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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장승이 석장승으로, 다시 목장승으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E020103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
집필자 조민희

오랜 세월동안 꿋꿋하게 전통을 이어온 주곡리 장승제는 과거 존폐와 관련하여 두 번의 큰 위기를 맞았었다고 한다. 바로 일제강점기 말기인 1940년대와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1970년대의 일이었다.

일제강점기에도 주곡리에서는 매년 6기의 목장승(4기)과 짐대(2기)를 깎아 세웠으나, 일제는 삼림법을 엄하게 적용하여 장승목으로 쓸 나무를 벌목하는 것을 금지하였다. 매년 새 나무로 장승을 깎아 제를 지내오던 마을주민들에게 벌목의 금지는 큰 문제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 고민하던 중,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는 목장승 대신에 돌을 구해다 놓고 종이에 글씨를 써서 붙여 놓고라도 제를 지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결국 사람들은 돌을 구해와 세워놓고 제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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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장승

이렇게 마을 사람들은 목장승을 석장승으로 바꾸면서까지 자신들의 전통을 이어갔던 것이다. 당시 마을에서는 기존의 목장승은 모두 소각하여 없애고, 해방 전까지 장승제를 지낼 때마다 한지에 ‘천하대장군축귀신(天下大將軍逐鬼神)’과 ‘지하대장군축귀신(地下女將軍逐鬼神)’의 명문을 써서 석장승에 붙여 놓고 지냈다.

이처럼 마을사람들의 노력으로 인해 가까스로 이어진 장승제의 전통은 해방이 되면서 다시 목장승으로 본래의 모습을 갖추어 목장승을 깎아 세우고 제를 지낼 수 있게 되었다. 현재 장승배기의 목장승 옆에는 선돌모양의 돌 2기가 세워져 있는데, 이것이 바로 일제강점기에 목장승을 대신했던 석장승이다.

[정보 제공자]

이방헌(1926년생, 주곡리 주민)

양희갑(1929년생, 동계장)

양철한(1932년생, 노인회장)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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