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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01293
한자 楊起
영어음역 Yang Gi
이칭/별칭 암곡(巖谷),충헌(忠憲)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이연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시조(始祖)
출신지 중국(원나라)
성별
본관 청주
대표관직 상당백(上黨伯)

[정의]

고려 후기의 문신이자 청주양씨 시조.

[가계]

본관은 청주(淸州). 호는 암곡(巖谷).

[활동사항]

양기(楊起)는 중국인으로 원나라에서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에 올라 도첨의정승(都僉議政丞)과 중서성정승을 지냈다. 1351년(충정왕 3) 공민왕이 연경에 머무르다 왕위에 오르기 위하여 고려로 돌아갈 때 노국공주(魯國公主)를 배종하고 들어와서 고려에 정착하였다. 그 후 원나라에 가서 공물을 삭감하게 한 공으로 상당백(上黨伯)에 봉해지고 청주를 관적(貫籍)으로 하사받음으로써 청주양씨(淸州楊氏)의 시조가 되었다. 저서로 『암곡집(巖谷集)』이 있다.

[상훈과 추모]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에 있는 충헌사에 배향되었다. 1626년에 세워진 충헌사에는 양기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으며, 양치·양희지·양응춘·양훤 등의 후손들도 배향되어 있다. 양기의 사우(祠宇)가 논산에 세워진 까닭은 종손이 송화로부터 노성으로 이주해 오면서 양기의 영정과 위패를 모셔 왔기 때문이다. 그 후 사우는 여러 차례 중수하여 현재는 정면 3칸, 측면 1칸이 남아 있고, 고택의 후원과 이어져 있다. 고택의 사랑채에 경모당(敬慕堂)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시호는 충헌(忠憲)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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