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026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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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徐益廟庭碑 |
영어의미역 | Shrine Monument of Seo Ik |
이칭/별칭 | 만죽 서선생 묘정비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육곡리 394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현정 |
성격 | 묘정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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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일시 | 1867년![]() |
관련인물 | 송래희|이호준|서문록 |
재질 | 대리석 |
높이 | 161㎝ |
너비 | 62㎝ |
소재지 주소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육곡리 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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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육곡리 행림서원에 있는 조선 중기 서익(徐益, 1542~1587)의 묘정비.
서익의 묘정비는 서익선생의 인품과 학문적 소양을 높이 추모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1867년(고종 4)에 건립되었다. 가야곡면 육곡리 덕은골은 부여서씨의 집성촌이다. 덕은골은 백제 때 은진현 바깥을 다스리는 큰 고을이었는데, 부여서씨의 경우 이때부터 궁중을 드나드는 권위 있는 성씨였다. 부여서씨가 덕은골에 들어오게 된 시기는 백제 말엽으로 백제의 국운이 기울자 이 고을에 정착하여 살게 되었다.
논산에서 국도 1호선을 타고 전주 연무 방향으로 약 6㎞ 정도 가다 보면 동산사거리가 나온다. 여기에서 좌회전하여 지방도 68호선을 타고 논산IC 방면으로 약 2.5㎞를 가면 논산IC 사거리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좌회전하여 약 3㎞ 정도 가다 보면 육곡리가 나온다. 묘정비는 행림서원 내부에 있는데, 행림서원은 육곡리의 여술마을 안에 위치해 있다.
묘정비는 서익의 후손 서문록이 1867년 묘정에 비를 세움에 묘정비라 하였다. 대리석의 비신에 팔작지붕 모양의 지붕돌[가첨석]을 얹었다. 여기에 농대석을 갖추고 있는 형태이다.
비의 앞면에는 ‘만죽서선생묘정비(萬竹徐先生廟庭碑)’라고 새겨져 있으며, 비문은 송래희가 지었고, 글씨는 이호준이 썼다.
묘정비는 후손들에 의해 행림서원과 더불어 관리되고 있다. 뒷면의 음기에서 몇몇 글자가 마모되어 보이지 않으나 전체적으로 상태가 양호하다.
묘정비는 행림서원 내에 위치하고 있어 부여서씨들의 집성촌인 육곡리에서 서씨들의 위상을 알 수 있는 자료이기도 하다. 또한 묘정비에는 그가 역임했던 관직과 성품이 잘 나타나 있어 서익의 품행을 알 수 있으며 묘비의 형식과 비문의 양식이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모습을 잘 갖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