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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리 용대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02629
한자 丙舍里龍大旗
영어의미역 Byeongsa-ri Communal Labor Flag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물품·도구/물품·도구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
집필자 임승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두레기|농기
재질 베|대나무
용도 두레 조직 상징용
관련의례 농신제

[정의]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 두레 조직에서 사용하던 농기.

[연원 및 변천]

농기는 두레 조직을 갖고 있던 거의 모든 마을에서 제작하여 사용하였다. 논산시 노성면 일대에서는 병사리노티리의 농기가 현존하는 것들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병사리 두레는 인근에서 큰 두레로 유명했다. 병사리 두레에서는 큰 기와 영기(令旗), 두 개가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현재는 그 소재를 알 수 없다. 두레가 해체됨에 따라 두레와 관련된 유무형의 문화유산들이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병사리에서도 약 30년 전부터 깃발을 쓰지 않게 되었다.

[형태]

병사리 두레기 중 큰 기는 베에 한자로 글씨를 쓰고 대나무 장대에 매었다. 장대 끝에는 숯꿩의 꽁지를 매달았다. 그 외에 영기도 있었는데, 영기는 큰 기보다는 작게 만들어졌으며 한 사람이 들기 적당한 크기였다. 영기 끝은 삼지창 형태로 되어 있었다. 깃대는 대나무로서 주로 전라도에서 사왔다.

마을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병사리 용대기는 매우 커서 장정 네 명이 들어야 할 정도로 무거웠다고 한다. 그래서 부잣집이 아니고서는 그것을 맬 장소가 마땅치 않아, 큰 부잣집의 처마에 대를 매어놓았다가 농사일이 시작되면 꺼내어 사용했다. 기의 보수는 마을 기금 혹은 두레를 맬 때 얻어지는 수익금으로 충당하기도 했다.

[생활민속적 관련사항]

예전부터 각 마을에는 두레가 조직되어 마을의 논을 공동으로 맸다. 두레패들은 두레기를 따라서 움직이며 논을 맸는데, 마을의 두레기들이 서로 맞닥뜨리기라도 하면 서열을 가리기 위해서 곧잘 싸움으로 번지곤 했다. 이때 두레 풍물꾼들이 풍장을 쳐서 승부를 가리기도 하는데, 한쪽에서 한 마치가 빠지거나 틀리면 그 마을이 지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으로도 승부가 나지 않으면 몸싸움으로 번져서 피투성이가 되어 싸우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인근 마을의 두레끼리 서열이 결정되면 기세배를 하여 어른 기에게 경의를 표하기도 한다. 백중 무렵에 김매기가 끝나면 마을에서 일꾼들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서 잔치를 벌이는데, 이때도 농기를 마을 한가운데 혹은 부잣집 마당에 꽂아놓고 그곳에 모여서 논다.

두레기를 일꾼들이 일하는 곳에 꽂아두고 일하는 장소를 표시하였다. 즉 논을 매야 하는 곳에 농기를 세워두면 일꾼들이 그곳에 모여서 일을 한다. 또한 처음 못자리 순서를 정하는 꼼뱅이 먹는 날에는 마을의 큰 마당 혹은 부잣집 마당에 세워 놓고 그 곳에서 잔치를 벌이기도 하였다.

두레 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일을 하기 앞서 기 고사를 지내는데, 이때에도 농기 앞에 술을 부어놓고 일꾼들이 절을 하며 그 해 풍년을 기원한다. 또, 두레를 끝마치는 두레 먹는 날에도 농기를 세워놓고 일꾼들이 그곳에서 잔치를 벌이고 논다.

[참고문헌]
  • 인터뷰(노성면 병사리 마을 이장 백승정, 남)
  • 인터뷰(17세에 부여에서 노성면 병산리로 이주한 주민 원용준, 남, 8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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