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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어은리와 계룡시 엄사면 도곡리 경계에 있는 고개. 산명재와 능선을 함께 하며 하산티[下山峙]로 불렸기 때문에 아랫산명재라고 불린다. 아랫산명재는 화강섬록암으로 이루어진 고개이며, 계룡산 남쪽 능선에 해당하는 향적산(574m) 남쪽에 위치해 있는 고개이다. 아랫산명재 북쪽에 산명재와 윗산명재가 있으며, 서쪽은 일음골을 중심으로 한 소규모 분지가 형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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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 방한민은 1920년 『조선일보』 창간을 주도했으며, 편집 및 사회부 기자로 재직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났을 때 일제의 잔학성을 폭로 규탄하는 「골수에 맺힌 조선인의 한(恨)」이란 배일(排日) 연재 기사를 게재하였다. 일제의 간섭과 압력으로 조선일보에서 해고를 당하고 일본 동경으로 유학을 떠났는데, 정창선(鄭昌先) 등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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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일대에 서식하는 매과에 속하는 새. 편 날개의 길이는 수컷 30㎝, 암컷 37㎝ 정도로 독수리보다 작다. 암컷과 수컷은 배 쪽이 푸른 잿빛으로 머리꼭대기와는 확연히 다르다. 아랫면의 바탕색은 크림색 또는 녹슨 황색이며 잿빛이나 붉게 녹슨 색을 띠지 않는다. 아랫면의 검은색 가로 얼룩무늬는 가늘고 엷은 색이다. 날개의 폭은 넓고 길다. 눈 밑의 검은 무늬는 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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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취암동과 부적면 아호리를 연결하는 다리. 아호대교는 총 연장이 236.7m이고, 폭은 10m이며, 왕복 2차선의 교량이다. 아호대교는 1981년 국도 1호선 확·포장 공사에 따라 계백교 준공으로 논산시에서 인수, 인계받아 도시계획도로로서 논산천(論山川)을 가로질러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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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에 속하는 법정리. 논산천의 지류인 아호(阿湖)가 동쪽 벌판에 있는데, 물이 호수처럼 잔잔하다고 하여 애오랏 또는 아호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부인처면(夫人處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적사곡면(赤寺谷面) 주천리(注川里)·평리(平里)·신교리(新橋里)의 일부, 화지산면(花枝山面) 주천리(注川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아호리라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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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아호1리에서 매년 음력 정월 14일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하여 지내는 마을 제사. 예부터 부적면 아호1리에서는 마을 입구 장승 앞에서 장승제를 지내 왔다. 일제강점기 때 장승이 소실된 이후에도 그 자리에서 매년 장승제를 지내며 시화연풍(時和年豐)을 빌고 마을의 단합을 다지고 있다. 장승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에 의하여 파괴되어 현재는 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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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아호1리에서 매년 음력 정월 14일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하여 지내는 마을 제사. 예부터 부적면 아호1리에서는 마을 입구 장승 앞에서 장승제를 지내 왔다. 일제강점기 때 장승이 소실된 이후에도 그 자리에서 매년 장승제를 지내며 시화연풍(時和年豐)을 빌고 마을의 단합을 다지고 있다. 장승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에 의하여 파괴되어 현재는 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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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아호리에서 아기장수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1년에 논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옛날에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아호리의 큰뜸 마을에 박씨(일명 아호리박씨) 부인과 함께 단란하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 부부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그래서 부부는 정안수를 떠다 놓고 산신령한테 빌었다. “신령님, 저희에게 자식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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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숙승을 시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안동김씨의 시조는 김숙승(金叔承)이다.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 대안군 김은열(金殷說)의 둘째 아들이며 공부시랑을 지냈다. 그 뒤 경순왕의 9세손 충열공 김방경(金方慶)을 중시조로 하여 후대를 잇고 있다. 안동김씨는 김방경 이후 가문이 번성하기 시작하여 그의 아들과 손자가 계속 재상의 지위에 올라 고려 후기에 최고 가문의 지위를 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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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안명옥은 참판 안사묵(安思黙)의 장손으로 출생하였으며, 1886년에 선공감 감역을 지냈다. 1910년 일제로부터 한일합방에 대한 회유책으로 노인은사금(老人恩賜金)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송병준과 김지수가 각각 영동과 연산에서 이를 거절하고 자결했다는 소식을 듣고 은진향교에서 일본의 악행과 을사오적의 매국행위를 규탄하며 자신도 단식 자결하려고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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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사심, 호는 죽계(竹溪). 아버지는 안신길(安信吉)이다. 안사묵은 석당 정귀석에게 배웠고, 고매한 학행으로 돈령부봉사로 천거되었으나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오직 부모를 모시고 봉양하는 데 조금도 소홀함이 없이 효성을 다하여 섬기니 칭송이 자자하였다. 1860년(철종 11) 학행과 효행이 조정에 알려져 정려(旌閭)가 내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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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이자 효자. 본관은 순흥(順興). 아버지는 군수를 지낸 안홍록(安弘祿)이다. 1629년(인조 7) 사마시에 합격하여 벼슬이 이조참의에 이르렀다.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의 뜻을 추호도 어김이 없었으며 도학이 높았다. 당시 유림과 은진현감·연산현감이 안신길의 효행을 조정에 알렸고, 조정에서는 효행을 표창하고 이조참판에 추증하였다. 논산시 지산동에 효행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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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에 속하는 법정리. 사람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고장이라 하여 안심리 또는 안심동이라 하였다. 본래 전라북도 여산군 피제면(皮堤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구상리(九相里)·삼거리(三巨里)·신리(新里)·죽산리(竹山里)·사천리(沙川里)·신기리(新基里)·신화리(莘華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고 안심리라 하여 전라북도 익산군 황화면에 편입하였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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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에 속하는 법정리. 사람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고장이라 하여 안심리 또는 안심동이라 하였다. 본래 전라북도 여산군 피제면(皮堤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구상리(九相里)·삼거리(三巨里)·신리(新里)·죽산리(竹山里)·사천리(沙川里)·신기리(新基里)·신화리(莘華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고 안심리라 하여 전라북도 익산군 황화면에 편입하였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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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안심리에 있는 한국불교 태고종 소속 사찰. 안심정사는 1991년 5월 19일 승려 이법안(李法眼)이 창건하였다. 창건 당시에는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 사찰이었으나 1992년 10월 한국불교 법륜종으로 변경하였다가 다시 한국불교 태고종으로 변경하였다. 2004년부터 서울특별시 강서구 등촌동에 백상선원을 개설하여 운영하고 있다. 안심정사는 주로 불치병과 난치병 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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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 원훈각에 제향된 종친. 이방의는 태조 이성계의 셋째 아들로서 신의왕후 한씨의 소생이다. 형은 정종 이방과(李芳果)이며, 아우는 태종 이방원(李芳遠)이다. 왕자 가운데 가장 야심이 적어 아우 이방간과 이방원의 왕위계승 싸움에 중립을 지키고, 평소에 시사를 말하지 않았다. 1392년 조선이 개창되어 태조가 즉위하자, 이방의는 익안대군(益安大君)에 봉해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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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신양리에 있는 조선 말기 효자 안여택의 정려. 안여택(安汝宅, 1691~1783)은 순흥안씨(順興安氏)로 자는 인숙이며, 문성공 안향(安珦)의 17세손이다.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부모가 살았을 때 효성을 다하였고 부모가 죽은 후에는 3년간 시묘하였다고 전한다. 안여택은 어머니가 병환에 있을 때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먹여 간호하였고, 어머니가 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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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신양리에 있는 조선 말기 효자 안여택의 정려. 안여택(安汝宅, 1691~1783)은 순흥안씨(順興安氏)로 자는 인숙이며, 문성공 안향(安珦)의 17세손이다.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부모가 살았을 때 효성을 다하였고 부모가 죽은 후에는 3년간 시묘하였다고 전한다. 안여택은 어머니가 병환에 있을 때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먹여 간호하였고, 어머니가 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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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순흥(順興). 아버지는 안신길(安信吉)이다. 예학(禮學)의 대가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의 문하에서 수학했으며, 사마시에 급제하였으나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학행으로 세자익위사세마에 임명되어 왕세자를 호위하다 홍문관수찬에 오르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평생 학문에만 힘을 기울여 학행으로 이름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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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안종운은 백부 안명옥의 유언에 따라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명치대학 법학부를 졸업하였으며, 귀국 후 1917년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18년 조직이 노출되면서 일본 경찰을 피해 은신생활을 하다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고 상하이[上海]에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동지들과 군자금을 모집하여 임시정부를 지원하였다. 19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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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순흥(順興). 아버지는 이조판서를 지낸 안호의(安好義)이다. 어려서부터 성품이 단정하고 의리에 강했으며 학문을 즐겼다. 1576년(선조 9) 사마시에 합격하여 벼슬길에 올라 외직으로 아산현감·정산현감·석성현감을 역임하였는데, 가는 곳마다 선정을 베풀고 지방 토호들을 엄히 다스려 기강을 바로잡았다. 또한 미신을 타파하는 한편 학교를 부흥시키는 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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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항월리에서 집안에 모신 여러 신령에게 가정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례. 안택(安宅)은 글자 뜻 그대로 집안을 평안하게 하는 굿을 말한다. 대개 독경(讀經)을 하는 앉은굿 법사(法師)가 주관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논산 지역에서는 부녀자들이 집안에 모신 여러 신령을 위로하고 치성을 드리는 ‘첫무리’를 아우르는 개념으로 혼용되기도 한다. 첫무리란 가을걷이를 마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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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항월리에서 집안에 모신 여러 신령에게 가정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례. 안택(安宅)은 글자 뜻 그대로 집안을 평안하게 하는 굿을 말한다. 대개 독경(讀經)을 하는 앉은굿 법사(法師)가 주관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논산 지역에서는 부녀자들이 집안에 모신 여러 신령을 위로하고 치성을 드리는 ‘첫무리’를 아우르는 개념으로 혼용되기도 한다. 첫무리란 가을걷이를 마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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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조령리에 있는 조선시대 절터. 벌곡면사무소에서 두마 쪽으로 국도를 따라가면 왼쪽에 조령1리 안터마을이 나온다. 안터 사지는 안터마을 뒷산 남쪽 계곡 중턱에 있다. 현재 절터는 황폐해지고 잡목만 우거져 있어 정확한 건물의 형태를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사찰을 지을 때 축조한 1m의 축대석과 자연 초석 형태의 석재가 남아 있다. 곳곳에 흩어져 있는 기와 조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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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순흥(順興). 아버지는 참판을 지낸 안치화(安致和)이다. 안홍록은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경사(經史)에 밝았다. 사마시에 급제하여 전주판관·금산군수 등을 역임하였으나 오래지 않아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와 학문에 힘썼다. 후에 조정에서 학행(學行)으로 천거하여 사헌부장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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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성규, 호는 규정(規亭). 증조할아버지는 중추부사를 지낸 안여택(安汝宅)이다. 효행으로 정려(旌閭)를 받은 증조할아버지 안여택의 효행을 본받아 부모 섬기는 데 평생 변함이 없었다. 효행뿐만 아니라 성품이 온화하고 순박하여 동기 간에 우애가 깊었으며 이웃 간에도 화목하여 남의 모범이 되었다. 품행이 알려져 주민들과 유림의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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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과 부적면, 강경읍을 흐르는 논산천 수계에 서식하는 잉어과에 속하는 민물고기. 몸길이는 약 7~9㎝이다. 머리와 몸통은 가늘고 길며 옆으로 납작하다. 입은 주둥이 밑에 달려 있으며 밑에서 보면 말굽 모양을 하고 있다. 머리는 약간 튀어나와 있다. 눈은 작고 두 눈 사이가 넓으며 머리 중앙보다 약간 앞과 위쪽에 있다. 입은 작고 위턱은 밑으로 길게 늘어뜨릴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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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달걀을 받기 위해 농가의 닭장 안에 짚으로 만들어 둔 보관용 도구. 통구리라는 말은 통가리에서 유래한 것으로 본다. 통가리란 쑥대나 싸리, 뜸 등을 새끼로 엮어 땅에 둥글게 둘러치고 그 안에 감자나 고구마 따위의 곡식을 채워 쌓은 더미를 말한다. 알통구리를 닭의 알을 담아 두는 저장 도구라는 의미에서 알통가리라고도 부른다. 또한 달기(닭) 둥가리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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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달걀을 받기 위해 농가의 닭장 안에 짚으로 만들어 둔 보관용 도구. 통구리라는 말은 통가리에서 유래한 것으로 본다. 통가리란 쑥대나 싸리, 뜸 등을 새끼로 엮어 땅에 둥글게 둘러치고 그 안에 감자나 고구마 따위의 곡식을 채워 쌓은 더미를 말한다. 알통구리를 닭의 알을 담아 두는 저장 도구라는 의미에서 알통가리라고도 부른다. 또한 달기(닭) 둥가리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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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북옥리 옥녀봉 남측 암벽에 있는 조선 후기 암각문. 암각 해조문은 하루 유동인구 10만을 헤아리는 거대 시장이었던 강경 지역의 풍부한 경제력과 임리정(臨履亭), 팔괘정(八卦亭), 죽림서원(竹林書院)으로 대표되는 흥륭(興隆)했던 학문적 분위기가 어우러져 1860년(철종 11) 강경포구에 새겨졌을 것으로 보인다. 글은 송심두(宋心斗)가 쓰고, 서항순(徐恒淳)·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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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이자 청주양씨 시조. 본관은 청주(淸州). 호는 암곡(巖谷). 양기(楊起)는 중국인으로 원나라에서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에 올라 도첨의정승(都僉議政丞)과 중서성정승을 지냈다. 1351년(충정왕 3) 공민왕이 연경에 머무르다 왕위에 오르기 위하여 고려로 돌아갈 때 노국공주(魯國公主)를 배종하고 들어와서 고려에 정착하였다. 그 후 원나라에 가서 공물을 삭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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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1492년(성종 23) 이산(尼山) 암천(巖川)에 은거한 무안박씨논산 입향조. 본관은 무안(務安). 아버지는 박임경(朴臨卿), 어머니 창녕성씨(昌寧成氏)이다. 어머니 창녕성씨는 사육신 중의 한 분인 성삼문(成三問)의 딸이다. 박증의 아버지 박임경은 1456년 병자사화(丙子士禍)로 장인이 참화를 당하자 그 시신을 김시습(金時習) 등과 수습하여 노량(露梁)에 매장하고 두문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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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학당리에 있는 조선 중기 박증이 낚시를 즐겼던 바위. 박증(朴增)[1461~1517]의 자는 익지(益之), 호는 암천(巖川)이며, 무안박씨 논산 입향조이다. 할아버지는 박이(朴頤)[1402~1478]이고, 아버지는 박임경(朴臨卿)[1436~?]이다. 어려서부터 영민하고 풍채가 빼어나며 대인장자 같다고 하여 기린(麒麟)이라 불렸다. 효심이 깊었을 뿐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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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논산천에 서식하는 잉어과 민물고기. 몸길이는 7~9㎝ 정도로 돌마자와 비슷하나 더 가늘고 길다. 몸높이는 낮고 옆으로 약간 납작하고 뒤로 갈수록 더 납작하다. 머리는 약간 크고 배는 납작하여 전체적으로 방망이 모양을 한다. 눈은 머리 위쪽에, 입은 말굽 모양으로 주둥이 아래에 있고 1쌍의 입수염이 있다. 등지느러미는 몸의 중앙보다 약간 앞쪽에 삼각형 모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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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에 속하는 법정리. 논산천의 지류인 아호(阿湖)가 동쪽 벌판에 있는데, 물이 호수처럼 잔잔하다고 하여 애오랏 또는 아호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부인처면(夫人處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적사곡면(赤寺谷面) 주천리(注川里)·평리(平里)·신교리(新橋里)의 일부, 화지산면(花枝山面) 주천리(注川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아호리라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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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똥을 거름으로 쓰기 위해 옮길 때 쓰는 농기구. 주로 봄에 변소에서 삭힌 똥을 바가지로 퍼 똥장군에 담고, 짚으로 된 뚜껑을 닫아 똥지게로 옮긴다. 논이나 밭에 가서 뚜껑을 열고 작은 바가지로 퍼서 뿌린다. 논산 지역에서는 똥장군을 앵병, 얭병이라고도 부른다. 현재는 똥을 거름으로 쓰지 않기 때문에 똥장군을 사용하지 않는다. 똥장군은 흙으로 구운 옹기단지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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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과 상월면에 걸쳐 있는 노성산 일대에 서식하는 올빼미과에 속하는 새. 몸길이는 70㎝ 정도의 대형 야행성 맹금류이다. 귀깃이 매우 특이한데, 크기가 칡부엉이의 2배 정도 된다. 겉으로는 암수의 구별이 뚜렷하지 않으며 보통 수컷보다 암컷이 약간 크다. 깃털은 진한 갈색에 검은색 세로 줄무늬가 있고 눈은 붉은색이다. 머리꼭대기는 갈색을 띤 검은색이고, 각 깃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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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출신의 시인이자 불교학자. 박희선은 1943년 전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의 고마자와대학 불교학과에서 수학하였다. 대학 재학 중에 일본 학도병으로 끌려가 중국에서 복무하던 중 일본군을 탈출하고 독립운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서울 서대문 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1945년 광복을 맞아 출옥하였다. 1946년 정훈, 박용래 등과 시동인지 『동백』을 창간하면서 문단활동을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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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논산 출신의 효자. 이선익은 어려서부터 예의가 바르고 부모님께 효도를 하여 주위 사람들로부터 칭찬이 자자했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를 정성껏 모셔 왔는데 어느 날 어머니가 병환이 나서 자리에 눕게 되었다. 병에 좋다는 약을 백방으로 구해다가 손수 달여 드리며 정성을 다하여 간호하였다. 어머니가 병석에 누워 있는 10여 년 동안 추운 겨울에는 물고기를 잡아다 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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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이 들판에 있다 하여 들말 또는 야촌이라 하였다. 마을 모양이 배의 형국이라 하여 마을에 우물을 파면 침몰된다고 우물을 파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왔다고 한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하두면(下豆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가정리(柯亭里)·두강리(杜江里)의 각 일부, 상두면(上豆面) 육곡리(六谷里)·강청리(江淸里)의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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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이후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전개되어 온 농촌계몽운동 또는 문맹퇴치운동. 야학은 야간에 수업을 하는 비정규적 교육 기관을 말하며 야간에 운영되는 정규적 교육 기관인 야간학교와는 구별된다. 야학은 일제강점기에 크게 발달하였으며 이 시기의 야학은 식민지교육정책에 따른 교육 시설의 부족과 생활의 빈곤으로 정규학교의 취학이 어려운 시기에 민중들에 대한 초등 교육 기관으로서의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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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채운면에 속하는 법정리. 들꽃이 많이 핀다 하여 들꽃미 또는 야화라 하였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화산면(花山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석현리(石峴里)를 병합하고 야화리라 하여 논산군 채운면에 편입되었다. 1996년 3월 1일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논산시 채운면 야화리가 되었다. 행정구역은 야화1리와 야화2리, 야화3리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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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서식하는 잉어과에 속하는 민물고기. 붕어는 몸길이 20~43㎝에 이른다. 몸은 옆으로 납작하고 꼬리자루의 너비는 넓은 편이다. 머리는 짧고 눈은 작다. 콧구멍은 서로 맞붙어 있고 앞 콧구멍은 작다. 주둥이는 짧으며, 입은 작고 입술은 두껍다. 아래턱은 위턱보다 짧으며 편평한 후피습(後皮褶)이 앞 콧구멍의 주위에 솟아올라 있다. 뒷지느러미는 짧고, 등지느러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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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이자 청주양씨 시조. 본관은 청주(淸州). 호는 암곡(巖谷). 양기(楊起)는 중국인으로 원나라에서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에 올라 도첨의정승(都僉議政丞)과 중서성정승을 지냈다. 1351년(충정왕 3) 공민왕이 연경에 머무르다 왕위에 오르기 위하여 고려로 돌아갈 때 노국공주(魯國公主)를 배종하고 들어와서 고려에 정착하였다. 그 후 원나라에 가서 공물을 삭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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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양기하는 구한말에 공주군수를 역임하였으며, 1910년 일제 강점이 시작되자 만주로 망명하면서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1운동 이후에는 남만주에서 조직된 대한독립단에 가입하여 교통부장을 맡아 활동하였으며, 1920년에는 광복군사령부 선전부장, 정보국장으로 항일운동에 참여하였다. 1921년에는 상하이[上海]로 가서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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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무신. 본관은 김해(金海). 아버지는 이성현감(利城縣監) 김극조(金克祧)이다. 김완은 1592년 임진왜란 때 용맹이 알려져 전라도 병마절도사 이복남(李福男)의 휘하에 들어갔다. 같은 해 여름 무과에 급제하여 경상도방어사 고언백(高彦伯)의 막하에 있다가 전라도병마절도사 이광악(李光岳)을 따라 남원에 갔다. 이때 아버지 김극조를 무고하여 죽게 한 한덕수(韓德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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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죽림리에 있는 임진왜란 때의 공신 김완의 영정을 모신 사당. 본관이 김해인 김완(金完, 1577~1635)은 임진왜란 때 용맹이 알려져 전라도병마절도사 이복남 휘하에 들어갔다. 이때 무과에 급제하여 경상도방어사 막하로 갔다가 전라도병마절도사 이광악을 따라 남원으로 갔다가 부친을 무고하여 죽게 한 한덕수가 병력을 점검하자 칼로 찔러 죽이려다가 실패하였다. 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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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적인 양반 마을에 여성으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유향덕(58) 씨가 있다. 그녀는 마을 최초의 여성 이장으로 2008년 2월, 주민의 추천으로 육곡2구 이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녀는 부여에서 태어나 지금의 남편을 만난 후 결혼 일 년 만인 1977년에 육곡리에 자리 잡게 되었다. 결혼 당시 남편 이진화(63) 씨는 부여 양조장에서 술을 만드는 기술자로 일하고 있었는데 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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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신라 때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이 이곳을 지나다가 산세를 보고, 좌청룡 우백호로서 북서쪽은 높은 지대이고 동남쪽은 낮은 지대여서 수원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므로 거주지로서 신선지라 하여 양지 쪽의 양(陽)자와 산맥의 산(山)자를 따서 양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일설에 의하면 충청북도 영동군 양산에 사는 단양이씨가 이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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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신라 때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이 이곳을 지나다가 산세를 보고, 좌청룡 우백호로서 북서쪽은 높은 지대이고 동남쪽은 낮은 지대여서 수원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므로 거주지로서 신선지라 하여 양지 쪽의 양(陽)자와 산맥의 산(山)자를 따서 양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일설에 의하면 충청북도 영동군 양산에 사는 단양이씨가 이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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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에 있는 조선 중기 학자 김장생의 서재.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1548~1631)은 생전에 관직에 나가는 것보다 연산이나 연산과 가까운 곳에 서재(書齋)를 짓고 문인들과 강학하며 지내는 것을 즐겼다. 양성당은 1602년(선조 35)에 정인홍(鄭仁弘)의 용사(用事)를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벼슬을 그만두고 연산에 내려와 아한정(雅閑亭)의 유지(遺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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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장유가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에 있는 돈암서원의 양성당을 소재로 지은 제영. 양성당(養性堂)은 임진왜란 후 김장생(金長生)이 관직을 버리고 연산으로 낙향하였을 때,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힘을 기울이기 위하여 지은 정자이다. 「양성당 십영(養性堂 十詠)」이라는 동명의 시가 여러 수 있으나 여기서는 당대의 명문장가인 장유(張維)가 사계 김장생에게 바친 시를 대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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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2년 김장생이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에 건립된 양성당을 기념하여 지은 기문.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에는 김장생(金長生)의 아버지인 김계휘(金繼輝)가 건립한 경회당(慶會堂)이 있어 당시 문풍(文風)이 크게 진작되었다. 김장생은 관직을 버리고 연산으로 낙향한 뒤에, 경회당 인근에 양성당(養性堂)을 세워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이에 1634년(인조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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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에 있던 사립학교. 문화운동이 확산되면서 대한제국 이후 교육열은 고조되었으나 학교가 부족하여 만성적인 입학난이 계속되면서 급한 현안으로 부각되었다. 공립보통학교는 입학시험을 통하여 신입생을 선발하는 등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하였는데, 입학 지원자 가운데 30~40% 정도만 수용할 뿐이었다. 학령아동(學齡兒童) 구제를 위한 강습회 운영도 일시적인 미봉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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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양오(養吾). 아버지는 감역(監役) 박흔(朴訢)이고,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이다. 박수진의 아버지 박흔은 1631년(인조 9) 호남에서 양천식(楊天植) 일당이 권대진(權大進)·조철(趙澈) 등과 함께 정한(鄭澣)을 추대하며 반역을 모의하다 사전에 발각된 소위 ‘정한추대사건(鄭澣推戴事件)’ 때 허위로 유포한 기록으로 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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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내수는 1860년 8월 22일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충곡리 416번지에서 출생하였다. 1906년 홍주(洪州) 지역의 민종식(閔宗植) 의진(義陣)에 참가하여 국권회복운동에 힘을 쏟았으며, 1916년 7월에는 이내수 자신의 집에서 홍주 의진 출신인 이용규(李容珪)·이만직(李晩稙)·윤병일(尹炳日)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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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금산 전투에서 전사하여 논산에 정려가 세워진 문신, 의병장.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인경(仁卿), 호는 도곡(道谷). 양응춘은 회덕현감을 지내다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 조헌(趙憲)을 따라 청주에서 왜군을 무찔렀고, 이어서 금산 전투에 참가하여 왜군과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금산 전투에서 전사한 후 이조참의로 증직되었고, 1720년 충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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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안심8리에 있는 조선 후기 충신 양응춘에게 내려진 정려. 양응춘은 청주양씨로, 자는 인경(仁卿)이고, 호는 도곡(道谷)이다. 회덕현감을 지냈으며,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 조헌을 따라 청주성의 탈환전에서 왜적을 무찔렀다. 이어서 금산전투에 참가하여 많은 왜적을 베었으나 조헌과 함께 전사하였다. 이러한 공적으로 이조참의에 추증되고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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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남양홍씨 논산 입향조. 남양홍씨는 홍세구(洪世耇)의 논산 입향 이후 논산 지역에서 대대로 터를 잡고 성장했으며, 노당사·초포사 등의 문중사우를 건립하여 매년 제향을 드리는 등 사족으로서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홍세구(洪世耇)는 윤증과 함께 어려서는 보인당(輔仁堂)에서, 자라서는 양정재(養正齋)에서 동문수학하였다.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선경(善慶), 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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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송정리에 있는 사설 교육기관. 양지서당은 도덕윤리, 인의예지, 효제충신, 인성예절을 기본 바탕으로 하는 한문, 서예, 검도 등을 교육함과 동시에 우리의 전통 문화와 놀이를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설하여 청소년의 정신 교육에 선구자 역할을 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95년 대전광역시 유성구 도룡동에 양지서당을 개원하였다. 2002년 7월 논산시 연산면 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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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에 속하는 법정리. 매화산(梅花山) 아래 양지 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양지편이라 하였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구자곡면(九子谷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마산리(馬山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양지리라 하여 논산군 구자곡면에 편입하였다. 1963년 1월 1일 연무읍이 승격됨에 따라 논산군 연무읍에 편입되었고, 1996년 3월 1일 논산군이 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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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양지리에 있는 양돈단지. 양지리 양돈단지는 1994년 「농촌근대화촉진법」에 의거해 농림부 지원 사업으로서 정부지원금을 지원받아 건립되었다. 논산시 지역은 육군 제2훈련소 연무대를 비롯한 군부대에서 반입된 음식물 찌꺼기를 사료로 활용하면서 양돈단지가 활발히 형성되었다. 양지리 양돈단지 축사는 총 135동이 있으며, 축사의 총 면적은 약 37,934㎡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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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에 속하는 법정리. 매화산(梅花山) 아래 양지 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양지편이라 하였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구자곡면(九子谷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마산리(馬山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양지리라 하여 논산군 구자곡면에 편입하였다. 1963년 1월 1일 연무읍이 승격됨에 따라 논산군 연무읍에 편입되었고, 1996년 3월 1일 논산군이 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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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이 양지 쪽에 있어서 양지편 또는 양촌이라 하였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갈마면(葛麻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노촌리(蘆村里)·가정리(柯亭里)·동구리(洞口里)의 각 일부와 전라북도 고산군(高山郡) 운북면(雲北面) 구만리(九萬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양촌리라 하여 가야곡면에 편입하였다. 1983년 2월 15일 양촌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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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 김문의 처 양천허씨 묘비. 양천허씨는 17세의 나이에 당시 충청도관찰사를 지낸 김약채의 아들 김문과 결혼하였으나 남편이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 어린 나이에 청상과부가 되었다. 양천허씨는 이미 김철산을 임신하고 있었는데, 시집이 있었던 연산면으로 내려와 아들을 낳고 가문이 번창할 수 있도록 밑바탕을 만들어주었다. 양천허씨의 아들인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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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에 설립되어 1950년대까지 충청남도 논산에 있던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교회. 양촌감리교회는 1907년 12월 1일 박일래 목사에 의해 인천교회로 설립되었으나 1921년 큰 홍수로 인해 대파되었다. 이후 1947년까지 교역자 없이 김정숙 전도사가 홀로 교회를 지키면서 운영해왔으나, 1950년 6·25전쟁 발발 당시 양촌 지역을 장악한 공산당이 교회를 접수하여 민청회관으로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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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도평2리에서 생산되는 감식초. 예부터 논산시 양촌면 일대는 대둔산 기슭에 위치하고 논산천이 흐르고 있어 품질 좋은 감의 주산지였다. 양촌감식초는 이곳에서 나는 감을 원료로 재래식 방법으로 발효 숙성시킨 전통식품이다. 양촌면 도평2리에 사는 이봉왕은 감식초 생산 기술을 개발하여 양촌식품이라는 기업을 설립하여 대량 생산에 들어갔다. 양촌식품은 1994년 농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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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에서 생산되는 감을 이용하여 만든 곶감. 양촌면은 지리적으로 북서 계절풍이 강해 통풍이 잘되고 산으로 둘러싸여 먼지가 날리지 않아 깨끗한 자연 조건을 갖추고 있는 곳으로, 수령이 30년 이상인 감나무가 많이 자생하고 있다. 껍질을 깎아 건조해야 하는 곶감 생산지로 매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양촌곶감은 건조할 때 훈증 처리하여 강제 건조하지 않고 자외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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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에서 매년 11월에 열리는 곶감축제. 양촌감이 달고 맛있는 이유는 양촌 지역 감나무들의 수령이 최소 30년 이상 된 고목으로서 감의 육질이 단단하고 당도가 높기 때문이다. 또한 양촌 지역은 북서계절풍이 강하여 통풍에 유리하고, 산지로 둘러싸여 먼지 등이 날리지 않는 청정한 자연 조건으로 인해 천일건조에 알맞은 지역이다. 양촌면은 양촌곶감의 품질을 인정받아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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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군 양촌면의 양촌보통학교 학생들이 단행한 동맹휴학. 양촌보통학교 맹휴사건은 충청남도 논산군 양촌면의 양촌보통학교 학생들이 동맹 휴학을 통해서 일제의 식민지 노예교육에 반발한 학생운동이다. 양촌보통학교는 일제강점 직후에 설립된 양촌면을 대표하는 공교육기관이었다. 그러나 일제는 식민지교육의 취지에 부합하는 충량(忠良)한 신민(臣民)을 육성하는 교육에만 혈안이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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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인천리에 있는 전통 재래시장. 양촌인천시장은 1950년 개설되어 5일장으로 이어온 유래가 깊은 재래시장이다. 주변 인구가 많지 않아 시장 규모는 크지 않았으나, 2000년 이후 교통이 편리해지고 관광지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시장 규모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상설시장과 함께 현재도 매월 2일과 7일 등 5일 간격으로 장이 열리고 있다. 양촌인천시장의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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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인천리에 있는 전통 재래시장. 양촌인천시장은 1950년 개설되어 5일장으로 이어온 유래가 깊은 재래시장이다. 주변 인구가 많지 않아 시장 규모는 크지 않았으나, 2000년 이후 교통이 편리해지고 관광지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시장 규모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상설시장과 함께 현재도 매월 2일과 7일 등 5일 간격으로 장이 열리고 있다. 양촌인천시장의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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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인천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바르고 실력 있는 학생, 개성 있는 학의 육성을 교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재미있게 가르치고 신뢰받는 교원, 꿈과 사랑을 가꾸는 행복한 배움터를 지향하고 있다. 교훈은 ‘착하고 슬기롭게 하루하루를 열심히 생활하자’이다. 1919년 4월 1일 양촌공립보통학교로 개교하였다. 1948년 4월 1일 양촌국민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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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일대에서 생산되는 딸기.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일대는 36년의 딸기 재배 역사를 가지고 있는 전국 최대의 딸기 주산지이다. 이 일대는 비옥한 토양과 맑은 물, 풍부한 일조 조건을 갖추고 있어 딸기의 맛과 향, 당도 등이 우수하며, 전국적으로 명성이 높다. 양촌딸기는 1967년 다나 품종을 도입하여 밭에서 짚 멀칭 노지 재배를 하기 시작하였다. 1973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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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양촌리 가정자마을에서 매년 음력 정월 14일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하여 지내는 마을 제사. 양촌리 가정자 목신제는 가야곡면 양촌리 입구 둥구나무 앞에서 약 70여 년 전부터 부녀자들이 제(祭)를 주관하여 지내 오고 있다. 양촌리의 가정자마을 입구에는 수령이 500여 년으로 추정되는 두 그루의 둥구나무가 있다. 둘레 각 720㎝와 420㎝인 이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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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양촌리 가정자마을에서 매년 음력 정월 14일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하여 지내는 마을 제사. 양촌리 가정자 목신제는 가야곡면 양촌리 입구 둥구나무 앞에서 약 70여 년 전부터 부녀자들이 제(祭)를 주관하여 지내 오고 있다. 양촌리의 가정자마을 입구에는 수령이 500여 년으로 추정되는 두 그루의 둥구나무가 있다. 둘레 각 720㎝와 420㎝인 이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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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이 양지 쪽에 있어서 양지편 또는 양촌이라 하였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갈마면(葛麻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노촌리(蘆村里)·가정리(柯亭里)·동구리(洞口里)의 각 일부와 전라북도 고산군(高山郡) 운북면(雲北面) 구만리(九萬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양촌리라 하여 가야곡면에 편입하였다. 1983년 2월 15일 양촌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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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이 내[川]의 양쪽으로 갈라져 있어 양촌이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전라북도 전주군 양량소면(陽良所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리(新里)·임하리(林下里)의 각 일부와 전라북도 고산군 운북면(雲北面)의 하고리(下高里) 일부를 병합하고 양촌리라 하여 논산군 양촌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3월 1일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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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에 속하는 행정면. 양량소면의 ‘양(陽)’자와 촌면의 ‘촌(村)’자를 따서 양촌이라고 하였다. 백제시대에는 황등야산군에 속하였다가 신라시대에 황산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고려시대로 넘어가면서 연산현에 속하였다가 고려 후기 은산현에 속하게 되었다. 그후 조선시대에는 연산군(連山郡) 모촌면(茅村面) 지역으로, 방축(防築)·신평(新坪)·송정(松亭)·차곡(磋谷)·거사(居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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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에 있던 청년 계몽운동단체. 양촌면 인천청년회는 주민 계몽과 회원 상호간 지식계발을 통한 새로운 시대변화에 부응하는 생활수준을 향상시키고자 설립되었다. 1921년 설립된 양촌면 인천청년회의 초기 임원진은 회장 이재호(李在鎬), 부회장 강영식(姜永植), 총무 서기훈(徐琦勳) 등이었으며, 회원은 64명으로 각 동리 유망한 청장년을 망라하였다. 192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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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의 양촌면에서 전개된 농민조합운동. 양촌면 적기시위는 1930년대 초반까지 농민조합의 결성이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 논산 지역 양촌면의 지역 활동가들과 지주들에게 예속된 머슴들인 농민노동자들이 합세하여 농민조합의 일종인 머슴계를 합법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전개한 혁명적 노동운동이다. 일제강점기 전반의 논산 지역의 농민운동은 삼남 지역에 비해 비조직적이었으며 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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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남당산에서 발원하여 양촌리, 임화리를 흘러 논산천에 합류하는 하천. 양촌리를 흐르는 하천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2010년 말 현재 양촌천은 지방2급하천으로 본류는 금강이며, 제1지류는 논산천이다. 유로 연장은 3.57㎞이고, 유역 면적은 9.34㎢이다. 양촌천은 논산시 남동부의 남당산(376m)에서 발원한 하천이다. 크게 동쪽과 서쪽의 소하천이 임화리 평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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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무신. 본관은 남원(南原). 1588년(선조 21) 무과에 급제하였다. 함창현감으로 재직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신립(申砬)과 함께 충주 탄금대 아래 달천에서 배수진을 치고 적을 맞아 악전고투하면서 마지막까지 선전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패하고 전사하였다. 묘는 노성면 가곡리에 있다. 당시 양함은 29세로 시신도 거두지 못한 채 장사지냈는데, 이때 나라에서 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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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신충리에 있는 조선 말기 충신 양함의 정려. 양함(1564~1592)은 본관이 남원으로 1588년(선조 21) 무과에 급제하였고, 함창현감을 지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출전하여 신립과 함께 충주 탄금대 아래 달천에서 배수진을 치고 적을 맞아 최후까지 선전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전사하였다. 양함이 죽은 후 300여 년이 지난 1886년(고종 23)에 명정을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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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똥을 거름으로 쓰기 위해 옮길 때 쓰는 농기구. 주로 봄에 변소에서 삭힌 똥을 바가지로 퍼 똥장군에 담고, 짚으로 된 뚜껑을 닫아 똥지게로 옮긴다. 논이나 밭에 가서 뚜껑을 열고 작은 바가지로 퍼서 뿌린다. 논산 지역에서는 똥장군을 앵병, 얭병이라고도 부른다. 현재는 똥을 거름으로 쓰지 않기 때문에 똥장군을 사용하지 않는다. 똥장군은 흙으로 구운 옹기단지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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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이 골짜기에 길게 늘어져 있다 하여 느락골 또는 어라동·어곡이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벌곡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풍리(新豊里)·서근야미리(西斤夜味里)·내어곡리(內於谷里)·사삼암리(思三岩里)·외어곡리(外於谷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어곡리라 하여 논산군 벌곡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3월 1일 논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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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에서 물의 흐름을 이용하여 고기를 잡는 방법. 어덕매기는 선조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자연을 이용한 고기잡이로 전통적인 ‘어살[漁箭]’ 어법을 내수면 어법으로 변용한 것이다. 어살이란 물고기를 잡는 장치로, 고기가 들도록 물이 드나드는 곳에 싸리·참대·장나무 등을 둘러 꽂아 둔 울타리를 일컫는다. 금강 하구에 속한 강경읍 주변에서는 예전부터 물이 드나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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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시장의 상인회는 연산시장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단체이다. 상인회는 2006년에 연산재래시장이 설립되고 상가들이 하나둘씩 입점하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조직되었다. 16개 상점에 24명으로 재래시장에 점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자동적으로 가입이 된다. 시장이 생긴 바로 직후에는 상가의 번영회장이 상인회의 회장직까지 겸해서 일을 처리하였다. 그러나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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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이 골짜기에 길게 늘어져 있다 하여 느락골 또는 어라동·어곡이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벌곡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풍리(新豊里)·서근야미리(西斤夜味里)·내어곡리(內於谷里)·사삼암리(思三岩里)·외어곡리(外於谷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어곡리라 하여 논산군 벌곡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3월 1일 논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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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에서 민물고기를 잡기 위해 사용하던 도구. 얼개미는 본래 곡식이나 가루 등을 치는 큰 체로서 곡물을 선별할 때 쓰이는 도구이다. 논산 지역 외에도 여러 지역에서 오래 전부터 냇가에서 작은 민물고기를 잡을 때 사용하였다. 실생활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얼개미를 이용하여 냇가에 있는 고기를 떠내는 방식은 가장 원시적이면서 손쉬운 어로 방식의 하나였다. 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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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굵은 가루를 걸러 내기 위해 만든 도구. 어떤 조직이나 단체에서 우수한 사람들만 따로 선발하는 일을 얼게미의 기능에 빗대어 “얼게미로 친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굵은 가루를 걸러 내는 얼게미에 비해 콩고물처럼 가는 가루를 내리는 도구를 곤체라고 한다. 1970년대까지는 얼게미를 만들 때 송판으로 쳇바퀴를 만들었으나 요즘은 플라스틱으로 쳇바퀴를 만들고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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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8일 아침. 부녀회원들은 음식준비에 여념이 없고 이장과 새마을 지도자, 동계 임원들은 전체 행사의 진행을 위해 분주히 돌아다닌다. 이날은 어버이날이자 주곡리 마을의 노인잔치 날이다. 이제 행사가 1시간 남짓 남았다. 곧 있으면 동네 모든 이들이 모여 한바탕 축제를 벌일 것이다. 올해에는 부녀회에서 특별히 생선회와 떡을 비롯한 돼지고기, 홍어, 과일 등 많은 음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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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의 시화로 쌍떡잎식물 용담목 물푸레나무과의 낙엽 관목. 관상용·산울타리용으로 많이 재배하며 4월에 노란꽃이 피는 개나리는 봄소식을 제일 먼저 전해 주는 꽃이기도 하다. 논산 시화(市花)로서의 개나리는 새날을 연다는 뜻으로 미래에 대한 논산시민의 희망을 상징하고 있다. 높이는 3m 내외이다. 가지 끝이 밑으로 처져 덩굴 모양을 하기도 한다. 어린 가지는 녹색이나 점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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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탑정리에 있는 고려 전기 절터. 기록에 따르면 고려시대 왕건이 남하하여 견훤을 정벌할 때 탑정리에 주둔하여 어린사를 짓고 절 주변에 성을 쌓았다고 하나 일제강점기에 탑정저수지를 조성하면서 수몰되었다. 탑정저수지를 조성하면서 수몰되어 규모나 크기를 알 수 없다. 지금은 당시 절 안에 있었던 논산 탑정리 석탑만이 저수지 제방 끝에 자리 잡고 있다. 원래는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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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농작물이나 거름을 운반하기 위해 만든 농기구. 어림이는 삼태기의 일종으로 주로 고구마·감자·토란 등과 같이 크기가 있는 농작물을 담아 가까운 거리로 옮길 때 지게에 짊어지거나 또는 우마차에 실을 때 사용하던 농업용 작업 도구이다. 거름을 담아서 지게에 지거나 논밭에 흩뿌릴 때도 사용하였다. 논산 지역에서는 보통 싸리삼태미라고 불렀다. 1970년대까지 농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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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은골 또는 어은, 어은동이라 하였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백석면(白石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사현리(沙峴里)·송리(三松里)·산소리(山所里)·일음리(日音里)·탄동리(炭洞里)·덕곡리(德谷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고 어은리라 하여 논산군 연산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3월 1일 논산군이 논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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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은골 또는 어은, 어은동이라 하였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백석면(白石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사현리(沙峴里)·송리(三松里)·산소리(山所里)·일음리(日音里)·탄동리(炭洞里)·덕곡리(德谷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고 어은리라 하여 논산군 연산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3월 1일 논산군이 논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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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어은1리에 있는 돌탑. 논산시 연산면 어은1리 일은골로 접어드는 어은지(漁隱池) 북동쪽 끝자락 옆에 있다. 마을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본래 길 양쪽에 탑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1기만 남아 있다. 마을 주민들은 그냥 ‘탑’이라고 부른다. 어은리 일은골 방사탑은 높이 2.7m, 둘레 3.6m의 둥근 기둥 모양의 돌탑이다. 마을 공동 의례는 없으나, 외지의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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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매체를 통하여 여론을 형성하거나 인쇄물을 제작·복제하여 출간하는 일의 총칭. 일반적으로 언론은 담화·토론·연설·연극·방송·음악·영화 등 구두(口頭)를 통한 사상 발표를 말하며, 출판은 문서·서적·도화·사진·신문·잡지·조각 등 문자 및 상형(象形)에 의한 사상 발표를 의미한다. 그러나 두 용어 모두 개인이나 집단의 의견이나 사상을 외부에 발표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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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의 음성이나 문자의 사회관습적인 체계. 언어란 특정의 계층 또는 지리적 공간의 언어 집단에서 쓰이면서 다른 언어 집단의 언어 체계와는 구별되는 특징을 가진 한 언어의 변이체이다. 지역 언어란 표준어를 기준으로 한 음운, 어휘, 문법에서 크든 작든 차이가 있는 언어를 뜻한다. 언어학에서는 지리적·사회적으로 분화되어 생겨난 분화체로서 특정 지역이나 특정한 사회 계층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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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언효(彦孝). 아버지는 박이현(朴而絢)이다. 박영서는 무과에 급제하여 옥구현감에 창성부사가 되었다. 1624년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선봉장이 되어 남이흥(南以興), 정충신(鄭忠信) 등과 난을 토벌하다 포로로 잡혔는데, 이괄의 회유에 굴하지 않아 사살되었다. 시호는 충장(忠壯)이며, 사후에 병조참판에 추증되었다. 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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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에서 민물고기를 잡기 위해 사용하던 도구. 얼개미는 본래 곡식이나 가루 등을 치는 큰 체로서 곡물을 선별할 때 쓰이는 도구이다. 논산 지역 외에도 여러 지역에서 오래 전부터 냇가에서 작은 민물고기를 잡을 때 사용하였다. 실생활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얼개미를 이용하여 냇가에 있는 고기를 떠내는 방식은 가장 원시적이면서 손쉬운 어로 방식의 하나였다. 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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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굵은 가루를 걸러 내기 위해 만든 도구. 어떤 조직이나 단체에서 우수한 사람들만 따로 선발하는 일을 얼게미의 기능에 빗대어 “얼게미로 친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굵은 가루를 걸러 내는 얼게미에 비해 콩고물처럼 가는 가루를 내리는 도구를 곤체라고 한다. 1970년대까지는 얼게미를 만들 때 송판으로 쳇바퀴를 만들었으나 요즘은 플라스틱으로 쳇바퀴를 만들고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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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굵은 가루를 걸러 내기 위해 만든 도구. 어떤 조직이나 단체에서 우수한 사람들만 따로 선발하는 일을 얼게미의 기능에 빗대어 “얼게미로 친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굵은 가루를 걸러 내는 얼게미에 비해 콩고물처럼 가는 가루를 내리는 도구를 곤체라고 한다. 1970년대까지는 얼게미를 만들 때 송판으로 쳇바퀴를 만들었으나 요즘은 플라스틱으로 쳇바퀴를 만들고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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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굵은 가루를 걸러 내기 위해 만든 도구. 어떤 조직이나 단체에서 우수한 사람들만 따로 선발하는 일을 얼게미의 기능에 빗대어 “얼게미로 친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굵은 가루를 걸러 내는 얼게미에 비해 콩고물처럼 가는 가루를 내리는 도구를 곤체라고 한다. 1970년대까지는 얼게미를 만들 때 송판으로 쳇바퀴를 만들었으나 요즘은 플라스틱으로 쳇바퀴를 만들고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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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산성리 논산천과 금강에 서식하는 동사리과에 속하는 민물고기. 얼룩동사리는 동사리와 구별하기 어려우며 심하게 납작하지 않은 점과 무늬가 약간 차이가 있으나 일반적으로 동사리와 구별하지 않는다. 산란기에 ‘구구’ 하는 소리를 내기 때문에 구구리라 부르기도 한다. 몸길이는 약 10~15㎝이다. 몸의 앞부분은 단면이 거의 원통형이지만 뒤로 갈수록 옆으로 납작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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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대명리에서 김매기를 할 때 부르던 농업노동요. 볏모를 이식하고 나서 활착하게 되면 논에 난 잡풀을 제거하는데, 논산 지역에서는 이와 같은 잡풀 제거 작업을 ‘김맨다’고 하였다. 「얼카산이냐」는 이 김매기를 할 때 부르던 노동요이다. 이소라가 조사·채록하여 2005년에 출간된 『논산시지』에 수록하였다.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대명리의 자료는 주민 박명종이 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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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엄창섭은 1892년 12월 12일 전라북도 익산군[현 익산시] 웅포면 대붕암리 47번지에서 출생하였다. 충청남도 부여군 세도면 청포리 사립 창영학교(昌永學校) 교사로 재직 중이던 1919년 전라북도 군산 영명학교(永明學校) 학생 강금옥의 권유를 받고 강경에서 이른바 ‘강경 옥녀봉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심한다. 강경 옥녀봉 만세시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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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소설가. 엄흥섭은 1906년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채운면에서 태어났다. 경남도립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진주에서 교사 생활을 하면서 『습작시대』, 『백웅(白熊)』, 『신시단』 등의 편집동인으로 활동했다. 이때부터 사회주의 사상에 경도되어 1929년 카프(KAPF)에 가담하고 같은 해에 『조선문예』에 「세 거리로」를 발표하였다. 또 이듬해 『조선지광(朝鮮之光)』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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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집안의 재복과 행운을 관장하는 가신의 하나. 업은 다른 가신(家神)과는 달리 흔히 동물의 형상으로 상징화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 종류는 구렁이업과 족제비업이 가장 흔하지만, 이밖에도 두꺼비업, 인업(人業), 송아지지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업신의 좌정처는 뒤꼍이나 광에 있다고 관념된다. 형태는 특별한 신체(神體)를 모시지 않은 경우가 많다. 다만 가정에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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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동산리에 있는 요보호 아동을 위한 보육 시설. 에덴보육원은 「아동복지법」 제1조, 제2조 1항과 2항에 근거하여 18세 미만의 아동 중 보호자가 없거나 보호자로부터 이탈된 아동, 양육하기에 부적당하거나 양육할 능력이 없는 경우의 아동을 보호하고 양육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63년 11월 12일 재단법인 에덴영아원으로 설립 인가를 받아 1964년 2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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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대명리에서 논을 매면서 바숨형 논맴소리 뒤에 풍장굿을 쳐가며 부르던 농업노동요. 「쌈 소리」는 농부들이 논을 다 매 갈 무렵, 선소리꾼이 처음에 ‘우-아-아-’ 하고 소리 내는 것을 신호로 에염을 싸 가면서 하던 소리이다. 따라서「쌈 소리」를 논산 지역의 「옹골 소리」처럼 일반적인 「에염 싸는 소리」로도 이해할 수 있다. 2002년에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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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동산리에 있는 인터넷신문. 엔에스아이뉴스는 급속한 정보 통신 사회에서 실시간으로 뉴스를 보도하고, 수용자가 원하는 내용을 원하는 시간에 수용할 수 있게 하며, 보급자와 수용자 간 의사 소통의 장을 마련하고, 전국 뉴스는 물론 지역 뉴스 및 정보를 무료로 제공하기 위해 2005년 9월 8일 설립되었다. 엔에스아이뉴스는 신개념 열린 인터넷 신문을 지향하여 명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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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여망(汝望), 호는 석호(石湖). 아버지는 대사간 윤황(尹煌)이며, 어머니는 창녕성씨(昌寧成氏)로 성혼(成渾)의 딸이다. 1630년(인조 8) 생원시에 합격하고, 1633년 식년문과에 급제한 뒤 승정원주서·세자시강원설서·예조좌랑·병조좌랑을 거쳐 제천현감·춘추관수찬관 등을 역임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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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유익을 시조로 하고 송전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여산은 현 전라북도 익산이다. 여산송씨 시조 송유익(宋惟翊)은 고려 때 진사로 나라에 공훈을 세워 여산군에 봉해졌으며 은청광록대부로 추밀원부사에 추증되었다. 문헌에 의하면 송유익의 선계는 중국의 경조 출신으로 당나라에서 호부상서를 지낸 송주은의 후손 송자영이다. 송자영은 슬하에 아들 3형제를 두었는데, 장남 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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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에 있는 고려 후기부터 조선 전기까지의 여산송씨 묘역. 여산송씨는 고려 후기부터 조선 전기까지 연산면 화악리에 입향하여 연산 지역에서 토착 세력으로서의 세력을 확대해 나갔다. 연산면 면소재지에서 우회전하여 지방도 697호선을 따라 3㎞ 가면 오른쪽으로 국도 1호선과 만난다. 국도 1호선을 따라 3㎞가량 가다가 계백로에서 화악리 방면으로 우회전하여 충청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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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개관한 ‘농협중앙회 농업박물관’에서는 「神農遺業」(신농유업)이라는 글자가 크게 쓰인 농기가 있다. 이 농기의 크기는 가로 240cm, 세로 360cm 정도이며 지금은 남아 있지 않은 깃대는 그 높이가 무려 15~17m에 이르렀다고 하니, 당시 농번기마다 들썩였을 두레의 규모를 상상해 볼 만하다. 1906년에 만들어졌다는 바로 이 농기가 다름 아닌 주곡리 마을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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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의병. 본관은 순천. 자는 여수(汝粹). 아들은 박영서이다. 박이현은 남명 조식과 덕계 오건에게 경학을 배웠으며, 창애서실을 지어 경전을 연구하고 성정을 도야하였다. 평소 충절의 의기가 높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의병장 고경명과 함께 경상북도 성주와 전라북도 무주에서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적을 쫓아 대교평에 이르렀다가 치열한 전투 끝에 적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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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우곤리에서 여수고개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여수란 ‘여우’의 방언으로 강원도·경상남도·전라도·충청도 지방에서 통용되는 말이다. 1981년에 논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우곤리에 고개가 하나 있는데, 이 고개를 여수고개라 한다. 옛날에 이 고개에는 수목이 우거져 있었고 민가도 드물어 밤에는 혼자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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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백제 때 덕은(德恩)이란 고을이 있었던 곳으로. 태봉산을 등지고 뻗어 내려온 야산에 낮은 골짜기 6개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본래 백제의 덕은고을이 있던 곳으로 조선 3대 태종 때 은진(恩津)에 속했다가 상두면(上豆面)에 편입되어 여수울·여술·육곡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하두면(下豆面) 야촌리(野村里)의 일부를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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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백제 때 덕은(德恩)이란 고을이 있었던 곳으로. 태봉산을 등지고 뻗어 내려온 야산에 낮은 골짜기 6개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본래 백제의 덕은고을이 있던 곳으로 조선 3대 태종 때 은진(恩津)에 속했다가 상두면(上豆面)에 편입되어 여수울·여술·육곡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하두면(下豆面) 야촌리(野村里)의 일부를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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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모촌리에서 여우골짜기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92년에 논산군에서 간행한 『내 고장 으뜸가꾸기 마을이야기 모음』6-양촌에 수록되어 있다. 옛날 지금의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모촌리는 평화로운 산골 마을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마을에 불여우 두 마리가 나타났다. 불여우가 나타나기 시작한 후부터 매일 닭이 없어졌다. 마을 사람들은 중론을 모아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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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 자는 여익(汝翼), 호는 퇴어(退漁). 김장생의 현손이며, 할아버지는 참판 김익훈(金益勳)이다. 아버지는 김만채(金萬埰)이며, 어머니는 이항(李杭)의 딸이다. 김진상은 1699년(숙종 25) 진사가 되었으며, 1712년(숙종 38)에 정시문과 응시 병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설서·지평 등의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고, 1720년(숙종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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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백을 시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여주이씨는 시조를 달리하는 세 파가 있다. 이들 세 파는 이인덕(李仁德)을 시조로 하는 교위공파와 이은백(李殷伯)을 시조로 하고 이규보(李奎報)를 중시조로 하는 문순공파, 이세정(李世貞)을 시조로 하는 경주파이다. 이 세 파의 여주이씨는 다 같이 고려 중기에 경기도 여주에 정착하여 대대로 호장(戶長)·향공진사(鄕貢進士) 등 향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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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의병. 본관은 성주. 자는 여호(汝豪). 청송당(靑松堂) 도응(都膺)의 7세손이며, 아버지는 참의 도수례(都守禮)이다. 도진민은 종형과 함께 사계 김장생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591년(선조 24)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충청북도 옥천에서 중봉(重峯) 조헌(趙憲)이 의병을 일으킨다는 소식을 듣고 도군민·도호민·도우민 등 형제와 다른 종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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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활동하는 신종교 단체. 여호와의증인은 천년 왕국 신앙, 성서적 엄격주의 등 미국 프로테스탄트 신앙의 독특한 흐름을 바탕으로 19세기 후반 미국에서 발생한 기독교 종파의 하나로, 공식 이름은 워치타워성서책자협회(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이다. 여호와의증인은 「이사야서」 43장 10절에 기록된 “너희가 바로 나의 증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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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유생.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여화(汝和), 호는 기기재(棄棄齋)·묵계(默溪). 광성군(光城君) 김겸광(金謙光)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김하겸(金夏兼)이고, 어머니는 진사 이중과(李仲科)의 딸로서 전의이씨(全義李氏)이다. 큰아버지 김용겸(金用兼)에게 입양되었다. 김상연은 어릴 적 할아버지에게서 배웠으며 효성이 지극하였다. 1716년(숙종 42) 부친상을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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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을 중심으로 구성된 사회의 변천 과정과 과거의 사실. 현재까지 조사·발굴된 유적이나 유물에 의하면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의 인간 사회의 형성과 전개는 청동기시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청동기시대를 전후하여 현재까지의 충청남도 논산 지역의 역사는 선사시대, 삼국시대, 통일신라~고려시대, 조선시대, 근대~현대로 나눌 수 있다. 논산 지역은 자연 지리적으로 동고서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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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남도 논산 지역의 역로에 세워져 국가가 경영한 여관. 역원에서의 '역'은 전근대시대에 중앙정부와 지방 간의 효율적인 연결망을 구축하기 위해 설치한 교통 통신 조직의 일종이며, 원은 고려시대·조선시대에 출장하는 관원들을 위해 각 요로(要路)와 인가가 드문 곳에 둔 국영 숙식 시설의 일종이다. 역과 관련되어 설치되므로 보통 역원이라 하였다. 조선시대 논산 지역에서는 남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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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양리에서 표정리에 있는 매봉의 역적날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표정리에 매봉이란 이름의 산이 있다. 산의 모양이 매를 닮은 데에서 이러한 이름이 붙었는데, 산의 상봉을 중심으로 좌우의 산줄기가 마치 매가 날개를 펼친 모양과 같다. 이 매봉의 한쪽 날개 부분을 역적날이라고 한다. 2001년 11월 3일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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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곡물의 겉을 싸고 있는 깍지를 두드려 알곡을 빼내는 데 쓰는 농기구. 먼 옛날 보리의 겉껍질을 벗기거나 콩깍지로부터 콩알을 분리할 때 작은 막대기로 두들기던 것이 발전하여 도리깨가 생겨났을 것이다. 탈곡기가 일반화되기 이전까지는 농가에서 직접 도리깨를 만들어 사용했으나 탈곡기가 일반화되고 농촌의 작물 재배 경향이 벼농사와 특용작물로 재편되면서 보리, 콩, 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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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의 시화로 쌍떡잎식물 용담목 물푸레나무과의 낙엽 관목. 관상용·산울타리용으로 많이 재배하며 4월에 노란꽃이 피는 개나리는 봄소식을 제일 먼저 전해 주는 꽃이기도 하다. 논산 시화(市花)로서의 개나리는 새날을 연다는 뜻으로 미래에 대한 논산시민의 희망을 상징하고 있다. 높이는 3m 내외이다. 가지 끝이 밑으로 처져 덩굴 모양을 하기도 한다. 어린 가지는 녹색이나 점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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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음력 정월 초부터 대보름 사이에 연을 날리며 노는 민속놀이. 연날리기는 청소년들 사이에서 성행했던 정월의 대표적인 전래놀이이다. 연날리기를 하는 장소는 장애물이 없는 넓은 공터나 제방, 언덕 같은 곳이 안성맞춤이다. 연은 형태와 명칭에 따라 무려 70여 종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논산 지역에서는 주로 방패연·가오리연·꼬리연 등이 사용되었다. 연은 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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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동산리에 있는 사립 고등학교. 진취적인 자세와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 있는 창의인, 예절이 바르고 자주적으로 실천하는 품성을 지닌 도덕인, 이웃을 존중하고 서로 협력하는 협력인, 튼튼한 몸으로 밝고 아름답게 사는 습성을 지닌 건강인의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계획하여 실천하고 반성하자’이다. 1975년 11월 24일 설립인가를 받았으며,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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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황화정리에 있는 2급 관광호텔. 1993년 11월 5일 에버그린관광호텔 건물을 착공하여 1995년 3월 28일 준공하였다. 1995년 7월 5일 개관하였으며 다음 날인 6일 숙박업 허가를 취득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에버그린관광호텔은 지하 1층 지상 5층 건물로 한실·스위트룸·트윈룸 등 50여 개의 객실, 한식당, 커피숍, 사우나, 대형 웨딩홀, 중대형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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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죽본리에 조성된 농공단지. 농공단지는 1984년 제정된 「농어촌소득원개발촉진법」을 근거로 농촌 지역에 조성된 소규모 공단을 의미한다. 주로 도시와 농어촌 간 소득 격차를 줄이기 위해 농촌의 유휴 인력을 이용한 농산물 임가공·섬유 업체 등을 유치하고 있다. 공해 업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업종 제한이 없다. 연무농공단지는 공장입지를 마련하는 데 애로를 겪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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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안심리에 있는 공공 도서관. 연무도서관은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가야곡면, 은진면 지역의 주민을 위한 정보의 공간 및 생활문화의 공간을 제공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1996년 7월 1일 도서관 건물을 착공하고 1997년 8월 6일 준공하였다. 1998년 4월 3일 정식으로 개관하였으며, 2001년 7월 20일 연무읍장을 도서관장으로 임명하였다.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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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마산리에 있는 천주교 대전교구 소속 성당. 연무성당은 예수그리스도의 삶을 따라 살아가는 교회 공동체 정신으로 지역 사회를 복음화시키고, 모든 이가 하느님의 구원에 동참하도록 빛과 소금의 역할을 지향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조선 왕조가 천주교를 박해하던 시기 경기도 일대와 충청남도 지역의 신자들은 박해를 피해 전라북도와 충청남도 경계 지역의 전라북도 고산 일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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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안심리에서 열리는 전통 재래시장. 연무안심시장은 육군 제2훈련소가 있는 연무읍 안심리에 있는 재래시장이다. 1950년대 훈련소가 세워지면서 군인 가족이 이주해 오자 자연스레 시장이 들어선 뒤 규모가 확대되어 1960년 정식으로 개설되었다. 연무안무시장의 대지면적은 9,542㎡이고, 연면적은 5,891㎡이다. 전체 상점 수는 135개이다. 점포는 98개, 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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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동산리에 있는 사립 여자중학교. 올바른 국가관과 시대의식을 확립한 학생, 봉사정신과 절제력을 가진 학생, 창조적인 정신과 진취적인 자세를 갖춘 학생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진(眞)·선(善)·미(美)’이다. 1969년 2월 25일 힐째인 초대 이사장이 취임하였으며, 1970년 3월 3일에 순의도여자중학교로 개교하였다. 1973년 3월 19일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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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동산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슬기롭게 해결하는 실력 있는 학생, 고운 심성으로 예절을 실천하는 학생, 건강한 몸으로 안전하게 생활하는 학생, 이치를 탐구하고 도전하는 학생, 우리 문화를 지키고 사랑하는 학생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65년 9월 1일에 연무중앙국민학교로 인가를 받았으며, 1965년 9월 7일에 연무중앙국민학교로 개교하였다.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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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안심리에 있는 공립 중학교. 공동체 의식과 민주시민 의식을 갖춘 사람, 부모에게 효도하고 도덕성을 지닌 사람, 자기주도적으로 노력하여 실력 있는 사람, 창의적인 학습능력을 지닌 사람, 건강한 심신을 지닌 사람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성실·자율’이다. 1960년 1월 8일 3학급의 황화중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았으며, 1960년 4월 9일에 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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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금곡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개성을 추구하는 학생, 창의력을 발휘하는 학생, 진로를 개척하는 학생,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학생, 더불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학생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59년 4월 20일 연무대국민학교로 개교하였다. 1981년 3월 9일 병설유치원을 개원하였다. 1996년 3월 1일 연무대초등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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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에 있는 육군 훈련병 양성소. 육군훈련소는 6·25 전쟁 당시 제주도에 위치한 제1훈련소가 훈련장과 병영 시설 등 제반 여건이 미비하고 보급 및 수송에 불편함이 있어, 기본전투 수행 능력을 구비한 보충 병력을 효율적이고 신속하게 양성하기 위하여 창설되었다. 1951년 11월 1일 제2훈련소가 창설되었으며, 1960년 4월 1일에는 제2군사령부에 예속되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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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안심리에 있는 버스터미널. 연무대 고속버스터미널 앞에는 연무로터리가 있으며, 연무읍에서는 가장 번화한 곳에 있다. 한편, 천안논산고속도로가 뚫리면서 논산 지역에서 전주로 들어가는 길목의 역할을 연무대 고속버스터미널 앞의 연무로터리가 하고 있다. 연무대 고속버스터미널은 단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층에 매표소가 있다. 2008년 현재 서울시 서초구 반포동의 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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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마산리에 있는 실업계 공립 고등학교. 바른 생활 습관을 바탕으로 한 예절 바른 사람, 기초학력을 튼튼히 하는 창의적인 사람, 기술인의 꿈을 키우며 탐구하는 사람, 심신이 건강하고 정서가 풍부한 조화로운 사람,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사는 지혜로운 사람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67년 3월 13일에 연무대중학교와 병설로 연무대공업고등학교가 개교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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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안심리에 있는 기차역. 연무대역은 1958년 5월 15일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하였으며, 역명은 인근에 위치한 육군 제2훈련소 연무대의 명칭을 따서 지었다. 1963년 11월 5일 1.5㎞에 이르는 군전용선을 개통하였다. 1992년 8월 28일 군전용선 내 역사를 준공하였고, 1994년 12월 24일 성신양회 전용선 영업을 개시하였다. 2002년 12월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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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마산리에 있는 천주교 대전교구 소속 성당. 연무성당은 예수그리스도의 삶을 따라 살아가는 교회 공동체 정신으로 지역 사회를 복음화시키고, 모든 이가 하느님의 구원에 동참하도록 빛과 소금의 역할을 지향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조선 왕조가 천주교를 박해하던 시기 경기도 일대와 충청남도 지역의 신자들은 박해를 피해 전라북도와 충청남도 경계 지역의 전라북도 고산 일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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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마산리에 있는 천주교 대전교구 소속 성당. 연무성당은 예수그리스도의 삶을 따라 살아가는 교회 공동체 정신으로 지역 사회를 복음화시키고, 모든 이가 하느님의 구원에 동참하도록 빛과 소금의 역할을 지향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조선 왕조가 천주교를 박해하던 시기 경기도 일대와 충청남도 지역의 신자들은 박해를 피해 전라북도와 충청남도 경계 지역의 전라북도 고산 일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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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채운면 삼거리에 있는 채운역과 연무읍 안심리 연무역을 잇는 군용 철로. 전체 길이는 약 6.1㎞이며, 논산시 채운면과 연무읍을 가로질러 남동 방향으로 부설되어 있다. 총 공사비는 내자 약 1억 6000만 원과 외자 24만 달러가 투입되었으며, 연 40,420명의 근로자와 2,570명의 교통부 직원 및 군 병력 2개 대대가 동원되었다. 연무선은 육군 제2훈련소(일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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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안심리에 있는 기차역. 연무대역은 1958년 5월 15일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하였으며, 역명은 인근에 위치한 육군 제2훈련소 연무대의 명칭을 따서 지었다. 1963년 11월 5일 1.5㎞에 이르는 군전용선을 개통하였다. 1992년 8월 28일 군전용선 내 역사를 준공하였고, 1994년 12월 24일 성신양회 전용선 영업을 개시하였다. 2002년 12월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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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에 속하는 읍. 6·25전쟁이 끝난 후 육군 제2훈련소가 구자곡면 지역에 창설되고, 군인들이 훈련받는 곳이라는 뜻으로 연무대(鍊武臺)라고 명명한 데서 비롯되었다. 백제와 신라시대 때는 덕은군과 여산군으로 불리다가 고려시대에 시율현·피제현으로 불렸으며, 조선시대에는 대은진현·공촌면으로 불렸다. 그 후 은진군(恩津郡) 구자곡면(九子谷面)으로, 서촌(西村)·무동(武洞)·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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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율리에서 배와 도라지, 생강을 넣어 달여 상품화한 배즙. 예부터 배는 한방의 주요 약재로 활용될 만큼 인체에 유익한 과일로 알려져 있다. 『본초강목(本草綱目)』에 의하면 배는 맛은 달고 차가우며 무독하고, 즙을 내어 복용하면 좋다고 하였다. 논산시에서는 광석면을 중심으로 소득 작목으로서 신고배를 재배해 왔다. 그동안 품질이 우수한 논산배의 가공 식품화를 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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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귀부석. 연산공원 귀부석은 연산면 연산리 연산공원 안 낮은 구릉 진입로 입구에 있는데, ‘연산공원’이라고 새긴 비신을 얹고 있다. 지금의 위치가 본래의 자리는 아닌 듯한데, 본래는 연산공원 일대 관아 터 유적에 세워진 것으로 생각된다. 연산공원 귀부석은 네 발이 구부러져 있고 발톱무늬가 선명하며, 꼬리는 ㄴ자로 꺾여 있다. 전체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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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양촌면에 결성되어 활동한 항일 비밀 결사 단체. 1941년 태평양전쟁을 시작한 일제는 전시 체제로의 전환과 함께 조선에 대한 인적·물적 수탈을 감행하였다. 인적 수탈로는 이전의 지원병제도를 1943년에는 학도지원병제로, 1944년에는 징병제로 바꾸어 강행하였으며 물적 수탈로 국가총동원법을 시행하여 전시에 필요한 물자를 강제 징발하였다. 연산국수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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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송정리에 조성된 농공단지. 농공단지는 1984년 제정된 「농어촌소득원개발촉진법」을 근거로 농촌 지역에 조성된 소규모 공단을 의미한다. 주로 도시와 농어촌 간 소득 격차를 줄이기 위해 농촌의 유휴 인력을 이용한 농산물 임가공·섬유 업체 등을 유치하고 있다. 공해 업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업종 제한이 없다. 연산농공단지는 연산면과 두마면(현 계룡시) 일대의 농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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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일대에서 생산되는 특산 대추. 연산대추는 연산면 인근의 벌곡면, 양촌면, 전라북도 운주면 일대에서 많이 생산되는 것을 연산에 사들여와 다른 지방에 팔기 시작하면서부터 생긴 이름이다. 이후 연산면을 중심으로 대추 거래가 활발해져 전국적인 대추 집산지가 되었고, 이로써 대추 구입을 위해 연산을 찾는 소비자가 늘면서 ‘좋은 품질의 대추는 연산대추’라는 이미지를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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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에서 매년 10월에 열리는 대추 축제. 1965년 전후로 논산 지역의 연산, 벌곡, 양촌에는 아름드리 대추나무가 많이 있어 가을에는 집집마다 대추 따는 소리가 메아리를 울렸고, 또한 그 밑에서 돌을 던져 대추를 따먹고 놀던 아이들도 많이 있었다. 이들 지역에서 수확한 대추는 수레로 운반하여 주로 논산에서 매매가 이루어졌다. 그러다 연산의 상인들은 논산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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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덕암리에 있는 백제시대 고분군. 연산에서 공주 방향 도로를 따라 약 8㎞ 정도 가면 연산면 덕암리에 이른다. 덕암리 고분군은 덕암리 행경마을 뒷산에 위치한다. 고분군은 서쪽 방향으로 흘러내린 구릉 남사면의 비교적 경사가 심하게 이루어진 곳에 입지해 있다. 1992년 10월 28일 논산시 향토유적 제4호로 지정되었다. 고분은 대부분 입구를 남쪽으로 향한 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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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과 은진면 일대에서 일어난 농민 폭동 사건. 조선 말기 삼정(三政)의 문란과 지배층의 과중한 착취, 세도정치의 불합리성, 문호개방 이후 급속히 증가한 국가지출 등은 농민에게 2중 3중의 부담을 지웠다. 여기에 더하여 조세의 징수관인 아전(衙前)의 행패 또한 극심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1862년(철종 13) 2월 진주에서 민란이 일어나 삼남 전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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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에서 매년 백중에 열리는 두레먹이. 연산 백중놀이는 논산시 두마면 왕대리[지금의 계룡시]를 중심으로 하는 열두 두레의 ‘합두레먹이’로 전승되었던 놀이인데, 1989년 연산면 청동리에서 연산 백중놀이로 새롭게 복원되었다. 이 놀이는 두레먹이[호미씻이]의 특징이 잘 녹아 있는 대동놀이이자 지역 축제의 성격을 띤다. 흔히 두레먹이는 자연 마을 단위로 베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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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송정리에 있는 고려시대 마애불. 연산면 면소재지에서 대전 방향으로 3㎞쯤 가면 송정리 하송마을에 이르는데, 이곳의 서쪽 산 능선에 있다. 지리적 위치로 보면 계룡산 줄기의 남단에 해당한다. 연산 송정리 마애삼존불 앞 왼쪽에 개태사가 있다. 높이 4.3m, 너비 3.5m의 수직 화강암 벽에 선각한 입상의 삼존불이다. 불상의 높이는 본존불 3.2m, 우협시불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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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전통 재래시장. 연산시장(일명 연산장)은 1911년에 개설된 유래가 깊은 재래시장이다. 1950~1960년대만 해도 연산면은 물론 인근의 양촌면, 벌곡면, 부적면, 노성면 등에서 장을 보러 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였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농촌 인구가 감소하고 대전광역시가 팽창됨에 따라 면세(面勢)가 점차 위축되면서 연산시장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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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연산현 관아를 출입하였던 정문. 연산면소재지인 청동리의 동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 1.6㎞쯤 가면 구 연산면소재지 인 연산리가 나온다. 이곳 농촌지도소 연산지소 서쪽에 연산아문이 자리하고 있다. 연산아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초익공 양식 2층 목조누각 건물로, 지붕은 옆에서 보면 여덟팔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직사각형의 돌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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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에 설립되었던 사립학교. 1908년 논산 지역에는 사립학교가 다수 설립되었는데,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발맞추어 1908년 6월 연산에서는 민성학교가 처음으로 개교하였다. 뒤이어 동년 7월 18일에는 논산 돈암서원에 연산여명학교가 개교하였다. 이날 입학한 학생은 50여 명이었고, 각종 경비는 광산김씨(光山金氏) 종중에서 전담하였다. 초대 교장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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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후기 김극유의 처 의령남씨의 재실. 연산 영사재 뒤쪽 50m 정도 거리의 구릉에 의령남씨의 묘소가 있으며, 묘역에는 묘비·문인석·석등·상석 등이 배치되어 있는데, 상석은 최근의 것이다. 묘비명은 1689년(숙종 15)에 세워진 것으로 호패형이고, 앞면에 ‘유명조선정부인의령남씨지묘(有明朝鮮貞夫人宜寧南氏之墓)’라 새겨져 있다. 연산 영사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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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에 있는 공립 중학교. 올바른 가치관으로 바르게 행동하는 사람, 합리적 사고로 창의력을 발휘하는 사람, 스스로 미래를 준비하는 능동적인 사람, 성실한 자세로 더불어 살아가려는 사람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자주·진실·노력’이다. 1951년 12월 4일 6학급으로 연산중학교 설립 인가를 받았으며, 1951년 12월 31일 초대 박창서 교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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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 용화사에 있는 고려 전기 불상. 연산 천호리 비로자나석불은 용화사에서 약 500m 거리에 있는 구 개태사지(開泰寺址)에서 출토된 것으로, 처음 발견했을 때 불두가 파손되어 있었으나 최근에 보수되었다. 1980년 10월 23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91호로 지정되었다. 연산 천호리 비로자나석불은 높이 110㎝로, 화강암으로 조상하였다. 왼쪽 무릎을 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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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개성을 추구하는 학생, 창의력을 발휘하는 학생, 진로를 개척하는 학생,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학생,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학생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12년 5월 10일 4년제 연산공립보통학교로 개교하였으며, 1923년 4월 1일 6년제 연산공립보통학교로 인가를 받았다. 1946년 9월 30일에는 백석국민학교가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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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관동리에 있는 조선 전기에 건립된 관학 교육기관. 연산향교는 사계 김장생과 신독재 김집을 배향하고 학문을 가르쳤던 곳으로, 태종대에 현감으로 부임한 박곤(朴坤)이 1398년(태조 7) 처음 설립하였으며, 그 뒤 여러 차례 보수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지금 남아 있는 건물로는 제사를 지내는 공간으로 대성전을 비롯하여 동무와 서무가 있고, 교육 공간으로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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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관동리 연산향교에 있는 조선 중기에 건립된 대성전. 연산향교는 사계 김장생과 신독재 김집을 배향하고 학문을 가르쳤던 곳으로, 태종대에 현감으로 부임한 박곤(朴坤)이 1398년(태조 7)에 처음 지었으며, 그 뒤 여러 차례 보수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지금 남아 있는 건물로는 제사를 지내는 공간으로 대성전을 비롯하여 동무·서무가 있고, 교육 공간으로 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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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관동리 연산향교에 있는 조선 전기에 건립된 강당. 연산향교는 사계 김장생과 신독재 김집을 배향하고 학문을 가르쳤던 곳으로, 태종대에 현감으로 부임한 박곤(朴坤)이 1398년(태조 7)에 처음 지었으며, 그 뒤 여러 차례 보수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지금 남아 있는 건물로는 제사를 지내는 공간으로 대성전을 비롯하여 동무·서무가 있고, 명륜당과 동재·서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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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에서 사육하는 꿩과에 속하는 척추동물. 일반적으로 오계는 외형이 닭과 큰 차이가 없으나 머리는 작은 편이며, 볏은 닭과 달리 딸기 모양의 관을 가진 것이 보통이고, 때로는 복관·삼매관·장미관도 눈에 띄는데, 어두운 자색 또는 어두운 붉은색을 띠고 있다. 부리는 청백색 또는 검은색, 얼굴과 몸은 자색 또는 청백색, 눈조리개는 갈색 또는 검은색, 귓볼은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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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충청남도 논산 지역 일원에 설치되었던 행정구역. 연산군은 백제가 관할했던 삼국시대에는 황등야산군(黃等也山郡) 또는 황등야군으로 불렸으며, 신라의 삼국 통일 후인 757년(경덕왕 16)에는 황산군으로 개칭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연산군으로 개칭되었으며, 1018년(현종 9) 공주 임내에 병합되기도 했다. 조선 전기인 1413년(태종 13)에는 연산현이 되었으나 1646년(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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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왕전리에서 대추와 찹쌀, 참깨 등을 이용하여 만든 한과. 논산시 연산면은 전국 대추 유통의 30%를 차지하는 대추 집산지로, 연산대추는 열매가 크고 실하며 맛이 달다. 대추는 노화를 방지하고 독을 제거하며, 특히 신경 완화 작용으로 긴장을 풀어 주고 흥분을 가라앉히는 효과가 있다.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왕전리 705번지[논산평야로820번길 66-8]에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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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연산현의 소재지여서 읍내리 혹은 연산읍내로 불리다 연산리라 하였다. 본래 연산현 소재지로 현내면이 되어 구아동(舊衙洞)·백애(白厓)·월양대(月陽垈)·일양대(日陽垈)·신암(莘岩)·옥계리(玉溪里)·백림동(栢林洞)·옥전리(玉田里)·중리(中里)의 9개리를 관할하다 1894년(고종 31) 군내면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촌리(南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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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고려시대 석탑. 연산리 석탑은 구연산(舊連山)이라 불리는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 연산공원 안에 자리하고 있다. 석탑은 비교적 밀집된 주택지의 동쪽인 분지형 구릉의 북단에 위치하고 있다. 연산리 석탑은 높이 3.8m에 4층의 탑신(塔身)을 지닌 화강석으로 꾸민 것인데 약화된 기단(基壇)과 탑신부, 복발(覆鉢: 상륜 등의 노반 위에 있는 발을 엎어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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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70평생 고향을 떠나지 않은 문석진(67) 할아버지는 마을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다. 2006년부터 시장의 자치부위원장, 연산면 번영회 부회장 등의 요직을 맡고 있으며 연산면에서 일어나는 대소사를 함께 해오고 있다. 마을의 사정은 물론 어느 집에 무슨 일이 있어났는지 다 알고 있는 연산리의 살아 있는 역사이다. 연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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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에 속하는 면. 삼국시대 황산군 지역으로, 고려시대에 연산군으로 개편된 뒤 연산이란 지명이 나타나게 되었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현내면(縣內面) 지역으로, 황령(黃嶺)·신곡(莘谷)·남촌(南村)·북촌(北村)·신암(莘岩)의 5개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외성면(外城面)의 소계(巢溪)·개정(盖井)·부황(夫皇)·청림(靑林)·중외(中外)·하외(下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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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의 연산면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 연산면 독립만세운동은 1919년의 3·1운동에 호응하여 충청남도 논산의 연산면 면민들이 같은 해 4월 7일인 장날을 이용하여 일제의 조선 식민지 지배에 항거한 독립만세운동을 말한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10년에 걸쳐 일제는 조선총독부의 설치와 더불어 헌병경찰제를 통한 무력을 앞세워 조선에 대한 식민지 직접 통치를 단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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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의 가로를 따라서 형성된 촌락. 가촌(街村)은 봉건시대의 주막거리나 저잣거리처럼 가로(街路)를 중심으로 형성되며 또 상업적 기능이 높다. 산지가 바다에 임한 좁은 해안도로를 끼고 달리는 가도 등에서는 한쪽으로만 형성된 가촌을 많이 볼 수 있다. 토지의 분할은 가도와 직각 방향으로 좁고 길게 한다. 연산면 연산리 가촌이란 명칭은 연산리 주민들에게 널리 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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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구읍취락. 연산면은 조선시대 연산현 지역으로서, 연산리는 연산현의 행정 업무를 집행하던 관아가 있던 구읍취락이다. 지금은 예전과 같은 지역의 행정을 담당하던 읍취락의 기능을 상실한 상태이다. 연산현은 은진, 니산, 석성과 함께 충청도 공주진(公州鎭)에 소속되어 있었고, 공주목사 관할 하의 연산현감이 있었다. 연산현은 진산군(현 충청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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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재래시장 에는 분식집, 약초상회, 미용실, 반찬가게, 생선가게, 순대집 등 각기 다른 품목의 16개의 점포가 들어 서 있다. 그 중에서 약초상회와 건강원의 2개 점포를 운영하고 있는 정태윤 씨가 연산시장에서 장사가 제일 잘되는 점포의 사장님이다. 시장에 개점하면서부터 약재 일을 시작한 정태윤 씨는 원래 연산면 송산리에서 농사를 짓던 농부였다. 그러나 어려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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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에 있는 호남선 기차역. 1911년 7월 11일 대전·연산 간 호남선이 개통되면서 영업을 개시하였다. 1957년 7월 18일 현재의 역사를 준공하였다. 1977년 11월 1일 특급열차 여객을 취급하였고, 1990년 8월 1일 전산단말기를 설치하였다. 1991년 9월 1일 소화물 취급을 중지하였고, 1999년 11월 26일 역사를 개수하였다. 일제강점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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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에 있는 오계 사육 농장. 오계(烏鷄)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가금류이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오골계는 살, 가죽, 뼈가 어두운 자색(紫色)이며 털은 보통 흰색, 검은색, 붉은 갈색을 띤다. 아시아가 원산지로, 체질이 약하고 산란 수가 적다. 이에 비해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에서 나는 우리나라 특산종인 오계는 깃털,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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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아문 뒤편으로 돌아 들어가면, 돌계단이 나타난다. 수십 개의 계단을 오르면 눈앞으로 어느 동네에나 있을법한 공원이 펼쳐진다. 그러나 연산리의 연산시민공원은 이곳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공원이다. 연산공원의 계단을 올라가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애국지사 농암(濃巖) 곽성진(郭性鎭) 선생 추모비이다. 곽성진 지사는 논산 강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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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전통 재래시장. 연산시장(일명 연산장)은 1911년에 개설된 유래가 깊은 재래시장이다. 1950~1960년대만 해도 연산면은 물론 인근의 양촌면, 벌곡면, 부적면, 노성면 등에서 장을 보러 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였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농촌 인구가 감소하고 대전광역시가 팽창됨에 따라 면세(面勢)가 점차 위축되면서 연산시장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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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리 입구는 늘 사람들의 발길로 북적거린다. 농협을 비롯하여 현대식 마트, 우체국, 버스정류장이 밀집되어 있는 탓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연산재래시장 때문이다. 이곳에는 옛날 장터의 모습은 아니지만, 현대인들의 편의에 맞추어 16개 점포들이 하나의 공간에 밀집되어 정돈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다. 시장 입구 앞쪽으로는 예전 연산 장터의 모습을 보여주는 노점상들이 파라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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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동부와 중남부를 흘러 오산리에서 노성천으로 유입되는 하천. 연산면을 흐르는 하천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연산천의 하곡은 북남 방향의 상류로부터 연산리에 이르는 구간에서는 비교적 좁은 직선상의 곡지를 이루며, 이에 따라 비교적 좁은 곡저평야가 발달하고 있다. 이에 직각으로 꺾이는 동서 방향의 구간에서는 점차 넓어져서 상류부보다 훨씬 넓은 곡저평야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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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와 중기 충청남도 논산시 일원에 설치되었던 행정구역.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 『여도비지(輿圖備志)』, 『대동지지(大東地志)』, 『호서읍지(湖西邑誌)』 등의 옛 지리지나 읍지 등에 기록되어 있다. 각 지리지 읍지들은 형식과 방식에 차이를 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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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연산현의 객사 터. 조선시대 연산현의 객사로 읍치의 중심인 객사에서는 전패(殿牌)를 모시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대궐을 향해 예를 올렸다. 따라서 객사는 수령의 집무청인 동헌보다 높은 곳에 있었고, 관아 시설 중에서 제일 규모가 크고 화려하며 전망 또한 좋은 곳에 자리하였는데, 이 때문에도 관아 안에서는 가장 위압적인 규모를 가지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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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연산현의 관아 터. 관아(官衙)란 조선시대 읍치에 있던 관청건물을 통칭하며 연산현 관아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동헌, 국왕의 위패를 모셔 둔 객사, 고을 양반들의 대표자 격인 좌수와 별감이 있는 향청, 아전들이 근무하던 질청, 기생과 노비들이 있는 관노청 등이 있었다. 정조 연간에 간행된 『연산현지』에 따르면, 연산현 관아에는 동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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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리가 조선시대에 연산현의 소재지로서 연산의 중심마을이었다는 사실은 현재 연산리에 남아있는 동헌 터와 아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연산4리에 위치한 연산공원의 서편자락에 위치한 연산아문(連山衙門)은 1973년 12월 24일에 시도유형문화재 9호로 지정되었으며, 관아건축물로 1개의 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남아있는 유적은 연산아문과 비석군, 건물의 초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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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 옥거리 앞에 연꽃이 만발한 연못이 있었는데, 마을 사람들이 이곳에 정자를 짓고 연정(蓮亭)이라 불렀으며, 이 연정의 서쪽에 마을이 있어서 연서리(蓮西里)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대조곡면(大鳥谷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리(上里)·홍문리(弘門里)·북문리(北門里)·용와리(龍臥里)·백양리(栢楊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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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에서 낚싯줄에 여러 개의 바늘을 달아 고기를 잡기 위해 만든 어업용 도구. 주낙은 땅주낙·뜬주낙·선주낙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땅주낙은 물속의 땅 가까이에서 생식하는 고기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뜬주낙은 표층이나 중층에 있는 어족을 대상으로 하는 것인데, 이 경우에는 낚시가 수면 아래 적당한 깊이에 있어야 한다. 선주낙은 낚싯줄을 수직으로 늘어뜨렸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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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를 시조로 하고 이연저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연안이씨의 시조는 이무(李茂)로, 본래 당나라 출신이다. 660년(태종무열왕 7) 나당연합군 대총관 소정방(蘇定方)의 부장(副將)이 되어 신라에 들어와 백제를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웠고, 이후 신라에 귀화하여 연안후(延安侯)에 봉해지고 연안을 식읍으로 받아 살게 되었다. 그 후손들이 이무를 시조로 받들어 세계(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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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취암동에 있는 한국연예예술인협회 산하 논산 지역 지부. 한국연예예술인협회 논산지부는 회원 상호간의 친선과 단결을 통하여 회원의 권익 옹호와 사회적 지위 향상을 도모하고, 나아가 연예 예술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99년 1월 29일 회원 20여 명이 모여 한국연예협회 충남남부분실로 설립되었으며 분실장에 송중빈이 선출되었다. 2003년 1월 27일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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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리는 삼국시대에는 황산군에 속하는 지역이었으나, 고려시대에 연산군으로 개편하게 되면서 ‘연산’이라는 지명이 처음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연산을 감싸고 있는 천호산의 산세가 계룡산과 대둔산과 연이어져 있기 때문에, ‘연이은 산이다’라는 뜻에서 연산이라는 지명이 생겼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마을 주민들 중에도 이러한 연유에서 연산리라는 이름으로 붙여졌다고 기억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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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한 해를 단위로 일정한 시기에 관습적·주기적·의례적으로 거행되는 행동 양식이나 생활 행위. 세시풍속이란 예부터 전해지는 농경사회의 풍속이며, 매년 농사력에 맞추어 관례(慣例)로서 행하여지는 전승적 행사와 의례를 가리킨다. 봄은 만물이 약동하는 시기로 새로운 시작과 더불어 농사가 시작되는 시간이다. 정월 초하룻날에는 한해의 시작을 조상께 고하고 본격적인 농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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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논산 지역에 연고를 둔 절개 높은 여자를 일컫는 말. 열녀(烈女)는 위난을 당하여 목숨으로 정조(貞操)를 지켰거나, 또는 오랜 세월에 걸쳐 고난과 싸우며 수절(守節)한 부녀자를 일컫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열녀와 열부(烈婦)를 통칭한다. 열녀 중에는 또 ‘마당과부’라는 것도 있는데, 이는 조혼(早婚)이 예사였던 시절에 혼례만 치르고 미처 시가(媤家)로 가기 전에 신랑이 죽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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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산성리의 논산천 수계에 서식하는 잉어과 민물고기. 몸길이는 약 8~10㎝이다. 몸은 가늘고 길며 옆으로 납작하고 길게 늘어나 있다. 긴몰개보다 크게 자란다. 주둥이는 다소 둥글고 큰 편이며 입도 매우 크고 입구석이 눈의 앞 끝에 닿는다. 1쌍의 입수염은 참몰개의 입수염보다 짧아서 눈의 반지름보다도 짧다. 옆줄은 몸 양쪽 옆 중앙부를 달리며 앞부분이 배 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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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의 금강 지류와 앞바다에 서식하는 멸치과에 속하는 물고기. 웅어는 갈대 속에서 많이 자라서 갈대 위(葦) 자를 써서 위어(葦魚, 갈대고기)라고도 한다. 강경에서는 우여, 의주에서는 웅에, 해주에서는 차나리, 충청도 등지에서는 우어라고 불린다. 몸길이는 약 22~30㎝이다. 몸통은 가늘고 길며 배의 모서리 부분은 칼날처럼 날카롭고, 꼬리는 가늘며 길다. 입은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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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염상오는 1885년 11월 26일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항월리 646번지[항월1길 68]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3월 12일 손필규(孫弼奎), 김태오(金泰午), 이백순(李伯純), 이근옥(李根玉) 등이 주도하에 이루어진 이른바 ‘논산읍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만세시위대는 강경에서부터 논산으로 이동하며 독립만세를 외쳤는데 논산읍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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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염성필은 1919년 3월 12일 손필규(孫弼奎), 김태오(金泰午), 이백순(李伯純), 이근옥(李根玉) 등이 주도하에 이루어진 이른바 ‘논산읍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만세시위대는 강경에서부터 논산으로 이동하며 독립만세를 외쳤는데 논산읍내에 이르러 시위대가 1,000여 명으로 불어나자 일본 경찰은 실탄을 발사하는 등 무력 진압에 나섰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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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 광산김씨의 재실. 염수재는 유학자 김장생(1548~1631)을 모신 사당의 앞면에 있는 재실이다. 염수재의 건축 시기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염수재 정문에 걸린 김재경 정려의 연대가 1864년(고종 1)인 것으로 보아 이미 그 이전에 건립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염수재 뒤쪽으로 김장생 사당과 연결된 문이 있는 것으로 보아 광산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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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염상오는 1885년 11월 26일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항월리 646번지[항월1길 68]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3월 12일 손필규(孫弼奎), 김태오(金泰午), 이백순(李伯純), 이근옥(李根玉) 등이 주도하에 이루어진 이른바 ‘논산읍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만세시위대는 강경에서부터 논산으로 이동하며 독립만세를 외쳤는데 논산읍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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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에 속하는 법정리. 원래 강경포가 마을 앞에 있어서 소금배가 드나들면서 소금을 쌓아 둔다고 하여 염촌(鹽村)이라 하였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김포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염대리(鹽垈里)·강변촌(江邊村) 일부를 병합하고 염정이라 하여 논산군 강경면에 편입하였다. 1931년 강경면이 읍으로 승격되어 강경읍에 소속되어 오다가 1947년 염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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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읍은 논산시의 남부에 위치하며 동쪽으로는 논산시 채운동, 서쪽으로는 부여군 세도면(世道面), 남쪽으로는 전라북도 익산군 망성면(望城面), 북쪽으로는 논산시 성동면(城東面)과 접하고 있다. 강경은 충청남도와 전라북도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강경은 전국 최대의 젓갈시장이 자리 잡고 있으며, 강경전통맛깔젓 축제를 개최하는 등 전국으로 신선하고 다양한 젓갈을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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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에 속하는 법정리. 원래 강경포가 마을 앞에 있어서 소금배가 드나들면서 소금을 쌓아 둔다고 하여 염촌(鹽村)이라 하였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김포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염대리(鹽垈里)·강변촌(江邊村) 일부를 병합하고 염정이라 하여 논산군 강경면에 편입하였다. 1931년 강경면이 읍으로 승격되어 강경읍에 소속되어 오다가 1947년 염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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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에 있는 육군 제2훈련소 훈련병을 소재로 윤봉춘이 제작한 기록 영화. 「영광의 길」은 육군 제2훈련소의 모습을 담은 기록 영화로 촬영 김명제, 음향 조종국, 감독·편집·기획·제작은 윤봉춘이 하였다. 1953년 12월 15일에 극장 개봉을 하였다. 6·25전쟁 때 북한군의 만행으로 부친을 잃은 면장의 아들은 군대에 들어가 훈련을 받는다. 그러나 부유한 가정의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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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 유봉 영당에서 매년 음력 9월 15일에 지내는 윤증 추모제. 기호 유현이자 성리학의 대가로서 소론의 영수였던 윤증(1629~1714)은 40세 때 병사리로 낙향하여 강당을 건립하고 후학을 양성하였다. 윤증 사후 1744년(영조 20)에 이르러 윤증 문인들이 스승의 영당과 경승재를 건립하고 영정을 봉안하였다. 춘추로 제향을 봉행하여 왔는데, 현대로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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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이나 지역의 유림들이 특정 조상의 영정을 봉안한 사당에서 매년 기일에 거행하는 제향. 영당이란 향사(鄕祠)·사(祠)·이사(里祠) 등과 같은 곳이지만 위패가 아닌 특정 조상의 영정(影幀)을 봉안한 사우라는 점에 특징이 있다. 조선 건국 후에 국가적 차원에서 사전(祀典)의 정비를 단행하면서 사대부가는 가묘를 설치하였고, 향촌에서는 기존의 무속적이거나 불교적인 제사를 음사로 규정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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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논산 지역에서 활동한 문인이자 학자. 본관은 은진(恩津). 아명은 성뢰(聖賚), 자는 영보(英甫), 호는 우암(尤菴)·우재(尤齋). 봉사(奉事)를 지낸 송구수(宋龜壽)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도사(都事) 송응기(宋應期)이고, 아버지는 사옹원봉사(司饔院奉事) 송갑조(宋甲祚)이다. 어머니는 봉사 곽자방(郭自防)의 딸로서 선산곽씨(善山郭氏)이다. 1625년(인조 3)에 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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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장구리 윤환 선생 고택 내에 있는 조선 중기 재실. 윤황(尹煌, 1572~1639)은 윤창세(尹昌世,1543~1593)의 아들로 동부승지와 이조참의 등 여러 요직을 역임했으며, 병자호란 때 척화를 주장하였다. 아들은 윤선거이고, 손자는 숙종 대 소론의 거두였던 명재 윤증이다. 윤환 선생 고택은 1985년 12월 31일 충청남도 민속자료 제8호로 지정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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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신풍리에 있는 조선 전기 김국광과 김겸광 형제가 세운 사당. 김국광은 조선 세조와 성종 때 원종공신, 적개공신, 좌리공신 등에 책봉되었다. 건주위 정벌과 이시애의 난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웠으며, 『경국대전(經國大典)』 편찬에 관여하였다. 영사암은 김국광과 김겸광 형제가 부모 사망 후 3년간 무덤을 지킨 자리에 세운 사당으로 1475년(성종 6)에 세워졌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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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신풍리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 지금의 영사암이 있는 터에 처음 절이 세워진 것은 고려시대로 추정되나 언제 없어졌는지 알 길이 없다. 현재 영사암지에 있는 암자는 조선시대 1465년(세조 11) 문인 김철산(金鐵山)이 부모의 묘를 모시기 위해 건물을 짓고 암자에 ‘영사암(永思庵)’이라는 현판을 걸었으며, 1875년(고종 12) 다시 고쳐 지었다고 한다. 부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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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영숙(永淑), 호는 서석(瑞石)·정관재(靜觀齋). 김장생(金長生)의 증손이다. 아버지는 김익겸(金益謙)이고, 어머니는 해남부원군(海南府院君) 윤두수(尹斗壽)의 4세손이자 영의정 문익공(文翼公) 윤방(尹昉)의 증손녀이며 예조참판 윤지(尹墀)의 딸로서 해평윤씨(海平尹氏)이다. 숙부는 김익희(金益熙), 동생은 『구운몽(九雲夢)』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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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육곡리에 있는 한국불교 법륜종 소속 사찰. 전하는 바에 의하면 영암사가 들어서기 오래 전 이곳에 고려 때 세워진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법당 뒤쪽으로 약 40m 지점에 산신각이 있고 큰 바위가 있는데, 그 밑에 ‘산왕대신지위(山王大神之位)’라 새겨져 있는 비석이 있다. 이 비석은 폭 40㎝, 두께 20㎝, 높이 1m로 고려 말기 또는 조선 초기에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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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시신을 장지로 운반하기 위해 만든 의례용 도구. 상여는 사람의 시체를 실어서 장지까지 나르는 도구로, 마을마다 마련해 두기도 하고 초상이 나면 개인을 위해 만들기도 한다. 상여를 메는 사람을 상여꾼·상두꾼·영구꾼·영여꾼·운상꾼·이정·향도라 하며, 대개 천민이 메는 것이 보편적이었으나 후에는 동네 청년들이나 망인의 친구들이 메기도 한다. 상여꾼들은 상여를 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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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덕곡리 영은사지에 있는 조선시대 부도. 논산시 벌곡면 덕곡리의 바랑산 북곡(北谷) 내에 위치하는 영주사는 최근에 새로 조성된 사찰로, 영은사(靈隱寺)라는 구사지(舊寺址) 위에 건축된 것이다. 사역 내의 대웅전 전면 북측에 부도 1기가 남아 있는데, 이 부도는 영은사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영은사지 부도는 석종형(石鐘形)으로 기단과 탑신만 남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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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의 전통가옥에서 사용된 문. 옆으로 밀고 닫는 문이라 하여 미닫이라고 부르는데, 구개음화에 따라 미다지라고도 한다. 또한 논산 지역에서는 문을 밀어서 연다고 하여 밀창이라고도 하며 영창, 이응창이라고도 부른다. 미닫이는 세로로 긴 직사각형 모양으로, 손잡이는 파여 있고 주 재료는 나무이다. 나무로 틀을 짜고 가운데를 송판으로 막거나 문살을 넣고 그 위에 종이를 바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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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의 시화로 쌍떡잎식물 용담목 물푸레나무과의 낙엽 관목. 관상용·산울타리용으로 많이 재배하며 4월에 노란꽃이 피는 개나리는 봄소식을 제일 먼저 전해 주는 꽃이기도 하다. 논산 시화(市花)로서의 개나리는 새날을 연다는 뜻으로 미래에 대한 논산시민의 희망을 상징하고 있다. 높이는 3m 내외이다. 가지 끝이 밑으로 처져 덩굴 모양을 하기도 한다. 어린 가지는 녹색이나 점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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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시에 있던 기독교계 사립여학교. 3·1운동 이후 개신교는 여학교 설립을 통한 여성교육 보급에 박차를 기하였다. 또한 국민들의 인식 변화는 여성운동 진전과 더불어 여성들의 사회적인 존재로서 의미를 일깨웠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충청남도 지방도 공주 영명여학교, 논산 영화여학교, 강경 만동여학교 등 여성교육기관이 설립되었는데, 이들 여학교는 일제강점기 지역을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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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에서 영화를 상영하기 위하여 무대와 객석 등을 설치한 건물이나 시설. 논산 지역에서 극장은 주로 영화 상영관으로 사용되었다. 가끔 창극·쇼 등의 공연을 하기도 했지만 순수 연극을 공연한 경우는 없었다. 군민회관이 없던 시절인 1980년대 중후반까지 극장은 정당, 사회단체의 창립총회, 정기총회, 또는 새마을지도자대회 등의 행사 장소로 사용되기도 하고 중·고등학교 졸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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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서 흔히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딸기는 키가 20㎝ 정도 되는 다년생 초본식물이다. 작고 흔해보여도 예민하기가 인삼 못지않다고 알려져 있다. 딸기농가에서 농장 체험행사를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딸기의 예민한 성질 때문이다. 딸기가 견디는 기온이 5도에서 25도까지라 냉해에는 강한 편이지만, 잎과 줄기를 건드리면 스트레스를 받고 눈에 띌 정도로 성장이 더뎌진다. 딸기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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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취암동에 있는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산하 지회.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논산지회는 논산의 예술문화인 상호간의 친목을 도모하고 회원의 권익을 옹호하며 향토 예술의 창달로 지역 문화 발전에 기여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94년 2월 19일 한국문인협회 논산지부 김영배 지부장, 한국국악협회 논산지부 송중빈 지부장, 한국사진작가협회 논산지부 박태진 지부장, 한국미술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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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한 예의 본질과 의의 및 시비를 탐구하는 유학의 한 분야. 오늘날 충청 지역은 충절과 선비의 고장, 양반의 고장을 대표하는 상징이 되고 있다. 그러한 상징의 연원을 따져보면 조선시대 가장 오랜 기간 정권을 잡았던 기호학파의 존재가 드러나는데, 그 중심에는 바로 논산 지역에 뿌리내린 호서사림이 자리하고 있다. 조선 전기 경기 지역의 사림에 종속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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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건양대학교에서 부설하여 운영하고 있는 예학 관련 연구원. 예학교육연구원은 예학에 관한 모든 학문과 사상을 연구하여 한국 전통예학을 정리 심화시키고, 현대사회에 적합한 예문화를 정립하며, 예의 교육에 노력함으로서 한국의 학술문화 창달과 보급에 이바지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97년 10월 개원하였으며, 2000년 3월 예절마당 홈페이지를 개설하여 운영하고 있다. 예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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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시묘골과 황골 등지에서는 ‘고려장’ 또는 ‘고린장’이라 부르는 옛 사람들의 무덤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산속에 나무가 우거져 찾아 볼 수도 없고, 어떤 모양이었는지 정확하게 기억하는 이도 없지만, 마을 어른들이 아이들을 앉혀놓고 고려장 지낸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지어내 들려주곤 하였다. 언뜻 돌로 만든 무덤 같았다는 이야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고려시대 이전의 무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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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에 속하는 법정리. 다섯 개의 강물(냇물)이 마을 앞에서 합류한다고 하여 오강(五江)이라 하였는데, 노강서원(魯岡書院)이 여기에 있어 오강(五岡)이라 하였다. 본래 노성군(魯城郡) 장구면(長久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평전리(平田里)·서변리(西邊里)·율리(栗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고 오강리라 하여 논산군 광석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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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에서 나는 오계로 만드는 탕. 오계(烏鷄)는 뼈가 까마귀처럼 검은 닭이라 하여 이름 붙여졌다. 고려시대 문인이자 학자였던 제정 이달충(1309~1385)의 『제정집(霽亭集)』에 오계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한다. 오계란 본래 검지만 흰색 솜털을 가진 일본의 실크오골계를 지칭하는 것으로 한국의 오계가 뼈, 깃털, 피부, 발톱까지 온통 검은 것과 차이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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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음력 열나흗날 저녁에 보리, 콩, 팥, 조, 수수 다섯 가지 곡식으로 지은 밥. 우리나라에서는 오래 옛날부터 음력 정월 열나흗날 저녁이면 각 가정에서 지난해에 수확한 잡곡으로 밥을 지어 먹었는데, 다섯 가지 잡곡을 넣고 지은 밥이라 하여 오곡밥이라고도 한다. 오곡은 19세기까지 기장[黍]·피[稷]·콩[菽]·보리[麥]·삼[麻]을 일컬었지만, 논산 지역에서는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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