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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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시조 시인. 자는 자순(字舜), 호는 경재(敬齋)이다. 1878년 9월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에서 태어났다. 김명철(金明喆)은 성품이 온화하고 부모 형제에게 자상하였다. 「한거즉사(閒居卽事)」1, 「경(鏡)」2, 「설의(雪意)」, 「우제(偶題)」 등 빼어난 시들을 많이 남겼다. 이 중 「한거즉사」를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김명철은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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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 출신의 시인. 서정주(徐廷柱)는 탁월한 언어 감각과 누구도 밟아 보지 못한 토속어로 일군 빼어난 시의 미학을 보여 준 언어의 연금술사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는 친일문학을, 이승만과 전두환의 독재 시절에는 독재를 미화하는 글을 써 기회주의적 어용 문인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미당의 아버지 서광한은 무장에서 향시를 보아 장원을 하였고, 1909년 일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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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의 시인.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1933년 5월 23일 전라북도 고창군 심원면에서 태어났다. 이추림(李秋林)은 어렸을 때 부모를 여의고 단신으로 서울에 올라가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였다. 1955년 『자유문학』에 장시 「태양을 화장(火葬)하고」가 추천되어 문단에 등단하였다. 1966년 한국문인협회 이사, 1968년 국제 펜 한국본부 이사,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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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의 교육자이자 시인. 본관은 은진(恩津)이며, 본명은 송재갑(宋在甲)이다. 송혁(宋赫)은 필명이다. 1934년 9월 8일 전라북도 고창군 해리면 평지리 558번지[수락길 22]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송화헌(宋和憲), 어머니는 주순덕(朱順德)이다. 이강주(李康珠)와 결혼하여 슬하에 세 아들을 두었다. 송혁은 1954년 3월 논산 대건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59...
판소리 명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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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와 개항기 고창 출신의 명창 김경홍은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에서 태어났다. 철종 대에서 고종 대에 걸쳐 활약한 명창으로, 특히 「흥부가」를 잘 불렀다고 한다. 그에 관해서는 근래에 발간된 『고창예술의 맥』에 한 줄 언급되어 있을 뿐, 다른 기록들이 찾아지지 않아 활동 상황을 자세히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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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의 판소리 명창. 1920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사포리에서 태어났다. 명창 김소희(金素姬)의 동생이다. 김경희는 언니 김소희와 김여란(金如蘭)·정권진(鄭權鎭) 등에게 판소리를 배운 뒤 동생 김정희와 함께 주로 창극·국극 활동을 많이 하였다. 1960년대 신세기레코드·시대레코드·힛트레코드 등 여러 음반 회사에서 언니 김소희, 여동생 김정희와 함께 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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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지역에서 활동한 판소리 명창. 김성수(金性洙)[1929~1993]의 본명은 김이수(金二洙)이며, 아버지 김용달과 어머니 전주이씨 사이에서 5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다. 출신지는 전라남도 영광군 법성면 신장리 356번지이다. 영광군에서 곧 가족이 이사하여 고창군 심원면 월산리에서 자라났다. 김성수의 집안은 음악에 조예가 깊었다. 할아버지 김기운은 대금의 명인이었고,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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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고창 출신의 판소리 명창. 호는 만정(晩汀)이며, 본명은 순옥(順玉)이다. 1917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사포리 335번지[김소희길 33]에서 태어났다. 김소희는 고향에서 보통학교를 마친 후, 광주로 시집간 언니 집에서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를 다녔다. 이때 광주에 내려온 이화중선(李花仲仙) 일행의 공연을 보게 된 뒤 소리에 이끌려 하루도 빼놓지 않고 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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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와 개항기 고창 출신의 판소리 명창. 김수영(金壽永)은 조선 헌종~고종 대에 활약했던 판소리 명창으로,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에서 태어났다. 아들이 후기 8명창의 하나로 유명한 김찬업(金贊業)이다. 관례로 볼 때 김수영은 아들 김찬업에게 어려서부터 서편제 소리를 가르쳤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신재효(申在孝) 문하의 박만순(朴萬順)과 김세종(金世宗)에게 소리를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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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판소리 명창. 본명은 분칠(粉七), 호는 향곡(香谷)이다. 1907년 충청북도 옥천군에서 태어났다. 김여란은 어려서 아버지의 고향인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에서 살다가 경상남도 진주시 평거동으로 이사했으며, 그 뒤 다시 서울로 올라가 인의동과 봉천동에서 살았다. 1917년부터 1921년까지 김비취에게 시조·가곡·가야금·법무 등을 사사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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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판소리 명창. 김영대는 판소리 명창으로 널리 알려지지는 못하였으나 소리는 옳게 하였다고 전한다. 제자로 신영희(申永喜), 김녹주(金綠珠), 윤초 등이 있다. 신영희가 부르는 「심청가」에는 심봉사가 무릉 태수에게 옷을 얻어 입는 대목이 일반적으로 불리는 ‘아니리’가 아니라 ‘중몰이’로 계속되는 점으로 보아, 김영대제 「심청가」 바디가 다른 바디와는 약간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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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판소리 명창. 김찬업(金贊業)은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에서 태어났으나 생몰 연대는 알 수 없다. 아버지 역시 명창으로 이름난 김수영(金壽永)이다. 오끗준의 생질(甥姪)이다. 동편제 소리의 거장으로 다섯 마당 판소리에 모두 능하였다. 김찬업은 박만순(朴万順)과 김세종(金世宗)으로부터 판소리를 배웠다. 김세종의 영향으로 이론에 밝았고, 정창업(丁昌業) 등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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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와 개항기 고창 출신의 판소리 명창. 김창록(金昌祿)은 철종과 고종 대에 활약한 판소리 명창으로 생몰년은 알 수 없다.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에서 태어나 흥덕에서 살았다고 전한다. 서울에 올라와서 당시 동편제(東便制) 소리로 박만순(朴万順)·김세종(金世宗)과 같은 명창과 어깨를 겨루어 뒤지지 않을 만큼 이름을 떨쳤다고 한다. 그러나 행적에 대한 자료는 전해지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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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와 현대 고창 출신의 판소리 명창. 김토산(金土山)은 1871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후포리 뒷개마을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한테서 7세 때부터 판소리 다섯 바탕을 사사받았는데, 할아버지는 서편제의 대가 이날치(李捺致)로부터 소리를 배웠다고 한다. 작고 퉁퉁한 몸매에 목소리가 무척 커서, 큰 소리로 말을 하면 듣는 사람이 깜짝 놀랄 정도였다고 한다. 김토산은 주로 고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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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판소리 명창. 1830년 지금의 전라북도 정읍시 고부면 수금리에서 태어난 뒤, 남원의 운봉과 경상도 안의(安義)에서 거주하기도 했다. 명창 최승학(崔昇鶴)과 동서간이다. 박만순(朴萬順)은 신재효(申在孝) 문하에서 동편제 판소리를 배웠다. 당시 8명창으로 꼽히던 주덕기(朱德基)에게 판소리를 잠깐 배우다가, 당대의 명창 가운데 제일의 가왕(歌王)으로 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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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판소리 명창. 본관은 여양(驪陽)이다. 1847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심원면 월산리에서 태어났다. 진채선은 신재효(申在孝)의 문하에서 음률과 가무, 판소리를 배웠다. 풍류·가곡(歌曲)과 무용에 탁월하고, 여성임에도 웅장한 성음(聲音)을 자랑하였으며, 기량도 풍부하였다. 20대에 경복궁 낙성연에서 판소리를 불러 좌중을 감탄하게 했는데, 이때 신재효가 지은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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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판소리 명창. 판소리에 관한 한 지금까지도 권위 있는 연구서이자 명창 열전으로 알려져 있는 정노식의 『조선창극사』, 박황의 『판소리 이백년사』 등에 허금파(許錦波)[1866~1949]는 진채선 이후 두 번째로 고창이 배출한 명창에 반열에 오른 여류 명창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의 논의에서 허금파가 신재효의 가르침을 받지 않았을 뿐 아니라, 고창 출신...
농악 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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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의 고창농악 고깔 소고춤 명인. 강대홍은 1926년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양사리[현 성송면 하고리]에서 태어났다. 강대길, 강대북, 강대성과 형제인데, 강대홍을 포함한 이들 4형제가 어떤 사람이 와도 당해 내지 못할 만큼 고깔소고춤을 잘 추었다고 한다. 1990년에 정리한 고창농악단 명단에 수소구 유만종, 부소구 이승규에 이어 삼소구 강대홍의 이름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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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농악 명인. 김덕봉은 1900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에서 태어났다. 세습무계(巫系) 출신으로, 김득봉이라고도 불렸다. 김만식(金萬植)·김상구(金相九) 등과 함께 걸궁패 활동을 했는데, 고수면 일대에서는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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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고창 출신의 장구 명인. 1915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 용대리에서 태어났다. 동생은 소고 명인으로 알려진 김양술(金良述)이다. 김만식은 당골[무당] 출신으로 어렸을 때부터 소고를 배웠다. 전라남도 영광군 법성포에 사는 김학준으로부터 장구를 배웠는데, “대한민국에서는 따라올 자가 없다.”는 평판이 자자할 정도로 장구를 잘 쳤다. 김만식패를 꾸려 활동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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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고창 출신의 풍물굿 상쇠 명인. 김상구는 1913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인성리에서 태어났다. 17세에 무장면의 당골[무당]로 활동하던 신현덕에게 피리 시나위와 굿거리를 배우고, 20세 때 박성근(朴成根)에게서 쇠를 배웠다. 26세 때 농구[상쇠의 제자]로 있었고, 끝쇠를 보다가 30여 세에 종쇠, 40세쯤에 상쇠를 했다. 당대의 상쇠들 중에서 박성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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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농악 상쇠 명인. 김성대는 1885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두암리에서 태어났는데, 집이 두암마을 샘 위에 있었다. 아들은 김만엽으로, 충청도로 이주하였다. 김성대는 당골[무당]이자 두암마을 상쇠 명인으로 유명했다. 어려서 같이 활동했던 이중섭의 구술에 의하면 꽹과리 가락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박성근(朴成根)이 그를 따라다니면서 굿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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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고창 출신의 소고 명인. 1918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 용대리에서 태어났다. 유명한 장구 명인으로 알려진 김만식(金萬植)의 동생으로, 무계(巫系) 출신이다. 김양술은 박성근(朴成根), 신두옥, 신영찬, 김학준, 김성락, 김만식(金萬植), 김상구(金相九) 등과 함께 전라도 일대에서 소고를 쳤다. 고창 지역에서는 이모질 다음으로 이름난 소고잽이로 통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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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농악 쇠잡이 명인. 김홍술은 일반적으로 1903년 전라남도 장성군에서 태어났다고 알려져 있으나 『정읍의 민속예능』에 의하면 지금의 전라북도 정읍시 입암면 신면리에서 출생한 것으로 소개되어 있다. 판소리 대가 누나는 전도성(全道成)의 친척인 줄광대[아니리 광대, 걸립광대] 전학술에게 시집갔다. 그리고 동생은 ‘장구 귀신’으로 알려진 김홍집이다. 고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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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농악 쇠 명인. 박귀바위는 고창 출신의 쇠 명인으로 알려져 있으나 언제 태어나고 죽었는지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다. 1890년대 독립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전문 굿패를 꾸려서 걸립(乞粒)을 다녔다고 한다. 호남우도농악의 대표 격인 고창농악은 1890년대 박귀바위를 중심으로 영광·무장[고창 ]·장성이 중심이 되어 오늘날까지 그 뿌리가 이어져 온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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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고창 출신의 농악 상쇠 명인. 박성근은 1902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장두리에서 태어났다. 쇠잽이 강성옥에게서 주로 쇠를 배웠고, 김성대에게 굿하는 법을 배웠다. 박성근은 특히 부포놀음에 매우 뛰어났고, 쇠가락뿐만 아니라 상쇠로서 굿판을 통솔하는 능력이 출중했다. 1900년대 이후 출생한 영무장[영광·무장·장성·함평 등의 지역] 지역 예인들은 대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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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의 고창농악 고깔 소고춤 명인. 박용하는 1932년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남산리에서 태어났다. 석곡국민학교를 다닐 때부터 농악판을 따라다니면서 굿을 배우다가 해방 후 마을로 이사 온 박성근(朴成根)패를 따라다니면서 본격적으로 고깔소고춤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후 마을 수법고였던 이근수와 마을에 굿을 가르치러 왔던 김양술(金良述)에게서도 고깔소고춤을 배웠다.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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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의 고창농악 고깔 소고춤 명인. 유만종은 1922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하고리에서 태어났다. 성송면 암치리로 이사한 후 당시 고깔소고춤의 명인 이모질의 고깔 소고춤을 보고 독학으로 익혔다. 그의 고깔 소고춤의 특기는 한 장단에 두 바퀴를 도는 연풍대이다. 같은 마을에 살았던 황규언(黃圭彦)·강대홍(姜大洪)·김영태·이종환과 함께 1985년에 고창농악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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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고창 출신의 고깔 소고춤 명인. 고창군 성송면 출신으로, 본명은 이모조이다. 1900년 초반 세습 무계(巫系) 집안에서 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이름을 강모질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고창군 성송면 암치리 마을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이모질이 확실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창 지역에서 가장 이름 난 고깔 소고잽이로 고창농악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모질은 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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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농악 명인. 임대은은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농악·풍어제·민요 편에서 영무장[영광·무장·장성·함평 등의 지역] 농악의 두 갈래의 전승 계보 중 성기만의 뒤를 이어 신영찬, 신두옥, 김상구(金相九)로 이어지는 한 축을 담당했던 인물로 조사되어 있다. 고창문화원장 이기화에 의하면, 임대은은 주로 고창군 흥덕면 일대에서 활동한 농악 명인으로 파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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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지역에서 활동한 우도농악 상쇠 명인. 전경환은 1921년 지금의 전라남도 영광군 영광읍 남천리에서 태어났다. 17세 되던 해 장성에 사는 상쇠 명인 최화집(崔化集)에게 쇠치는 법을 익히고, 20세 때는 고창군 성송면 남창리[현 성송면 하고리]에 사는 강성옥(姜聲玉)에게 배웠다. 또한 23세에 고창군 아산면 목동리 남촌에 사는 박성근(朴成根)에게 배우고, 33세에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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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상쇠 명인. 정호풍은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에서 태어났으나 언제 태어나고 죽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전혀 없다.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농악·풍어제·민요 편에서 영광·무장·장성농악[호남우도농악]의 두 갈래의 전승 계보 중 박귀바위·최화집·강성옥·정호풍·박성근(朴成根)·나덕복·전경환(全敬煥)으로 이어지는 한 축을 담당했던 인물로 조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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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고창 출신의 국악인. 편재준(片在俊)의 본관은 만경(萬頃), 본명은 편옥석(片玉石)이다. 아버지는 편도일(片道一)이고 어머니는 문남산(文南山)이다. 4남 2녀 중 큰아들로 태어났다. 편재준은 맹인이었으나 퉁소의 대가였다. 편재준은 조선 시대 대동미를 운송하던 큰 포구인 사진포[현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사포리 337번지]에서 1913년 태어났다. 사진포는 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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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의 고창농악 상쇠 명인. 황규언은 1920년 1월 20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 덕천리에서 태어났다. 9세 때 고창군 성송면 하고리 양사동으로 이사한 뒤 15세 때부터 동네 어른들을 따라 다니며 매굿·풍장굿·당산굿 등을 두루 섭렵하였다. 25세 때 고창의 유명한 굿패였던 박성근(朴成根)과 김만식(金萬植)패에 합류한 뒤 김만식에게는 장구 가락을 배우고,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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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고창 출신의 농악 소고 명인. 황재기는 1922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건동리에서 태어났다. 13세 때부터 풍물판을 따라다니면서 이모질에게서 엇박배기 동작을 배우는 등 이모질·김양술(金良述)·김오채 등과 소고를 쳤다. 이후 박성근(朴成根)·신영찬·신두억·김만식(金萬植)·김성락 등과 함께 활동하다가 24세 때인 1947년 정읍농악단 소속의 수벅고로 제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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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고창 출신의 농악 징수 명인. 황태봉은 1892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에서 출생하였다. 이후 신림면 반룡리로 이사를 했으며, 포목 장수로 생계를 이으며 고창과 영광, 정읍 등지에서 징수[징 치는 사람]로 활약하였다. 무장에서부터 박성근(朴成根)패와 인연이 있어서 징수로 활동했는데, 풍채가 좋아 씨름판을 휩쓸고 다녀서 황장군이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장구...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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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고창 출신의 유학자이자 서화가.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는 중립(中立), 호는 보정(普亭)이다. 1903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도산리 610-2번지에서 태어났다. 영모당(永慕堂) 김질(金質)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회천(晦泉) 김재종(金在鍾)이다. 김정회(金正會)는 어려서부터 종조할아버지 항재(恒齋) 김순묵(金純黙)의 문하에서 글을 배워 약관에 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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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고창 출신의 서양화가. 본관은 여양(驪陽)이고, 본명은 진기용(陳錤用)이다. 1913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무장리에서 진우곤(陳宇坤)의 1남 5녀 중 외아들로 태어났다. 진환(陳瓛)은 무장공립보통학교와 고창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31년 보성전문학교 상과에 입학했으나 곧 중퇴한 뒤 미술 공부를 시작했다. 1934년 일본으로 건너가서 일본미술학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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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의 서화가.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백효(伯效), 호는 후운(後雲)이다. 1886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칠암리에서 태어났다. 최순모는 일찍이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또 소남(少南) 이희수(李喜秀)에게 서화를 배워 글씨가 정묘하고 그림에 일가를 이루었다. 산수화와 화훼(花卉)를 잘하고, 특히 일지송...
서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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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의 서예가. 본관은 평해(平海)이며, 호는 석전(石田)·남고산인(南固山人)·칠봉거사(七峰居士)·백련산인(白蓮山人) 등이다. 1898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조동리에서 태어났다. 실학자 이재(頤齋) 황윤석(黄胤錫)의 7세손으로, 덕헌(德軒) 황효익(黄孝翼)의 5남 3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황욱은 6세에 서학에 입문하여 1916년 서울 중앙고등보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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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교육자이자 서예가. 본관은 여산(礪山)이며, 자는 평숙(平叔), 호는 염재(念齋)이다. 염재거사(念齋居士), 또는 염재옹(念齋翁)으로도 불렸다. 1872년 지금의 전라남도 화순군 동북면 사평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송긍면(宋兢勉)이다. 송태회는 어려서부터 글씨를 잘 써서 6세 때 쓴 「녹괴서실(綠槐書室)」이란 글씨를 중국 원세개(袁世凱)가 보고...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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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고창 출신의 관리·궁사·풍류 명인. 은성익은 1892년에 전라북도 고창군에서 태어났다. 일제 강점기에는 항일 독립운동을 하는 지하 조직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관선·민선으로 고창읍장을 지낸 명사로 문예에도 출중하였고, 명궁사로도 널리 알려졌으며, 가야금과 양금(洋琴)·장구·피리에 능한 풍류[정악(正樂) 가운데 악기의 합주를 일컬음] 명인이었다고 한다. 195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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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젓대·양금(洋琴) 연주자. 유봉은 1887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에서 태어났다. 맹인으로 젓대와 양금의 명인이었다. 그의 제자로 역시 맹인 연주자로 유명한 편재준(片在俊)이 있다. 고창 지역에서는 유봉을 포함하여 은성익(殷成益), 마금선(馬金宣), 김남수(金南洙), 진수정(陳洙頂), 김홍진(金洪鎭) 등이 풍류[정악(正樂) 가운데 악기의 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