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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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서 효행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논산시 노성면에서는 예부터 병사리에 있는 작은 마을들을 가랑지기 또는 가람지기라고 부르고 있다. 산골짜기를 다랑이 전답으로 개간하였는데, 이에 연원하여 가랑지기란 지명이 나왔고, 뒤에 이를 가람지기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1989년에 논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옛날 논산시 노성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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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서 명재 윤증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명재 윤증은 조선 숙종 때의 학자이다. 자는 자인(子仁), 호는 명재(明齋)·유봉(酉峯)이며, 윤증이 이름이다. 예론에 정통한 학자로 여러 차례 벼슬이 내려졌으나 모두 사양하였다. 저서로 『명재유고(明齋遺稿)』 등이 있다. 2007년 2월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 유봉마을에서 윤석간(남, 8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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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서 명재 윤증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명재 윤증은 조선 숙종 때의 학자이다. 자는 자인(子仁), 호는 명재(明齋)·유봉(酉峯)이며, 윤증이 이름이다. 예론에 정통한 학자로 여러 차례 벼슬이 내려졌으나 모두 사양하였다. 저서로 『명재유고(明齋遺稿)』 등이 있다. 2007년 2월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 유봉마을에서 전승희(여, 73)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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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 파평윤씨 문중에 소장되어 있는 분재기. 「윤돈 화회문기」는 파평윤씨 노종파(魯宗派) 입향조인 윤돈(尹暾)과 관련되어 당시 양반가의 경제 사정을 자세하고도 정확히 전해 주는 유일한 문서이다. 「윤돈 화회문기」는 총 세 부가 만들어져 재산을 상속받은 각각의 집안에 보관되어 왔으나 두 부는 모두 소실되고 한씨 집안에서 보관하던 한 부만이 전해져 오다가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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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서 명재 윤증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명재 윤증은 조선 숙종 때의 학자이다. 자는 자인(子仁), 호는 명재(明齋)·유봉(酉峯)이며, 윤증이 이름이다. 예론에 정통한 학자로 여러 차례 벼슬이 내려졌으나 모두 사양하였다. 저서로 『명재유고(明齋遺稿)』 등이 있다. 2007년 2월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 유봉마을에서 전승희(여, 73)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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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 두레 조직에서 사용하던 농기. 농기는 두레 조직을 갖고 있던 거의 모든 마을에서 제작하여 사용하였다. 논산시 노성면 일대에서는 병사리와 노티리의 농기가 현존하는 것들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병사리 두레는 인근에서 큰 두레로 유명했다. 병사리 두레에서는 큰 기와 영기(令旗), 두 개가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현재는 그 소재를 알 수 없다. 두레가 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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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 유봉 영당에서 매년 음력 9월 15일에 지내는 윤증 추모제. 기호 유현이자 성리학의 대가로서 소론의 영수였던 윤증(1629~1714)은 40세 때 병사리로 낙향하여 강당을 건립하고 후학을 양성하였다. 윤증 사후 1744년(영조 20)에 이르러 윤증 문인들이 스승의 영당과 경승재를 건립하고 영정을 봉안하였다. 춘추로 제향을 봉행하여 왔는데, 현대로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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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명재 윤증의 영정을 모신 사당. 노성면소재지에서 공주로 향하는 국도 23호선을 따라 약 3㎞를 가면 병사교가 있다. 이곳에서 남서쪽 소로를 따라 300m 정도 가면 유봉마을에 이르는데, 이곳에 유봉 영당이 자리 잡고 있다. 기호 유현이자 성리학의 대가로서 소론의 영수였던 윤증(1629~1714)은 40세 때 병사리로 낙향하여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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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중기 유연의 묘소 앞에 세워진 묘표. 유연(柳淵)은 통정대부를 지내고 노성면 병사리로 낙향하여 살았다. 아들이 있었지만 후사가 없었다. 두 딸을 두었는데 한 명은 청주한씨에게, 다른 한 명은 파평윤씨에게 출가하여 재산을 두 딸에게 분재하였다. 병사리에는 파평윤씨들이 오래전부터 세거하고 있었는데, 이곳에는 유연의 묘와 큰사위인 한여헌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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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명숙(明叔), 호는 설봉(雪峰). 할아버지는 윤돈(尹暾), 아버지는 윤창세(尹昌世)이다. 훗날 설봉공파를 이루었다. 1590년(선조 23)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1593년 아버지 윤창세가 죽자 시묘를 살았다. 1600년(선조 33)에 능참봉(陵參奉)을 제수 받았으며, 1601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정자에 임명되고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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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윤수의 묘표. 윤수는 파평인으로 윤창세의 장남이다. 자는 명숙, 호는 운봉으로, 아들이 없어 윤황의 아들 윤순거가 양자로 들어와 대를 이었다. 명종 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죽주도호부사를 지냈고 후에 도승지에 추증되었다. 윤수가 죽은 지 17년 지났을 때 묘표를 세워 자손들이 알아보도록 하게 해달라는 윤덕요의 요청에 윤순거가 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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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윤순거의 묘역. 윤순거(尹舜擧, 1596~1668)의 자는 노직(魯直), 호는 동토(童土)이다. 아버지는 윤황(尹煌)이나 큰아버지 윤수(尹燧)에게 입양되어 성장하였다. 윤순거는 파평윤씨의 정신적 전통과 인물 양성의 기틀을 다지기 위해 파평윤씨 종학당을 건립하고 집안의 자제들을 가르쳤으며, 병사 종중과 규약의 기반을 마련하는 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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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윤순거의 신도비. 윤순거(1596~1668)는 자는 노직(魯直)이고, 호는 동토(童土)이다. 윤황의 아들로서 어려서는 성문준에게 수학했고, 시는 강항에게, 예는 김장생에게 배웠다. 1633년(인조 11) 사마시에 합격하였는데,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아버지 윤황이 귀양가고, 숙부는 강화도 싸움에서 순절하자 집안과 나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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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윤전의 신도비. 윤전은 파평인으로 윤창세의 아들이고 팔송 윤황의 아우이다. 성혼의 문인으로 1610년(광해군 2) 문과에 급제하고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을 피하여 왕을 공주까지 호송하여 공조정랑이 되었다. 정랑을 지내다가 필선이 되었고, 병자호란을 만나 강화도에서 전사하였다. 윤전은 사후 이조판서에 증직되고 충헌의 시호를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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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윤절과 부인 남원윤씨의 묘표. 인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구찬을 지낸 윤절과 그의 부인인 남원윤씨 묘소 앞에 세워져 있는 묘표로서, 1716년(숙종 42)에 묘표를 세워 묘의 주인을 밝히고 그의 행적과 업적을 칭송하기 위해 세웠다. 노성면소재지에서 공주로 향하는 국도 23호선을 따라 약 2.8㎞ 정도 가면 도로 왼쪽에 병사리 1구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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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윤진의 신도비. 윤진은 1631년(인조 9)에 태어나 1698년(숙종 24)에 사망하였다. 윤진의 자는 자경이고 호는 덕포이며 본관은 파평이다. 윤순거의 아들로 1652년 생원시에 급제하고 빙고별검으로 있다가 1666년(현종 7)에 별시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지평, 이조좌랑, 수찬, 병조정랑 등을 거쳐 부교리가 되었다. 왕에게 붕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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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중기 윤창세의 묘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는 노종 5방파의 아버지이며, 파평윤씨가 전성기를 구가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던 윤창세의 묘비가 세워져 있다. 윤창세는 처음 논산으로 이거한 파평윤씨 윤돈의 아들로 노성면 병사리로 처음 터전을 옮긴 인물로서, 평소 효심이 깊어 자손과 제자들로부터 효렴공(孝廉公)이라 불렸으며, 나라에 대한 충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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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시대 파평윤씨 묘역과 묘비. 윤창세 선생 묘소 일원은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싸우다가 진중에서 전사하여 훗날 이조참판으로 추증된 윤창세의 묘소가 제일 먼저 자리 잡은 곳으로,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와우형(臥牛形)으로 불리는 곳이다. 이곳에 묘소가 마련된 이후 윤창세의 자손들은 노종 5방파로 발전하였다. 묘역에는 노종 5방파 직계 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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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던 파평윤씨 노종파 의창지. 윤순거가 이이(李珥)의 석담사창지법(石潭社倉之法)의 예에 따라 불의의 재난과 일가집의 궁핍에 대비하는 대비책으로 의창(義倉)을 창설하였다. 즉 의창제를 문중 운영에 도입한 것이다. 윤순거는 문중의 선산과 재실의 운영, 묘사를 위하여 마련된 재정 조치로 의전을 마련하였다. 처음 의전(義田)은 윤순거가 5방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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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중기 파평 윤씨 문중에서 운영해 오던 서당. 종학당의 전신은 현 위치에서 서북쪽으로 약 50m 거리에 있는 정수루이다. 정수루는 누각과 서재가 있어 선비들이 학문을 토론하며 시문을 짓던 장소였다. 정수루 정면 중앙에는 정수루(淨水樓)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좌우로 향원익청(香遠益淸), 오가백록(吾家白鹿)이란 현판이 각각 걸려 있다. 호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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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인 충헌공 윤전의 재실. 윤전은 성혼(成渾)의 문인으로 1610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에 들어갔으며, 1613년(광해군 5) 유생 이위경이 폐모소를 올렸을 때, 상소를 저지시키려다 파면되었다. 이후 1615년 호조좌랑에 이르렀으나 사판(仕版)에서 삭제되었고, 1623년(인조 1) 경기도사로 복직되었다. 1624년 이괄의 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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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 병사에서 음력 3월에 파평윤씨 노종파가 윤돈 이하 4대를 모시는 제사. 파평윤씨 노종파 대종중 시제는 매년 음력 3월 첫째 일요일에 입향조 윤돈(尹暾, 1551~1612)을 중심으로 제사를 모시고 있다. 병사 및 선영에서 시제를 지내므로 사당은 없고 재실이 있다. 음식을 재실에서 준비하여 묘소에서 시제를 지내고 있다. 이외에도 논산 지역에서 행해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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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중기 파평윤씨 문중 건물. 파평윤씨 정수루는 파평윤씨 문중에서 운영하던 서당인 파평윤씨 종학당의 전신이자 문인들이 학문을 토론하며 시문을 짓던 장소이기도 하다. 파평윤씨 정수루와 파평윤씨 종학당은 약 340여 년간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여 파평윤씨 가문 출신의 대과 급제자 46명 대다수가 이곳 출신이었다고 전해진다. 파평윤씨 종학당은 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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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후기 파평윤씨 덕포공 윤진의 재실. 노성면 병사리 1구 마을회관 건너편 소로로 약 350m 정도 들어가 오른쪽 길로 200m 가면 덕포선생 고택과 병사, 파평윤씨 재실, 파평윤씨 덕포공 재실, 파평윤씨 묘역이 자리하고 있다. 원래 파평윤씨 재실과 같은 장소에 있었던 건물로, 1988년 충청남도에서 문화재자료 제299호로 지정하였으나 덕포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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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전기 파평윤씨의 재실. 노성면 병사리 1구 마을회관 건너편 소로로 약 30m 정도 들어가 다시 오른쪽(동쪽) 길로 200m 가면 덕포공 고택과 병사, 파평윤씨 묘역이 나온다. 파평윤씨 재실인 병사는 1574년(선조 7)에 건축되었다고 전한다. 1630년대에 윤순거가 선조 묘소 수호사로 지었던 건물과 파평윤씨 덕포공 윤진의 재실을 포함하여...