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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민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00425
한자 魯城民亂
영어의미역 Noseong Uprising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고동환

[정의]

1893년 노성현감의 탐학 행위에 반발하여 충청남도 논산 지역 농민들이 일으킨 민란.

[발단]

노성민란은 전운소(轉運所)에서 운송하다 남은 미곡 400석 중 200석을 전 노성현감이 착복하였는데, 1893년에 부임한 신임 현감 황후연(黃厚淵)이 농민들에게 이 200석을 대신 물게 하자, 이에 반발하여 일어난 봉기이다.

[경과]

농민들은 장두(狀頭) 유치복(兪致福)이 중심이 되어 여러 차례 민회(民會)를 개최하였고, 이의 시정을 위해 정소(呈訴)를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마침내 봉기하여 관아를 점령하고 황후연을 쫓아냈다. 민란의 주모자들은 유치복을 비롯한 윤상건(尹相健)·박관화(朴寬和)·이성오(李成五)·윤상집(尹相執)·윤성칠(尹成七)·윤자형(尹滋馨) 등으로, 노성 지역의 대성(大姓)인 파평윤씨가 상당수 참여하였다.

[결과]

민란이 발발하자 충청감사는 민란을 조사한 뒤 주모자들을 처벌하고자 했지만, 주모자들이 모두 피신하여 처벌할 수 없었다. 다만 백화서(白化西)만 주모자에 동조했다는 죄로 원악도(遠惡島) 유배라는 중형에 처해졌다. 충청감사는 주모자 외에도 노성 지역 향촌사회의 주도 세력인 좌수 양주흥(梁柱興)을 비롯하여 이방(吏房) 이석민, 대동색(大同色) 김제흥·이민학, 창색(倉色) 김광오, 교유(校儒) 김재용·박응진, 면임(面任) 윤원근·송세진·김상규·이사성·박준필·김자현·김영배·김준백 등을 처벌하였다. 민란을 야기한 노성현감 황후연은 의금부에 투옥하여 관직이 박탈당하는 처벌을 받았다.

[의의와 평가]

양반들로 구성된 주동자들이 전임 수령의 부정과 징세 폐단을 시정하기 위해 통문을 발하고 민회를 개최하는 등 민란의 정소운동단계에 유력자들이 대거 참여했다는 점은 다른 지역 민란과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그러나 주론자로 지목되었던 노성현의 대성인 파평윤씨들이 모두 피신하여 처벌을 면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지역 민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노성민란만의 특성이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박** 1893년 노성민란은 다음해 갑오농민혁명의 발판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며 이들 중 동학도가 대부분이고, 유림과 관에서도 협조하는 척왜척화로 애국사상이 고취된 단초가 마련된 곳으로 깊이 연구할 가치가 있는 민란이 아니라 노성농민혁명사건 으로 감히 추정합니다. 노성에서 집결하여 경천계룡쪽과 이인쪽으로 공주성 공격한 곳이나 불행히 실패하여 전주로 후퇴한 곳입니다. 2015.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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