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임화리에서 노가티 주인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98년 논산군에서 출간한 『내 고장 으뜸가꾸기 마을이야기 모음』6-양촌에 수록되어 있다. 옛날에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임화리에 노씨 성을 가진 장자가 살았다. 어찌나 재산이 많은지 인근에서 노 장자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해 노 장자가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갔다. 한양...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반곡리에서 말무덤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1년에 논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조선 중기 때의 일이다.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반곡리에 권 판서가 살았다. 그의 집에는 힘이 장사이면서 일 잘하는 비복(종) 한 명이 있었다. 비복은 꾀를 부릴지도 모르고 주인이 시키는 일이라면 그저 묵묵히 해치웠다. 그는 주인의 말이라면...
-
충청남도 논산시 관촉동에서 보냇다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1년에 논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표진강은 양촌, 반야산 앞을 지나 논산·강경을 안고 돌아 금강과 합류하여 서해 바다로 들어간다. 예전에는 그 강을 가로질러 반야산 우측 마을 거북실에서 오약골 넉바위까지 380칸의 긴 돌다리가 놓여 있었다. 이 다리는 전라도에서 한양으로 가는 유...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조정리·종연리에서 봉황산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91년에 논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조정리와 종연리 경계에 봉황산이 있다. 산 모양이 봉황과 같이 생겼다 하여 봉황산이라 부른다고 한다. 옛날 이 마을에서 홀아비가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는 아들이 무럭무럭 잘 자라 훌륭한 사람이 되어...
-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개척리에서 불암사 도승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1년 논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옛날에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개척리 산골에 불암사라는 사찰이 있었다. 불암사에는 학식을 겸비한 도승이 있어 많은 불자들이 찾아왔다. 어느 날 도승은 불상에 벼룩이 까맣게 달라붙은 것을 보았다. 도승은 이것이 불길한 전조라 생각하...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덕곡리에서 상사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1년에 논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조선 중기 때의 일이다. 지금의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덕곡리 마을에 마음씨 좋은 한 농부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망태기를 들고 산에서 약초를 캐다가 한 청년이 숲 속에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는 청년을 업고 집으로 돌아왔다....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양촌리에서 성삼문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91년에 논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성삼문은 10여 세에 이미 문장이 뛰어나고 글씨를 잘 썼다. 1453년(세종 17)에 생원 시험에 합격하고부터 벼슬을 하기 시작하였다. 1453년 수양대군이 왕위 찬탈의 야욕을 품고 거사할 때 성삼문은 우사간으로 있었다. 1455년 수양...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산직리에서 석축산성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내 고장 으뜸가꾸기 마을이야기 모음』6-양촌에 수록되어 있다. 옛날 지금의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산직리에 한 초막집이 있었는데, 그곳에 어머니와 남매가 살고 있다. 남매는 남달리 힘이 장사였다. 아들은 강직할 뿐 아니라 의협심이 강했고, 딸은 매사에 치밀하고 활동적이었다. 둘은 무엇이든 지기 싫어해서...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과 노성면 교촌리에서 옥녀봉과 무동산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1년 논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옛날에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에 농부가 살고 있었다. 농부에게는 힘이 장사인 아들과 딸이 있었다. 남매는 힘이 셌지만 서로 다투지 않고 부모에게 순종하며 잘 자랐다. 그러던 어느 날 남매는 서로 자기가 힘이 세다고 자...
-
충청남도 논산시 채운면에서 채운과 채운산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1년 논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조선 전기 때의 일이다. 청양의 정산 고을에 황진사가 아내와 단란하게 살고 있었다. 부부는 자녀가 없어 안타까워하다가 영험한 명산대찰을 찾아다니며 기도를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황진사가 아내에게 “채운산의 용왕사가 영험하여 그곳에 빌어 자식...
-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항월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힘센 장사 이야기. 「최장사와 팔장사」는 1991년 논산문화원에서 간행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옛날 지금의 광석면 항월리 서변마을에는 최장사(崔壯士)가 살았고, 이웃 마을 풋개(초포)에는 팔장사가 살았다. 서변마을에 살던 최장사는 어찌나 힘이 센지 바위를 마치 공깃돌 가지고 놀 듯하였다. 최장사가 가지고 놀았다는 바위가...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서 명재 윤증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명재 윤증은 조선 숙종 때의 학자이다. 자는 자인(子仁), 호는 명재(明齋)·유봉(酉峯)이며, 윤증이 이름이다. 예론에 정통한 학자로 여러 차례 벼슬이 내려졌으나 모두 사양하였다. 저서로 『명재유고(明齋遺稿)』 등이 있다. 2007년 2월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 유봉마을에서 전승희(여, 73)가...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에서 퉁소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91년 논산군에서 출간한 『내 고장 으뜸가꾸기 마을이야기 모음』1-연산에 수록되어 있다. 옛날에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에 사는 부부가 앞 못 보는 아기를 낳았다. 부부는 봉사 아들을 키우다가 세상을 떠났다. 마을 사람들은 성격이 유순하고 온화한 봉사를 동정하였다. 봉사는 성인이 되어 가난...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한삼천리에서 느티나무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91년 논산문화원에서 간행한 『놀뫼의 전설』에 실려 있다. 조선 중기 신독재 김집 선생은 한양에서 고향으로 내려와 한삼천리의 북쪽 양산리 고운사(孤雲寺)에 정희당이라는 학교를 세웠다. 김집 선생이 어진 인품과 학식으로 학문을 베풀자 인근 고을의 유생들이 속속 모여들어 수학하였다. 어느 여름, 학동들이...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채광리에서 탑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8년 논산문화원에서 간행한 『놀뫼의 전설』에 실려 있다. 옛날 채광리 새터마을에 한 할머니가 살았다. 그는 손자가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면서 산신령께 기도하곤 하였다.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산신령이 나타나, “둘째 손자가 무관이 될 것이니 탑을 쌓아놓고 밤낮으로 정성을 다하여 기도하라.”고 하였다....
-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교촌1리 망북동에서 매년 음력 정월 14일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하여 지내는 마을 제사. 교촌리 망북동 서낭제는 예부터 지내왔는데, 산제를 겸하여 여성들이 주관하는 것이 특징이다. 1970년대 이후 한동안 서낭제가 중단된 적이 있는데 그 뒤로 마을에서 불상사가 자주 발생하여 다시 제를 모시게 되었다. 제일(祭日)은 해마다 음력 정월 14일로 고정되...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에서 파평윤씨가 모여 사는 마을. 파평윤씨는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명문거족이었으며, 조선시대에도 많은 학자·정치가를 배출하고 왕비를 가장 많이 배출한 명문가이다. 그 가운데 노성 지역의 파평윤씨를 ‘노종 5방파’라고 칭한다. 17세기에 당쟁이 격화되면서 서인이 노·소론으로 나누어질 때 파평윤씨 집안을 중심으로 소론의 중심지가 되었던 지역이 노성현이었다....
-
시묘리는 시묘천을 따라 이어지는 지방도 602호선의 양쪽에 골짜기마다 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물길 방향인 남동쪽에서 북서쪽 방향으로 보면 시묘2리, 시묘1리, 시묘3리, 시묘4리의 순서로 이어진다. 시묘리는 4개의 행정리로 구성되어 있다. 구자곡면 시절에는 하나의 마을이었다가 구자곡면이 1936년 연무읍으로 승격되면서 시묘리는 은진면으로 편입되었고, 이때 인...
-
충청남도 논산시에 속하는 법정면. 노성이란 지명은 조선 전기에 니성현(尼城縣)을 노성현(魯城縣)으로 개칭한 데서 시작되었다. 백제시대에는 열야산현(熱也山縣), 통일신라시대에는 니산현(尼山縣)으로 개칭되었다가 조선시대에 들어와 니성현(尼城縣)으로 바뀌었다. 본래 노성현의 소재지로 읍내면이라 하여 교촌, 신촌, 죽촌, 천재동, 송아, 송당, 월명, 왕림, 상반, 무정, 남산, 홍문의...
-
충청남도 논산시 대교동에 있는 조선 후기 논산석교를 중수한 뒤 세운 2기의 비. 은진현감 서증보(徐曾輔)가 큰 장마로 유실된 다리에 큰 돌을 놓아 논산 지역의 발전에 기여하고, 전라도에서 한양으로 가는 통행인들에게 편의를 제공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된 비로, 1846년(헌종 12)과 1858년(철종 9)에 건립하였다. 논산시에서 득안대로를 타고 강경 방향으로 약 2㎞ 가다가 놀...
-
충청남도 논산시에 속하는 법정동. 동네에 큰 돌다리가 있는 마을이라 하여 돌다리 또는 석교리라 하였다가 대교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대교동은 예부터 호남, 즉 전라도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로 강경 미내다리와 채운 원목교·큰다리(지금의 논산대교)로 이어지는 당시로는 매우 중요한 교통의 요지였다. 대교다리는 『춘향전』에서 이 도령이 지났다는 다리로, 대교다리가 있는 대교동은 은진·여산 방...
-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에 속하는 법정리. 넓은 들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덕들 또는 덕평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조선시대 원님들이 가마를 타고 한양으로 오갈 때 모습이 모두 보인다 하여 가마들이라고도 불렀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외성면(外城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부황리(夫皇里)·다오개리(多五介里)·관학리(觀學里)·묵동(墨洞)·용구산리(用九山里) 일부와...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반암리에 있는 수령 300년의 느티나무. 느티나무는 쌍떡잎식물 쐐기풀목 느릅나무과의 낙엽 활엽 교목으로 규목(槻木)이라고도 한다. 높이 26m, 지름 3m까지 자란다. 굵은 가지가 갈라지며, 나무껍질은 회백색이고 늙은 나무에서는 나무껍질이 비늘처럼 떨어진다. 꽃은 5월에 취산꽃차례를 이루며 피고, 열매는 핵과(核果)를 맺으며 10월에 익는다. 산기슭이나 골짜...
-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은진현(恩津縣)편에 의하면 예전의 강경포는 강경산 아래 있는 해진(海津)이며, 강경산 봉수는 전라도 용안현(龍安縣) 광두원산(廣頭院山)에 응하고, 북으로는 황화산(皇華山)에 응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조선시대의 강경은 한양과 호남간 봉화(烽火)의 중계지였다. 17세기 초의 조선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난 직후였으므로 전쟁의 피해복구...
-
주곡리의 청주양씨는 서원백파(西原伯派)로 원래 한양에서 살다가 중종연간에 첨정공 양춘건이 주곡리에 정착하였다. 현재도 청주양씨는 마을 인구의 50~60% 정도를 차지하고 있지만 마을에 사람이 한창 북적이던 1970~1980년대는 70%가 넘었다고 한다. 현재는 이장, 새마을지도자, 동계 회장, 총무 등등 대부분의 주요직을 맡고 있어 마을 일에 적극적이며, 마을 내에 가장...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행해지는 식품과 음식에 관련된 모든 활동. 논산 지역은 충청남도의 남부 지역으로 서쪽으로는 금강이 북에서 남쪽 방향으로 흐르고, 북동쪽은 계룡산(鷄龍山)·대둔산(大芚山)이 걸쳐 있는 험준한 산악지대이다. 또한 남쪽은 전라북도 완주군과 익산시와 경계를 접하고 있어 식생활에 있어서도 이러한 지형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역사적으로 기호 유교 문화권의 중심이란 지역...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행해지는 식품과 음식에 관련된 모든 활동. 논산 지역은 충청남도의 남부 지역으로 서쪽으로는 금강이 북에서 남쪽 방향으로 흐르고, 북동쪽은 계룡산(鷄龍山)·대둔산(大芚山)이 걸쳐 있는 험준한 산악지대이다. 또한 남쪽은 전라북도 완주군과 익산시와 경계를 접하고 있어 식생활에 있어서도 이러한 지형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역사적으로 기호 유교 문화권의 중심이란 지역...
-
충청남도 논산 지역을 중심으로 구성된 사회의 변천 과정과 과거의 사실. 현재까지 조사·발굴된 유적이나 유물에 의하면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의 인간 사회의 형성과 전개는 청동기시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청동기시대를 전후하여 현재까지의 충청남도 논산 지역의 역사는 선사시대, 삼국시대, 통일신라~고려시대, 조선시대, 근대~현대로 나눌 수 있다. 논산 지역은 자연 지리적으로 동고서저...
-
조선시대 논산의 역사. 1. 조선 건국 고려의 멸망 이후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최대 관심사의 하나는 신 도읍을 정하는 것이었고 논산 계룡산 부근의 신도내는 고려시대의 남경이었던 한양과 더불어 그 유력한 후보지의 하나였다. 당시 논산의 계룡산 부근이 강력한 천도 지역으로 떠오른 이유는 권중화(權仲和)의 역할이 컸다. 권중화는 태조의 명으로 태실증고사로 왕실 안태의 장소를 물색...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조수의의 선정비. 조수의(趙守誼, 1699~?)는 본관이 한양으로, 자는 정숙(正叔)이다. 1735년(영조 11)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1758년 5월 연산현감으로 부임하여 1762년 정월에 이임할 때까지 무려 5년 동안 연산현감으로서 선정을 베풀었다. 조수의가 천안군수로 떠날 때 주민들이 그의 이임을 말리며 아쉬워했으나 어쩔 수 없...
-
양기를 시조로 하고 양춘건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에는 청주양씨, 함평이씨, 전주이씨 세 집안이 살고 있는데, 이 중 청주양씨는 주곡리의 터줏대감이라 불릴 만큼 오랜 세월 세거해 왔다. 1920년 일제강점기에 간행된 『조선의 성(朝鮮の姓)』에 따르면, 1920년대 논산의 동족마을에 대한 자료에서 청주양씨가 상월면 주곡리에 동족마을을...
-
한란을 시조로 하고 한여헌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한씨는 한국의 최고 역사를 지닌 이른바 삼한갑족이다. 본관은 문헌에 청주 외에 평산·한양·안변 등 10여 본이 기록되어 있으며, 모두 청주에서 분적되었다고 한다. 한씨는 멀리 고조선시대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 『청주한씨세보』에 의하면 기자조선의 마지막 왕인 준왕의 후대에 우성(友誠)·우평(友平)·우량(友諒)의...
-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충곡리에 있는 수령 500년의 은행나무. 충곡리 은행나무가 있는 마을 이름이 한양말인데, 이는 성삼문이 한양과 관계가 깊었던 데서 연유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그리고 은행나무 바로 아래에 밭이 있고 밭머리에 두 채의 집이 있는데, 지금도 그곳을 깊이 파면 검은 빛깔의 기와가 나온다. 이러한 정황에 미루어 이곳이 당시 성삼문이 살던 집터라는 설이 전해 오고 있다...
-
조선시대에 충청남도 논산 지역은 한양과 전라도를 잇는 주요 교통로의 하나였다. 충청도 공주와 전라도 여산 사이의 논산 구간을 정리하면, 노성면-부적면 부인리-부적면 마구평리-부적면 아호리-은진면 교촌리-채운면 야화리-채운면 장화리-채운면 삼거리-강경포로 나타낼 수 있다. 이들 지역의 일부 마을에는 주요 교통로를 지키는 동시에 길손의 안녕을 도모하는 서낭이나 노표(路標) 장승 등이...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에 속하는 법정리. 한천리는 예부터 찬물이 많이 나는 고장으로 이름났다. 옛날 한양으로 오고 가는 나그네들이 노성현 하도면에서 일박하고 돌아가야 선객(仙客)의 멋이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한여름에도 찬물이 많이 나와 한천(寒泉)이라 하였다. 충청남도 노성군 하도면(下道面)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평리(坪里), 내동(內洞)을 병합하여 한...
-
일제강점기는 그 어느 때보다 고생스러웠다. 일제의 수탈은 사람들의 삶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였기에 지금까지 살아있다는 사실이 대단하다고 말할 정도였다. 가장 풍요로워야 할 가을 추수 때에는 일부러 달빛도 없는 한 밤을 틈타 쌀을 짊어지고 옮겼는데 혹시 낮에 들고 다니다가는 뺏길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본인들은 강제적으로 토지측량을 벌였고, 지적도에 소유자 명을 쓰라 하였다.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