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09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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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萬順 |
영어음역 | Bak Mansun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동희 |
[정의]
개항기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판소리 명창.
[개설]
1830년 지금의 전라북도 정읍시 고부면 수금리에서 태어난 뒤, 남원의 운봉과 경상도 안의(安義)에서 거주하기도 했다. 명창 최승학(崔昇鶴)과 동서간이다.
[활동상황]
박만순(朴萬順)은 신재효(申在孝) 문하에서 동편제 판소리를 배웠다. 당시 8명창으로 꼽히던 주덕기(朱德基)에게 판소리를 잠깐 배우다가, 당대의 명창 가운데 제일의 가왕(歌王)으로 치던 송흥록(宋興祿)에게 10여 년간 배웠다. 송흥록의 직계 문인(門人)으로 의발(衣鉢)을 받을 만큼 제자 중에서 뛰어나서 조선 전기 8명창 이후 최고의 동편제 명창으로 꼽힌다.
그의 목소리는 양성(陽聲)으로 성음이 맑고 밝았다. 특히 「춘향가」 가운데 「사랑가」·「옥중가」와 「적벽가」 가운데 「화용도(華容道)」와 「장판교대전(長板橋大戰)」 대목을 잘하였다. 「옥중가」 중 ‘춘향의 몽유(夢遊) 대목’이 송만갑(宋萬甲)·정정렬(丁貞烈)에 의해 방창(倣唱)하여 전하고, 「수궁가」 중의 ‘토끼 화상 그리는 대목’은 제자 김찬업(金贊業)을 통해 송만갑(宋萬甲)·전도성(全道成)·신명학(申明鶴) 등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의 다른 제자로는 고종 때의 명창인 오끗준·유공렬(劉公烈) 등이 있다.
박만순의 판소리는 일반 대중에서 인기를 끌었던 이날치(李捺致)의 판소리와는 대조적으로 주로 당대 지식인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세도가 김병기(金炳冀)의 총애를 받던 박만순은, 흥선대원군이 총애하여 선달 직첩을 내리기도 했으나 김병기가 실권하자 대원군의 초청에도 응하지 않고 절개를 지킨 것으로 유명하다. 1898년 69세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