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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02611
한자 尹煌墓碑-墓所一圓
영어의미역 Tombstone and Grave Area of Yun Hwang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능묘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장구리 산1-3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이연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묘비 및 묘소
건립시기/일시 조선 중기
관련인물 윤황|성씨부인
높이 묘표 109㎝|신도비 228.5㎝
소재지 주소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장구리 산1-3 지도보기
소유자 파평윤씨 문정공파 종중
문화재 지정번호 논산시 향토유적 제11호
문화재 지정일 1992년 10월 28일연표보기

[정의]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장구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윤황의 묘소와 묘비.

[개설]

윤황(尹煌, 1572~1639)윤창세(尹昌世)의 둘째 아들로 자는 덕요(德耀), 호는 팔송(八松),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1597년(선조 30) 장원 급제한 후 벼슬길에 나아가 봉상시정(奉常寺正)·군기감정(軍器監正)을 거쳐 동부승지·이조참의·전주부윤을 지냈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과 1636년(인조 15) 병자호란 때 강력히 척화를 주장하였다.

1637년 병자호란이 끝나고 김상헌(金尙憲)·정온(鄭蘊) 등이 척화를 주장한 죄로 청에 잡혀가자, 윤황은 자신도 척화를 주장하였으니 청에 잡혀가야 마땅하다는 상소를 올렸다. 그러나 상소문 중에 불손한 구절이 있다 하여 영동으로 유배되었으며, 유배에서 풀려나 노성으로 돌아온 후에는 시국에 관한 일을 절대 말하지 아니하였다고 한다. 사후 노강서원에 배향되었다.

[위치]

윤황의 묘는 종가가 있는 노성면 장구리 산1-3번지에 있다. 원래는 노성면 가곡리 애감티에 있었는데, 부인 성씨가 죽은 후 지금의 자리로 옮겨 합장하였다.

[형태]

묘표는 높이 109㎝, 너비 63㎝, 두께 24.5㎝이며, 묘비는 높이 228.5㎝, 너비 113㎝, 두께 32㎝이다. 묘비의 비 갓은 장방형의 옥개석으로 만들어져 관내 묘비비 중에서도 규모가 크고 웅장하다. 묘비는 윤황의 셋째 아들 윤상거(尹商擧)가 황해도 백천부사로 재직할 때 아버지의 묘비를 세우고자 백천 땅에서 나오는 질 좋은 오석을 육로로 운반해 와서 건립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후일 조정에서 이 사실이 민폐가 많았던 것으로 조사되어 그를 파직하였다고 한다.

[금석문]

묘 전면에 있는 묘표는 1651년(효종 2)에 세워졌으며 비문은 시남(市南) 유계(兪棨)가 짓고 아들 윤순거가 썼다. 묘 전면 왼쪽에 있는 묘비는 1660(현종 1)에 세워진 것으로 비문은 김상헌이 짓고 윤순거가 썼으며, 김수항이 전(篆)하였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