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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01243
한자 金恒
영어음역 Gim Hang
이칭/별칭 도심(道心),일부(一夫)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고수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학자
출신지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성별
생년 1826년연표보기
몰년 1898년연표보기
본관 광산

[정의]

조선 후기 『정역(正易)』을 집대성한 논산 출신의 학자.

[가계]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도심(道心), 호는 일부(一夫). 부인은 여흥민씨(驪興閔氏)이다.

[활동사항]

김항은 어릴 때부터 어질고 너그러운 도량과 재능으로 모습이 비범하였으며, 글 읽기를 좋아하여 성리학에 깊이 침잠하고 예문(禮文)에 조예가 깊었다. 또 한(漢)·당(唐)·송(宋)·명(明)의 문장(文章)과 이학(理學)에 이르기까지 정통하였다. 형조판서에서 은퇴한 연담(蓮潭) 이운규(李雲圭)가 인근 마을에 들어오면서 최제우(崔濟愚)·김광화(金光華)와 함께 그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이운규김항을 가리켜 공자의 도를 이어받아 장차 크게 천시(天時)를 받들 것이라고 하였는데, 어느 날 「영동천심월(影動天心月)」이라는 오언절구를 던져 주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김항은 스승이 남긴 오언절구의 뜻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그 노력은 19년이라는 세월을 통해 열매를 맺는다. 『서전(書傳)』과 『주역(周易)』을 탐독하고 영가(詠歌)와 무도(舞蹈)를 통한 정신의 개발 등에 정진한 끝에 진리를 깨달을 수 있었고, 그에게 종종 나타나던 괘획(卦劃)을 파악하여 1881년(고종 18) 「정역팔괘도(正易八卦圖)」를 그리게 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대역서(大易序)」를 완성하였다.

1885년(고종 22) 김항은 조선 후기 후천개벽사상을 집대성한 『정역(正易)』을 저술하게 된다. 저술 활동을 하고 있을 무렵 충청남도 논산군 상월면 대명리와 충청남도 계룡시 엄사면 도곡리에 걸쳐 있는 국사봉(國事峰, 대명리 소재)으로 이거하였는데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정역』을 배울 것을 청하여 제자들이 생기게 되었으며, 후에 이 사람들로 인해 신종교 영가무도교(詠歌舞蹈敎)가 탄생하게 되었다.

그는 생에 대부분을 앉아서 생활하였는데, 밤에도 눕는 일이 거의 없을 정도였고, 마지막 순간인 죽는 상황에서도 앉아서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사후 추종자들이 김항을 영가무도교의 1대 교주로 삼아 신비화하고 신앙의 대상으로 삼기에 이르자 김항의 직계를 포함한 유교적 성향의 제자들이 이에 반발하여 분립하게 된다.

[학문과 사상]

김항은 19년 동안의 학문 연구를 통해 진리를 깨우쳐 완성한 『정역』을 통해 후천역(後天易)을 가르쳤으며, 정기신(精氣神)의 조화가 유불선(儒佛仙) 합일의 도를 이루도록 한다는 오음주(五吟呪)를 외우고 무도를 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또 선후천(先後天)이 교역할 때 큰 재난이 오기 때문에 무극대도(無極大道)를 닦아야 한다고 했는데, 오음송주(五吟誦呪)가 그 주요한 방법이었다.

[참고문헌]
  • 『논산군지』 (논산군지편찬위원회, 1994)
  •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시스템(http://people.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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