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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02560
한자 愼杓晟
영어음역 Sin Pyoseong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남산리 370[황산벌로608번길 12-24]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허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사회운동가
출신지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남산리 370[황산벌로608번길 12-24]지도보기
성별
생년 1897년연표보기
몰년 1947년연표보기
대표경력 사회노동당 농민부 책임위원

[정의]

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사항]

신표성은 1897년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남산리에서 태어났다. 1920년대 초반에 이득일(李得佾), 장덕수(張德秀), 김사국(金思國), 이영(李英) 등이 창립한 사회주의 청년단체인 서울청년회, 사회주의 사상단체인 전진회(前進會)와 경성노동회에 가입하여 사회주의운동을 벌였다. 1925년 1월에는 군산청년회·군산노동연맹회·민중운동사가 연합으로 주최한 레닌추도강연회에서 ‘조선 농촌에서 본 레닌’이란 제목으로 강연했다. 같은 해 군산청년회와 논산군 양촌면 인천리에서 조직된 인천청년회의 상무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25년 7월 조선청년총동맹 집행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925년 상하이[上海]에서 조선공산당에 입당했으며, 이듬해 귀국하여 조선공산당 대전 야체이카 책임자로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1928년 제3차 조선공산당 검거사건 때 체포되어 징역 1년을 선고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1930년 2월 동아일보 논산지국 기자에 선임되었다. 1932년 5월 양촌노동조합 창립대회 때 시위사건으로 일제 경찰에 피검되었다가 석방되었다. 1933년 10월 다시 농민조합사건으로 체포되었다가 증거 불충분으로 석방되었다. 1944년 여운형(呂運亨)이 주도한 항일비밀결사인 건국동맹(建國同盟)에 가입하여 충청남북도 책임자로 활동했다.

1945년 11월 전국에서 조직된 인민위원회의 대표자들이 모여 조선의 완전 독립, 미군정과의 관계, 기타 당면 문제 등을 심의하기 위해 개최한 전국인민위원회대표자대회에 충청남도 대표로 참가하여 중앙위원에 선임되었다. 1946년 2월 민주주의민족전선 결성대회에 충청남도 대표로 참석하여 중앙위원이 되었으며, 3월에 결성된 민전 충청남도위원회 기획부장으로 선출되어 활동했다. 같은 해 11월 여운형이 주도하던 사회노동당에 가입하여 상임위원과 농민부 책임위원으로 활동하다가 탈퇴하고 남로당에 가입하여 활동했다. 1947년 10월 미군정 포고령 위반으로 검거되어 취조 도중 충청남도 도립병원에서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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