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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00987
한자 尹煌先生古宅
영어의미역 Yun Hwang's old house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장구리 52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김회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주택
양식 민도리집
건립시기/일시 조선 중기|조선 후기(이건)
소재지 주소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장구리 52 지도보기
소유자 윤석구
문화재 지정번호 충청남도 민속자료 제8호
문화재 지정일 1985년 12월 31일연표보기

[정의]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장구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윤황의 고택.

[개설]

윤황의 본관은 파평(坡平)이다. 자는 덕요(德耀)이고, 호는 팔송(八松)으로, 1597년(선조 30) 알성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갔다.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주화(主和)를 반대해 이귀(李貴)·최명길(崔鳴吉) 등 주화론자의 유배를 청하고, 항장(降將)은 참할 것을 주장하였다. 주화는 항복이라고 했다가 왕의 노여움을 사 유배의 명을 받았으나 삼사의 구원으로 화를 면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정묘호란 때와 같이 척화를 주장하다가 집의 채유후(蔡裕後), 부제학 전식(全湜)의 탄핵을 받고 영동군에 유배되었다가 병으로 풀려 나와 죽었다. 사람됨이 강의(剛毅)하고 기절(氣節)이 있다는 평을 들었다.

[위치]

노성면사무소에서 좌회전하여 소곡저수지 방면으로 지방도 645호선을 타고 약 6㎞를 달리면 장마루삼거리가 나온다. 장마루삼거리에서 다시 좌회전하여 약 3㎞를 달리면 왼쪽으로 난 길이 보이는데, 이 길을 따라 1㎞를 더 가면 장구리가 나온다. 윤황 선생 고택장구리 서쪽 약 4㎞ 지점에 손자 윤증선생 고택, 서북편 1.5㎞ 지점에 있는 종학당유봉 영당, 파평윤씨 묘역 등이 위치한 파평윤씨 세거지에 자리하고 있다.

[변천]

윤황 선생 고택의 초축 시기와 장소는 알 수 없으나, 윤황의 6세손인 윤정진(尹定鎭)이 1730년대인 조선 영조 때 현재의 자리로 이건하여 윤황 선생의 종가(宗家)로 대대로 내려오고 있는 전통 가옥이다. 1985년 12월 31일 충청남도 민속자료 제8호로 지정되었고,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2007년 초까지 거주하던 관리인이 이주하여 현재는 빈 집으로 남아 있다.

[형태]

윤황 선생 고택은 전체적으로 평평한 평야 지대 가운데 솟아오른 구릉의 남서 사면에 위치한 집으로 뒤편 언덕으로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고택은 사랑채, 안채, 광채 등 3채의 살림집과 사당 1채로 구성되어 있다. 전체적인 평면 배치는 튼 ‘ㅁ’자형의 간결한 배치로 구성된 조선시대 중부 지방 상류 주택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사랑채는 일반적인 사랑채 조영 방식에 따라 지어진 집으로 팔작지붕의 ‘一’자형 건물이다. 중앙에 두 칸의 대청을 두고 좌우측으로 방을 두어 정면 7칸의 집으로 평면을 구성하였다. 앞면으로 전퇴를 두었으며 오른쪽의 전퇴는 누마루 형식으로 구성하였다.

대청의 마루문은 4짝씩 구성하여 전 칸을 개방하였으며, 방문은 각각 2짝씩으로 구성하였다. 또한 세벌대의 기단 위에 자연석 주초석과 일부 치석된 주초석 위에 사각 기둥을 세워 가구를 구성하였다. 사랑채의 오른쪽에는 연지가 배치되었다. 안채는 ‘ㄱ’자형 건물로 그 앞에 ‘一’자형의 광채가 배치되어 전체적으로 ‘ㄷ’자형의 배치 구조를 이루고 있다.

안채는 민도리집으로 앞면은 맞배지붕을 얹고 측면으로 팔작지붕을 얹었다. 가운데 3칸에는 대청을 겸한 우물마루를 두었으며, 오른쪽 퇴칸은 누마루 형식으로 구성하였다. 광채는 정면 5칸의 민도리집으로 가운데 방을 두고 우진각 지붕을 얹었다. 사당은 정면 3칸의 전퇴를 둔 맞배지붕으로 주위에 담을 두르고 가칠 단청으로 마무리하여 별도의 공간으로 분리하였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