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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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5년(고종 2)에 간행된 조선 중기 논산 지역에 세거한 서필원의 문집. 서필원(徐必遠, 1614~1671)의 아들인 서경조(徐敬祖)가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중에서 저자의 소장(疏章) 70편과 계사(啓辭) 12편을 찾아내고, 또한 남은 시문을 수습해서 선사(繕寫)하여 집안에 보관해 두었다. 1790년(정조 14) 서필원의 증조부인 서익(徐益)의 『만죽헌집(萬竹軒集)』이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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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일원에 있는 강경전통맛깔젓 유통 시장. 강경젓갈시장은 1930년대까지 국내 3대 시장 중 하나였던 강경 시장의 명성을 되찾고, 강경전통맛깔젓을 강경 지방의 특산물로 내세우면서 이를 통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할 목적으로 1990년대부터 강경읍 일원에 복원하기 시작하였다. 1930년대까지 강경 지역은 강경전통맛깔젓 등의 각종 수산물이 활발하게 거래되는 포구가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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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강경포에서 천주교 신자와 향촌 세력 간의 갈등으로 발생한 사건. 강경포 교안 사건은 천주교 신자인 김치문(빈첸시오)과 소금 상인 조흥도가 충돌하여 시작된 사건으로, 천주교 신자와 일반 주민의 갈등에서 출발하여 주한 프랑스 공사와 대한제국 간의 외교적 갈등으로 확대되어 일반인들의 교회에 대한 인식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 교안이란 천주교가 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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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조정리에 있는 학자 이항래를 제향하는 재실. 이항래(李恒來)의 본관은 전주, 호는 월파(月波)이다. 조선 태조의 셋째 아들인 익안대군(益安大君) 이방의(李芳毅)의 증손 이현동(李賢童)의 12세손으로 천성이 어질고 착하였으며, 문장이 높고 학문이 깊었다. 부귀를 멀리하고 평생 학문과 덕을 쌓으며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다. 가야곡면사무소에서 북쪽 1.7㎞ 지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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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재화·용역의 생산·분배·소비와 관련되는 활동 전반. 18세기 이래 상품화폐 경제가 발달하자 화물의 대량운송이 가능한 곳인 포구가 경제산업 입지의 중요한 조건의 하나로 등장하게 되었다. 충청남도 논산의 강경 지역은 수로로도 비교적 큰 선박이 들어올 수 있었으며 육로로도 북으로는 공주, 남으로는 전주에 연결되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편리한 교통 이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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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건국 이후부터 고려 말까지 충청남도 논산 지역의 역사. 통일신라시대에 웅주와 전주의 관할 구역으로 분리되어 있었던 논산 지역은 고려조에 들어와 웅주가 공주로 개칭되면서 모두 공주의 관할 구역이 되었으며 연산군(連山郡), 덕은군(德恩郡), 니산현(尼山縣), 시진현(市津縣)이 그 구체적인 지역이었다. 연산군은 통일신라시대에 황산군이라 불리었으나 고려 초에 개명되어 현종 9년에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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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에서 연무읍 마전리까지 연결되는 국도. 국도 1호선은 전 구간이 전라남도 목포시에서 평안북도 신의주시까지 이르는 일반국도이다. 목포시에서 판문점까지의 길이는 498.7㎞이고, 목포시에서 신의주시까지의 길이는 939㎞이다. 판문점까지 왕복 2차선은 152.9㎞, 왕복 4차선은 279.6㎞, 왕복 6차선은 64.9㎞이다. 미포장도로는 636m, 미개통 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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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은 금강과 논산천이 합류하는 가항(可航) 포구로서 전라북도 용안면의 평야 지대, 논산평야 등 국내 굴지의 미곡 생산지를 배후에 끼고 있어 조선 후기 이래 전국적인 상업 중심지로 성장하였다. 1876년 개항 이래 충청도 전체의 시장권이 철도와 개항장을 거점으로 제국주의적 상품 유통 시장으로 재편되면서 전통적 시장권의 중심인 강경의 지위는 하락하였다. 그러나 유통시장권에서의 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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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금곡리에 있는 조선 중기에 건립된 서원. 금곡서원은 1682년(숙종 8) 기호사림의 종사였던 신독재 김집이 발의하였으며 노론의 거두인 송시열, 송준길 등이 추진하였다. 금곡서원 건립의 주도 인물들을 볼 때 서원의 건립은 기호사림, 또는 노론의 강력한 지지, 광산 김씨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건물의 상량문을 지은 인물은 윤증으로, 건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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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고내리 효죽마을에 있는 조선시대 공촌면장 김상식의 불망비. 공촌면은 조선시대 여산군(礪山郡)에 속한 면이다. 1914년 익산군 황화면(皇華面)에 통합되었고, 1963년 충청남도 논산군 구자곡면과 통합되면서 육군훈련소의 연무대(鍊武臺) 이름을 따 연무읍이라 하였다. 공촌면장이었던 김상식이 공촌면 주민들에게 베푼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해 건립하였다. 논산시에서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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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에서 원재료나 반제품을 가공하여 공산품을 생산·판매하는 산업 시설. 논산 지역은 예부터 넓은 평야와 함께 농업이 주산업으로 되어 있어 타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산업 시설이 낙후된 지역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농업이 점차 쇠락하면서 농촌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농촌 인구의 도시 이주를 억제하기 위한 정책으로 농공단지 건립이 추진되면서 공장 건설이 다소 활성화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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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농민이 그 생활 조건 또는 사회적 환경의 개선을 위해 전개한 사회운동. 일반적으로 농민운동은 노동운동과 같이 계급으로서의 농민이 스스로의 노동 조건과 경영 조건의 유지·개선·확장 또는 사회·정치적 생활 조건의 유지·향상을 위해 단결해서 행동하는 조직적 투쟁을 말한다. 넓은 의미로는 흔히 농민조합운동, 농촌갱생운동, 농촌청년운동 등을 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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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과 양촌면 및 전라북도 완주군에 걸쳐 있는 산. 대둔산의 옛 이름은 한듬산이라고 하며, 계룡산의 지세와 겨루다 패해 한이 맺힌 산이라는 이야기가 내려온다. 또한 한듬산은 순 우리말로 ‘크다’는 뜻의 ‘한’과 ‘덩이’라는 뜻의 ‘듬’을 한자화하면서 한은 ‘대(大)’로, 듬은 비슷한 ‘둔(芚)’으로 되었다는 설이 있다고 전해 오기도 한다. 노령산맥의 북부에 위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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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훈련소는 1951년 11월 1일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일대에 ‘제2훈련소’라는 이름으로 창설된 대한민국 육군 신병교육기관이다. 논산의 육군훈련소는 1951년 11월 1일 창설되어, 그 다음 달인 12월 5일에는 1개연대(23연대)가 창설되었고, 이후 1952년 5월부터 11월까지 총 6개 연대(25~30연대)를 창설하였다. 그 후 제2군사령부, 교육사령부를 거쳐 육군본부에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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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 지역에 있던 동양척식주식회사 지점. 통감부를 설치한 이래 일제는 조선으로 자국인의 이주를 적극적으로 권장하였다. 각 지역에 대한 안내서 발행은 이와 같은 목적을 관철하는 데 있었으며, 농업이민 장려는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설립으로 귀결되었다. 동양척식주식회사는 1908년 「동양척식주식회사법」에 의하여 농사 개량과 농업 기술 향상이라는 표면적인 목적을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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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합세하여 일으킨 농민운동. 동학농민운동은 1894년(고종 31)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합세하여 일으킨 대규모 농민운동으로 갑오농민운동 또는 갑오농민전쟁이라고도 한다. 당시 조선은 대외적으로나 내부적으로 붕괴되어 가고 있었다. 대외적으로는 동아시아의 국제질서를 주도해왔던 청(淸)나라의 몰락과 함께 밀어닥친 제국주의 열강의 강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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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금곡4리 모청마을에 있는 조선 말기 무작금의 충노비. 무작금 비는 이례적으로 김수남의 정려와 묘소에 각각 한 기씩 세움으로써 죽어서도 충신 김수남을 지키는 충노로서 역할을 하게 하였다. 김수남의 묘소는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운산리에 있지만 김수남은 은진면 사람으로 정려가 연무읍 금곡4리에 있어 무작금의 비 또한 김수남 정려 옆에 세워져 있는 것을 알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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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고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여산부사 민의호의 불망비. 논산시에서 전주 방향으로 국도 1호선을 타고 약 8.95㎞ 직진하다 보면 황화교차로가 나온다. 여기에서 왼쪽 방향으로 가다 보면 봉곡서원이 나온다. 민의호 불망비는 봉곡서원 바깥 담장 아래에 서향으로 서 있다. 비석은 귀접이형으로 높이 100㎝, 너비 40.5㎝, 두께 11㎝이다. 앞면 좌우에 공적 내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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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고내리에 있는 조선시대 사인이었던 박동래의 불망비. 사인 박동래가 백성에게 베풀었던 은혜를 기리고 오래도록 잊지 않기 위해 건립하였다. 논산시에서 전주 방향으로 국도 1호선을 타고 약 8.95㎞ 직진하다 보면 황화교차로가 나온다. 여기에서 왼쪽 방향으로 가다 보면 봉곡서원이 나온다. 박동래 불망비는 봉곡서원 바깥 담장 아래에 서향하여 서 있다. 비석은 귀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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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열녀. 본관은 전주. 익안대군의 7대손이며, 아버지는 이눌(李訥, 1552~1631)이며, 남편은 영사재에 제향된 박동민(朴東民, 1566~1593)이다. 슬하에 3형제를 두었다. 박동민의 처 전주이씨는 노모께 효도를 하고 남편에 대한 내조에 최선을 다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주이씨는 남편과 함께 노모를 모시고 아들 3형제와 피난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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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고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사원. 봉곡서원은 이계맹(李繼孟), 이순인(李純仁), 남명한(南溟瀚), 진극효(陳克孝), 남두건(南斗建)을 제향한 곳으로, 우암 송시열과 오봉(五峯) 이호민(李好閔)의 발의로 창건되었다. 논산시에서 전주 방향으로 국도 1호선을 타고 약 12.48㎞를 가면 논산시 연무읍이 나온다. 여기에서 왼쪽으로 약 2.94㎞를 가다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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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년대 후기에 이 지역과 인연을 맺은 부여서가는 시간이 흐를수록 문중활동을 강하게 펼치며 자신들의 전통과 사회적 지위를 고양시키기 위해 다양하고도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그중에서도 1867년 이루어진 행림서원의 건립은 이런 그들의 노력에 가장 큰 정점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유서 깊은 문중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는데 그 중 하나가 문중사람들의 규약인 종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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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을 중심으로 구성된 사회의 변천 과정과 과거의 사실. 현재까지 조사·발굴된 유적이나 유물에 의하면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의 인간 사회의 형성과 전개는 청동기시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청동기시대를 전후하여 현재까지의 충청남도 논산 지역의 역사는 선사시대, 삼국시대, 통일신라~고려시대, 조선시대, 근대~현대로 나눌 수 있다. 논산 지역은 자연 지리적으로 동고서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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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안심리에 있는 버스터미널. 연무대 고속버스터미널 앞에는 연무로터리가 있으며, 연무읍에서는 가장 번화한 곳에 있다. 한편, 천안논산고속도로가 뚫리면서 논산 지역에서 전주로 들어가는 길목의 역할을 연무대 고속버스터미널 앞의 연무로터리가 하고 있다. 연무대 고속버스터미널은 단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층에 매표소가 있다. 2008년 현재 서울시 서초구 반포동의 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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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의병. 오일경은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 지역 출신이다. 1910년 일본의 강점이 본격화되자 나라를 되찾으려는 결심을 하고 의군(義軍)을 모집하고 지휘하여 근처 산에서 일본군 기마부대와 전투를 벌여 일본군 90명을 사살했다. 이후에도 논산 지역 일대를 돌아다니며 의병 활동을 이어가다 밀고로 일본헌병에게 검거되어 전주에서 사형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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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하도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윤행교의 묘표. 윤행교의 묘는 원래 공주 작곡에 있던 것을 전주 팔봉산 아래로 이장하였다가 후에 다시 지금의 노성면 하도리로 이장하였다. 윤행교 묘표는 묘를 이장한 후 1697년(숙종 23)에 윤행교의 가계, 성품, 행적을 기록하여 후손들이 본받을 수 있게 하였다. 공주-논산 간 구 도로를 타고 가다 보면 노성면 하도리 노성비행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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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교촌리에 있는 조선 전기에 건립된 관학 교육기관. 논산에서 전주 방향으로 국도 1호선을 타고 약 2.36㎞ 가다 보면 은진사거리가 나온다. 여기에서 은진 방면으로 좌회전하여 0.75㎞ 가면 향교길이 나오고, 여기서 다시 좌회전하면 은진향교가 나온다. 은진향교는 15세기 익성군의 묘소가 있는 은진면 용산리에 세워졌다. 이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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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논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세조의 후손인 덕원군의 후손이다.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에서 출생하였다. 이광근은 집안이 가난하여 부모님을 봉양하고자 머슴살이를 하였으며 좋은 음식이 생기면 자기가 먹지 않고 부모님께 먼저 갖다 드렸다. 어머니가 병환으로 자리에 눕자 온갖 좋다는 약을 다 썼으나 백약이 무효하여 병이 더욱 심해졌다. 병이 위중하자 대변의 맛을 보며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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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논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춘담. 효령대군의 후손이다. 이기팔은 형제 5명과 우애가 남다르게 깊었으며 평생 부모님에게 효도하다가 부친이 병으로 위독해지자 혼신의 정성을 다하여 간병했으며 돌아가자 비통함이 극에 달해 실신할 정도였다. 장례 후에도 3년간 성묘를 정성껏 하여 인근에 효성이 자자하였다. 이기팔이 죽은 뒤 유림에서 그의 효성을 기리기 위해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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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논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순여. 효령대군 후손으로 형 이기팔과 함께 효행을 행하였다. 이기호는 유학의 예법을 몸소 실천하여 형제간의 우애가 깊었고 서로 도와가며 살았으며 부모님을 모시고 정성껏 봉양하였다. 부친이 병들자 온 힘을 다하여 간병하였다. 그러나 별로 효험이 없자 손가락을 베어서 수혈을 해드려 수일을 연명하게 했다. 어머니가 병이 들어 한 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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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고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부사 이두현의 불망비. 논산시에서 전주 방향으로 국도 1호선을 타고 약 12.48㎞를 가면 논산시 연무읍이 나온다. 여기에서 왼쪽으로 약 2.94㎞를 가다 보면 고내리가 나온다. 이두현 불망비는 고내리 효죽골에 자리 잡고 있는 봉곡서원 바깥 담장 아래에 황화정비, 김상식 불망비 등과 함께 세워져 있다. 비의 석질은 화강암으로, 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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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논산 지역의 열녀. 본관은 전주(全州). 남편은 고성이씨(固城李氏) 이선일(李善一)이다. 이선일 처 전주이씨는 이선일에게 시집온 후 부모님을 지성으로 모시고 남편에게도 예의를 다하였으며 자녀교육에도 엄격하여 주변에서는 칭찬이 자자하였다고 한다. 어느 날 남편이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슬픔을 이기지 못한 이씨는 남편의 상여를 떠나보낸 후 간수를 마시고 자결하였다. 188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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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행림서원에 제향된 조선 중기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광구(光九), 호는 도애(桃崖). 효령대군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석탄(石灘) 이신의(李愼儀)이며, 외조부는 영의정 심연원(沈連源)이다. 선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조정에 나아가 관직 생활을 하였으며, 여러 관직을 거쳐 사옹원주부(司饔院主簿)에 이르렀다. 그러나 광해군 즉위 뒤 정치의 문란함에 회의를 느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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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조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 은진현감 이소의 선정비. 이소는 전주 사람으로 주계군과 이소재의 문하에서 공부했으며, 우계 성혼과 교의을 맺었다. 선조 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사옹원주부에 이르고, 광해군 때에 관직을 버리고 낙향하였다가 인조반정 후에 이조참판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고 은진현감으로 내려와 선정을 베풀어 부임한 지 8개월 만에 고을 인심이 순화되었다고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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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논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효령대군의 후손이다. 이언섭은 천성이 효성스러워 부모님을 봉양하는 데 남달랐다. 아버지가 병이 들어 위독할 때 손가락을 깨물어 수혈하고 양친이 병들어 요구하는 것을 백방으로 구해 드리니 병이 낫기도 하였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일이면 어떤 어려운 일이라도 포기하지 아니하고 실천하며 불우한 이웃을 보면 자기가 곤궁하여도 도와주니, 향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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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양지리에 있는 자동차 시트 제조업체. 이원컴포텍(주)는 현대자동차(주) 전주공장에 자동차 시트 및 내장재를 납품하기 위해 전주와 지리적으로 가깝고 교통이 편리한 논산에 공장을 설립하였다. 1994년 11월 현대자동차(주) 전주공장 신축과 함께 (주)현대공업의 상용차 시트 사업 부문을 분리하여 충청남도 논산에 이원산업(주)을 설립하였다. 1995년 8월 첫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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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종친.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수원. 할아버지는 중종이며, 아버지는 선조의 형인 하원군, 어머니는 영의정 홍섬의 딸인 남양홍씨이다. 군수 소수의 딸 진주소씨와 혼인하여 슬하에 5남 4녀를 두었다. 13세 때 익성정을 배수하고 그 뒤에 도정으로 승진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선조가 의주에 파천되어 북방으로부터 하원군을 모시고 여러 달 만에 행재소에 다다르니 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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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충곡서원에 제향된 조선 전기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농맹아(聾盲啞). 증조부는 익안대군 이방의(李芳毅)이며, 아버지는 백파도정(白波都正) 이상(李常)이다. 슬하에 4남 3녀를 두었다. 이현동은 천성이 어질고 착하여 왕손의 몸일지라도 부귀에 마음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강호산인(江湖散人) 김숙자(金叔滋)의 문인으로 그의 아들 김종직(金宗直)과 도의(道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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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조령리에 있는 조선 전기 종친 이현동의 묘소. 이현동의 본관은 전주, 호는 농맹아(聾盲啞)이다. 태조의 3남 익안대군 이방의(李芳毅)의 증손이며, 백파(白波) 이상(李常)의 아들이다. 천성이 어질고 착하여 부귀에 마음을 두지 않았다. 세조가 조카인 단종을 폐하고 왕위에 오르자 이를 한탄하며 논산시 벌곡면 조령리로 낙향하여 정착하였다. 평생을 조령리에 살며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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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전개된 전투.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까지 2차에 걸친 왜군의 침략으로 일어난 전쟁이다. 1597년의 제2차 침략전쟁을 따로 정유재란이라고도 하며, 일본에서는 분로쿠 게이초(文祿慶長)의 역(役), 중국에서는 만력(萬曆)의 역(役)이라고 한다. 당시 충청남도 논산 지역도 특히 제2차 침략전쟁을 계기로 치열한 전투가 전개되는 격전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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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남도의 논산 지역에서 정기적으로 개설된 장시망. 조선시대 논산 지역의 장시를 살펴보면, 은진에는 읍내장·저교장(楮橋場), 강경장(상·하장으로 구분), 논산장, 연산에 사교장(沙橋場)·두마장(斗馬場) 등의 장시가 있었지만 노성에는 없었다. 논산이 위치한 금강 유역은 충청도 지역 중에서도 가장 장시밀도가 높은 곳이었다. 조선 후기 충청도 전체의 장시권 평균 면적은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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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시장의 역사는 17세기 말경에 열린 하시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는 시장이라기보다 민간 소유답에 휴한기를 이용하여 상품을 진열하는 정도였다. 1808년 저습지를 매립하여 입지를 확보하면서 큰 시장의 규모로 확대되었다. 그 후 인구가 늘어나면서 시가지를 조성하게 되어 상권은 더욱 넓어졌다. 상시장이 생긴 것은 지금의 북옥동 등 옥녀봉 밑의 주민들이 중심이 되어 시장을 증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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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젓갈시장은 7월 중순부터 11월말까지이나 김장철 직전에 성시를 이루어 대전, 군산, 익산, 전주 등지에서 몰려온 젓갈류 도매상들과 소비시장에 내다 팔기위해 소량이나마 도매값으로 사려는 소상인들, 김장젓갈을 싸게 사려고 온 주부들 등으로 붐빈다. 8월 초부터 12월 초까지의 성수기에는 하루 평균 250~300여 드럼이 거래되며 가을철에는 1일 평균 120여대의 관광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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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을 시조로 하고 이현동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전주이씨는 이한(李翰)을 시조로 한다. 전주이씨 족보 『선원선계(璿源先系)』에 의하면 이한은 전주의 토착 세력으로 명문 태생이었다. 이성계(李成桂)의 6대조 이린(李隣)과 그의 형 이의방(李義方)은 고려시대 중앙 정부에 진출하였으며, 이성계의 직계 선조는 당시 여진족(女眞族)이 사는 지역으로 거처를 옮겨 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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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논산의 역사. 1. 조선 건국 고려의 멸망 이후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최대 관심사의 하나는 신 도읍을 정하는 것이었고 논산 계룡산 부근의 신도내는 고려시대의 남경이었던 한양과 더불어 그 유력한 후보지의 하나였다. 당시 논산의 계룡산 부근이 강력한 천도 지역으로 떠오른 이유는 권중화(權仲和)의 역할이 컸다. 권중화는 태조의 명으로 태실증고사로 왕실 안태의 장소를 물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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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5월 경부선의 개통은 강경의 쇠락을 예고하는 전주곡이었다. 경부선이 금강의 소항 종점인 부강을 지남에 따라 군산과 강경을 경유하여 부강으로 공급되었던 수산물과 일용 잡화는 부산과 인천을 경유하는 철도가 수송함으로써 금강수운의 역할은 자연히 감퇴할 수밖에 없었다. 경부선이 상류의 공주와 청주 지역을 강경의 상권에서 분리시킴으로써 금강수운과 하안취락은 큰 변혁을 겪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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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에 속하는 행정동이자 법정동. 마을 안에 독수리가 날아가는 듯한 형태의 수리바위가 있어 수름바위 또는 취암이라 하였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화지산면(花枝山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주동(酒洞)·반월동(半月洞) 일부와 성본면(城本面)의 마연(馬淵) 일부, 연산군(連山郡) 부인처면(夫人處面)의 둔전평(屯田坪) 일부를 병합하여 취암리라 하고 논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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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충청남도 논산 지역은 한양과 전라도를 잇는 주요 교통로의 하나였다. 충청도 공주와 전라도 여산 사이의 논산 구간을 정리하면, 노성면-부적면 부인리-부적면 마구평리-부적면 아호리-은진면 교촌리-채운면 야화리-채운면 장화리-채운면 삼거리-강경포로 나타낼 수 있다. 이들 지역의 일부 마을에는 주요 교통로를 지키는 동시에 길손의 안녕을 도모하는 서낭이나 노표(路標) 장승 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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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마전리와 광석면 정지리를 연결하는 고속도로. 호남고속도로는 정부의 전국 간선도로망 구성계획에 따라 경부고속도로에 이어 건설된 노선이다. 호남고속도로는 당초 경부고속도로 서울시점 145㎞ 지점인 대전광역시 신대동 회덕분기점을 시점으로 전주~광주~순천 간을 잇는 연장 261.1㎞의 호남고속도로와 부산광역시 구포 IC를 기점으로 마산-진주-순천을 있는 연장 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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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에 위치한 개태사는 고려가 후백제를 멸망시킨 직후인 936년에 후백제의 옛 수도 부근이자 바로 후백제를 항복시킨 역사적인 장소에 창건한 후삼국 통일의 기념비적 사찰이다. 고려로서는 일종의 전승 기념 사찰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개태사는 고려의 후삼국 통일 과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는 개태사 창건 배경과 개태사 삼존석불입상의 양식과 특징으로 미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