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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리 광산김씨 동족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00300
한자 高井里光山金氏同族村
영어의미역 Gojeong-ri Gwangsan Gim Clan Village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해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동족촌

[정의]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광산 김씨 집성촌.

[개설]

고정리는 1400년대 초반 광산김씨 동족촌락으로 형성된 이래 조선시대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광산김씨 문중에서 배타적 공간으로 지켜 온 곳이다.

[형성 및 변천]

연산에 거주한 광산김씨의 연원(淵源)은 고려시기 본관지 광산을 이탈하여 중앙 정계에 진출했던 재경(在京) 광산김씨의 일파였다. 김약채(金若采)광산김씨로서는 최초로 연산에 정착한 것은 충청도관찰사를 역임했던 그의 관직 경력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 오랜 시간을 걸쳐 온 고정리는 입향조 이하 이곳 출신 주요 인물들의 묘소는 물론이고 정려문·사당·신도비·서원 등 각종 상징 경관들이 있다. 즉 고정리 계곡 최상류부에는 연산광김(連山光金)의 시조모(始祖母)라 할 수 있는 양천허씨(陽川許氏) 및 그의 아들 김철산(金鐵山)의 묘소가 있는데, 이 장소는 마을의 기원을 말해 주는 상징적인 공간이라 볼 수 있다.

광산김씨는 임진왜란 이후 김장생(金長生)의 활동과 더불어 전 시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기 시작한다. 김장생의 조부인 김호가 1561년에 죽어서 1583년에 묘비가 세워지게 되는데, 이러한 묘비와 신도비의 찬·서를 담당한 이들은 김장생의 문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것은 연산에 이미 정착하여 세력을 키워 나가고 있던 광산김씨 가문이 김장생 대(代)로부터 연산을 근거지로 사족적 활동을 벌여나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광산김씨의 사족 활동은 단순히 문중 내부의 세력 확장 문제를 벗어나 기호 사림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자연환경]

고정리연산천의 지류에 발달한 계곡 마을 중 가장 넓은 평지를 가진 곳이다. 또한 삼면이 이중의 산지로 둘러쳐진 분지형 지형 내에 위치한다. 이 분지형 지형의 북쪽 출입구는 소규모 구릉선에 의해 좁아지는 형세이기 때문에 내부의 고정리 촌락은 외부로부터 적당히 감추어진 입지를 취함은 물론이고 겨울철 북서계절풍을 차단하는 효과가 있다. 이와 같이 풍수지리에서 소위 길지형국(吉地形局)의 분지 지형과 그 내부 형세, 논농사에 유리한 길고 넓은 평지 규모는 광산김씨로 하여금 자손이 크게 증가한 조선 중기 이후까지도 이 장소를 이탈하지 않고 세거하도록 하여 준 기본적인 생태 조건이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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