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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02197
한자 宮-
영어음역 Gunggol
이칭/별칭 궁곡동(宮谷洞)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우곤리
시대 고대/삼국 시대/백제
집필자 박종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전설|지명유래담|백제패망담
주요 등장인물 의자왕|궁녀
관련지명 백마강|성동면 우곤리|궁골|궁곡동
모티프 유형 왕의 타락|궁의 건설

[정의]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우곤리에서 궁골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채록/수집상황]

1988년 논산문화원에서 간행한 『놀뫼의 전설』에 실려 있다.

[내용]

의자왕은 젊었을 때에 나라의 정사를 잘 돌보아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특히 그는 병법이 뛰어나 신라의 여러 고을을 정벌하여 백제의 땅을 넓혔다. 이처럼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자 그는 자만하게 되었다. 가까이에 둔 간신들의 농간에 놀아나 충신들이 간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고 술과 놀이에 취해 정사를 돌보지 않았다.

이 무렵 의자왕은 궁녀들과 함께 배로 유흥을 즐기기도 했다. 배를 타고 백마강 남쪽으로 내려가다가 지금의 성동면 우곤리 강가에 닿게 되었다. 의자왕은 배를 멈추게 하고 주변 산수를 살피더니 그 경관에 취하여,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로다. 이런 곳이 내 땅에 있는 줄을 미처 몰랐도다.”하며, 궁녀들을 보고, “여봐라! 이 얼마나 좋은 곳이더냐? 낚시하기에도 알맞은 곳이로구나.”라고 하였다. 의자왕은 신하들에게 그곳에 궁을 짓도록 명하였고, 어명에 따라 이 골짜기에 왕이 머물 수 있는 궁이 조성되었다. 이런 연유로 사람들이 이곳을 궁골 또는 궁곡동이라 불렀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궁골」의 주요 모티프는 ‘왕의 타락’과 ‘궁의 건설’이라고 할 수 있다. 「궁골」 이야기는 외견상 궁골의 지명유래를 담고 있지만 그 내면에는 백제 패망의 한 원인을 묘사하고 있다. 골짜기에 왕 개인의 유희를 목적으로 왕이 머물 수 있는 궁을 조성한 의자왕의 타락을 은연 중에 비판하는 백제 패망담이다. 이와 유사한 전설로는 채운면 우기리「임금터」가 있는데, 신하들의 반대로 의자왕은 궁궐을 짓지 못하고 그 터만 남아 있다는 지명유래담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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