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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00944
한자 倭寇
영어의미역 Japanese Invader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김갑동

[정의]

고려 후기 충청남도 논산 지역을 침입하여 약탈을 일삼았던 일본 해적의 총칭.

[개설]

우리나라와 중국의 해안 지역에 침입하여 약탈을 일삼았던 옛 일본 해적을 총칭하여 왜구라고 한다. 일찍이 삼국시대에도 우리나라에 일본의 해적이 침입한 바 있지만 침입 규모나 피해가 그리 큰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고려 말부터 조선 초에 걸친 시기에는 거의 해마다 침입했고 피해도 막대하여 ‘왜인(倭人)들이 노략질했다’라는 뜻인 왜구가 이때부터 일본인 해적집단을 총칭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이 시기 충청남도 논산 지역도 왜구의 빈번한 침입과 약탈로 인한 피해가 막심하였다.

[고려시대 왜구]

왜구가 고려에 처음 침입한 것은 1223년(고종 10)이다. 이로부터 5년에 걸쳐 왜구가 7차례나 경상도·전라도 해안 지역을 노략질했지만 그 뒤 100여 년 동안은 10여 차례 침입하는 데 그쳐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왜구의 노략질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350년(충정왕 2)부터로 뒤이은 공민왕 때에는 115회, 우왕 대(1375~88)에는 278회의 침입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특히 우왕 때에는 왜구의 침입이 절정을 이루어 바다에서 조운선(漕運船)의 곡물을 약탈하거나 해안 지역에 있는 조운 창고의 곡물과 군현의 관아 또는 부잣집의 재물을 노략질했으며 내륙 여러 지역을 횡행하면서 민가를 노략질하고 주민을 닥치는 대로 잡아 해쳐서 큰 피해를 입혔다. 그 대표적인 피해 지역의 하나가 논산 지역이었으며 그 구체적인 침략 내용은 다음과 같다.

1376년(우왕 2)에 왜구가 부여·공주를 거쳐 연산현(連山縣, 현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개태사(開泰寺)에까지 이르자 박인계(朴仁桂)가 이들과 싸우다가 말에서 떨어져 죽었으며 여세를 몰아 왜구는 개태사를 도륙하였다. 이후에 최영이 부여 홍산에서 이들을 크게 격파하였다. 이 승리가 그 유명한 홍산대첩(鴻山大捷)이었다. 1383년(우왕 9) 8월에도 왜구 천여 명이 보은을 거쳐 개태사를 경유하여 계룡산에 웅거하는 지경에까지 이르자 문달한·왕안덕 등이 공주에서 싸워 겨우 이들을 격퇴하였다.

창왕 즉위년에도 왜구가 또 다시 개태사에 침범하여 노략질한 후 청주(淸州)·유성(儒城)·진령(鎭岺)에까지 진출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당시 왜구가 논산의 개태사를 노린 것은 이곳이 태조 왕건의 영정을 모셔놓은 진전(眞殿)이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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