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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02414
한자 淸州楊氏
영어의미역 Cheongju Yang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
집필자 이해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세거지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 숯골
집성촌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
입향시기/연도 1506~1544년연표보기
성씨시조 양기(楊起, ?~1394)
입향시조 양춘건(楊春健)

[정의]

양기를 시조로 하고 양춘건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개설]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에는 청주양씨, 함평이씨, 전주이씨 세 집안이 살고 있는데, 이 중 청주양씨주곡리의 터줏대감이라 불릴 만큼 오랜 세월 세거해 왔다. 1920년 일제강점기에 간행된 『조선의 성(朝鮮の姓)』에 따르면, 1920년대 논산의 동족마을에 대한 자료에서 청주양씨상월면 주곡리에 동족마을을 형성하여 살고 있음을 알려준다. 이때에는 상월면 지경리에도 청주양씨 동족마을이 있었는데, 당시 주곡리지경리에 세거하던 청주양씨는 43가구나 되었다.

[연원]

청주양씨 시조 충헌공 양기(楊起)는 원나라 도첨의정승(都僉議政丞)으로 고려 충선왕노국대장공주를 수행하여 우리나라에 왔다가 당시 백성들의 어려움을 보고 돌아가 조공제도를 폐지하도록 힘썼다. 이후 우리나라에 귀화하여 상당백의 작위를 받고 청주양씨의 시조가 되었다. 청주양씨는 처음 개경에서 정주하다가 조선 건국과 더불어 일족이 한양으로 옮겨 왔으나 2세인 아들 6형제 중 일부는 잔류했다.

조선 건국 후 1455년(단종 3)까지 치적을 쌓았으나 단종복위에 충헌공의 현손 혜빈양씨(惠嬪楊氏)가 연루되어 당사자가 참형됨은 물론 일족이 수도를 뒤로하고 팔도(八道)로 흩어지게 되었다. 대부분의 후손이 경기도와 황해도를 중심으로 세거하였는데, 1592년에 일어난 임진왜란으로 남북 각지로 이주하게 되었다. 세거지 별로 남북에 6대 4 정도의 비율로 산재해 살고 있으며, 약 5만 여 명으로 추산된다.

[입향경위]

청주양씨는 처음 개경에 정주하였으며, 한양 천도 후 8세까지 세거하다가 중종 연간(1506~1544)에 9세손 첨정공(僉正公) 양춘건(楊春健)이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 숯골에 정착하여 종가(宗家)를 이루었다. 뚜렷한 입향 경위는 전해지지 않는다.

[현황]

청주양씨는 서원백파·정승공파·전서공파·서평군파·밀성군파·당악군파로 나뉘는데,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에 살고 있는 청주양씨는 서원백파이다. 2008년 기준으로 주곡리에 거주하는 60가구 중 30가구 이상이 청주양씨이며, 상월면에도 넓게 분포하고 있다. 청주양씨 서원백파 후손들은 상월면 외에도 개성, 해주, 숙천, 이천, 평원, 대구, 밀양 등지에 세거하고 있다.

[관련유적]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충헌사(忠憲祠)가 있다. 충헌사는 1626년(인조 4)에 세운 사당으로 양기(楊起)·양치(楊治)·양희지(楊熙止)·양응춘(楊應春)·양훤(楊喧)을 모셨으며, 매년 음력 9월 중정일(中丁日)에 제향한다. 충헌사는 2007년 4월 12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또한 주곡리 마을 입구 장승배기에서는 매년 정월 14일 저녁에 장승제를 지내는데, 그 유래가 양춘건이 숯골로 입향한 후 마을의 화합을 위해 지내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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