정사룡을 찾아가 간곡히 부탁하였던 모습을 통하여 묘갈을 짓는 사람이 누구인가에 따라 그 집안의 학통이나 위상을 알 수 있는 자료가 된다. 또한 다른 묘갈과 달리 말미에 이장생의 생애를 읊은 시가 있어 이장생 묘갈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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