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한성공동창고회사 강경출장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01438
한자 漢城共同倉庫會社江景出張所
영어의미역 Ganggyeong Branch of Hanseong Public Warehouse Company
분야 역사/근현대,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김형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금융업|창고업
설립연도/일시 1906년 12월연표보기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 있었던 창고업과 금융업을 겸한 한성공동창고회사 소속 출장소.

[개설]

조선 후기 이래 강경 지역은 충청남도에서는 물론 전국적으로 손꼽히는 상업도시로 발전을 거듭하였다. 쌀과 수산물은 강경지역을 거쳐 개항장이나 전국 각지로 유통되었다. 이에 부응하여 상업 활동을 지원하는 금융업과 창고업도 성행하는 계기를 맞았다.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에 한성공동창고회사는 충청남도에서 가장 잘 알려진 기업 중 하나로 지점 개설 등을 통하여 금융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으나, 경제권이 일본인 수중으로 떨어지면서 대부 업무는 토착자본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설립목적]

한성공동창고회사는 상인이나 상공업자에게 물품을 보관하거나 보관된 물품을 담보로 대출을 알선하는 창고업과 금융업을 주로 하였으며, 1906년 충청남도 논산군 강경 지역에서 활동을 목적으로 한성공동창고회사 강경출장소를 설립하였다.

[변천]

1905년 조진태(趙鎭泰) 등이 경성상업회의소를 발기하는 동시에 한성공동창고회사 사장으로 취임했다. 1906년 12월 한성공동창고회사 강경출장소가 설치되었으며, 1910년 한일합병 이후 일제와 결탁한 매판자본가는 민족자본을 억압하는 데 한성공동창고회사를 이용하였다. 1910년 당시 한성공동창고회사 강경출장소는 자본금 15만 원과 정부 대부금 35만 6500원 등 총 자본금이 50만 원을 넘었다.

창고 건물로 기와집 두 동은 445.5㎡(한 동은 정부 대부금으로 지은 231㎡이다.)이며, 초가집 두 동은 82.5㎡ 등이었다. 대부총액은 17,019원 50전으로 구수(口數)는 41구를 초과하였다. 대부이율은 시기에 따라 약간 차등을 두었으나 대체로 최고 5전2리에서 최저 3전5리였다. 창고 이용료도 물품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였다. 한성공동창고회사 강경출장소 직원은 4명이며, 소장은 사카키 도요죠[坂木豊造]이었다.

[주요사업과 업무]

한성공동창고회사 강경출장소의 주요 업무는 곡물과 해산물의 보관 및 위탁판매였으며, 대부업 등을 통하여 토착 자본을 억압하였다.

[의의와 평가]

한성공동창고회사 강경출장소강경 지역의 상업 활동을 지원하고자 설립되었으나 식민정책 강화와 더불어 일본인이 경제권 장악함으로써 강경지역 상업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말았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