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015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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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學純 |
영어음역 | Yi Haksun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김진호 |
[정의]
일제강점기 논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이학순은 1843년 현재의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 지역에서 출생하여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한양촌(韓陽村)으로 이주하여 생활하였다. 성품이 청렴하고 활달하였으며, 실천에 힘썼던 선비였다.
[활동사항]
일본 제국주의는 대한제국을 병합하려고 1910년 8월 22일에 이완용으로 하여금 데라우치와 조약을 체결하도록 하고, 민족적 저항을 염려하여 공포하지 않다가 1주일이 지난 후인 1910년 8월 29일에야 공포하도록 하였다. 일제는 대한제국의 국권을 침탈한 이후 모든 정책을 동원하여 한민족의 민족적 저항을 제압하려는 술책을 강행하였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노인은사금(老人恩賜金)을 지급하여 회유하려는 시도였다.
일제가 은사금을 보내어 받도록 온갖 협박을 함에도 이학순은 일제에 굴복하지 않고 은사금 수령을 끝까지 거절하였다. 이에 일제는 무단 식민통지의 상징인 헌병대를 투입하여 이학순을 투옥하고 고문까지 가하였다. 일제의 탄압으로 말미암은 고초 때문에 병보석으로 석방되어 잠시 자유로운 몸이 된 이학순은 1910년 12월 7일 나라 잃은 망국의 한을 가슴에 품고 독약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은 끊어 자결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