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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02596
한자 趙仁元
영어음역 Jo Inwon
이칭/별칭 빈첸시오
분야 종교/기독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영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종교인|신부
출신지 황해도 장연군 읍외리
성별
생년 1907년연표보기
몰년 1978년연표보기

[정의]

1944년부터 1948년까지 논산 지역에서 활동한 천주교 신부.

[개설]

조인원의 세례명은 빈첸시오로, 1907년 황해도 장연군 읍외리에서 조성옥(趙成玉, 디다고)과 김흥석(金興石, 수산나)의 3남 1녀 중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경애학교 2년을 수료하고 당시 장연본당 김명제(金命濟, 베드로) 신부의 추천으로 1920년 9월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에 입학하여 1932년 12월 17일 대신학교를 마치고 뮈텔 주교에 의해 사제로 서품되었다.

[활동사항]

1933년 1월 강원도 춘천본당 보좌 신부로 부임하였다가 1934년 5월 춘천본당 주임이 되었고, 1936년 5월 신설된 서천본당의 주임이 되었다. 1938년 황해도 연안본당 주임 신부를 역임하고, 1940년 2월 안주본당 주임을 맡았다. 1941년 태평양전쟁 발발로 평양교구를 담당하던 미국 메리놀외방전교회 신부들이 추방당하자 평양교구로 잠시 파견되어 1942년 평안남도 안주본당, 1944년 평양 대신리 본당에서 사목하다가 1944년 11월 서울교구로 복귀한 뒤 충청남도 논산본당(현 부창동본당) 주임으로 전임되었다.

해방이 되자 1945년 10월 논산본당 구내에 논산중등영어강습소를 개설하였으며, 유지들의 협조로 1946년 4월 5년제 논산대건중학교를 설립하고 초대 교장으로 조인원이 부임하였다. 1948년 12월 명동성당에서 분리된 신당동본당의 초대 주임으로 본당을 개척하던 중,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한국군에 군종 제도가 신설되자 1951년 피난지 부산에서 군종신부 제1기로 입대하여 문관으로 육군본부 군목과에 배속되어 군종신부단을 책임진 바 있다.

1952년 4월에는 육군본부 제2대 군목과장에 취임하여 활동하다가 1954년 6월 예편하고, 7월 서울교구 상서국장(현 사무처장)과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사무국장을 맡았다. 1957년 9월 가평본당 주임으로 부임하였고, 1958년 10월에는 가평본당 내에 전교회장 양성을 목적으로 정지신학원을 설치하고 원장에 취임하였다. 1962년 12월 정지신학원을 미아리 본당 구내로 옮겨 원장으로만 봉직하다 1964년 주임으로 부임하여 1971년 5월 14일 은퇴할 때까지 재임하였다.

청량리 본당 주임 신부로 재임하는 동안 2,520명을 영세시켰으며, 1965년에는 경기도 양주군에 본당 묘지를 조성하였다. 1968년 10월 6일 바티칸에서 거행된 병인순교자 24위 시복식에 참석하고 성지 순례를 한 바 있다. 1971년 은퇴 후에는 수유리에 기거하며 교리 지도와 번역에 진력하였다. 1978년 9월 12일 간암으로 성모병원에서 72세로 선종하였고, 용산성직자묘지에 안장되었다.

[저술 및 작품]

번역서로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의 실천』(가톨릭출판사, 1963), 『당신도 성인이 될 수 있다』(갑진문화사, 1964), 『성녀 말가리다 마리아』(가톨릭출판사, 1964), 『어둠을 밝힌 장미』(가톨릭출판사, 1971), 『성모의 딸 데레시다』(가톨릭출판사, 1976) 등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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