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
경기도 화산에 1790년(정조 14) 정조가 현륭원의 원찰로 창건한 사찰. 용주사(龍珠寺)는 1790년(정조 14) 정조의 명으로 화산[花山=현 화성]의 현륭원(顯隆園) 옆에 창건한 원침(園寢) 사찰이다. 장헌세자의 묘를 현륭원으로 이장한 이후 현륭원을 관리하고, 재수(齋需)에 이바지하기 위해 갈양사(葛陽寺)의 옛 터에 건립되었다. 용주사의 건립에는 생부에 대한 정조의 효심과 향후...
-
경기도 화산에 1790년(정조 14) 정조가 현륭원의 원찰로 창건한 사찰. 용주사(龍珠寺)는 1790년(정조 14) 정조의 명으로 화산[花山=현 화성]의 현륭원(顯隆園) 옆에 창건한 원침(園寢) 사찰이다. 장헌세자의 묘를 현륭원으로 이장한 이후 현륭원을 관리하고, 재수(齋需)에 이바지하기 위해 갈양사(葛陽寺)의 옛 터에 건립되었다. 용주사의 건립에는 생부에 대한 정조의 효심과 향후...
-
경기도 화성 지역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 집단. 조선 초기 본관(本貫) 제도의 정착과 행정 구역 개편은 화성 지역 성씨 집단 정착에 영향을 미쳤다. 조선 시대 화성 지역은 수원도호부와 남양도호부가 관할하였다. 조선 전기 수원과 남양 지역에 정착한 성씨는 『세종실록지리지』[1454]와 『신증동국여지승람』[1530]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이들은 수원·남양을 비롯하여 속현인 쌍부·영신 등...
-
경기도 화성시 용주사에 있는 조선 후기 금동향로. 조선 정조(재위 1776~1800) 때 왕실 내사품(內賜品)으로 알려져 있다. 정조의 『홍재전서(弘濟全書)』권4 「춘저록(春邸錄)」4기 ‘태호석기(太湖石記)’(1774)에 "갑오년 봄에 태호석을 구해 창문 앞에 약관(藥罐)·향구(香甌)·문왕정(文王鼎)·선덕로(宣德爐)를 배열하였다"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 이 향로는 정조가 1774년(...
-
조선 후기 경기도 화성 출신의 무신. 본관은 해풍(海豊). 부친은 병마절제사 김형(金瑩)이다. 동생이 김시건(金始乾)·김이건(金以乾)·김체건(金體乾)이다....
-
조선 전기 경기도 화성 출신의 무신. 본관은 해풍(海豊). 길주병마첨절제사를 지낸 김수종(金壽宗)의 4대손이며, 부친은 김경(金瓊)이다. 아들은 병마절제사 김형(金瑩)이며, 손자가 김대건(金大乾)·김시건(金始乾)·김이건(金以乾)·김체건(金體乾)이다....
-
조선 후기 경기도 화성 출신의 무신. 본관은 해풍(海豊). 조부는 김우추, 부친은 병마절제사 김형(金瑩)이다. 형제는 김대건(金大乾)과 김시건(金始乾)이 있다....
-
전풍을 시조로 하는 경기도 화성시의 세거 성씨. 남양 전씨의 시조는 전풍(田豊)이다. 1774년(영조 50)에 간행된 『남양전씨족보(南陽田氏族譜)』에 따르면,중국에서 한림학사(翰林學士)로 재직하던 전풍이 고려로 와 남양군(南陽君)에 봉하여졌다고 한다. 남양 전씨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조선 태종 때 원종공신(原從功臣) 1등에 책록되고 세종 때 중추원사(中樞院使)에 이른 전흥(田興)이...
-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조선 시대 왕족의 무덤. 능묘는 왕과 왕비, 그리고 나머지 왕족의 무덤을 뜻한다. 능원(陵園), 능원묘(陵園墓)라고도 한다. 능(陵)은 왕과 왕비, 추존된 왕과 왕비의 무덤을 뜻하며, 원(園)은 왕의 사친(私親)[왕을 낳은 후궁이나 왕족]·왕세자와 왕세자빈·왕세손의 무덤을 일컫는다. 묘(墓)는 대군·군·옹주·후궁 등 나머지 왕족의 무덤이나 폐왕의 무덤을 뜻하며...
-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조선 시대 왕족의 무덤. 능묘는 왕과 왕비, 그리고 나머지 왕족의 무덤을 뜻한다. 능원(陵園), 능원묘(陵園墓)라고도 한다. 능(陵)은 왕과 왕비, 추존된 왕과 왕비의 무덤을 뜻하며, 원(園)은 왕의 사친(私親)[왕을 낳은 후궁이나 왕족]·왕세자와 왕세자빈·왕세손의 무덤을 일컫는다. 묘(墓)는 대군·군·옹주·후궁 등 나머지 왕족의 무덤이나 폐왕의 무덤을 뜻하며...
-
조선 후기 화성 지역의 연혁과 지리 정보가 기재된 전국 지리지. 『대동지지』는 김정호(金正浩)가 편찬한 지리서(地理書)로 신라 시조(始祖) 원년(元年)부터 1863년(철종 14)까지의 내용이며, 도성에서 시작된 육로가 화성에 이르는 과정이 지역별로 도로의 명칭과 같이 기재되었다. 화성 지역의 연혁, 행정 구역, 산천, 관아, 봉수, 창고, 역참, 교량, 목장, 누정, 능원 등의 순...
-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사강리에서 채록된 마산포에 관련한 이야기. 「마산포 이야기」는 과거 마산포에서 벌어진 역사적·군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에 대해 구술한 이야기이다....
-
경기도 화성시 안녕동에 있는 조선 시대 저수지. 만년제는 원래 방축수(防築藪)로 불렸으나, 1795년(정조 19) 만년제로 개칭되었다. 이어 1798년(정조 22) 2월 13일부터 4월 15일까지 연인원 3만 7,920명과 6,000냥의 공사비를 투입하여 대규모 수축을 진행하였다. 당시 만년제 수축은 영우원천장에 따른 수원 신도시 건설 과정의 일환으로 진행된 것이었다. 정조는 화성...
-
경기도 화성시 안녕동에 있는 조선 시대 저수지. 만년제는 원래 방축수(防築藪)로 불렸으나, 1795년(정조 19) 만년제로 개칭되었다. 이어 1798년(정조 22) 2월 13일부터 4월 15일까지 연인원 3만 7,920명과 6,000냥의 공사비를 투입하여 대규모 수축을 진행하였다. 당시 만년제 수축은 영우원천장에 따른 수원 신도시 건설 과정의 일환으로 진행된 것이었다. 정조는 화성...
-
삼국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다양하게 나타난 무관들의 활약과 여러 전투로 형성된 무향으로서의 화성 지역. 화성 지역은 삼국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한강 유역을 수호하는 주요 거점 지역이었다. 삼국 시대에는 한강 유역에 대한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한 최적의 요충지로, 조선 시대에는 적군의 침입을 저지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로 주목되었다. 그로 인해 화성 지역에서는 크고 작은 전투들이 다...
-
경기도 화성시에서 이루어지는 문화·예술 활동의 현황. 화성은 예로부터 하삼도로 이동할 때 거쳐 가는 교통의 요지였고, 서쪽으로는 서해바다가 펼쳐서 있어 물자가 풍요로웠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수도인 한양과 인접한 기전(畿甸)지방에 해당되었다. 풍요로운 물산과 많은 유동 인구는 화성의 문학과 미술이 발전할 수 있는 토대로 작용했다. 1945년 해방 이후 6·25전쟁과 산업화 그리고 민...
-
박언침을 시조로 하고 박희인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화성시의 세거 성씨. 밀양 박씨는 신라를 세운 박혁거세를 원조(元祖)로 하고, 경명왕의 맏아들인 밀성대군 박언침(朴彦忱)을 시조로 한다. 박언침의 아들 박욱(朴郁)은 왕건을 도와 고려 건국에 공을 세워 삼한벽공도대장군(三韓壁控都大將軍)에 올랐다고 한다. 이후 밀양 박씨는 고려의 유력 성씨가 되었으며, 조선 건국 시에는 박위(朴葳)...
-
경기도 화성시 오산동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 고려 말 친원 세력에 반대하였던 증영의정(贈領議政) 문정공(文正公) 박상충(朴尙衷)의 10대 손이다. 증조부는 생원 박려(朴瓈), 조부는 나주목사를 지낸 박대하(朴大夏)이다. 아버지는 성균생원 박욱(朴𢒰))이고, 어머니는 전의 이씨(全義李氏)로 이구령(李龜齡)의 현손인 이광림(李光林)의 딸이다. 부인 여흥...
-
박응주를 시조로 하고 박찬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화성시의 세거 성씨. 반남 박씨 시조는 고려 시대에 반남[지금의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 지역 호장을 지낸 박응주(朴應珠)이다. 박혁거세의 후손으로 생각되나 계보가 확인되지는 않는다. 반남 박씨는 박응주 이후 오랜 기간 반남 지역의 향직을 맡은 것으로 보이며, 조선 건국 이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주요 벌열,...
-
1636년 12월부터 1637년 1월까지 경기도 화성 지역을 포함한 조선 서북부 및 중부 지역에서 벌어진 청나라와의 전쟁. 1627년 1월에 발생한 정묘호란의 결과, 조선은 후금과 형제의 맹약을 맺고 교역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이후로도 후금은 변경 지방을 침입하여 약탈하는 등 수시로 조선을 도발하였다. 나아가 만주 점령 후 만리장성을 넘어 명나라를 압박하는 과정에서는 형제의 맹약을...
-
일제 강점기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에 있었던 봉담공립청년훈련소의 설립인가문서. 청년훈련소는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제가 한국인 청년의 사상을 통제하고 동원을 쉽게 하고자 설립한 교육기관이다. 식민지 조선에서 청년훈련소는 1926년 제16호 청년훈련규정에 따라 일본 퇴역군인단체 재향군인회에 의해 설치되기 시작했다. 이후 1929년 조선총독부는 청소년훈련소규정을 발포(發布)하여 재향군인회가...
-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에 속하는 법정리. 분천리(汾川里)는 봉담읍의 중부에 위치한다. 북쪽으로 상리·동화리, 동쪽으로 와우리·수기리, 남쪽으로 정남면 보통리, 서쪽으로 왕림리와 접한다. 자연마을로는 분촌(盆村), 시내말 등이 있다....
-
경기도 화성 지역에서 활동하는 석가모니를 교조로 하는 종교. 우리나라의 불교는 삼국 시대에 전래되어 지역과 풍토 및 민족성 안에서 독특하게 전개되었다. 고려 시대에는 갈양사(葛陽寺), 창성사(彰聖寺), 만의사(萬儀寺) 등의 주요 사원이 화성 지역의 불교계를 주도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용주사가 1780년 정조의 명에 의한 중창 이래 왕실의 비호를 받으며 최고의 사찰로 유지되었다. 이...
-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왕림리에 있는 삼천병마골에 대한 지명 유래 전설. 삼천병마골은 장안대학교 뒷산과 수원여자대학교 해란캠퍼스 사이에 있는 산골짜기로 왕림휴게소 부근에 해당한다. 경기도 화성시와 수원시에서 사용되는 도로명주소 중 삼천병마로가 있다. 삼천병마로는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오목천동 오동나무 삼거리에서 시작하여 화성시 봉담읍과 팔탄면을 지나 향남읍 상신리까지 이르는 도로이다...
-
박언창을 시조로 하고 박사화를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화성시의 세거 성씨. 상주 박씨 시조는 신라 말의 혼란기에 사벌국(沙伐國) 왕을 칭하였다고 하는 박언창(朴彦昌)이다. 신라 경명왕(景明王)의 아들이라고 하며, 견훤과의 싸움에서 전사하였다....
-
1929년 조선총독부에서 발간한 경기도 화성 지역을 포함한 수원군에 대한 지지. 『생활상태조사 1 수원군』의 저자인 젠쇼 에이스케[善生永助]는 1910년 와세다대학 정치경제과를 졸업하고 졸업 후에는 신문잡지 기자로 근무하면서중국 관계 논문이나 기사를 주로 잡지에 게재하였다. 기자생활을 하면서 일본의 척식단체인 동양협회에 드나들며중국경제관계 저서를 발표하여 호평을 받았다. 1922년...
-
경기도 화성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전기 문신. 본관은 대구(大丘). 자는 강중(剛中), 호는 사가정(四佳亭)이며, 초자(初字)는 자원(子元)이고, 자호(自號)는 정정정(亭亭亭),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조부는 호조전서 서의(徐義), 부친은 안주목사(安州牧使) 서미성(徐彌性), 모친은 안동 권씨(安東權氏)로 양촌(陽村) 권근(權近)의 딸이다. 좌의정 최항(崔恒)이 그의 자형(姉兄)...
-
경기도 화성시 옛 만의사 터에 있는 조선 시대 승려 선화대사의 승탑. 신라 시대에 창건된 만의사는 원래 경기도 화성시 동탄면 신리에 있었으나 1669년(현종 10)에 송시열의 묘자리로 지정되면서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옛 만의사 터 부근에 1888년(고종 25) 원각사(圓覺寺)가 창건되었는데, 1941년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942년 8월 대웅전을 재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
경기도 화성 지역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같은 성과 본관을 가지고 살아 온 성씨. 한국의 성씨 집단은 성씨와 본관으로 자신을 나타낸다. 각 성씨 집단은 부계 혈연을 의미하는 성씨와 공간적 기원지라 일컬어지는 본관을 통해 다른 성씨 집단과 차별성을 갖는다. 성과 본관이 속한 가문을 나타낸다면, 이름은 동성동본의 성씨 내에서 종적 혈연관계를 나타내는 항렬과 개인을 구별하는 자(字)로 구...
-
일제 강점기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에 있었던 송산공립청년훈련소의 설립인가문서. 청년훈련소는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제가 한국인 청년의 사상을 통제하고 동원을 쉽게 하고자 설립한 교육기관이다. 식민지 조선에서 청년훈련소는 1926년 제16호 청년훈련규정에 따라 일본 퇴역군인단체 재향군인회에 의해 설치되기 시작했다. 이후 1929년 조선총독부는 청소년훈련소규정을 발포(發布)하여 재향군인회가...
-
경기도 화성시 화성시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후기 고문서. 수성 최씨 한림공파 독정종중은 최승장과 최함을 입향조로 하여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독정리에 세거하고 있다. 독정종중에는 『수원최씨세보』를 비롯해 1676년(숙종 2)부터 1871년(고종 8) 시기에 해당하는 준호구(準戶口)단자가 남아있다. 특히 호구단자에는 지역 양반의 관직과 거주지 변화, 가족 구성 및 보유한 노비...
-
백우경을 시조로 하는 경기도 화성시의 세거 성씨. 수원 백씨의 시조는 백우경(白宇經), 중시조는 백창직(白昌稷)이다.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화성 지역의 내성(來姓)으로 기록되어 있다. 시조인 백우경은 신라 때 당나라에서 귀화한 인물로, 좌복야(左僕射), 대사도(大司徒) 등을 역임하였다고 한다. 중시조인 백창직은 신라 경명왕 대에 중랑장(中郎將)을 지냈다. 시호는...
-
최자성·최루백을 시조로 하는 경기도 화성시의 세거 성씨. 수원 최씨는 고려 때부터 중앙 정부에 진출하여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였으며, 조선 건국 후에도 지역 사족으로서 관직자를 꾸준히 배출하였다....
-
고려~조선 시대 경기도 화성·수원·오산 지역 일대에 있던 지방 행정 구역. 수원도호부(水原都護府)는 고려와 조선 시대에 지금의 경기도 화성시 동부 일대와 수원시, 오산시 등을 관할한 지방 행정 구역이다. 화성시의 현재 행정 구역 중 조선 시대 수원도호부에 속하였던 곳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안녕동·병점동 등 동지역, 봉담읍·향남읍, 매송면·팔탄면·정남면·양감면 등의 지역이 해당한다...
-
이인덕을 시조로 하고 이유를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화성시의 세거 성씨. 여주 이씨는 시조에 따라 크게 세 파로 나뉘는데, 화성 지역 여주 이씨는 이인덕(李仁德)을 시조로 하는 교위공파(校尉公派)에 속한다. 교위공파는 이인덕의 4세손 이교(李喬)가 고려 중앙 정계에 진출하면서부터 여주 지역을 떠나기 시작하였다. 여주 이씨 출신 중에는 고려 후기의 이규보(李奎報)[1168~1241]와...
-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경기도 화성시의 역사. 화성시의 역사는 발굴 조사된 유적과 문헌 기록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유적은 태안 지역, 봉담 지역, 향남 지역 및 길성리 토성 주변 지역, 서해안에 접한 우정읍-장안면 일대, 마도면-서신면 지역, 오산-동탄 지역 등에서 다수 조사되었다. 이러한 유적들을 통해 선사 시대 이래 사람들의 거주 양태와 정치 세력의 형성 과정을 추적하여...
-
조선 시대에 도성과 경기도 화성 지역을 포함한 지방을 연결하던 교통 및 통신 제도. 조선 시대에 화성 지역은 호서·호남 지방에서 한강 이북으로 진출하는 길목에 자리한 교통의 요지였다. 이에 조선에서는 국가의 공적 도로망을 편제하는 과정에서 화성 지역에 4개의 역을 설치하였다. 역에서는 왕명과 공문서의 전달, 사신의 왕래에 따른 영송, 공공 물자 운송에 필요한 말 공급 등의 업무를...
-
경기도 화성시 출신으로 예술 작품을 창작하거나 표현하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 예술인(體育人)은 시각·공연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을 말한다. 화성지역에는 한국예총화성지회가 경기도 화성시 노작로 동탄문화센터 2층에 위치하고 있으며, 산하에 문인협회, 미술협회, 국악협회, 음악협회, 무용협회, 사진협회, 연극협회, 연예예술인협회를 두고 있다....
-
경기도 화성시 안녕동에 있는 융릉과 건릉으로 살펴본 조선 후기 왕실 효행. 조선의 왕릉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고유한 가치를 인정받은 세계적 유산이다. 1392년 태조는 즉위와 함께 4대조의 묘소를 왕릉으로 추숭하였다. 왕과 왕비의 무덤을 능(陵)이라 하고, 그 외의 무덤은 묘라고 하였다. 조선 왕조는 고려 공민왕릉의 제도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명나라 능묘 제도를 받아들여...
-
경기도 화성시 안녕동에 있는 융릉과 건릉으로 살펴본 조선 후기 왕실 효행. 조선의 왕릉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고유한 가치를 인정받은 세계적 유산이다. 1392년 태조는 즉위와 함께 4대조의 묘소를 왕릉으로 추숭하였다. 왕과 왕비의 무덤을 능(陵)이라 하고, 그 외의 무덤은 묘라고 하였다. 조선 왕조는 고려 공민왕릉의 제도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명나라 능묘 제도를 받아들여...
-
경기도 화성시 송산동에 있는 사도세자의 원찰로 창건된 사찰. 조선은 유교국가였지만 조상을 추복(追福)하기 위한 불교의례는 꾸준히 이어졌다. 국왕뿐만 아니라 왕실 비빈의 요구에 의해 능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한 사찰은 조선후기까지 존속되었다. 용주사는 현륭원(顯隆園)의 원찰로 창건된 사찰이다. 정조가 승려 사일(獅馹)로부터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 설법을 듣고 크게 감동하여 경기도...
-
경기도 화성시 송산동에 있는 사도세자의 원찰로 창건된 사찰. 조선은 유교국가였지만 조상을 추복(追福)하기 위한 불교의례는 꾸준히 이어졌다. 국왕뿐만 아니라 왕실 비빈의 요구에 의해 능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한 사찰은 조선후기까지 존속되었다. 용주사는 현륭원(顯隆園)의 원찰로 창건된 사찰이다. 정조가 승려 사일(獅馹)로부터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 설법을 듣고 크게 감동하여 경기도...
-
조선 후기 경기도 화성시 매송면 출신의 문신.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경선(景善), 호는 추연(秋淵)·연암(淵庵)이다. 조선의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이자 검교좌정승(檢校左政丞)을 지낸 우인열(禹仁烈)의 7대손으로, 증조부는 우환(禹桓), 조부는 승사랑(承仕郞)을 지낸 우성윤(禹成允)이다. 우성전은 함종현령을 지낸 우언겸(禹彦謙)의 둘째 아들로 어머니 연안 김씨는 김석린(金石...
-
경기도 화성 지역에서 공자 사상과 관련해 이루어지는 학문 및 의례 활동. 유교는 삼국 시대에 한반도로 전해져 보편화되었다. 고구려는 태학(太學)을 세워 유교적 교육을 실시했고 백제는 일본에 왕인 박사를 파견하여 논어와 천자문을 전했고, 신라는 국학을 세웠다. 삼국의 유교교육으로 신라의 설총과 최치원 등 시문에 능하고 경전과 사기에 통달한 유학자들이 대거 등장할 수 있었다. 이러한...
-
경기도 화성 지역에서 공자 사상과 관련해 이루어지는 학문 및 의례 활동. 유교는 삼국 시대에 한반도로 전해져 보편화되었다. 고구려는 태학(太學)을 세워 유교적 교육을 실시했고 백제는 일본에 왕인 박사를 파견하여 논어와 천자문을 전했고, 신라는 국학을 세웠다. 삼국의 유교교육으로 신라의 설총과 최치원 등 시문에 능하고 경전과 사기에 통달한 유학자들이 대거 등장할 수 있었다. 이러한...
-
개항기 경기도 화성 지역 일대에서 일제의 만행에 맞서 전개한 무력 항쟁. 1894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조선 침략을 본격화하였다. 한국인의 자립권과 생존권이 위협에 놓인 상황에서, 한국인들은 자발적으로 무장하여 외세를 쫒고 나라의 자립성을 되찾고자 하였다. 한말 영국 기자 매캔지[Frederic Arthur Mckenzie]는 『자유를 위한 투쟁[The Fight For F...
-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및 장안면 일대에 은거한 조선 후기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자선(子善), 호는 호암(浩菴), 시호는 충간(忠簡)이다.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정언을 지낸 이희백(李希伯), 할아버지는 안성군수를 역임한 이대수(李大秀), 아버지는 형조판서를 지낸 이현영(李顯英), 어머니 진주 유씨는 첨지중추부사를 역임한 유사규(柳思規)의 딸...
-
경기도 화성시에 분포하는 인문 지리적 요소. 경기도 화성시 일대에는 초기 국가 시대에 마한 54개 소국 중 원양, 모수, 상외 3개의 소국이 위치하였고, 고구려 시기에는 ‘당성’과 ‘매홀’로 편제되었다. 757년(경덕왕 16)에는 당은군[당성], 수성군[매홀]으로 개편되었으며, 940년(고려 태조 23)에는 당성군, 수주로 개편되었다....
-
1592년부터 1598년까지 경기도 화성 지역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벌어진 일본과의 전쟁. 임진왜란은 1592년부터 1598년까지 2차에 걸쳐 벌어진 일본과의 전쟁이다. 보통 1차 전쟁이 일어난 1592년의 간지를 따서 임진왜란이라고 총칭하며, 일본의 2차 침입만을 따로 지칭하는 경우에는 정유재란이라고 부른다. 조선 시대에 화성·수원 지역은 남양도호부와 수원도호부가 관할하였는데...
-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우정면 일대의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장소진(張韶鎭)[1886~1924]은 1886년 9월 26일 경기도 수원군 장안면 석포리[현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석포리]에서 태어났다. 장봉래(張鳳來)라고도 불렸다. 장소진은 1919년 4월 3일 차희식(車喜植)·장제덕(張濟悳)과 함께 이영쇠(李永釗) 등에게 ‘오늘 조선의 독립을 목적으로 독립만세를 외칠 것이니,...
-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우정면 일대의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장제덕(張濟德)[1882~1937]은 1882년 4월 8일 경기도 수원군 양감면 정문리[현 경기도 화성시 양감면 정문리]에서 태어났다. 본적은 경기도 수원군 우정면 주곡리[현 경기도 화성시 우정면 주곡리] 53번지이며, 장순명(張順命), 혹은 장순명(張順明)으로도 불렸다. 1919년 4월 3일 차희식(車喜植), 장...
-
이한을 시조로 하고 이효리·이민동·이동백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화성시의 세거 성씨. 전주 이씨는 대한민국의 이씨 가운데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지고 있으며, 조선 시대에는 모든 성씨 중 가장 많은 문과 급제자를 배출하였다. 시조는 통일 신라 시대 말기 인물인 이한(李翰)인데, 구체적인 행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전주 이씨가 역사 속에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것은 고려 시대...
-
최순작을 시조로 하는 경기도 화성시의 세거 성씨. 전주 최씨는 시조를 달리하는 4개의 계파가 있다. 각각 최순작(崔純爵), 최군옥(崔羣玉), 최균(崔均), 최아(崔阿)를 시조로 하는데, 화성 지역 전주 최씨는 고려의 문신 최순작을 시조로 하는 문열공파(文烈公派)에 속하는 것으로 보인다. 조선 개국 공신 중 한 명인 최유경(崔有慶)[1343~1413], 병자호란 당시 강화론을 주장한...
-
경기도 화성시 송동에 있는 조선 전기 태실비. 정숙옹주 태실비는 조선 선조와 인빈 김씨의 딸인 정숙옹주(貞淑翁主)[1587~1627]의 태실비이다. 태실은 왕실 자녀의 태를 전국 길지에 봉안하는 것으로, 신라에서 시작되어 조선 전기에 이르러 왕실 문화로 정착되었다. 조선 시대에 태는 태아의 생명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으며, 태의 보관은 곧 국운과 연관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
경기도 화성시 안녕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정조의 왕릉 터. 정조 초장지는 정조가 사망한 후 처음 묻힌 곳이다. 정조는 1800년 6월 28일 창경궁 영춘헌(迎春軒)에서 사망하였고, 11월 3일 발인하여 11월 6일에 묻혔다. 사도세자의 무덤인 현륭원(顯隆園) 동쪽 기슭 강무당 터에 무덤을 조성하였으며, 능호는 건릉(健陵)이다. 정조의 능이 조성된 지 21년 만인 1821년(순조 21...
-
경기도 화성시 안녕동에 있는 융·건릉 일대에서 매년 10월 개최되는 문화제. 정조효문화제의 주요행사가 진행되는 융릉은 장조[사도세자]와 헌경왕후[혜경궁 홍씨]의 합장릉이며, 건릉은 조선 정조와 효의왕후의 합장릉이다. 융·건릉은 정조의 효심이 깃든 유적으로 화성시에서 효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
1919년 4월 15일 경기도 화성 지역에서 일어난 일제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건. 1919년 4월 15일 일본군 79연대 소속 아리타 도시오[有田俊夫] 중위와 11명의 보병 및 경관이 함께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지금의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의 마을 주민들을 기독교회당에 소집하여 총을 쏘았고, 교회당과 마을에 불을 질렀다. 제암리사건은 기독교 선교사와 미국·영국 총영사관의...
-
1919년 4월 15일 경기도 화성 지역에서 일어난 일제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건. 1919년 4월 15일 일본군 79연대 소속 아리타 도시오[有田俊夫] 중위와 11명의 보병 및 경관이 함께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지금의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의 마을 주민들을 기독교회당에 소집하여 총을 쏘았고, 교회당과 마을에 불을 질렀다. 제암리사건은 기독교 선교사와 미국·영국 총영사관의...
-
조선 왕조가 존속한 1392년부터 1863년까지 경기도 화성 지역의 역사. 조선 시대 화성 지역에는 수원도호부와 남양도호부가 설치되어 있었다. 지금의 행정 구역을 기준으로, 수원도호부는 봉답읍 등의 화성시 동부 지역과 수원시·오산시 일대, 남양도호부는 남양읍을 비롯한 화성시 서부 지역을 관할하였다. 남양도호부는 수원도호부에 비해 인구가 적고 위상은 낮았지만, 남양만 일대의 해안 방...
-
경기도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춘성(趙春成)[1910~1968]은 1910년 3월 15일 경기도 수원군 안룡면 오목천리[1949년~1962년간 경기도 화성군 안룡면 오목천리] 524번지에서 태어났다. 17세에 도기 제조 직공으로 강원도(江原道) 원주군(原州郡) 귀래면(貴來面) 운계리(雲溪里)로 이주하여 일을 하게 되었다. 1944년 12월 하순 경성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열차 안...
-
경기도 화성 지역에서 초월적인 존재를 믿고 따르는 일체의 행위. 1. 삼국 시대...
-
조선 시대 경기도 화성 지역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시행된 지방 방위 체제. 조선 초기의 방위 체제는 북방 국경 지대와 남방 연해 지대를 방어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북방 지역에는 군익도(軍翼道) 체제가 시행되고 있었고, 남방 지역에는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여 연해의 요충지에 진을 설치하였다. 반면 내륙 지역에는 이렇다 할 군사 조직이 없는 상황이었다. 경기도의 경우 단 한...
-
경기도 화성시 장안·우정면 일대의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차병한(車炳漢)[1885~1933]은 1885년 11월 12일 경기도 수원군 장안면 석포리[현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석포리] 522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일 이후 전국적인 만세시위가 일어나자, 석포리의 구장으로서 차희식(車喜植)·차병혁(車炳赫)과 장안면·우정면 일대의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1919년...
-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우정면 일대의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차병혁(車炳赫)[1889~1967]은 1889년 12월 11일 경기도 수원군 장안면 석포리[현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석포리] 537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일 이후 전국적인 만세시위운동이 확산되자, 차희식(車喜植)·차병한(車炳漢)과 함께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1919년 4월 2일 장안면과 우정면 각...
-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우정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차인범(車仁範)[1901~1922]은 1901년 2월 7일 경기도 수원군 장안면 수촌리[현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수촌리] 694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3일 장안면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나자, 이순모(李順模)·이영쇠(李永釗)·김흥삼(金興三) 등과 장안면사무소와 우정면사무소를 파괴하였다. 또한 화수리 경찰관주...
-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우정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차희식(車喜植)[1884~1938]은 1884년 12월 17일 경기도 수원군 우정면 주곡리[현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주곡리] 81번지에서 태어났으며, 차봉습(車鳳習), 혹은 차봉습(車奉習)이라고도 불렸다. 1919년 3월 1일 이후 전국적으로 만세시위가 일어나자, 차희식은 석포리의 구장이었던 차병한(車炳漢), 차병...
-
경기도 화성 출신의 조선 후기 학자 우하영이 국정의 개혁안에 관해 논술한 정책서. 우하영(禹夏永)[1741-1812]의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대유(大猷), 호는 취석실(醉石室)이다. 아버지는 우정서(禹鼎瑞)이며, 큰아버지 우정태(禹鼎台)의 가계를 이었다. 1755년(영조 31)부터 과거공부를 시작하여 여러 번 응시했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시골의 유생으로 평생을 보낸 조선 후기의...
-
경기도 화성 출신의 조선 후기 학자 우하영이 국정의 개혁안에 관해 논술한 정책서. 우하영(禹夏永)[1741-1812]의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대유(大猷), 호는 취석실(醉石室)이다. 아버지는 우정서(禹鼎瑞)이며, 큰아버지 우정태(禹鼎台)의 가계를 이었다. 1755년(영조 31)부터 과거공부를 시작하여 여러 번 응시했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시골의 유생으로 평생을 보낸 조선 후기의...
-
경기도 화성시에서 활동하는 로마 가톨릭교. 2020년 기준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천주교 성당은 총 24곳[기산, 기안, 남양, 동탄능동, 동탄반송동, 동탄송동, 동탄숲속, 동탄영천동, 동탄장지동, 마도, 발안, 병점, 봉담, 비봉, 사강, 상신, 서신, 신남, 안녕, 왕림, 은계동, 정남, 조암, 향남]이 있다. 24곳 본당에는 26명의 사제와 12명의 수도자가 화성 지역 천주교...
-
경기도 화성시 용주사에 있는 조선 후기 청동향로. 조선 정조[재위 1776~1800]때 왕실에서 하사한 내사품(內賜品)으로 , 용주사 창건 당시 금동향로[경기도 유형문화재]와 함께 하사된 청동향로이다....
-
경기도 화성시의 체육 현황. 우리나라 근대 체육은 갑오경장 이후 1895년 신교육령이 시행되면서 체육이 학교 정규 과목으로 채택으로 시작되었다. 1905년 체육 발전과 학교 간 친선 교류를 위하여 연합체육대회을 열게 되었고, 1907년 대한제국체육회가 출범하였다. 1920년 7월 13일 조선체육회가 설립되었다. 조선체육회는 대한체육회의 전신이다. 조선체육회 출범 이후 1920년 1...
-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에 있는 고려 후기 효자 최루백의 정려. 최루백(崔婁伯)[?~1206]은 고려 의종 대의 문신이다. 최루백의 아버지는 수원의 향리로 사냥을 나갔다가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는데 최루백은 15세의 나이로 아버지를 죽인 호랑이를 잡아 아버지의 원수를 갚았다고 전해진다. 이후 홍법산(弘法山) 서쪽에 아버지를 장사지낸 후 여막을 짓고 무덤을 지켰는데 어느 날 꿈에 아버지가...
-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에 있는 고려 후기 효자 최루백의 정려. 최루백(崔婁伯)[?~1206]은 고려 의종 대의 문신이다. 최루백의 아버지는 수원의 향리로 사냥을 나갔다가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는데 최루백은 15세의 나이로 아버지를 죽인 호랑이를 잡아 아버지의 원수를 갚았다고 전해진다. 이후 홍법산(弘法山) 서쪽에 아버지를 장사지낸 후 여막을 짓고 무덤을 지켰는데 어느 날 꿈에 아버지가...
-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최춘보(崔春甫)[1867~1936]는 1867년 12월 10일 충청남도 음죽군[현 경기도 이천시]에서 태어났다. 거주지는 경기도 수원군 송산면 사강리[현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사강리] 648번지이다. 1919년 3월 26일 홍면옥(洪冕玉)·왕광연(王光演)·홍명선(洪明善) 등과 함께 송산면사무소 부근에서 태극기를 게양하고...
-
조춘을 시조로 하는 경기도 화성시의 세거 성씨. 평양 조씨는 경기도 화성시의 세거 성씨 중 하나이다. 화성시 비봉면 양노리 바리골에 모여 사는데, 조선 개국 공신 조준(趙浚)[1346~1405]의 동생 조견(趙狷)[1351~1425]의 후손이다. 조견 역시 조선 개국 공신 2등에 책록되었으나 고려에 대한 충성을 다하기 위해 받지 않았다. 훗날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갔으나 자신...
-
경기도 화성시 양감면에 있는 조선 전기 충신 한명윤과 부인 박행장의 정려. 조선 선조 때의 충신인 한명윤과 그의 부인 열녀 박행장의 충열각이다. 한명윤은 1590년(선조 23년) 영동현감이 되어 선정을 베풀던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으로 활약해 그 공으로 조방장의 품계를 겸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왜적과 싸우다 1593년 10월 52세의 나이로 전사하였다. 한명윤은 출전하는 길...
-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에 있는 공방. 한미요 배씨토가 푸레도기연구소는 조선 왕실에서 사용한 그릇 푸레독과 푸레도기를 복원·제작하는 업체이다. 한미요 배씨토가는 한국의 아름다운 가마를 운영하는 배씨 흙집이라는 뜻이다....
-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에 있는 공방. 한미요 배씨토가 푸레도기연구소는 조선 왕실에서 사용한 그릇 푸레독과 푸레도기를 복원·제작하는 업체이다. 한미요 배씨토가는 한국의 아름다운 가마를 운영하는 배씨 흙집이라는 뜻이다....
-
이언을 시조로 하고 이양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화성시의 세거 성씨. 함평 이씨 시조는 고려 광종 때 신호위(神虎衛) 대장군을 지내고 함풍군(咸豊君)에 봉하여진 이언(李彦)이다. 중시조는 이언의 11세손으로 조선 세조 대에 무과에 급제하여 경상우병사를 지낸 이종생(李從生)이다. 이종생은 이시애의 난 때 활약하여 정충출기적개공신(精忠出氣敵愾功臣) 2등에 책록되었고, 이후 함성군(咸城...
-
김숭선을 시조로 하고 김수종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화성시의 세거 성씨. 해풍 김씨는 신라 김알지의 후예로 알려져 있다. 본관인 해풍(海豊)은 경기도 개풍군(開豊郡)의 옛 지명이다. 1865년 간행된 을축보에는 7개 해풍 김씨 지파가 등장하는데, 화성 지역 해풍 김씨는 7개 지파 중 남양쌍부파[쌍부는 지금의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장안면 일대]에 속한다....
-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홍관후(洪寬厚)[1890~1971]는 1890년 11월 5일 경기도 수원군 송산면 삼존리[현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삼존리] 235번지에서 홍근(洪瑾)의 3남으로 출생하였다. 1919년 3월 28일 송산면사무소 뒷산과 그 부근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홍문선(洪文善)·홍남후(洪南厚)·홍승한(洪承漢) 등 1,000여...
-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홍복용(洪福龍)[1903~1965]은 1903년 5월 10일 경기도 수원군 송산면 사강리[현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사강리] 543번지에서 출생하였다. 김봉룡(金奉龍)으로도 불렸다. 1919년 3월 26일 홍면옥(洪冕玉)이 주도하여 일어난 송산면사무소 부근의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홍복용은 조선 독립과 국권 회복을 위한 만...
-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홍승한(洪承漢)[1894~1928]은 1894년 3월 8일 경기도 수원군 송산면 사강리[현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사강리] 544번지에서 태어났다. 홍성한(洪聖漢), 홍성택으로도 불렸다. 1919년 3월 28일 오후 2시 경 송산면사무소 뒷산과 그 부근에서 홍남후(洪南厚)·홍문선(洪文善)·홍관후(洪寬厚)·문상익(文相翊) 등...
-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이버지는 홍태원(洪泰元)이며, 홍면옥(洪冕玉)이 친형이다....
-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지역에 있던 조선 시대 수군 진영. 화량진이 설치된 남양만 일대는 신라 시대 이래 서해안 지역의 교통·군사적 요지였다. 그러나 화량진의 정확한 설치 시기는 알기 어려운데, 1358년(공민왕 7)에 왜적이 화지량(花之梁)을 불태웠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늦어도 14세기 중반에는 설치되어 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후 화량진은 조선 시대에 들어서도 남양만...
-
경기도 화성시 안녕동에 있는 조선 후기 왕릉. 화성 융릉과 건릉은 조선 후기의 왕릉이다. 융릉은 장조로 추존된 사도세자와 장조의 부인 헌경왕후[혜경궁 홍씨]의 무덤이고, 건릉은 정조와 정조의 부인 효의왕후 김씨의 무덤이다....
-
경기도 화성시 안녕동에 있는 조선 후기 왕릉. 화성 융릉과 건릉은 조선 후기의 왕릉이다. 융릉은 장조로 추존된 사도세자와 장조의 부인 헌경왕후[혜경궁 홍씨]의 무덤이고, 건릉은 정조와 정조의 부인 효의왕후 김씨의 무덤이다....
-
경기도 화성 지역에서 1919년 일어난 3·1운동과 일제의 제암리·고주리 민간인 학살 사건. 1919년 3월 1일의 만세 운동은 들불처럼 전국으로 퍼져 갔다. 그중에는 평화적인 시위도 있었지만, 조직적이고 격렬하게 진행된 시위도 있었다. 화성 지역에서 일어난 3·1운동은 전국에서 몇 안 되는 대표적인 공세적 만세 시위 운동으로, 3·1운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례이다. 주...
-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에 있는 조선 시대 남양 홍씨 문중 묘역. 화성홍법리남양홍씨묘역은 남양 홍씨 문중 묘역이다. 남양 홍씨는 당홍계와 토홍계로 구분되는데, 화성홍법리남양홍씨묘역에는 토홍계 후손들이 매장되어 있다. 토홍계 남양 홍씨는 다시 문희공파(文僖公派), 정효공파(貞孝公派), 참의공파(參議公派), 주부공파(主簿公派), 대호군공파(大護軍公派) 등 5개 파로 나뉘며, 화성홍법리남양...
-
경기도 화성시에서 열리는 가족마라톤대회. 경기도 화성시는 조선 22대 국왕 정조의 부왕인 사도세자에게 행한 효심을 기리고, 화성시가 효의 도시임을 홍보하기 위해 2000년 5월 ‘화성효마라톤대회’를 개최하였다. 2000년 제1회 대회부터 2011년 제12회 대회까지 수원대학교와 융릉·건릉 일대에서 열렸다. 2012년 제13회 대회부터 2016년 제17회 대회까지 화성종합경기타운 및...
-
경기도 화성시에서 열리는 가족마라톤대회. 경기도 화성시는 조선 22대 국왕 정조의 부왕인 사도세자에게 행한 효심을 기리고, 화성시가 효의 도시임을 홍보하기 위해 2000년 5월 ‘화성효마라톤대회’를 개최하였다. 2000년 제1회 대회부터 2011년 제12회 대회까지 수원대학교와 융릉·건릉 일대에서 열렸다. 2012년 제13회 대회부터 2016년 제17회 대회까지 화성종합경기타운 및...
-
경기도 화성시 장지동에 있는 박장철 효자각과 관련하여 전해지는 이야기. 밀양 박씨 박장철(朴長哲)[1780~1853]은 지역의 이름난 효자로서 1885년 고종은 박장철의 효행을 기리는 효자정문(孝子旌門)을 내렸다. 박장철 효자각은 1986년 5월 20일 화성시 유형문화재 제6호로 지정된 향토문화재이다. 박장철 효자각의 위치는 경기도 화성시 장지동 493-2이다....
-
경기도 화성시 장지동에 있는 박장철 효자각과 관련하여 전해지는 이야기. 밀양 박씨 박장철(朴長哲)[1780~1853]은 지역의 이름난 효자로서 1885년 고종은 박장철의 효행을 기리는 효자정문(孝子旌門)을 내렸다. 박장철 효자각은 1986년 5월 20일 화성시 유형문화재 제6호로 지정된 향토문화재이다. 박장철 효자각의 위치는 경기도 화성시 장지동 493-2이다....
-
1920년 대한적십자회에서 간행한 3·1운동 영문 화보집. 『The Korean Independent Movement』는 상하이 임시 정부에서 조직한 대한적십자회가 3·1운동 때 일제가 저지른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1920년 간행하였다. 식민지 조선에는 한국 적십자회를 흡수한 일본 적십자회가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 적십자회는 1919년 4월 15일 경기도 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