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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운과 채운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02140
한자 彩雲-彩雲山
영어의미역 Chaewun and Chaewunsan Mountain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채운면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박종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전설|인물담
주요 등장인물 채운|황 진사 부부|계모|이도령
관련지명 채운산 지도보기 |청양|정산 고을|용왕사지도보기|황산나루|해남
모티프 유형 기자 출생|계모의 박해|이도령의 심판

[정의]

충청남도 논산시 채운면에서 채운과 채운산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채록/수집상황]

1981년 논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조선 전기 때의 일이다. 청양의 정산 고을에 황진사가 아내와 단란하게 살고 있었다. 부부는 자녀가 없어 안타까워하다가 영험한 명산대찰을 찾아다니며 기도를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황진사가 아내에게 “채운산의 용왕사가 영험하여 그곳에 빌어 자식을 둔 사람이 있다.”고 하였다.

부부는 용왕사에 찾아가 백일기도를 하였다. 이렇게 백일기도를 하고 나니 황진사의 아내에게 바로 태기가 있었다. 황진사 부부는 열 달 뒤에 귀여운 딸을 낳아 채운이라 이름 붙였다. 채운은 매우 총명하였고 밝게 자랐다. 그런데 채운이 열 살 되던 무렵 어머니가 돌아갔다. 어머니가 돌아가자 어린 채운이 살림을 맡아 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이를 안타깝게 여겨 새어머니를 들였다. 하지만 새로 들어온 계모는 심술궂었고 채운을 빨리 시집보내려 하였다.

얼마 후 채운은 전라도에 사는 이진사의 아들과 혼약하였다. 혼인날이 다가오는데 계모가 음모를 꾸몄다. 계모는 “피 묻은 헝겊이 채운의 방에서 나왔다.”며 채운이 낙태하였다고 소문을 냈다. 소문을 들은 채운의 아버지 황진사는 크게 노하였다. 황진사는 채운에게 매질을 하고 가죽 부대에 넣어 강물에 띄워 버렸다.

채운이 담긴 가죽 부대가 황산나루에 닿았을 때 마침 어부인 김첨지가 이것을 건져 냈다. 채운은 김첨지에게 저간의 사정을 말하였다. 그러자 김첨지는 채운을 배에 실어 해남에 사는 이진사의 집에 실어다 주었다. 김첨지로부터 사연을 들은 이진사는 흔쾌히 채운을 며느리로 받아들여 예를 갖추어 주었다.

세월이 흘러 채운의 남편인 이도령이 과거에 급제하여 고향에 돌아왔다. 이도령과 채운은 부모에게 인사를 올린 후 다시 한양으로 길을 떠났다. 한양으로 올라가던 중 그들은 채운의 고향에 들렀다. 이도령 부부가 황진사의 집에 도착하자 황진사와 계모가 나와 맞이하였다. 채운은 아버지 황진사에게 인사를 올리고 그동안의 사연을 말하였다.

한편, 이도령은 채운의 계모를 심판하여 채운산에 들어가 속죄하도록 명하였다. 채운의 계모는 채운산에 들어가 오랫동안 기도를 드렸다. 하지만 본래 검은 마음이 개선되지는 않았다. 때문에 채운산 신령이 계모를 놓아 주지 않았고, 그녀는 죽도록 채운산에서 살았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채운과 채운산」의 주요 모티프는 ‘기자 출생’과 ‘계모의 박해’, ‘이도령의 심판’이다. 초월적 존재에게 빌어 얻은 자식이 계모의 박해로 고난을 겪다가 이를 극복하여 계모를 심판한다는 인물담이다. 전체적으로 「채운과 채운산」은 특정 인물 중심의 고소설 서사 구조와 유사한 면을 갖추고 있다. 예를 들면 무자 갈등, 기자, 총명한 아기 출생, 어려서 어머니 사망, 계모의 핍박, 아버지에 의한 축출, 우연한 구제, 혼인, 출세 등 일련의 서사 전개가 고소설의 서사 구조와 흡사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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