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A0301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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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시묘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홍제연 |
❚ 시묘골 노인회장 최재현
시묘골의 노인회장 최재현 씨는 시묘리 역사의 한 페이지로 기록할 만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1931년에 출생하여 일제강점기에 어린 시절을 보내고,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6·25 한국전쟁을 겪었다.
논산농고 제1회 졸업생이며 국가재건에 힘쓰던 시기에 논산군청 공무원으로 일하다 상경하여 개인 사업을 하기도 했지만 에너지 파동으로 사업체는 부도가 나고 결국 고향으로 돌아와 시묘리에 딸기 농사를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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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군청
현재 여든이 넘은 노령의 나이임에도 논산시 딸기 작목반 부회장이며 논산시 딸기축제의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 뜨거운 교육열
최재현 씨 집안이 시묘골에 살게 된 것은 고조부가 처가인 시묘골 밀양박씨와의 인연으로 이거하고 자손이 시묘골 사람이 되면서부터이다. 어린 시절 시묘골은 여느 시골마을과 마찬가지로 먹고 살기 힘든 작은 농촌이었다. 그렇지만 이 마을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엄청난 교육열이었다. 해방직후에 그 작은 동네에 교복을 입고 다니는 남학생이 다섯 명이나 되었다. 최재현 씨 역시 부모님의 열정적인 지원으로 구자곡공립보통학교를 다니고 논산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제도가 실시되자마자 논산농업고등학교에 입학하여 1회 졸업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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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구자곡초등학교
❚ 논산군청 직원이 되다.
학교를 졸업하고 군대생활을 마친 후 1962년 논산군청 산업과 농산계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였다. 당시 논산농고 졸업생은 논산 지역의 엘리트였으며 논산의 지역발전을 이끈 주역이었다. 군청의 산업과에는 농산계, 양정계, 산림계 등 4개의 계가 있었고 군청 내에서도 가장 많은 일을 하던 팀이라고 알아주었다.
1962년에 처음으로 경운기가 나오자 각 군에 2~3대 정도씩 보급되었는데 논산군의 농민들이 너도나도 사용하기를 원했으니 산업과 직원의 힘이란 누구 못지않았다.
그는 군청 근무를 하면서 우연한 기회에 시묘골의 정미소를 사들이게 되었다. 정미소 일은 번창하였는데 공무원 월급이 쌀 일곱 가마니일 때에 정미소에서 한 달에 벌어들이는 것은 쌀 스무 가마니로 세 배가 넘는 벌이었다. 시묘리 일대와 옆 동네인 교촌리에서도 손님이 찾아와 장사는 불붙듯 잘되었다.
젊은 나이에 재산을 많이 모으니 개인 사업을 구상하게 되었고 1967년 잘 나가는 정미소를 팔았다. 쌀 120가마니에 샀던 것을 되팔 때에는 쌀 160가마니를 받았으니 겨우 몇 년 사이에 많이 오른 셈이었다.
그동안 번 것을 모아보니 쌀 600가마니 값이 되었다. 그것으로 서울로 올라가 1968년 화공약품 회사를 차렸다. 섬유 유연제 등을 만들어 대구의 대형 공장에 납품하며 사업은 날개를 단 것처럼 잘 되었지만 1970년 갑작스런 에너지파동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그동안 받은 어음은 휴지조각이 되어 한순간에 부도를 맞고, 결국 서울의 사업체를 정리한 후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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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소
[정보 제공자]
최재현, (1928년생, 시묘1리 주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