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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구평수리조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00619
한자 馬九坪水利組合
영어의미역 Magupyeong Irrigation Association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마구평리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김은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수리조합
설립연도/일시 1909년연표보기
설립자 스네나가 쇼오지[末永省二] 외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마구평리에 있었던 수리조합.

[개설]

논산군은 다른 지역에 비해 비교적 들판이 넓은 지역이었다. 특히 북동쪽으로 논산천, 남동쪽으로 강경천을 따라 넓게 발달된 강경평야(논산평야)는 1920년 당시 논 23,854정보와 밭 7,326정보가 경작되던 대평원이었다. 강경평야는 논에서만 1년에 298,000석가량의 현미가 산출되는 등 조선의 3대 미작지대 중 하나였다.

더구나 강경평야는 지가와 노임이 저렴하고 소작 관행이 지주에게 대단히 유리하였기 때문에 토지 수익률이 연 2할을 넘는 등 지주 경영이 유리한 지역이었다. 따라서 농업 경영이나 미곡 무역을 도모하려는 일본인 주지나 상인들은 구한말부터 강경 진출을 서둘렀다.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지역에서 일본인 대농장이 가장 발달했던 지역은 강경 지역의 강경평야(8개 농장), 대전 지역의 유성평야(10개 농장), 조치원 지역의 연기평야(2개 농장), 당진평야(2개 농장), 천안 지역의 아산평야(6개 농장) 등이었다. 1930년 당시 논산군의 전체 경지 면적은 21,893정보(논 16,253정보, 밭 5,640정보)였다.

[변천]

마구평은 황망한 일대 초생지였는데, 1904년 일본인 하마노 테츠조[濱野鐵藏]이 마구평 일대를 농장으로 개간하여 고바야시 농장[小林農場]으로 명명하였다. 처음에는 밭으로 개간하였으나 경영에 어려움이 많아 1909년 마구평 일대에 수리사업을 벌여 논으로 개간하였다. 마구평수리조합은 1909년 스네나가 쇼오지[末永省二] 등 일본인 지주들이 농업 경영과 미곡 무역을 원활히 수행하기 위하여 부적면에 설립한 조합이었다. 마구평수리조합의 몽리 면적은 312정보였다.

[의의와 평가]

마구평수리조합충청도에서 처음 시설된 식민지시대의 수리조합이었다. 몽리 토지의 9할 가량이 일본인 소유 토지였는데, 경영이 원활하여 수리조합비가 전국에서 제일 저렴하였다고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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