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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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에 있는 조선 전기에 건립된 관학 교육기관. 노성향교의 대성전에는 공자를 중심으로 4성위(四聖位)를 모셨으며, 동무에는 송조 1현과 동국 9현의 위패를 모셨다. 서무에도 송조 1현과 동국 9현을 모셔 모두 5성 20현의 위패를 봉안하고 매년 음력 2월과 8월의 상정일에 제향하고 있다. 춘추의 제향시에는 주로 성동면, 광석면, 노성면, 상월면 지역 유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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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반남박씨 논산 입향조.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대우리에는 박동민(朴東民)과 아들은 사헌부집의를 지낸 박휘이고, 손자 박세기 3대를 제향하는 문중재실인 영사재(永思齋)가 있다. 또한 박동민의 아내인 전주이씨에게 내려진 정려가 있다. 본관은 반남(潘南). 할아버지는 사간을 지낸 박소이며, 아버지는 박응천이다. 형제로 박동현과 좌참찬을 지낸 박동선이 있으며, 아들은 사헌부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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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대우리에 있는 조선 중기 반남박씨 입향조 박동민의 묘소. 박동민의 본관은 반남(潘南)으로, 할아버지는 사간을 지낸 박소이며, 아버지는 박응천이다. 형제로 박동현과 좌참찬을 지낸 박동선이 있으며, 아들은 사헌부집의를 지낸 박휘이다. 부인은 전주이씨로, 이눌(李訥, 1552~1631)의 딸이다. 상월면 대우리 북쪽 산록에 박동민 묘소가 자리하고 있다. 묘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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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대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박동민의 신도비. 신도비는 종2품 이상의 벼슬을 지내야 세울 수 있는데, 박동민은 사후에 증직되어 종2품인 참판 벼슬을 받아 신도비를 세우게 되었다. 증조와 조부가 현달하고 형제와 아들이 높은 벼슬을 한 집안이다. 묘를 이곳에 쓰고 자손들이 세거하면서 번성하고 있다. 박동민은 예빈시참봉으로 있으면서 1593년(선조 26)에 죽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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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열녀. 본관은 전주. 익안대군의 7대손이며, 아버지는 이눌(李訥, 1552~1631)이며, 남편은 영사재에 제향된 박동민(朴東民, 1566~1593)이다. 슬하에 3형제를 두었다. 박동민의 처 전주이씨는 노모께 효도를 하고 남편에 대한 내조에 최선을 다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주이씨는 남편과 함께 노모를 모시고 아들 3형제와 피난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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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대우리에 있는 조선 중기 박동민의 처 전주이씨 정려. 열녀 박동민의 처 전주이씨(1556~1593)는 익안대군의 7세손으로 이눌(李訥)의 딸이고, 영사재에 제향된 박동민의 처이다. 전주이씨는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남편과 함께 노모를 모시고 아들 3형제와 피난을 떠났다. 그러나 노성 대우리에 이르러 남편이 장질부사로 죽었고, 이씨는 남편을 따르기로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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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응주를 시조로 하고 박동민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반남박씨는 박응주(朴應珠)를 시조로 한다. 박응주는 박혁거세의 후손으로 고려 고종 때 반남호장을 지냈으며 이후 후손들이 박응주를 시조로 하고 반남(현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을 본관으로 삼았다. 반남박씨는 고려 말 문정공 박상충으로부터 번영을 누리기 시작하여 박상충의 아들 평도공 박은(朴訔)은 조선조에 들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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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조령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이상(李常)의 영정을 모신 사당. 백파(白波) 이상(李常)은 태조의 셋째 아들인 익안대군(益安大君) 이방의(李芳毅)의 손자이다. 이상의 아들인 이현동(李賢童)은 세조가 단종을 폐하고 왕위에 오르자 벌곡면 조령리에 낙향한 후 정착하였고, 조선후기에 그 후손들이 백파 이상 영당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벌곡면소재지에서 북쪽으로 호남고속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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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위를 영원히 사당에 모시는 것이 허락된 인물에게 그 후손들이 행하는 제사. 사전적으로 위패를 옮기지 않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불천위(不遷位)는 큰 공훈이 있거나 도덕성과 학문이 높아 4대가 지나도 신주를 묻지 않고 사당에 영구히 두면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 허락된 사람의 신위를 말한다. 불천지위(不遷之位)의 줄임말로 부조위(不祧位)라고도 한다. 본래 제사는 고조까지 4대를 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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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에 있는 조상의 위패·영정을 모셔 두고 제향을 행하는 장소. 사당이란 조상의 위패나 영정을 배향하고 매년 기일에 제사를 올리는 건조물을 말한다. 특히 이름난 학자나 충신 등의 공적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서 건립된 사당을 향현사(鄕賢祠)라고 한다. 조선 태종 때에는 고려 이후의 명신을 예조에서 명단을 작성해서 각각 연고지에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내도록 권장하였다.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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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곡리는 계룡산 줄기에 기대어 주변의 산이 마치 삼태기 같은 모습으로 마을을 포근히 감싸 안고 있다. 마을 입구 방죽에는 소나무와 느티나무 숲이 살짝 마을 안을 가려주어 안온한 분위기를 더해 준다. 마을 앞으로는 풍요로운 농토가 펼쳐있고, 갑사 계곡에서 흘러나온 노성천이 유유히 흐른다. 오랜 전통을 간직한 주곡리는 그 전통과 역사성 덕분에 논산의 역사마을로 선정되기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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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세거해 온 성씨. 조선 전기 토착 성씨들의 미미한 활동상에 비해, 연산현 향촌 사회의 주도권을 갖고 있던 세력은 여말선초에 입향한 이거 사족(士族)들이었다. 이거 사족들은 연산천(連山川)의 지류를 따라 농경지 개간이 용이한 산간 계곡에 근거지를 형성하였다. 이들은 여말 정국 변동에 따라 은거지를 정하고 낙향한 경우로, 모두 여산송씨(礪山宋氏)와의 혼맥을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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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 술골에서는 장승을 마을의 주신(主神)으로 모시고 장승제를 지낸다. 마을 입구 장승거리에 있는 남녀 장승은 각각 ‘천하대장군축귀신(天下大將軍逐鬼神)’과 ‘지하대장군축귀신(地下大將軍逐鬼神)’이라고 명명(命名)된다. 그 옆의 짐대에는 긴 장대에 나무로 깎은 오리를 앉혔다. 이들 장승과 짐대는 마을 입구를 지키는 수호신이다. 장승제는 기본적으로 분향(焚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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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유익을 시조로 하고 송전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여산은 현 전라북도 익산이다. 여산송씨 시조 송유익(宋惟翊)은 고려 때 진사로 나라에 공훈을 세워 여산군에 봉해졌으며 은청광록대부로 추밀원부사에 추증되었다. 문헌에 의하면 송유익의 선계는 중국의 경조 출신으로 당나라에서 호부상서를 지낸 송주은의 후손 송자영이다. 송자영은 슬하에 아들 3형제를 두었는데, 장남 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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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에서 사육하는 꿩과에 속하는 척추동물. 일반적으로 오계는 외형이 닭과 큰 차이가 없으나 머리는 작은 편이며, 볏은 닭과 달리 딸기 모양의 관을 가진 것이 보통이고, 때로는 복관·삼매관·장미관도 눈에 띄는데, 어두운 자색 또는 어두운 붉은색을 띠고 있다. 부리는 청백색 또는 검은색, 얼굴과 몸은 자색 또는 청백색, 눈조리개는 갈색 또는 검은색, 귓볼은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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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곡리의 윗뜸, 아랫뜸, 망가리는 청주양씨(淸州楊氏), 함평이씨(咸平李氏), 전주이씨(全州李氏)의 터전이기도 하다. 주곡리에 처음 터를 잡은 것은 윗뜸의 청주양씨로 전해지는데 입향조인 첨정공 양춘건이 중종 연간에 신도내에서 이곳 주곡리로 이주해왔다고 한다. 그 후, 터를 잡고 살던 청주양씨와의 혼인으로 인해 함평이씨와 전주이씨가 각각 주곡리에 들어와 아랫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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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논산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무중(武仲), 호는 시남(市南). 할아버지는 사간원정언·사헌부지평·수안군수를 지낸 유대경(兪大敬)이고, 아버지는 참봉을 지낸 유양증(兪養曾)이다. 어머니는 의령남씨(宜寧南氏)로 병조참판 남이신(南以信)의 딸이며, 부인은 세종대왕 9세손 이산악(李山岳)의 딸 전주이씨(?~1667)이다. 슬하에 3남 1녀를 두었다.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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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교촌리에 있는 조선 전기에 건립된 관학 교육기관. 논산에서 전주 방향으로 국도 1호선을 타고 약 2.36㎞ 가다 보면 은진사거리가 나온다. 여기에서 은진 방면으로 좌회전하여 0.75㎞ 가면 향교길이 나오고, 여기서 다시 좌회전하면 은진향교가 나온다. 은진향교는 15세기 익성군의 묘소가 있는 은진면 용산리에 세워졌다. 이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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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논산 지역의 열녀. 본관은 전주(全州). 남편은 고성이씨(固城李氏) 이선일(李善一)이다. 이선일 처 전주이씨는 이선일에게 시집온 후 부모님을 지성으로 모시고 남편에게도 예의를 다하였으며 자녀교육에도 엄격하여 주변에서는 칭찬이 자자하였다고 한다. 어느 날 남편이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슬픔을 이기지 못한 이씨는 남편의 상여를 떠나보낸 후 간수를 마시고 자결하였다. 188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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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표정2리 하표정마을에 있는 조선 말기 이선일의 처 전주이씨의 정려. 전주이씨는 이선일에게 시집온 후 부모님을 지성으로 모시고 남편에게도 예의를 다하였으며, 자녀 교육에도 엄격하여 주변에서는 칭찬이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병으로 세상을 뜨자 슬픔을 이기지 못한 이씨는 남편의 상여를 떠나 보낸 후 간수를 마시고 자결하였다. 이 사실이 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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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논산 지역의 열녀. 본관은 의령(宜寧). 남편은 전주이씨(全州李氏) 이인덕(李仁德)이며, 아들은 사헌부감찰을 지낸 이조순(李曺純)이다. 이인덕 처 의령남씨는 남편 이인덕이 중병에 걸려 자리에 눕자 지성으로 병간호를 하였으나 남편이 죽자 아들에게 남편의 유언을 전하고 자결하였다. 의령남씨의 아들 이조순이 사헌부감찰에 있을 때인 1863년 명정이 내려져 논산시 두마면 엄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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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용산리에 있는 조선 중기 종친 이향령의 묘소. 익성군 이향령은 조선 중종의 아홉 번째 아들인 덕흥대원군의 손자로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의주로 파천할 때 뒤따라 호위하여 1597년(선조 30) 정의대부익성군에 책봉되었다. 그러나 1612년(광해군 4) 김직재(金直哉)의 옥사가 일어나 진릉군을 추대하였다는 이이첨(李爾瞻)의 무고에 연루되어 거제도에 유배되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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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조령리에 있는 조선 전기 종친 이현동의 묘소. 이현동의 본관은 전주, 호는 농맹아(聾盲啞)이다. 태조의 3남 익안대군 이방의(李芳毅)의 증손이며, 백파(白波) 이상(李常)의 아들이다. 천성이 어질고 착하여 부귀에 마음을 두지 않았다. 세조가 조카인 단종을 폐하고 왕위에 오르자 이를 한탄하며 논산시 벌곡면 조령리로 낙향하여 정착하였다. 평생을 조령리에 살며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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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 재실에서 행하는 익안대군 부인의 불천위제사. 익안대군 배위 제사는 전주이씨 익안대군파 종중이 조선 태조의 셋째 아들인 익안대군 이방의(李芳毅, ?~1404) 부인에게 음력 11월 18일에 올리는 불천위제사이다. 불천지위(不遷之位)는 예전에 큰 공훈이 있어 영원히 사당에 모시는 것을 나라에서 허락한 신위(神位)를 말한다. 사당과 재실, 영당을 모두 갖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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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 전주이씨 익안대군파 종중에서 행하는 익안대군의 불천위제사. 익안대군(益安大君, ?~1404)은 조선 태조 셋째 아들로 이름은 방의(芳毅), 시호는 안양(安襄)이며 신의왕후(神懿王后) 한씨(韓氏) 소생이다. 1392년 태조가 즉위하자 익안군(益安君)에 봉해졌다. 1398년(태조 7)의 제1차 왕자의 난과 1400년(정종 2)의 제2차 왕자의 난에 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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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에 있는 조선시대 익안대군 이방의의 영정을 모신 사당. 익안대군 영당은 원래 경기도 여주에 있었는데, 1958년 전주이씨 익안대군파 종가가 논산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영정을 가지고 왔다고 한다. 익안대군(益安大君) 이방의(李芳毅)는 태조의 셋째 아들로 정종의 아우이며 태종의 형이다. 1392년(태조 1) 태조가 즉위하자 익안군에 봉해지고 1398년 개국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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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 원훈각에 있는 익안대군 이방의의 초상화. 「익안대군 영정」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셋째 아들인 익안대군 이방의(李芳毅, ?~1404)를 그린 초상화이다. 현재는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 316번지에 있는 익안대군 영당인 원훈각(元勳閣)에 보관되어 있다. 이방의는 고려 공양왕 때 판밀직사사가 되었고, 1392년 태조가 즉위하자 익안대군에 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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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전개된 전투.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까지 2차에 걸친 왜군의 침략으로 일어난 전쟁이다. 1597년의 제2차 침략전쟁을 따로 정유재란이라고도 하며, 일본에서는 분로쿠 게이초(文祿慶長)의 역(役), 중국에서는 만력(萬曆)의 역(役)이라고 한다. 당시 충청남도 논산 지역도 특히 제2차 침략전쟁을 계기로 치열한 전투가 전개되는 격전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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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을 시조로 하고 이현동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전주이씨는 이한(李翰)을 시조로 한다. 전주이씨 족보 『선원선계(璿源先系)』에 의하면 이한은 전주의 토착 세력으로 명문 태생이었다. 이성계(李成桂)의 6대조 이린(李隣)과 그의 형 이의방(李義方)은 고려시대 중앙 정부에 진출하였으며, 이성계의 직계 선조는 당시 여진족(女眞族)이 사는 지역으로 거처를 옮겨 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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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용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주이씨 익성군파의 재실. 전주이씨 익성군파 재실 내부에는 선조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지 않으며, ‘익성군파보시사실기(益城君派譜時事實記)’라는 현판과 ‘세모재(世慕齋)’라는 현판만 걸려 있다. 은진면 용산리 전주이씨 익성군파 묘역이 있는 구릉 하단부 남동향에 위치하고 있다. 전주이씨 익성군파 재실은 문간채와 재실, 뒷문, 서문으로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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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곡리 전주이씨의 입향 과정에 대해서는 대체로 청주양씨와의 혼인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전하나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확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취 등 선대의 묘역이 경기도 고양, 양주 일대에 있다가 이취의 고손자인 이만근(李萬根, 1658~?)의 묘가 주곡리에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1600년대 후반 이후 터를 잡고 살기 시작했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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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논산의 역사. 1. 조선 건국 고려의 멸망 이후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최대 관심사의 하나는 신 도읍을 정하는 것이었고 논산 계룡산 부근의 신도내는 고려시대의 남경이었던 한양과 더불어 그 유력한 후보지의 하나였다. 당시 논산의 계룡산 부근이 강력한 천도 지역으로 떠오른 이유는 권중화(權仲和)의 역할이 컸다. 권중화는 태조의 명으로 태실증고사로 왕실 안태의 장소를 물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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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대(代)에 걸쳐 분가(分家)를 한 경우에 분가의 본가(本家). 종가는 대종가와 소종가로 구분하며, 두 종가가 각각 종통(宗統)으로 이어지는 체계로서 기능한다. 대종가는 성씨의 시조로부터 장자로만 이어진 가문이며, 소종가는 대종가에서 중시조를 기점으로 파생된 종가로서, 불천위(不遷位) 조상인 중시조를 모시는 가문이다. 임금으로부터 시호를 받거나 문묘에 배향되는 등 중시조의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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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에서 동일한 조상의 후손들이 사회적·정치적·경제적 우위를 점하는 촌락. 조선 후기 마을들은 당시의 사회 경제적 여건 변화에 따라 점차 동성 문중을 중심으로 취락을 형성하는 동족마을로 바뀌어 갔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논농사가 발달함에 따라 평야 지대를 중심으로 생산력이 증대되자, 주거의 형태도 구릉 중심의 산촌(散村) 형태에서 평야 지대의 집촌 형태로 촌락 구조가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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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를 시조로 하고 양춘건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에는 청주양씨, 함평이씨, 전주이씨 세 집안이 살고 있는데, 이 중 청주양씨는 주곡리의 터줏대감이라 불릴 만큼 오랜 세월 세거해 왔다. 1920년 일제강점기에 간행된 『조선의 성(朝鮮の姓)』에 따르면, 1920년대 논산의 동족마을에 대한 자료에서 청주양씨가 상월면 주곡리에 동족마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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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란을 시조로 하고 한여헌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한씨는 한국의 최고 역사를 지닌 이른바 삼한갑족이다. 본관은 문헌에 청주 외에 평산·한양·안변 등 10여 본이 기록되어 있으며, 모두 청주에서 분적되었다고 한다. 한씨는 멀리 고조선시대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 『청주한씨세보』에 의하면 기자조선의 마지막 왕인 준왕의 후대에 우성(友誠)·우평(友平)·우량(友諒)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