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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00394
한자 金集先生墓所
영어의미역 Grave of Gim Jip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능묘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양산리 산36-3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이춘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묘소
건립시기/일시 1662년연표보기
관련인물 김집
소유지 주소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양산리 산36-3 지도보기
소유자 광산김씨 문경공파 종중
문화재 지정번호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96호
문화재 지정일 1987년 12월 30일연표보기

[정의]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양산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김집의 묘소.

[개설]

김집의 본관은 광산으로, 자는 사강(士剛), 호는 신독재(愼獨齋)이다. 아버지는 사계 김장생이다. 1591년(선조 24) 진사로 합격하였고, 1610년(광해군 2) 헌릉참봉에 제수되었으나 광해군의 문란한 정치를 보고 은퇴하여 아버지를 모시고 고향인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 은거하게 된다. 인조반정 뒤 다시 등용되어 부여현감·임피현령·지평·집의·공조참의 등을 두루 지냈으나 김자점(金自點) 등 공서파(功西派)가 집권하자 관직을 버리고 다시 낙향하였다.

효종 즉위 후 김상헌의 천거로 이조판서에 임명되어 효종과 함께 북벌을 계획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실각한 김자점이 북벌계획을 청나라에 밀고하여 정국이 어수선해지자 사임을 하고 낙향하였지만, 다시 대사헌과 좌찬성에 임명되었다. 관직에서 물러난 후에는 경전연구와 수양에 힘쓰고 도를 즐기며 아버지 김장생의 예학을 계승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김집 선생 묘소가 현재의 위치에 자리하게 된 일화가 전해진다. 김집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은 한 승려가 자신이 있는 고운사의 자리는 찾기 힘든 명당으로 그 자리에 김집의 유해를 모시라는 계시를 받고 왔다고 하며, 절을 다른 곳으로 옮길 것이니 산소를 정하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벌곡면 양산리고운사 절터 자리를 김집의 묘소로 정하였다고 한다.

[위치]

벌곡면사무소 북쪽을 지나는 지방도 20호선의 삼동교를 건너 북쪽 길로 2.5㎞ 정도 가면 대감산소골 끝에 재실이 있고, 재실의 뒤쪽 남동향 사면 부근에 김집 선생 묘소가 자리하고 있다.

[형태]

김집 선생 묘소의 묘역은 198.37m²로 상석, 문인석, 석주, 묘비가 배치되어 있다.

[금석문]

묘비는 귀접이형으로 비 앞면에 ‘문경공신독재김선생집지묘(文敬公愼獨齋金先生集之墓)’라 쓰여 있다. 비문은 이유태가 찬하고 윤선거가 서하여, 1663년(현종 4) 건립되었다.

[현황]

1987년 12월 30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96호로 지정된 김집 선생 묘소는 현재 광산김씨 문경공파 종중에서 잘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명당으로 알려진 곳에 묘소를 정할 수 있었던 일화로 미루어 보아 김집의 인물됨과 함께 광산김씨의 사족 활동을 엿볼 수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